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개판에는 깽판으로 저항해야 한다.”
연희단거리패 30주년을 맞아 지난해 열렸던 간담회에서 이윤택 연출이 던진 강한 한 마디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검열 논란으로 어그러진 세태, 즉 ‘개판’이 된 세상을 그는 저 한 마디에 함축했다. 그리고 약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광화문 광장의 블랙텐트에서 굿극 ‘씻금’을 올린 그를 만났다. 1월에 이은 블랙텐트 시즌 2의 포문을 연 이 연출은 블랙텐트를 가리키며 “이것이 예술인의 깽판 방식”이라 말했다.
“판이 정당하게 안 돌아가는, 개판인 세상에는 깽판으로 맞서줘야 하죠. 청문회 돌아가는 꼴이나, 최순실 등이 재판에서 하는 말이나, 뻔뻔하고 후안무치하고 말이 안 되는 것 천지예요. 어제는 명색이 대통령을 변호한다는 사람이 논리적 변호가 아닌 불륜을 언급하더군요. 고영태가 ‘천박하다’ ‘왜 역겨운 언어를 쓰느냐’ 답했고요. 도대체 시민을 뭐로 보는 건지…. 이 세상이 지금 그만큼 개판이에요. 체면도, 염치도, 경우도 없어요. 말이 안 통할 때는 깽판을 쳐서 판 자체를 흩뜨려줘야 하죠. 문화에서의 깽판은 바로 광장이에요. 빼앗긴 극장을 다시 세운다는 취지에서 기습적으로 야외에 공연장, 즉 블랙텐트를 세웠죠. 처음 광화문광장에 텐트가 들어설 때만 해도 불법이다 뭐다 하면서 막았지만, 지금 예술인의 깽판에 오히려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깽판이 축제가 되고 있죠.”
이 연출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의 중심이자, 시발점에 있는 인물이다. 2015년 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희곡 분야에서 이 연출의 ‘꽃을 바치는 시간’이 심사 과정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원금 대상에서 최종 탈락했다. 또한 같은 해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또한 지원 선정에서 배제됐다. 납득할 수 없는 탈락으로 문화 예술인 사이 블랙리스트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그리고 이 연출이 2012년 문재인 후보 지지연설을 했다는 것, 그리고 박 연출의 2013년 공연 ‘개구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리고 떠오른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실체.
“저는 처음에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됐을 때 ‘설마’ 했어요. 당시 젊은 친구들을 지원해주려 한다고 하기에, 그 이유라면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박근형, 김재엽, 윤한솔 등 연극 좀 한다는 재능 있는 후배들이 모두 떨어지고, 분위기가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더군요. 그 다음해 다른 지원금 신청을 넣었는데 그것도 바로 떨어졌고요. 그래서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전 한 방송에 출연해 ‘누가 지금 문화를 검열하고 장난치고 있는 것 같다.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후 진짜 최순실 사태, 블랙리스트 논란이 터졌습니다. 예언한 셈이죠. 구시대적인 블랙리스트라니.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어요.”
이 연출은 “블랙리스트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때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연출은 몸소 검열을 겪은 세대라고 털어놨다. 70년대 기자 시절, 신문대장(가 인쇄물)을 갖고 육군 소령에게 가야 했다고. 소령은 자신이 쓴 기사를 채점하듯 빨간 줄을 그으며, “이건 안 돼” 식으로 명령했다고 전한다. 의견을 내려 하면 구둣발로 차였고, 기사를 잘못 냈다고 붙들려 가 얻어맞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조금씩 편향성은 있었어요. 전두환 정권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서 오히려 문화엔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노태우 정부 때 연극인은 비교적 고르게 지원금 혜택을 받았고요. 문화적 성향이 아니었던 김영삼 정부 때는 지원금을 잘 받지 못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은 문화 르네상스 시대였어요. 고르게 지원을 받았죠. 노무현 정부 때는 보수주의자,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밀렸어요. 이명박 정부 때도 비슷했고요. 하지만 이것은 성향의 차이였을 뿐, 블랙리스트 차원에서 이뤄진 건 아니었어요. 누구를 아예 배제하는 식의 진짜 촌스러운 짓, 블랙리스트는 단언컨대 없었습니다.”
