[전시 리뷰 - 인천청년예술제 '올게이츠'전] "세계의 문이 되는 마계의 도시"
▲'올게이츠'전이 열리고 있는 임시전시 공간의 1층. 노기훈 작가의 사진 설치 작업이 앞에 보인다. (사진=오석근)
동인천역에서 내려 다소 복작대는 국제시장을 지나 전시장을 향해 걷는 거리는 다소 황량하게 느껴졌다. 이제 겨울이라고 말하는 듯 볼을 꽤 따갑게 찌르는 차가운 바람도 한몫했지만, 지하철 1호선 급행열차를 타면 서울로부터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감에 비해 군데군데 중앙아시아권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의 모습과, 사연 많아 보이는 오래된 건물들에서 제법 다른 문화권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인천의 청년 예술가들
인천 중구 신포로 15번길 22-1번지, 한때는 은행이나, 중소기업의 사무실이 있었을 것 같은 그럴듯한 서구식 건물의 지하 1층, 지상 1, 2층이 작가들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졌다. 인천문화재단과 지역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만든 2016 인천 청년 예술제다. 12월 10~18일 열린 이번 행사는 시각 예술인들이 모여 작품을 보여주는 이 건물 전시장을 비롯해 일대의 인턴아트플랫폼, 아카이브까페 빙고, 글래스톤베리 인천, 신포야외공연장 등지에서 인디밴드의 공연과 연극, 퍼포먼스 등이 함께 펼쳐지는 큰 규모의 예술 프로그램이다.
현대 예술의 중요한 흐름이기도 한 청년 작가들의 독립적이고 산발적인 움직임들은 같은 목소리와 색을 찾아가는 등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런 움직임에 있어 시 차원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꽤 큰 몫을 하고 있임은 무시못할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의 예술가 네트워크가 협업으로 만든 이번 전시는 예술인들이 조직적으로 활동을 펼치는 초반 단계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오석근, '한국의 풍습 쌀수확 - 깨끗하게 타작'. 디지털 C-프린트, 100 x 125cm. 2012.
올게이츠(All Gates): 다양한 계(界)로 열린 모든 문
행사 기간 중 이뤄지는 많은 예술 프로그램 중에서도 잠시 임대한 빈 건물에서 선보이는 ‘올게이츠’전에 집중해 본다. 인천의 토박이 예술가들을 포함해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서 비켜나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낮은 인천이라는 도시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의 작업은 서울에서 멀지 않음에도 뚜렷하게 독립적인 색을 가진 도시 인천의 특성을 외적-결과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꽤 깊게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근대 개항의 상징인 인천엔 최초의 서구식 호텔과 커피숍, 우체국, 철도, 차이나타운 등 개항 물결과 함께 들어온 초창기 외국 문물의 형태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특히 전시가 열리는 동인천 일대는 화려했던 시절의 흔적을 그대로 품은 원도심이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전국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을 품었던 장소이며, 최근에는 북한 이탈주민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각종 희한한 신종 범죄들로 온라인에서는 ‘마계’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하지만 비슷한 이방인으로서 유입된 예술가들은 이곳에 대해 “거칠지만 마력적인 뭔가가 있다”고 말한다.
건물의 지하와 1층에는 인천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모인 예술가 11인(팀)의 작품이 선보이고 2층 전시장에는 인천문화재단의 청년예술가 지원사업 ‘바로 그 지원’을 통해 만난 청년 예술가 33인(팀)이 ‘바로 그 시장’전을 통해 관객과 함께 예술 활동을 공유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전시의 서문을 담당한 정현 평론가에 따르면, 전시는 △지역에 대한 궁금증과 역사를 각자의 방식으로 연구한 작품들 △실제 장소를 탐험하며 어떻게 현재의 세계가 구성됐는지 탐구하는 작업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풍자 등으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연구
오석근은 개항시대 전후 서구에 비춰진 한국, 한국인의 모습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작업한다. 유럽의 벼룩시장 등지에서 발견한 엽서와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삽화에는 동아시아의 모습이 크게 왜곡돼 나타난다. 서구인의 인식은 한국의 귀족, 즉 양반을 그린 인물화에 얼굴이 하얗다는 이유로 ‘코카시안 레이스(Caucasian Race)'라는 이름을 붙인다. 타성에 젖어있는 인식으로 표현된 한국의 풍경을 오석근은 연출 사진으로 재현하기도 했다. ’한국의 풍습 - 쌀 수확‘은 언뜻 추수 후 쌀을 도정하고 떡을 만드는 고유의 풍경 같지만, 마치 외국 풍경을 어설프게 재연하는 드라마처럼 세계의 어느 곳에 근원이 있을 것 같은 무늬와 형태의 옷으로 민속의상을 재현한다거나 떡메가 지나치게 크고, 부채를 도리깨 삼고 일하는 척 하는 모습이다. 스스로 알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다른 우리의 모습을 봤을 때, 게다가 그것이 편견이나 타성이 작용한 모습일 때 우리는 헛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조롱거리가 됐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의 모습 또한 분명 존재하는 또 다른 우리이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
▲박혜민, 'HPARK여행사_걸어서 세계로'. 단채널 비디오. 2013.
