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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미국 장관은 트럼프에 반대하다 잘리고, 한국 장관들은 최순실에도 설설 기고… 왜 다르지?

시스템으로 보는 한국과 미국-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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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2호 최영태⁄ 2017.02.09 11:50:08

▲최영태 발행인/편집국장

요즘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1등을 달리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 앵커는 지난 11월 14일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100만 촛불집회에 대해 일본 언론들이 큰 관심을 보여 그들과 몇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다. 헌데, 내가 아무리 설명해줘도 그들이 이해 못하며 끝내 머리를 갸우뚱하는 부분이 있더라. 바로 ‘한국이 아프리카 추장국도 아니고 나름 준 선진국이어서 어느 분야든 나름 시스템이 있을 텐데, 어떻게 자격없는 민간인에게 국정을 농단하는데도 시스템이 전혀 작동안돼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수 있느냐.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며 끝내 이해를 못하더라”는 얘기였습니다. 

사람의 머리라는 게, 어떤 말이든 척척 알아듣는 게 아닙니다. 경험의 범위를 뛰어넘는 얘기를 들으면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뭔 얘기를 들으면, 그걸 내 경험에 비춰 유추-비유-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이해가 가능한데,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일본에서 살아온 일본 기자들 입장에서는, 최순실이라는 일개 개인이 부처별 관행 등을 무시하고 멋대로 인사와 예산을 갖고 장난칠 때까지 관료-공무원들이 반발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 수 있겠습니다. 
 
요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급격한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내리자 그에 항의해 법무부장관 대행이 반대 의견을 내놓았고 그러자 트럼프는 바로 이 장관 대행을 파면시켰습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미국 관리들은 그래도 바로 저항을 하는군”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스템이 있기는 하되, 힘센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는 나라

현재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대통령 탄핵심판을 보면, 이 나라에는 분명 시스템은 있습니다. 절차와 시스템이 있기에, 절대다수 국민이 “왜 빨리, 오늘 당장 탄핵 인용 결정을 땅땅땅 내리지 못하느냐?”고 불같이 성화를 해도 탄핵 심판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12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2주기 기념일에 맞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전격적으로 내린 기관이기도 합니다. 당시 해산 결정에 대해 변호인 측에서는 “우리가 엄청나게 내놓은 자료를, 헌재 재판관들이 과연 다 읽어보기나 하고 이런 심판을 내렸는가? 자료를 다 검토했다면 이렇게 허접한 판결문을 낼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지난 2014년 12월 19일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판결문의 2쪽.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취임 뒤 불과 2주만인 2013년 8월 28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실시됐습니다. 그리고 1년 4개월 뒤에 해산 결정이 전격적으로 내려졌습니다. 정당 해산의 전례인 독일 공산당 해산 결정에 5년(1951~56년)이나 걸린 것에 비한다면, 그리고 ‘해를 넘길 것’이란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어 현직 대통령 선거 당선일 2주기 날짜에 맞춰 2014년 12월 19일 해산 결정이 내려진 것은, 정말로 헌법재판소가 시스템을 건너뛴 오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진영-유진룡과 홍용표-윤병세의 차이

일본 기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공무원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한국에서도 제대로 작동됐다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2016년 10월이 아닌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발각났을 것이라는 증거들을 몇 개 들어볼까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3년 9월에 장관직을 내놓습니다. 임명 6개월 만이었고, 더군다나 그는 정치인 박근혜의 비서실장 경력이 있는 ‘원조 친박’인지라, 그의 장관직 사퇴는 충격적이었죠. 당시 국민연금과 노령연금을 연계시키는 ‘옳바르지 못한’ 조치를 청와대가 밀어붙이며 발표하고, 그 과정에서 책임자인 자신은 이른바 비선실세의 농단 때문에 대통령을 만날 기회조차 봉쇄당하자 진영 장관은 과감히 직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퇴는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비선실세에 대해 국민 전반이 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습니다.

