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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이태원 살인사건, 그 20년 만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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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6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7.03.13 09:54:32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09년에 장근석, 정진영 주연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했습니다. 워낙 흥행하지 못한 영화라 기억하시는 분들은 매우 적을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우리 수사기관의 무능함을 비웃는 영화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면 우리가 ‘프로듀스 101’에서 보았던 기름진 장근석과 전혀 다른, 담백한 장근석이라는 배우를 만나보게 될 것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1997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실제 사건이 있고 나서 20년이 지난 2017년에 이르러서야 이태원 살인 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997년 4월 3일 밤 10시경 22살의 조 씨는 여자 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이태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조 씨는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버거킹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고, 화장실에서 살해되었습니다. 누군가 조 씨를 칼로 찔러 살해한 것입니다. 

‘용기’ 증명한다며 사람을 칼로 찔러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던 용의자 2명을 체포했습니다. 주한미군의 아들인 아더 페터슨과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입니다. 이 두 사람은 당시 18세로 한국 법률상으로는 미성년자였습니다. 당시에 이 두 사람은 버거킹에서 선배, 친구들과 햄버거를 먹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사람을 칼로 찌를 용기가 있는지를 시험해 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마침 술에 취한 피해자 조 씨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쫓아가 칼로 찔러 살해한 것입니다. 

수사 과정에서 두 용의자의 진술은 달랐습니다. 아더 페터슨은 에드워드 리가 조 씨를 죽였다고 진술했고, 에드워드 리는 아더 페터슨이 조 씨를 죽였다고 말하면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둘 중 한 명이 조 씨를 죽인 것은 확실하지만 검찰은 에드워드 리를 살인죄로 아더 페터슨을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아더 페터슨은 살인범으로 지목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입었던 옷을 태우고 칼을 버린 행위가 범죄로 인정된 것이었습니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홍기선 감독, 2009)의 주인공이자 유력한 용의자인 ‘피어슨’을 연기한 배우 장근석. 사진 = ‘이태원 살인사건’ 현장스틸, 제공 = 쇼박스

아더 페터슨은 수감되었으나, 1998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석방됩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998년 9월 에드워드 리가 대법원으로부터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피해자 조 씨의 가족은 1998년 11월 풀려난 페터슨을 살인범으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검찰은 고소장을 접수한 이후 페터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한 후 수사하고 있었습니다. 

용의자 출국시킨 황당한 검찰 실수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실수가 발생합니다. 출국금지는 3개월에 1회씩 연장을 해야 하는데, 검찰이 재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 1999년 8월 23일 일시적으로 페터슨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해제되었습니다. 페터슨은 이를 놓치지 않고 24일 한국을 떠났고, 검찰은 26일 다시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이때부터 이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다 2015년 9월 페터슨이 결국 한국으로 소환되어 재판을 받게 됩니다. 

사실 페터슨이 한국으로 소환된 것은,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건이 길어져서 페터슨 소환을 손놓고 있던 검찰이, 여론에 떠밀려 결국 페터슨을 한국으로 소환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많은 화제가 되었고, 재판 때마다 기자들이 법정 앞에 진을 치고 취재를 했습니다. 

▲2015년 9월 국내로 송환된 아더 존 패터슨. 사진 = 연합뉴스

워낙 유명한 사건인 만큼 변호인과 검찰 사이에 날카로운 법 이론 공방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페터슨의 변호인은 “페터슨이 이미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한 만큼 또 다시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우리 헌법에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이 규정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어떤 사건에 대해서 판결을 내리고 그것이 확정되면 그 사건을 다시 심리·재판할 수 없습니다. 반면, 검찰은 페터슨이 조 씨를 살해했다는 사실과 증거인멸을 했다는 사실은 다른 사실이기 때문에,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페터슨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일사부재리 원칙’ 적용 논란

즉 이 사건에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되면 페터슨은 풀려나고, 적용되지 않으면 페터슨은 살인죄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검찰과 변호인은 이 부분을 치열하게 다투었습니다. 이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면 적용되는데, 이 사건의 경우 살인죄와 증거인멸죄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법원은 “살인죄와 증거인멸죄는 범행의 일시, 장소와 행위 태양이 서로 다르고, 보호법익이 서로 다르며 죄질에서도 현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제1심과 제2심에서는 피고인 페터슨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됩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2017년 1월 25일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여,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이로써 20년에 걸친 이태원 살인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처벌받는다고 해서, 아무런 잘못 없이 죽은 조 씨가 살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수사기관의 수사행태에 경종을 울렸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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