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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자살보험금 독배’ 마신 교보·한화·삼성생명…‘시즌2’ 전략은?

10년 논란 종착역, 다시 ‘자살’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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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6호 도기천 기자⁄ 2017.03.13 10:06:20

▲생보사들이 ‘자살한 경우도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히면서 수년간 계속된 논란이 일단락된 가운데, 보험금 지급이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모녀’ 3주기를 맞은 2월 25일, 추모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보험사들이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 하겠다”고 밝히면서 10년 넘게 계속돼온 소비자 분쟁이 마무리 됐지만, 기존에 가입된 수백만 건의 특약이 새로운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향후 특약 가입자 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발생하면 이번 ‘지급’ 결정에 따라 일반사망보험금의 2~3배가 넘는 금액을 보험사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생보업계 전체가 ‘자살보험금’의 늪에 빠진 형국이다. 퇴로는 없는 걸까.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줄 수 없다”며 끝까지 버텼던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이 금융당국의 최종징계를 앞두고 ‘전액(전건) 지급’으로 돌아서면서 2007년 9월 대법원의 자살보험금 지급 판결 이래 10여년 간 계속돼 온 논란이 종착역에 이르렀다. 

이번 사태는 금호생명(현 KDB생명)이 2001년 재해사망특약 상품을 처음 판매하면서 ‘자살’을 약관에 포함시킨 데서 발단이 됐다. 다른 보험사들은 이 약관을 그대로 베껴 유사 상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자살보험금이 일반 사망보험금 보다 2~3배나 많다보니 지급을 미뤘다. 자살은 그 자체가 ‘고의적’인 행동이므로 ‘재해’가 될 수 없는데 약관에 ‘실수’로 잘못 기재됐다고 주장했다.

생보사와 보험계약자 간 숱한 분쟁조정과 소송이 이어졌고, 이런 사이 시간이 흘러 소멸시효 분쟁으로 확대됐다. 보험사가 고의로 지급하지 않은 경우에도 소멸시효가 적용될 수 있느냐를 두고 법리공방이 치열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애초 줘야 할 보험금을 주지 않아 소멸시효가 지난 만큼 소비자 책임으로 볼 수 없다며 자살보험금 미지급 생보사에 대한 중징계 방침을 통보했다. 

이 과정에서 ING·알리안츠·동부·신한·KDB·메트라이프·현대라이프·PCA·흥국·DGB·하나생명 등 11개 생보사들은 자살보험금을 전액 지급했다. ‘부분 지급’을 고수했던 교보생명, 삼성생명, 한화생명 등 업계 ‘빅3’도 최근 9일 간(2.23~3.3) 차례대로 “보험금을 모두 주겠다”고 공표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보험금 지급, 자살 부추긴다?

하지만 ‘재해사망 특약’에 ‘자살’이 명시된 보험계약이 아직 282만 건이나 남아있다는 점에서 향후 여러 문제가 우려된다. 

생보사들은 2010년 4월 재해사망보험 약관에서 ‘자살’을 삭제했지만 이미 수백만명에게 ‘자살 특약’ 상품이 팔린 뒤였다.

▲자살보험금 지급이 확정됐지만, 자살확대 우려 등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지난해 6월 시민단체들이 보험사들의 자살보험금 지급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금융소비자연맹

따라서 생보사들은 앞으로도 이 특약에 가입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경우, 일반사망보다 2~3배 많은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03년 이후 14년간 ‘자살률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8.7명이다. 한해 자살자 수가 약 1만5천여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 중 어느 정도가 특약에 가입됐는지에 관한 통계는 없지만, 최근 몇 년 간의 자살보험금 분쟁과정에서 밝혀진 생보사들의 자살보험금 지급 규모는 한해 평균 1천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앞으로도 보험사들은 엄청난 금액을 부담해야 한 판이다. 과거와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진 만큼 청구건수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보험사들의 경영에 타격을 줄 뿐 아니라 자살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CNB에 “과거에는 까다로운 입증절차, 오랜 조정 시일 등으로 자살보험금이 타먹기 힘든 보험금이라는 인식이 많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며 “자살 사례가 더 늘지 않을지 상당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생보업계 관계자는 “자살에 대한 따가운 시선 때문에 유가족들이 보험 분쟁에 나서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이럴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에 대해 지급거부 의사를 밝혔던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이 금융당국의 최종징계를 앞두고 ‘전액(전건) 지급’으로 돌아섰다. 사진 = CNB저널, 한화생명