다음해인 2014년 7월에는 유진룡 문화부장관이 해임됐습니다. 최순실 사태 이후 사후적으로 널리 알려진 해임 이유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대해 편파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류 장관이 강하게 반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화부의 공무 시스템에 따라 당연한 반발-항의를 한 것이지만, 비선이 농단하는 청와대는 류 장관을 해임했습니다. 온갖 잡음이 뒤따르면서 관련 내용이 언론을 탔고, ‘청와대에 뭔가 이상한 실체가 있는 거 아냐?’라는 의혹이 세상에 퍼졌습니다. 류 장관의 해임은 ‘정유라’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면서 박근혜 탄핵 사태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이처럼 최소한의 공무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즉 주무 부처 장관을 제껴놓고 밀실에서 자격없는 민간인들이 중요한 정책을 주무르거나, 특정 선수만을 콕 찝어 도와주라는 대통령의 부당한 요구에 공무원 사회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미국 또는 일본에서처럼 맞섰다면, 이렇게 쉽게 국정농단이 전반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016년 2월 개성공단의 급작스런 폐쇄 당시 입술 위가 부르튼 채로 TV에 나와 개성공단 폐쇄의 필요성을 말하는 홍용표 장관. 그러나 사실 그는 9개월 전만 해도 "개성공단을 국제공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사진=KBS 캡처)


그렇다면 반대로, 공무원 시스템이 전혀 돌아가지 않았던 사례를 볼까요? 

작년 2월 10일 개성공단 폐쇄가 느닷없이 결정됐습니다. 당시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존속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냈었지만 청와대는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폐쇄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홍용표 장관은 입술 위가 부르튼 모습으로 TV 화면에 비쳐졌습니다. 주무부서 장관의 부르튼 얼굴은 그의 고민을 웅변적으로 보여줬지만, 그는 청와대의 일방적인 결정에 사후적으로 추종해가며, 자신의 발언(9개월 전에만 해도 “개성공단을 국제공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던)을 번복해가면서까지, 시스템을 작동시키지 않았습니다.

개성공단 문닫는 과정에서 입도 뻥끗 못한 통일부

개성공단의 문을 닫으면 북한보다는 남한에 더 손해이기에 닫아서는 안 된다는 내부 보고서가 이미 이명박 정권 때 만들어졌다는 후문이고, 통일부도 분명 ‘존치’ 입장을 지나 국제공단으로 키워야 한다는 방침을 결정했었다면, 홍 장관은, 진영-유진룡 장관이 그랬듯, 부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저항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저항은 없었고, 개성공단 기업의 종업원과 그 가족 20만 명은 길바닥으로 내쫓겼으며, 개성공단 폐쇄라는 자해적 조치에는 최순실의 입김(‘미얀마 등지에 개성공단을 대체할 공단을 기획부동산 식으로 마련하려 했을 것’이라는 의혹과 함께)이 미쳤다는 의혹이 현재 점점 널리 퍼져가고 있습니다. 

주 미얀마 유재경 대사를 최순실이 면접하고 임명했다는 사실, 그리고 해외원조기관인 KOICA의 김인석 이사장 역시 최순실의 입김으로 임명됐다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유-김 두 사람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기반으로 연을 맺었으며, 프랑크푸르트는 최순실의 활동무대였지요. 

▲jtbc 뉴스룸에 출현해 주베트남 대사 임명과정에서의 이상한 점을 증언하는 김재천 주 베트남 영사. (jtbc 화면 캡처)


베트남 호치민 주재 김재천 영사는 2월 2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외교관 출신이 아닌 삼성그룹 출신인 유재경을 처음에는 베트남 대사로 보내려 했지만 전임 전대주 주베트남 대사(2013년 6월 임명)가 이미 외교부 출신이 아닌 기업인 출신이어서 외교부가 ‘두 번 연속 당할 수 없다’며 반발해 유재경이 미얀마 대사로 간 것(2016년 3월)으로 알고 있다”며 “코이카 이사장 자리도 그간 줄곧 외교부 출신이 맡아 왔으나 작년 5월에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출신의 김인식 씨가 맡았다. 외교부 통신망에 들어가 보니 유-김 두 사람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2014년~2016년 3년간 함께 근무했더라”고 폭로했습니다. 

