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식 골프만사] 간편한 골프 룰 개정을 기대한다
(CNB저널 = 강명식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몇 해 전 일이다. 동반자들과 팀으로 저녁내기 골프를 했다. 큰 내기를 즐기지는 않으나 캐디 피나 저녁내기 정도는 자주하는 편이다. 둘이 한 편이 돼 스코어 합산으로 하는 방식이었다. 전반을 끝내고 우리 팀이 리드한 상태였다.
후반 두 번째 홀이었다. 파5홀에서 투 온을 노렸으나 짧아 그린 앞 벙커에 빠졌다. 볼이 있는 곳에 가보니 벙커는 그 전날 내린 비에 약간 젖어있었고 볼은 지나간 플레이어의 발자국 속에 빠져있었다. 양발을 깊게 모래 속에 단단히 고정했었는지 깊은 발자국이었다. 도저히 공을 쳐서 빼낼 수 없는 상태였다.
상대편에게 의향을 물었다. 하지만 지고 있던 상대방은 기회다 싶은지 절대 빼놓고 칠 수 없다고 했다. 깊지 않은 발자국이야 벙커에서 빼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샷이 아니지만, 비에 젖어 푹 파인 발자국 속의 공은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빼낼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친 샷은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고 다시 두 번 더 스윙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볼을 움직일 수 있었다. 가까스로 움직인 공은 공교롭게도 바로 앞 발자국 속으로 다시 굴러들어갔다.
그 발자국은 같은 사람의 왼발자국으로 상태는 똑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벙커에서만 일곱 번을 친 후 그린에 올렸지만 결국 파5에서 양파(더블 파)를 했다. 그 홀에서 양파는 나의 정신세계를 완전히 흔들어 혼미하게 만들었고 극도의 흥분상태로 몰아넣었다. 결국 우리 팀은 전반의 많은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참패했다. 나의 골프 역사상 가장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치욕적인 역전패로 남아있다.
결국 우리 팀은 저녁 비용을 지불했다. 하지만 끝내 개운치 않은 결말이었다. 역전승한 팀의 선수들은 의기양양했다. 그들의 야박한 룰 적용을 탓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때 같이 친 상대편 선수들과 골프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 실력인 양 비아냥대던 것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골프를 하다보면 이런 경우를 한두 번은 경험했으리라.
골프 룰의 대대적인 개정이 있을 것이란 예고다. 진심으로 환영한다. 골프의 본질은 룰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은 간편하고 스피디하게 즐기도록 하는 룰 개정이라 했다. 골프 인구의 감소에는 아마도 복잡하고 시간을 잡아먹는 경기 스타일이 한 몫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빠르고 공정한 경쟁-경기 가능하도록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이다. 누구에게도 편향되지 않고 공평한 게임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간편한 룰이 필요하다. 그린 위나 페어웨이에서 바람에 움직인 볼에 대한 판정이 어드레스 전인지 후인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골퍼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건드렸는지 아니면 부지불식간에 유-불리에 관계없는 터치였는지는 서로 다르다. 페어웨이에 멋지게 떨어진 공이 깊은 디봇에 빠지거나 벙커의 발자국 속에 빠졌다면 이는 공평하지 않다.
이런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어야 한다. 골프를 하면서 룰 적용으로 동반자와 얼굴을 붉혀본 일이 한두 번인가. 골프를 하면서 재판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프로선수들의 경기에서도 경기위원조차 정확한 판단을 내렸는지 의문인 때도 더러 있다. 가끔은 특정 선수에게 유리하게 적용했다는 비판도 받는 게 골프 룰이다. 이 모두가 복잡하고 쓸데없이 세밀한 골프 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골프는 적절한 심신단련과 스포츠로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겨룰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룰이 우선은 절대 아니다. 또한 골프의 대전제인 골퍼 누구에게나 공평과 평등이 적용되는 룰만 있으면 된다. 새로운 룰 개정이 간편하고 공평무사해 많은 이들이 쉽게 골프를 접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정리 = 김연수 기자)
강명식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