소시민에서 시민으로…60년만의 변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검열이 아닌, 특정 계층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검열이 기가 막히게 이뤄졌다는 사실이 여러 보도로 밝혀졌다. 블랙리스트의 주범들, 그들은 제대로 큰 코 다쳤다. 블랙리스트 논란은 예술인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겁을 먹게 만들기는커녕 집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시민이 함께 힘을 모으게 만들었다.
이 연출은 “블랙리스트 논란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예전엔 기사 한 줄로도 죽도록 얻어맞았는데 무엇이 무섭겠는가”라며 “문화 예술을 우습게 본 대가를 그들은 톡톡히 치를 것이다. 지금 시대는 정치적으로는 굉장히 어둡지만, 문화적으로는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변화의 촛불”이라고 말했다.
“지금 광장은 큰 변화의 시기예요. 1960년대 4.19 이후에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나왔습니다. 소설 속 광장은 지식인의 광장이에요. 좌우의 대립 속 어느 한 쪽으로 결정하지 않고, 회색분자가 돼 제3국으로 망명을 가는 내용이죠. 그때의 광장은 죽음, 그리고 피의 혁명성으로 점철됐어요. 그런데 지금의 광장은 달라요. 지식인이 아니라, 시민들이 들어왔죠. 내 가족, 내 이웃이 광장에 서는데 총 쏠 수 있겠어요? 지금 광장의 주체는 바로 시민이에요. 시민 주체의 시대가 바야흐로 60년 만에 열린 겁니다.”
이 연출이 1970년대에 낸 시집 ‘시민’이 있다. 그리고 연극 ‘시민K’를 선보이는 등 그는 늘 노동자, 농민, 민중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이야기해 왔다. 부조리함을 알긴 알지만 크게 부르짖지 못하는 소시민이 많았던 사회. 이제는 소시민에서 ‘소’를 뗀 시민이 돼야 하고, 그 시민들이 광장을 일으켰다는 게 이 연출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주체의 중심에 젊은 세대가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이 시대는 ‘헬조선’, 즉 절망이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이요, 열심히 노력해도 타고난 금수저에는 못 당하는 현실이 젊은 세대를 좌절시켰다. 경쟁에 치이는 사회에 개인주의가 자리 잡았고, 개인적인 담론은 많았지만 거대담론은 부족했다. 그런데 이들이 “이게 나라냐”며 ‘우리’를 외치고 손을 잡기 시작했다.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땐 주위 눈치를 많이 봤어요. 군부독재와 민주화가 부딪치는 시대였기에, 젊은이들이 위축되고 소신대로 발언하지 못했죠.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굉장히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한 장점이 있어요. 인터넷만 봐도 자기 생각을 분명히 이야기하는 게 많이 보이죠. 그런데 다만 결집은 잘 하지 못했어요. 힘든 시대가 그렇게 만든 거죠. 그랬던 젊은이들이 이제 광장에 모여 함께 촛불을 들고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공동체는 힘든 현실을 버티는 지구력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목소리는 작지만 모이면 무엇보다 커질 수 있죠.”
이 연출도 이 움직임을 응원하기 위해 광장에 섰다. 2월 6~9일 ‘씻금’을 올렸다. 그가 블랙텐트 공연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특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 예술감독이 그러더라고요. ‘블랙텐트에서 이윤택과 같이 공연을 하게 될 줄 몰랐다고’. 이유인즉슨 ‘연극계의 거물이고, 국립극단 예술감독까지 했던 사람이 굳이 이 열악한 환경에서 공연을 하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야외 공연이 익숙해요. 1987년 민주화 운동 때에도 부산시에서 야외극을 했고, 연희단거리패 단원들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야외 공연을 끊임없이 해 왔어요. 그래서 제겐 블랙텐트 공연이 특별히 어렵진 않았어요. 그리고 저는 오히려 제게 공연 의뢰를 해줘서 영광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시대는 젊은 세대가 끌어나가고, 저같이 나이 든 사람들은 나서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참여해야죠. 젊은 친구들이 먼저 나서서 블랙텐트를 꾸렸고, 거기에 제 공연을 올리고 싶다고 청해 왔어요. 이것만큼 뿌듯하고 기쁜 일이 어디 있겠어요?”