외교관 출신이 맡아왔던 자리를 최순실 일파가 뺏어와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사업가 출신들에게 맡기면서 베트남과 미얀마 등지에서 정부의 ODA(해외원조) 자금 수백억 원을 활용해 돈벌이 사업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 대사 자리를 두 번 연속 기업인에게 뺏길 뻔한 외교부

베트남처럼 중요한 나라의 대사 자리에 非외교관을 앉히는 청와대의 ‘이상한’ 조치에 2013년 당시 외교부는 묵묵부답이었으며, 2016년에 후임 대사를 또 기업인 출신으로 보내려 하는 청와대의 시도에 대해 외교부의 항의가 겨우 이뤄졌지만, 유재경을 미얀마 대사로 보내는 선으로 어정쩡하게 마무리됐던 것이지요.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2013년 전대주 대사 임명 때 진영-유진룡 장관처럼 대처했더라면, 아니 그때 못했더라도 2016년 3월과 5월에 이뤄진 ‘이상한’ 미얀마 대사-코이카 이사장 인선에 외교부 수장으로서 부처 차원의 항의를 했더라면 최순실 국정농단은 지금보다 훨씬 빠른 시점에 발각될 수 있었겠죠? 

앞에서 예를 든 네 장관, 즉 진영-유진룡(부당한 조치에 반발) vs 홍용표-윤병세(부당한 조치를 묵인)의 차이는 도대체 뭘까요? 왜 어떤 장관은 부처 시스템이 망가질 때 일신의 피해를 마다않고 항의를 하다가 쫓겨나고, 다른 장관들은 시스템이 망가지는 데도 모른 척했던 걸까요? 장관까지 오른 인물이, 직장을 잃으면 생계 보장이 안 되기에 불의-부정-시스템붕괴를 모른 척 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했기에 그랬다고 할 수 밖에, 즉 공직(公職)을 맡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그렇다고 해야겠지요.     

금융 범죄인을 불러들이는 한국의 허술한 금융감독 시스템

흔히 ‘한국에는 시스템이 없거나 약하다’고들 말합니다. 시스템이 약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의혹이 쏟아진 이른바 ‘BBK사건’을 파헤친 재미한인 변호사 메리 리는 저서 ‘이명박과 에리카 김을 말한다 - BBK사건 진상 파헤치기 8년’에 이렇게 썼습니다. 
한국의 사법시스템, 금융감독 체계는 허술한 구석이 많다. 한미 양국의 금융환경에 밝은 사업자라면 일이 잘못돼도 처벌 위험이 적은 한국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미 두 나라의 금융감독 현실을 비교하면 바로 이런 결론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정치에도 시스템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치편론가 박성민은 저서 ‘정치의 몰락’에서 “공천에 제도나 시스템이 아예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몇몇 현직 의원이 최순실에게 돈을 싸들고 가 알현한 뒤에야 공천을 받았다는 사례가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의 폭로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4.13 총선에서 당원이 참여하는 완전 공개투표로 공천 대상자를 선정하는 시스템을 갖춘 당은 정의당 밖에 없었으며, 나머지 당에선 밀실공천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한국엔 정당의 확정된 공천 시스템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사례를 전하는 다음 두 발언을 보면, 우리의 정치 시스템이 얼마나 낙후됐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미국에선 차기 대선 주자들이 대통령에게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다. 왜? 공천권을 대통령이나 지도부가 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당내에서 경쟁한다. 대통령을 겁낼 이유가 없다.(이철희 저 ‘뭐라도 합시다’에서) 

어떤 정당이 효과적인 공천을 하지 못한다면 그 당은 현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공천은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다.(샤츠 슈나이더 저 ‘민주주의의 정치적 기초’에서)

객관적인 공천 기준이 확보돼 있기에 정치인들이 겁 없이 대통령이 싫어하는 소리를 할 수 있는 미국과, 무자격자라도 최순실 같은 비선실세에게 돈다발을 싸들고 가면 매관매직을 할 수 있는 한국의 현실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자기 손으로 근대문물 골라온 일본과, 강대국으로부터 강제 선물만 받은 한국

근대화에 뒤처진 한국은, 근대적인 국가 시스템을 가지려 노력했으며, 그런 노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근대 문물을 수입한 창구는 일본이었습니다. 