소멸시효도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 소멸시효는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보험금 미청구)가 일정기간 계속된 경우, 그 권리가 소멸되는 제도다. 자살보험금의 소멸시효는 현행법상 2년이다. 

소멸시효, 앞으로도 문제

대법원은 최근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보험사가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금감원은 이를 뒤집고 지급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이번에 생보사들은 징계를 피하려고 소멸시효에 상관없이 전부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징계 따로 법 따로’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는 향후 분쟁의 불씨를 남긴 셈이다. 가령 이번 달에 자살한 사람의 유가족이 5년 뒤에 보험금을 청구했을 경우, 보험사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지급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유족들은 소멸시효에 관계없이 지급한 이번 사례를 들어 맞설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아예 소멸시효를 늘리는 쪽으로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소멸시효 건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놓고 배임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막판까지 소멸시효가 지난 건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버틴 데는 배임을 우려한 측면도 있었다. 주주들이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회사는 이 부분에 대해 막판까지 고심했으나 중징계로 인한 오너 리스크와 영업정지로 인한 실적 악영향 등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클 수 있다고 판단해 배임 소지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지급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앞으로 수천억원대 자살보험금 지급에 따른 실적악화가 주가하락이 현실화될 경우 주주들이 반발할 우려가 있다. 김재식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는 CNB에 “금융당국의 지급명령에 의해 지급했으므로 배임 문제가 부각될 가능성은 낮지만,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만큼 논란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이같은 문제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경찰이 3월 3일 SNS를 통해 자살 방법을 광고하고 질소가스, 번개탄, 텐트 등 일명 ‘자살세트’를 설치·판매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들로부터 압수한 물품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우선 자살예방재단에 기금을 출연하자는 얘기가 있다. 애초 삼성생명은 금감원의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 명령을 거부하며 대신 200억원을 자살예방기금으로 내놓기로 결정한 바 있다. 앞으로 생보업계가 부담해야 할 자살보험금이 천문학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금 출연이 생보업계 전반에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와야”

가능성은 낮지만 기존 약관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과거 작성된 약관에서 ‘자살’ 두 글자를 아예 빼자는 것. 

하지만 금융당국은 약관 변경 명령권이 발동된 전례가 없다는 점과 소급 적용이 법적 논란이 있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시민단체도 소비자의 권익에 반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소비자단체 한 관계자는 “보험이 도리어 자살을 부추기는 비극은 막아야 하지만, 약관 수정은 소비자와 보험사 간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게 되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면책기간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다. 생명보험에서는 사망보험금 수령을 목적으로 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보험 가입 후 일정 기간(2년) 동안에 일어난 자살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면책기간’을 두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2013년 ‘생명보험의 자살 면책기간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자살에 대한 보험금이 지급되는 보험 가입 3년차부터 가입자들의 자살률이 증가한 점을 들어 면책기간을 폐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자살보험금의 지급 여부에서 비롯된 논란이 이처럼 자살을 막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고민하는 단계로 넘어왔다. 자살에 대해서도 재해보험금을 지급해야하는 초유의 상황은 결국 ‘자살공화국’이라는 슬픈 단면에서 잉태된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회 시스템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노총의 한 간부는 “보험사들이 약관에 ‘자살’을 넣은 건 그만큼 자살이 많은 사회라서 그런 유인책(특약)이 나오게 된 것”이라며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존중받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책인 만큼 양극화와 노동차별에 대한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심도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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