블랙텐트에서 굿극 ‘씻금’을 올린 특별한 이유
블랙텐트에서 올린 ‘씻금’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씻금은 진도의 씻김굿을 진도 사투리 그대로 사용한 제목이다. 진도 민중들의 개인사를 한국의 근현대사로 수용해 내는 이 극은 굿과 극이 만난 ‘굿극’이다. 이 연출은 굿의 연극화 시리즈로 앞서 ‘오구 죽음의 형식’(1990, 동해안 별신굿), ‘일식’(1999, 경기 도당굿), ‘초혼’(2004, 제주도 칠머리 당굿)을 선보여 왔다. ‘씻금’은 네 번째 굿극으로, 연희단거리패가 운영하는 소극장 30스튜디오에서 지난해 무대에 올렸다. 왜 굿극이었을까? 특히나 요즘 들어 더욱 우스꽝스럽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굿이라니. 그런데 그는 "그래서 더욱 이 공연을 블랙텐트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최순실 국정농단 이야기가 나오면서 최순실이 무당이라 불리고, 광화문에서 이상한 엉터리 굿이 열리는 등 굿과 무당이 사이비라고 이야기돼요. 특히 전통을 잘 모르고 관심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런 이미지가 더 강하게 박혔죠. 이건 엄청난 왜곡이에요. 굿은 우리 전통의 원형입니다. 소리, 춤 이런 모든 것들이 굿에서 파생됐고 현재의 대중가요 등 문화를 이루는 데 영향을 끼쳤죠. 굿은 종교, 미신적 행위 이전에 우리 문화의 원형이에요. 이걸 이상한 사람들이 사이비로 만들어놨으니 통탄할 노릇이죠. 그래서 우리의 장단, 우리의 굿을 제대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은 진도의 순례 할머니로부터 시작된다. 노래를 흥얼거리던 순례 할머니가 김밥을 먹다가 별안간 바다로 “나 간다”며 뛰어든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순례의 죽음을 슬퍼하며 망자를 위한 굿판을 마련한다. 무당이 씻김굿을 시작하고, 순례의 넋이 소리를 따라 바위 위로 기어 올라온다. 그리고 또 다른 망자들도 하나둘씩 굿판에 모여든다. 그리고 이들은 이승에서의 한(恨)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슬프다. 한 망자는 생전 가족과도 만나기 힘들었다. 정리해고가 만연해 혼자서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 그런 세상은 가족을 뿔뿔이 흩뜨려 놓았고 소식조차 알기 힘들게 만들었다. 또 다른 망자 두 명은 동반 자살을 택했다. 가수를 꿈꿨지만 세상은 그 꿈을 품어주지 않았고, 꿈을 제대로 펼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푸르른 청춘(靑春)은 그 찬란한 빛을 잃었다. 마치 꿈을 가지는 것 자체가 욕심인 것처럼.
순례 할머니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식민시대를 겪은 순례 할머니는 배고픔과 억압의 고통을 처절하게 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해방 정국 이데올로기까지 혼돈과 고통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다. 그래도 희망을 품고 잘 살아보려 했는데 IMF가 터지고, 자신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과 가슴 찢어지는 이별을 해야 했다. 이 순간 순례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관객들의 가슴을 친다.
이 이야기들은 단순히 접근하면 망자 개개인의 삶이다. 하지만 단지 개인사적 한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개개인은 역사, 그리고 현실을 자신의 삶에 담아 온 역사적인 상징으로서 존재한다. 과거부터 이들이 이뤄 온 이 역사는 현재와 연결된다. 특히 이 부분.
“인자 왔는갑다. 진도 앞바다에서 못 찾은 사람들 이제 오는 갑다. 어서와 어서 와서 씻금 받고 같이 가입시더.” 그리고 9명의 인형이 탄 배가 등장한다. 진도 민중의 삶이 아직 건져 올리지 못한 세월호 아이들의 넋까지 확대되면서 가슴을 더욱 애잔하게 친다. 관객들은 ‘아이야, 청산가자’를 함께 부르며 아이들의 넋을 기린다. “아프지 말라”고. “슬퍼하지 말라”고. “우리가 곁에 있다”고.
