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하바롭스크] 미인·유럽풍 많은 하바롭스크는 ‘가장 가까운 유럽’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일차 (블라디보스토크 → 야간열차 → 하바롭스크)
시베리아 횡단열차
드디어 오후 5시 9분, 모스크바행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출발한다. 그 첫 구간 하바롭스크까지는 767km, 14시간 20분 걸려 내일 아침 7시 29분에 도착하는 먼 길이다. 열차는 아무르스키(Amursky)만을 서쪽으로 보며 북상한다. 그동안 북반구, 남반구, 북미와 아시아 혹은 오세아니아에서 태평양을 만났지만 어디서 봐도 태평양은 온순하면서도 장엄했다. 몹시 더웠던 오늘, 열차가 스치고 지나는 해변마다 시민들이 물놀이를 즐긴다. 열차와 나란히 달리는 M-60 하이웨이는 모스크바까지 계속 숨바꼭질 하며 가려는 듯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끝없는 연해주 대평원
그러는 사이 열차는 우수리스크(Ussuriysk)에 도착했다. 연해주 한인들의 많은 사연이 서린 곳이다. 전혀 가꾸지 않았는지 태고 이래로 인간의 손길을 탄 것 같지 않은 벌판에는 어른 키보다 훨씬 높이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참 아깝다. 땅을 제대로 가꾸기에 연해주 대평원은 너무 넓고 인구는 너무 적은 것이다. 우수리스크에서 열차는 만석이 돼 다시 갈 길을 재촉한다. 타이가 삼림과 냉대 습지, 초원이 번갈아 나타나는 광야를 열차는 달린다. 가도 가도 끝없는 대평원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TSR
극동 영토를 합리적,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또한 극동을 노리는 영국, 일본 등 열강들로부터 영토 주권을 확실하게 과시하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Trans-Siberian Railroad) 건설은 제정 러시아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업이었다. 1891년 공사를 시작해 1903년 1차 완공, 이후 임시 구조물들을 보완해 1916년에는 드디어 아무르강 철교를 완성함으로써 완전 개통에 이른다.
오늘날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9288km 전구간이 복선 전철화된 중요한 산업철도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빠르고 안정적인 길이다. 남북 관계가 개선돼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철도가 연결된다면 이제 부산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남단 관문이 되는 것이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부푼다.
▲아무르강 석양과 유람선이 보인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사진 = 김현주
잠 못 이루는 3등 침대칸
밤이 깊어 가면서 두런두런 승객들 속삭임이 정겹다. 열차 안은 무척 덥지만 덥다고 불평하는 승객은 한 사람도 없다. 참으로 무던한 사람들이다. 다행히 자정 무렵부터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하더니 객실 내부가 선선해진다. 30량이 넘는 초장대 열차는 천둥, 번개를 뚫고 북으로 달린다. 밤비를 뚫고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방금 전까지만 해도 더위에 찌들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이제 열차 여행은 낭만이 돼 버린다. 까닭모를 여수(旅愁)에 젖어 시베리아의 밤을 뒤척이는 사이 14시간 열차 이동이 끝나간다.
3일차 (하바롭스크)
공업 도시 하바롭스크
하바롭스크 외곽에 접근하는 열차를 공장 굴뚝 시설들이 먼저 반긴다. 역에는 석탄 화차, 탱크로리, 목재 화차, 군용 화차, 컨테이너 화차 등 각종 화물 열차가 가득하다. 철강, 석유화학, 정유, 곡물, 육류 가공 등이 발달한 공업 도시 하바롭스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화물 열차가 가득한 사이로 열차는 수줍은 듯 비집고 들어간다. 하바롭스크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밤사이 767km의 먼 길을 달려왔지만 아직 모스크바까지는 8500km 남았다.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 거리는 하바롭스크의 중심 거리 중 하나다. 사진 = 김현주
▲구세주 성당과 전몰자 위령비가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 서 있다. 신앙심이 좋은 러시아 사람들은 곳곳에 많은 성당과 교회를 지어 놓았다. 사진 = 김현주
극동 러시아의 양대 도시
하바롭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극동 러시아의 양대 도시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마찬가지로 인구가 늘지 않아서 주정부는 큰 걱정이다(2014년 기준 인구 58만 명). 하바롭스크 주의 면적은 78만 평방km, 한반도의 3.5배, 남한의 8배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일찍이 동방 진출을 시도해 17세기 중반에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당시 원정대를 이끌고 이곳에 도달한 하바로프 장군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이 지어졌다. 러시아인은 모피를 확보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당시 모피는 유럽 귀족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러시아 재정 수입의 10%를 담당했다.