서구 열강의 동점(東漸: 동쪽으로 다가옴)을 한국보다 훨씬 일찍 맞이한 일본은 1860년부터 1871년까지 11년 동안 정부 차원의 구미사절단을 여러 차례, 대규모로 유럽과 미국에 보내 선진문물을 배워왔습니다. 1860~70년대라면 조선이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신음할 때입니다. 일본은 조선보다 거의 반세기나 일찍 서양문물을, 남의 손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골라 수입해와 일본 땅에 착목시켰습니다. 일본은 프랑스의 성문법 체계, 영국의 입헌군주의회 정치제도, 독일 막강 육군의 군사제도 등 당시의 최고 시스템만을 선별 도입해 나름 탄탄한 근대국가를 완성해 나갔지요. 이처럼 직접 고른 문물들이고, 선각자 후쿠자와 유키치 등이 언론을 통해 “근대화를 완성못하면 서양의 식민지가 된다”고 강조하며 여론을 통일함으로써 불과 20~30년간의 짧은 기간만에 서양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강대국으로 부상합니다. 

▲이와쿠라 사절단의 지도부(왼쪽에서 기도 다카요시, 야마구치 마스카, 이와쿠라 도모미, 이토 히로부미, 오쿠보 도시미치). 1872년 런던 체류 중 촬영.(사진=위키피디아)


물론, 민주주의의 문제라면 조금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요. 일본의 민주주의라는 게 2차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강제로 심어준 것이기에, 일본의 민주주의는 한국에 뒤쳐졌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습니다. 강제로 이식된 시스템은 부실하기 마련입니다. 일본이 한국에 강제로 시스템을 이식했으니, 한국의 시스템이, 일본의 스스로 챙겨온 시스템보다 약한 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조선은 ‘일본화된 서양문물’을 강제로 이식받았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완성된 민주주의’를 완제품 상태로 추가이식 받았지요. 근대국가의 거의 모든 시스템을 자기 손으로 고른 게 아니라 남의 손에 의해 완제품을 넘겨받은 셈이니 시스템이 탄탄할 리가 없지요. 

한국의 민주주의는, 헌법에 먼저 써놓고 아직 실현은 못한 ‘후불제 민주주의’ 

예컨대 선거 제도만 해도,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 초기에는 부르주아 시민 계급만 투표권을 행사했다가 점차적으로 노동자, 여성으로 확대됐으며, 이렇게 투표권이 확산되는 과정마다 노동자 표를 기반으로 하는 진보정당이 생기는 절차를 밟아왔습니다. 

정치학자 최장집의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은 알아둘만 하지요. 

서구의 경우 노동자 투표권이 부여됐을 때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조직됐고, 1차대전 이후 20, 30년대에 대부분 국가에서 집권정당으로 부상했다. 정당의 구조가 소수 엘리트 중심에서 대중정당으로 급격하게 전환한 결과. 서구에서 투표권 확대는 광범위한 사회집단과 계급의 정치적 참여 확대를 동반했다.

▲제주 4.3사건 당시의 민간인 집단학살을 보여주는 제주 다랑쉬굴의 학살현장 재현. 4.3사건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이승만의 5.10 투표 독료에 맞선 제주도민들의 투표 거부로부터 시작됐다. (사진=위키피디아)


반면 대한민국은 해방과 함께 미 군정이 풀세트의 민주 선거 제도를, 즉 남녀 불문하고 일정 나이만 되면 누구든 얼떨결에 투표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투쟁 없이 받은 선거권이기에, 그 선거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기 쉬웠고, 그 표는 정상배들이 막걸리나 고무신 또는 현금봉투로 사들이는 대상이 됐습니다. 지금도 고령층에 남아 있는 노예스러운 투표권 인식, 즉 “백성은 선거 때만 잘난 사람을 뽑으면 될 뿐이고, 선거가 끝나면 뽑힌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이야. 그러니, 대통령을 국민이 떼거리 시위를 통해 쫓아낸다는 건 말이 안 돼”라는 민주주의도 아니고 왕조시대도 아닌 이상한 생각이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유시민은 책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할부금을 다 치르지 않은 승용차와 비슷하다. 헌법 제 1조는 존재(Sein)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당위(Sollen)를 선언한 것일 뿐”이라고. 