“진도는 특별한 곳이에요. 남도소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호소력이 있는, 민중적인 소리죠. 육자배기, 진도아리랑 등 인간 삶의 애환을 정말로 구구절절하게 표현해요. 진도 사람들은 누구나 소리를 할 줄 알아요. 그런데 부르는 육자배기가 하는 사람마다 다 다르죠. 그만큼 힘든 삶을 노래로 버텨낸 거예요. 몸이 아플 때 노래를 불렀고, 마음이 아플 때도 노래를 불렀죠. 그래서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진실한 혼이 담겼어요. 한반도의 남단 끝, 고립되게 살았던 민중들의 이야기. 진도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와 닿습니다. 그리고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세월호의 아픔…. 진도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재를 관통하는 동시성을 지녔어요. 그 이야기를 블랙텐트에 풀어놓았습니다.”
광장에 펼쳐진 ‘풀이의 미학’
하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극은 굿과 어우러지며 긍정의 내일을 바라본다. 방식이 흥겹기도 하다. 신명나는 북장단과 함께 펼쳐지는 육자배기, 흥 타령에는 젊은 관객들도 들썩이고 웃음이 터진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도 리듬이 저절로 느껴지고, 흥이 오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축제와도 같은 한마당이 펼쳐진다. 블랙텐트 공연장을 벗어나 광장까지 나와 신명나는 한풀이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분노를 넘어선 화해, 용서를 이야기한다.
“굿은 현재와 미래를 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아주 먼 옛날 비가 안 와 가뭄으로 힘들 때 임금이 왕관을 내려놓고 기우제를 하며 굿을 했죠. 왜 그랬을까요? 상황이 절망적이고 혼돈스러울 때, 즉 디스토피아 시대에 유토피아를 꿈꾸며 기다린 거예요. 절망이 지나가고 올 희망을요. 그 기다림이 굿의 형태로 표출돼 왔어요. 굿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복수, 싸움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풀이에 중점을 뒀어요. 화해와 용서, 이게 굿이 지닌 풀이의 미학이죠. 지금 현재 우리 시대가 그래요. 폭력적인 움직임을 스스로 자제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광장 문화를 만들었죠. 이런 변화의 시기에 제대로 된 굿, 우리 문화의 원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굿이 미신적인 것이 아니라 재미있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에서 순례 할머니가 한탄하는 대사가 있다. “요새는 노래도 아무데서나 못혀. 아 참 피곤한 세상이 되어 부럿어.” 블랙리스트 논란 또한 그랬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칠 수 없도록 문화 예술인으로부터 기회를 빼앗았다. 하지만 “당신들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꿈이 있다”고 이 연출은 강조했다.
“연극쟁이들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 부적응자들이에요. 그런데 그렇기에 새로운 꿈을 꾸죠. 그리고 현실의 힘든 사람들이 그 꿈을 보러 몰려들어요. 꿈을 꾸는 건 중요해요.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게 만드니까요. 그런데 어디 감히 꿈에 ‘맞다’ ‘틀리다’ 채점을 하려고 해요? 꿈은 매우 다양할 수 있고, 거기엔 정답이 없어요. 그래서 ‘네 꿈은 틀렸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죠. 다른 생각, 다른 꿈을 존중해 줘야 해요. 우리는 꿈꿀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결코 빼앗을 수 없어요.”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에서 미래는 앞으로 더욱 변화할 것이라는 게 이 연출의 생각이다. 그는 “이전 시대는 군부 문화와 민주 문화의 이분법적 싸움이었는데, 우도 좌도 아닌 바로 ‘우리’가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좌우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이건 실로 엄청난 변화다. 그래서 혼돈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시기이기에 살 만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저는 미래를 밝게 관망해요. 대신 조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상의 차이를 차별하지 말아야 하고, 지방색도 두지 말아야 하죠. 남과 북도 차별하지 말고요. 자기가 어떤 생각을 가졌든, 개성으로 받아들이고 공존하는 세상이 돼야 합니다. 자기 말만 맞는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다른 사람의 말도 들어요. 그리고 존중해요.”
이 연출은 블랙텐트에서의 공연에 이어 30스튜디오에서도 3월 ‘씻금’을 선보인 뒤 4월 ‘오구 죽음의 형식’, 5월 ‘초혼’까지 굿극을 계속해서 올리며 그가 말하는 이른바 ‘깽판’을 이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그의 깽판은 외롭지 않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동참하며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가 펼쳐지기를 함께 기원한다. 그 깽판에 기꺼이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