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8호 김금영⁄ 2017.03.24 11:29:31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한국에서 ‘지킬 앤 하이드’라 하면 단박에 조지킬(조승우) 이야기가 나온다. 오디컴퍼니와 손을 잡고 한국 관객의 선호도에 맞춰 ‘논-레플리카’(non-replica: 복제 안 함) 방식으로 새롭게 탄생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조승우는 미친 연기의 절정을 찍었다. 이중인격의 대표 주자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동시에 연기하며 ‘헤드윅’과 더불어 ‘지킬 앤 하이드’를 그의 인생 작품 리스트에 올렸다.
조승우의 지킬을 본 지가 꽤 된 관객은 여전히 조지킬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에 시달린다. 이 가운데 오디컴퍼니가 이번엔 브로드웨이 프로덕션과의 공동 제작으로 ‘지킬 앤 하이드 월드투어’를 다시 들고 돌아왔다. 기존 합작 공연의 경우 창작진이 브로드웨이 스태프로 구성되고, 한국 관계자들이 서브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지킬 앤 하이드’는 한국의 창작진이 주가 되고,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을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국내에서 먼저 공연을 올리고 추후 월드 투어를 돌 계획이다.
무대에는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한 배우들이 오른다. 그런데 이들이 ‘지킬 앤 하이드’에 새로운 임팩트를 줬다. ‘지킬 앤 하이드’는 인격을 분리시키는 연구를 하던 지킬 박사가 자신의 내면 속 숨겨져 있던 악한 인격 하이드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브래들리 딘, 카일 딘 매시, 다이애나 디가모, 린지 블리븐이 캐스팅됐다. 대구 등 8개 도시에서 공연을 마쳤고, 현재 서울 공연에서는 건강상의 문제로 카일 딘 매시가 원캐스트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무대를 휘어잡는 장악력이 장난 아니다. 솔직히 외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공연에서는 자막을 봤다가 무대를 봤다가 하며 눈동자를 굴리기 바쁜데,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어느 순간 자막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잊었다. 그만큼 배우들이 매력적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연기하는 카일 딘 매시는 조지킬에 대한 그리움을 한층 해소시킨다. 그가 연기하는 지킬 박사는 연구에 있어서는 자신의 길만 보고, 그렇기에 세상과 타협하지 못해 꽉 막히기도 한 성격이 잘 드러난다. 그러다가 내면에 숨겨져 있던 하이드를 마주하는 순간 목소리는 변하고, 표정은 더 달라진다. 머리를 풀어헤치는 순간 관객들은 놀란다. 흉폭하고 악하지만 뭔가 계속해서 끌리는 매력적인 악역이라고나 할까. 옷맵시가 뛰어난 것도 한 몫 한다.
카일 딘 매시가 ‘지금 이 순간’을 부를 땐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지금 이 순간’은 특히 한국 관객들이 사랑하는 곡이다. 결혼식에서 축가로는 물론, 방송, 광고 등에서도 이 노래가 유명하다. 조승우의 ‘지금 이 순간’도 매력적이었지만 카일 딘 매시의 ‘지금 이 순간’도 색다른 감동을 전한다. 목소리가 굵고 터프하다. 이 노래가 불리는 순간 관객들은 카일 딘 매시와 함께 호흡하고, 노래가 절정에 달했을 때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카일 딘 매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둘러싼 다이애나 디가모와 린지 블리븐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며 카일 딘 매시, 더 나아가서는 공연 자체가 반짝반짝 빛이 나게 해 준다.
다이애나 디가모는 하이드의 욕망에 희생당하는 루시 역할을 맡았다. 그는 첫 등장부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목소리가 정말 독특하다. 풍부한 성량 가운데 마치 어린 아이가 노래를 하는 듯한 청량감이 있는데, 이 점이 루시라는 역할을 잘 살린다. 매춘부인 루시는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땐 발라당 까진 여자지만, 실상은 매우 여리고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는 순수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친절을 베푼 지킬 박사에게 사랑을 느끼고, 나중엔 밝은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이 감정의 변화가 다이애나 디가모의 목소리에 그대로 실린다.
린지 블리븐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다이애나 디가모의 목소리가 독특하다면, 린지 블리븐의 목소리는 안정감이 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여리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강단이 있다. 이 또한 그가 연기하는 엠마 캐릭터와 조화를 이룬다. 엠마는 지킬 박사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남들이 다 걱정하는 지킬 박사의 이상한 행동에도, 한결같이 그에 대한 사랑을 지킨다. 그리고 이 사랑은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워낙 지킬 박사와 하이드 캐릭터의 성격이 강해 자칫하면 여자 캐릭터는 그저 그렇게 묻힐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그런데 다이애나 디가모와 린지 블리븐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면서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부각시켜준다. 배우들의 노련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세 배우가 이루는 하모니가 아름답다. 특히 지킬 박사와 루시, 엠마가 각자의 걱정과 소망을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화려한 무대 장치도 필요 없다. 목소리 자체로 공연장에 감동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본격 공연 개막에 앞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국내 관객뿐 아니라 해외 관객들에게도 사랑받을 것”이라며 배우들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배우들 또한 “브로드웨이의 열기를 한국에 가져올 것”이라며 “무대 위에서 피, 땀, 눈물을 쏟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말뿐인 말이 아니라 말을 실현시키는 현장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월드투어’에서 지금 이 순간 볼 수 있다. 공연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5월 2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