탐험
1층 전시장을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이는 노기훈의 사진 설치 작업과 진나래(인이)와 박혜민의 사진 기록 및 영상작업은 도시를 직접 탐험한 기록으로부터 상상력을 발전시킨다. 노기훈이 지하철 1호선을 따라 철도 주변을 찍은 풍경들은 비석처럼 줄지어 세워져 있다. 하나의 철도선은 지역마다 다른 풍경과 그로부터 나오는 각기 다른 감성들을 하나로 연결한다.
진나래는 경인 지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해 갈 수 있는 세계여행을 떠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세계 각국의 유명한 지명들을 찾아 도착한 곳의 풍경이나 발견한 물건등을 사진으로 남기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장소들의 대다수가 모텔 등의 숙박 업소였다는 것이다. 세계 유명지의 명칭은 일탈의 꿈을 상징하는 명칭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쩌면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영영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의 이름일 수도 있다.
박혜민 역시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간에서 갈 수 있는 다른 나라를 선보이는데, 그 방식은 조금 더 현실적이고 적극적이다. 그는 인도, 중국, 아프리카 등지를 갈 수 있는 여행사를 운영한다. 비행기는 필요 없다. 한국 안에서 다른 나라를 완벽하게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시장에 제시된 작품은 각 여행지를 소개하는 홍보 포스터 및 TV에서 방송하는 여행 프로그램 같은 영상 컨텐츠를 제작해 상영한다.
▲진나래 작가의 사진 기록 작업 '도화원기'.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외국의 상징과 이미지를 찾는다. (사진= 올게이츠 기획단)
세태와 풍자
도시의 골목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각종 전단지를 모아놓은 김재민이의 작업과, 시위할 때 사용하는 피켓이 방패와 방망이로 나뉘어져 무기로 변신할 수 있는 백인태의 작업에선 조금 더 직접적인 사회 풍자를 느낄 수 있다. 동네 마트 세일부터 지명 수배자 명단, 급매물, 유흥업소 홍보, 과외 모집, 사기꾼을 찾는다는 내용들로부터 현재를 사는 서민들의 삶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백인태는 ‘피켓웨폰(무기)’을 비롯해 콘크리트가 노출된 벽에 정치-사회를 비판하는 각종 풍자시를 적어 시위가 문화가 된 동시대 청춘의 풍경을 연출했다.
▲무기로 변신할 수 있는 피켓과 풍자시와 함께 그래피티를 한 백인태 작가의 전시 구역. (사진=노기훈)
▲도시의 골목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각종 전단지를 모아놓은 김재민이의 작업. (사진=노기훈)
알고나면 현실은 자체로 충격일 수 있어
영상작업과 설치작업으로 이뤄진 지하 전시실은 붉은색 그림으로 뒤덮힌 비닐 설치 작업과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희생자로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들이 패널들로 설치돼 거의 지옥도에 가까운 풍경을 연출한다. 붉은 색의 조명 아래 고통스럽고 불경스럽게 느껴지는 개인의 성찰 과정을 붉은색 이미지로 강렬하게 드러나는 김수환의 영상과, 한국전쟁 전-후의 이념 문제, 또는 숨겨진 국가 폭력에 의한 아픈 희생들을 제시하는 오석근의 작업이 동시에 제시되기 때문이다. 두 작업이 전달하는 정서가 둘 다 강렬하기에 충격을 느낄 수도 있다.
따뜻한 공기만 아니라면 으스스함마저 느꼈을 분위기엔 한 쪽 코너에 설치된 웁쓰양의 촛불 설치 작업도 한몫 거든다. 여러 개의 촛불이 바닥에서 흔들거리는 이 작업은 게임이다. 동전을 던져 작은 통에 집어넣으며 소원을 비는 것에서 착안한 이 게임은 사실 소원성취가 아닌 타인의 소원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다. 동전을 던져 작은 통에 집어넣게 되면 타인이 소원을 적어 넣어놓은 쪽지를 태워 없앤다. 반대로 동전을 넣지 못한 사람은 소원을 적어 넣어야만 하는 것이다. 타인의 희망을 없애는 것이 내가 살아남는 길이라는 우리 사회의 스케치처럼 보인다.
작가들의 단편적인 작업만을 선보이는 그룹전의 형식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최근 봤던 어떤 전시보다 젊은 작가들다운 재기발랄한 작업들이 모여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은 지역적인 특색에 많은 부분 기대어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그들이 활동하는 도시처럼 다소 거칠고 직접적으로 느껴지지만 그렇기에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을 보고 왔다.
▲붉은 조명이 전시 공간을 비추는 '올게이츠'전의 지하 전시장. (사진= 노기훈)
김연수 breezeme@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