나선정벌
17세기 중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동방 진출에 당황한 청나라는 조선에 출병을 요청했다. 이름하야 ‘나선정벌(羅禪征伐)’이다.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나선정벌(1654, 1658)에서 조선의 소총수 부대는 빼어난 전과를 올렸다.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맺은 네르친스크 조약의 결과 획정된 중·러 국경은 오늘날까지도 대부분 유효하다. 러시아의 맹렬한 남진을 그나마 아무르강(흑룡강)에서 막아낸 데는 나선 정벌의 기여가 클 것이다.
중소 국경분쟁
1969년 중소 국경분쟁도 결국 이 지역에서 일어났다. 우수리강 중간에 있는 작은 섬에서 일어난 국경 군사 충돌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후 1987년 2월부터 국경 협상을 시작했고, 2005년에 협정을 체결해 국경 문제가 해결됐음을 선언했다. 러시아는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면 가장 먼저 자국민 이주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이주해 온 러시아인의 후손 수백만 명이 시베리아 중·러 국경을 따라 살고 있는 한 감히 중국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고요하고 적막하지만 참으로 강렬하고 야릇한 국경이다.
박물관의 도시
하바롭스크는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모스크바 동쪽에서 가장 훌륭한 박물관을 가진 도시다. 콤소몰스크 광장 뒤편, 아무르 강변 우초스(Utyos) 전망대 앞 극동박물관(Far Eastern Museum)을 먼저 찾는다. 백인들의 시베리아, 극동, 태평양 진출에 따라 깊숙한 산중으로 내몰린 원주민들의 역사가 미국 원주민 인디언 역사처럼 슬프다. 설명이 러시아어로만 돼 있기 때문에 답답한 것을 제외하고는 역시 시베리아 최고의 박물관으로 손색이 없다. 극동박물관과 거의 맞붙어서 극동미술관(Far Eastern Art Museum)이 있다. 극동 원주민 예술과 러시아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 건너편에 있는 극동 군사박물관에는 냉전 시절 프로파간다 선전물들과 함께 야외에는 1930~1950년대 각종 무기와 항공기, 탱크, 군용 차량들을 전시해 놓았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은 제정 러시아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업이었다. 1891년 공사를 시작해 1903년 1차 완공, 이후 임시 구조물들을 보완해 1916년에는 드디어 아무르강 철교를 완성함으로써 완전 개통에 이른다. 사진 = 김현주
아무르강 유람선
아무르강 선착장에서 유람선에 오른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 도시 서쪽 아무르강 철교를 돌아서 오는 데 1시간 남짓 걸린다. 유람선에서 옆자리에 앉은 러시아 가족이 말을 붙여 온다. 이반이라는 남성은 목재를 산더미로 싣고 중국으로 향하는 배를 보며 울분을 쏟는다. 러시아의 자원을 싹쓸이하는 ‘블랙홀 중국’에 대한 원망이다. 그러면서도 돈은 이곳에 한 푼도 떨어지지 않고 몽땅 모스크바로 간다며 변방 백성의 답답함을 호소한다.
미인의 고장
콤소몰스크 광장으로 나간다. 여기 하바롭스크에는 집시부터 북구인 용모를 가진 사람들까지 온갖 유럽 인종이 다 모여 있다. 비가 그친 오후 여름 해를 즐기는 백인 여성들의 옷차림과 몸매가 현란하다. 미인이 많은 러시아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함께 하바롭스크는 미인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광장에는 여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제각기 뽐을 낸 건축물들로 둘러싸인 광장 한 복판에는 파란 첨탑 지붕을 얹은 아름다운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있다. 신앙심이 좋은 러시아 사람들은 곳곳에 많은 성당과 교회를 지어 놓았다. 콤소몰스크 광장에서 멀지 않은 레니나(Lenina) 거리에는 하바롭스크의 상징물 구세주 성당이 황금 돔을 자랑하며 서 있다. 2004년 완공한 높이 83m의 이 성당은 러시아 전체를 통틀어서 세 번째로 높다고 한다. 아무르강을 내려다보는 인근 언덕에는 전몰자 위령비와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이 지역 출신 2차 대전 전몰자들의 이름이 긴 벽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러시아 어느 도시든지 레닌 광장은 시내의 중심 광장이다. 사진 = 김현주
멋진 유럽풍 거리
도시의 중심 가로인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Muravyov-Amursky) 거리를 따라 레닌 광장까지 걷는다. 북방의 늦은 오후 여름해가 눈부시게 찬란하다. 웅장한 관청 건물, 기념품 가게, 백화점, 명품점, 식당과 크고 작은 카페가 즐비한 거리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명품 유럽 거리다.