구미 국가의 헌법 제 1조에 ‘①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② 이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나와 있다면, 이는 투쟁을 통해 국민이 확보한 권력을 문장으로 바꿔 놓은 것, 즉 팩트를 밝혀놓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국민투표를 통해 뽑았더라도 이상한 대통령이 괴상한 정책을 밀어붙이면, 트럼프의 反이민법에 대한 장관 또는 각 주의 저항에서 목격되듯, 바로 국민의, 그리고 각 기관의 시스템적 반발에 봉착하게 됩니다. 

반면 ‘완제품 선거권’을 타력으로 선물받은 한국 민주주의는 헌법의 선언에 불과할 뿐 국민들 사이에 체화(体化)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시스템적으로 미비할 뿐만 아니라, 설혹 기껏 시스템이 장착돼 있더라도 그 시스템을 지키고 유지해야 할 사람들(특히 관료들)이 사익에 눈이 어두워 수시로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기도 합니다. 

이식된 민주주의-헌법에 대해 아직 할부금을 완납하지 못한, 즉 헌법에 써 있는 내용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체화하지 못한 한국인들은, 여기에다가 추가해 또한 별난 경험까지 했지요. 민주주의라는 게 원래 시끄럽고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중요한 문제를 함부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천천히 결정되도록 만든 게 민주주의의 절차입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힘세고, 인권따위는 무시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출현해 민주주의의 복잡하고 지리한 절차를 ‘바이패스하면서’ 초고속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박정희 독재를 통해 경험했습니다. 비록 억울한 사람이 수없이 죽더라도 경제만 팍팍 고속성장한다면 나는 따스하게 지낼 수 있다는 이상한 인식을 한국인 다수는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박정희식 ‘건너뛰기 독재개발’에 아직도 미련 갖는 사람들?

흔히 ‘이명박근혜’로 불리는 10년의 경험은 바로 20세기에, 저개발국에서나 가능했던 ‘박정희의 건너뛰기식 고속성장 공식(개발독재라고도 불리는)’을 21세기 준선진국 대한민국에 적용해 돈맛을 보려는 한국인 절대다수의 욕망이 불러온 결과였습니다.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두 “돈 많이 버세요~”를 인사말로 정착시킨 끝에 한국 경제는 망가지고, ‘헬조선’만이 남아 있습니다. 젊은이와 노령층은 미래가 어둡고 살길이 막막해 자살하고(‘현재’에 대한 거부), 가임여성들은 험한 미래를 자식에게 주는 것이 두려워 애를 안 낳는(‘미래’에 대한 거부) 망할 나라가 됐습니다. 

이런 경험을 지주형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책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생태, 도덕적 가치를 희생해 얼마나 성장에 성공했던가. 그러나 이제 과거와 달리 민주주의를 희생시킨다 해도 성장이 늘어나지도 않을 뿐더러 설사 747로 성장한다고 해도 과실을 맛볼 이는 많지 않다.” 

박정희식 고속성장은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설사 ‘밥 먹여주지 않는 민주주의’를 희생시켜 억지로 고도성장을 시킨다 해도 그 과실은 재벌의 기름진 배만 더 두텁게 할 뿐, 일반 국민들의 배고픔은 여전하리라는 진단이지요.  

▲국군의 날 행사 때 박정희 초상을 나타낸 카드섹션. (사진=위키피디아)


최소한 일본 기자들이 이해할만한 시스템의 나라는 돼야지요? 

결론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더 좋은 시스템을 계속 마련해야 합니다. 어디선가 영웅(대통령)이 기적적으로 나타나, 모든 문제를 척척 해결해줄 것이고, 그래서 일반 국민은 5년에 한번씩 투표권 행사로 그 전지전능적인 영웅을 골라내는 행위만으로 이후 따끈한 혜택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부터 버려야 하겠지요.  

또 하나는 기왕에 마련된 시스템이라도 감시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작년 10월말부터 현재까지 4개월째 이어지는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분명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이란 게 그냥 만든다고 자동으로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시스템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시스템이 좋다고 해도 머리좋은 사람들이 그 시스템을 건너뛰거나 돌아감으로써 시스템을 ‘없는 것만도 못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일본 기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나라 시스템 정도는 만들고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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