하바롭스크는 러시아 혁명 당시 일본군 시베리아 원정대가 점령하는 바람에 전화를 입지 않고 비교적 잘 보존돼 우아한 건물이 많다. 단연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레닌 광장에서 휴식을 즐긴다. 시원한 분수가 뿜어 올라가는 광장 분위기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채도가 높은 원색 옷을 잘 소화해내는 슬라브 미인들 덕에 광장이 더욱 화려해진다.
4일차 (하바롭스크 → 항공 → 이르쿠츠크)
아무르 철교 건설
도시 외곽 아무르 철교를 보러 간다. 도시가 끝나는 지점에 걸린 2165m의 장대 교량은 열차와 자동차가 함께 이용하는 2층 복합교량이다. 철교 입구에 자리 잡은 아무르 철교 역사박물관에 들렀다. 폴란드에서 제작한 교량 철강 프레임을 먼 길을 돌아 수송하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고 게다가 혹독한 겨울 날씨까지 괴롭혔으니 얼마나 어려운 공사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어쨌든 아무르 철교는 황제가 독촉한 기한을 7개월 넘겨 1916년 10월 개통을 맞았다.
▲콤소몰스크 광장으로 나간다. 광장은 제각기 뽐을 낸 건축물들로 둘러싸였다. 사진 = 김현주
▲아무르철교 역사박물관. 하바롭스크는 박물관으로 유명한 박물관의 도시다. 사진 = 김현주
시민들의 오후 한때
풍광이 좋은 아무르강 철도역사 박물관 주변에서는 마침 여러 쌍의 신혼부부들이 웨딩 촬영을 하고 있다. 1930년대 미국 시카고 갱스터 복장으로 차려입은 신랑신부 친구들의 퍼포먼스가 익살맞다. 인근에는 황금빛 찬란한 세라핌 성당이 있어서 신혼부부들은 이번에는 모두 그곳으로 이동해 웨딩 촬영을 계속한다. 덕분에 나는 그들을 따라가 즐거운 눈요기를 실컷 한다.
한국과 인연 많은 도시
금요일 저녁,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차가 가득하다. 이 도시에서도 도로가 차량이 증가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니 어디를 가도 교통 체증이다. 김유찬 거리를 들른다. 레닌 거리와 나란히 하는 조용한 주택가 거리가 ‘김유체나 거리’로 명명돼 있다. 1900년 연해주에서 출생한 그는 1921년 혁명 때는 백군에 대항하는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했고 1929년 동청철도 항일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김 알렉산드라는 한국인 최초의 공산주의자로서 연해주 우수리스크 출생으로 1918년 혁명 당시 백군에 포위돼 하바롭스크에서 총살당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
오늘은 하바롭스크를 떠나는 날이다. 아쉬움에 레닌 광장에 다시 나가 본다. 광장에는 레닌 동상이 건재하게 서 있고 동상 기반석에는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의 가장 고귀한 형태로서 인민들이 공동 행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할 때 공산주의가 완성된다’는 유명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극동 러시아는 과거 공산주의 시절 혜택을 상대적으로 많이 입은 곳이어서 그런지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가 조금은 남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제 하바롭스크를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 일찌감치 공항으로 나갔다. 국내선 공항에는 러시아 각지로 항공기가 부지런히 들고 난다. 이르쿠츠크행 오로라 항공기는 정시에 이륙한다. 1350마일, 3시간 30분 거리다. 작은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시베리아의 밤하늘을 날아 이르쿠츠크에 현지 시각 밤 11시에 도착했다. 택시로 숙소에 도착해 짐을 푼다. 밤공기가 아예 차갑다. 개 짖는 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는 머나먼 변방, 아시아 대륙 한복판 깊숙한 곳에서 맞이하는 밤이 낯설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