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모터쇼 대비 신차 120대 vs 2대
▲3월 30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KINTEX)에서 열린 2017서울모터쇼 프레스데이 행사에서 네이버랩스의 송창현 대표이사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9일까지 경기도 고양 일산 킨텍스(KINTEX)에서 2017 서울모터쇼가 열렸다. 슈퍼카 업체와 일부 수입차 업체들이 불참하고 월드 프리미어 첫선이 2종에 불과해 실망스러운 면은 있었다. 하지만 완성차 브랜드 외에도 다양한 유관기관의 참여로 자동차산업 생태계를 망라한 전시를 꾸리고, 가족친화형·체험형·교육형 전시 확대와 국제컨퍼런스 개최 등 과거 ‘모델 쇼’라는 후진적 요소를 벗어나고자 한 기획 의도는 나름대로 잘 반영되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특히 자율주행과 친환경이라는 글로벌 자동차 트렌드를 확인하고, 우리나라의 강점인 IT와 자동차 융합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장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르노삼성이 2017서울모터쇼에 마련한 체험 전시장. (사진 = 연합뉴스)
‘반쪽 모터쇼’ 아쉬워
이번 서울모터쇼를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번 행사엔 국내 9개, 수입 18개 등 총 27개 완성차 브랜드가 참여해 300대 정도의 차량을 전시했다.
하지만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세계적인 슈퍼카 업체들이 불참했고, '디젤 게이트' 여파로 폭스바겐·아우디·벤틀리 등 폭스바겐 그룹 브랜드가 일제히 빠졌다. 그 밖에도 포드·볼보·지프·피아트 등 주요 수입차 업체들도 다양한 이유를 들어 불참했다.
이들 중 볼보는 ‘1 대륙 1 모터쇼 참여’라는 방침을 고수한다는 것을 불참 이유로 내세웠지만, 전시 준비에 투입하는 비용에 비해 서울모터쇼에서 기대되는 홍보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진짜 속내였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 수입차 관계자는 “굳이 돈을 들여 서울모터쇼에 심혈을 기울여햐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고, 또 다른 관계자는 “업체가 부스를 마련하는 데 적게는 10억 원 남짓, 많게는 50억 원 이상이 들지만 그만한 홍보 효과가 나오는지 불확실하다”며 회의감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해 전기자동차 관련 가장 큰 이슈메이커였던 테슬라가 불참한 것이 아쉬웠다. 테슬라는 최근 국내 시장에 진출해 이번 서울모터쇼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기회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결과는 불참이었다. 관람객들에게 테슬라의 ‘모델S’나 ‘모델X’를 볼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울모터쇼가 ‘동네잔치’, ‘반쪽 모터쇼’라는 비판을 들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조직위는 열흘간 2017서울모터쇼를 찾은 관람객이 실관람객 기준 61만 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사진 = 연합뉴스)
관람객 수는 2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2017서울모터쇼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열흘간 서울모터쇼를 방문한 누적 관람객은 실 관람객 61만여 명이다. 조직위는 “100여 개 중·고·대학교에서 1만 3000여 명 이상의 학생들이 단체관람했다”며 젊은 세대와 학생 등 미래 잠재고객들에게 어필했다고 평가했지만, 단체관람은 동원된 인원에 불과하다는 핀잔을 피하기도 어렵다.
‘쇼’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볼거리가 부족했다. 이번 서울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월드 프리미어 신차는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IG 하이브리드와 쌍용자동차의 G4 렉스턴 등 2종에 불과했다. 아시아 프리미어가 18종이었고, 국내 프리미어는 22종이었다.
외국의 모터쇼와 비교해보면 이 수치의 부끄러움이 강조된다. 불과 2주 전 열렸던 2017제네바모터쇼에서의 전시 차량은 900여 대로 서울모터쇼의 3배였다. 월드 프리미어는 무려 120여 종에 달했는데, 우리나라 기업인 현대·기아자동차조차 ‘i30 왜건’과 ‘니로 PHEV’ 등 신차 4종의 최초 공개 장소로 서울을 외면하고 제네바를 택했다.
굳이 멀리 볼 것도 없다. 2015서울모터쇼 역시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참여 브랜드는 7개가 더 많았고, 전시 차량은 50대가 더 많았으며 월드 프리미어도 7종이었다. 이번 서울모터쇼는 자체적으로도 퇴보한 셈이다.
▲2017서울모터쇼에서는 가족 단위 관람객의 증가가 눈에 띄었다. (사진 = 연합뉴스)
독자적 아이덴티티 구축 시도, ‘절반의 성공’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3월에 열린 제네바 모터쇼의 관람객이 70만 명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2017서울모터쇼도 나름 흥행한 행사로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서울모터쇼가 자동차에 기술, 문화, 재미를 가미해 가족 관람객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자동차의 미래를 여는 혁신과 열정’을 주제로 한 국제컨퍼런스는 유료로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1400여 명이 참가해 자동차분야 국내 포럼행사 중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전시에서는 신차 소개가 부족하긴 했지만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 커넥티드 카 등의 미래 자동차들이 그 자리를 열심히 메웠다. 대부분 앞선 국제 모터쇼에서 소개됐던 모델들이긴 했지만 학생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게는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볼 기회가 되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김용근 서울모터쇼조직위원회 위원장은 “서울모터쇼는 제네바, 디트로이트, 프랑크푸르트, 파리, 상해 등 대륙형 글로벌 모터쇼 대비 역사성과 내수시장 규모에서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고 대중 접근성에서도 상당히 불리한 여건에 있다”며 서울모터쇼가 넘어야 할 문턱이 높음을 토로했다.
이어 “다른 나라 모터쇼와 차별화를 위해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첨단산업융합과 친환경이라는 글로벌 트렌드를 강화하고 가족 친화형·체험형·교육형 전시를 확대해 서울모터쇼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데 자리매김 한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앞으로도 우리나라 시장 개방 진전에 따른 신차 전시 확대, 우리나라의 강점인 IT와 자동차의 융합 강화, 다양한 체험 이벤트와 즐길 거리를 보강하는 등 서울모터쇼를 계속 발전시켜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현대자동차에서 선보인 아이오닉 자율주행차. (사진 = 연합뉴스)
신차 부족 아쉬움, 자율주행차 체험으로 달래
2017서울모터쇼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의 하나로 큰 관심을 받는 자율주행차 등 IT와 관련된 볼거리와 체험이 많은 편이었다는 점이다.
우선, 조직위가 마련한 자율주행차 시승행사가 많은 관람객의 관심을 모았다. 시승 차량은 서울대학교 이경수 교수가 주도하는 차량 동역학 및 제어연구실이 기아차의 K7을 개조해 만든 차량으로, 미국자동차공학회(SEA)가 분류한 5단계 자율주행 기준 평가에서 레벨3를 받았다. 레벨3는 부분 자율주행 단계로, 목적지까지의 경로 상 일정 부분을 운전자 조작 없이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량을 말한다.
현대차는 이보다 완성도가 높은 SEA 레벨4의 아이오닉 자율주행차를 선보였다. 이 차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2017에서 공개됐던 차다. SEA 레벨4는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운전자가 운전에 전혀 개입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모든 상황에 맞춰 차량의 속도와 방향을 통제하는 단계로, 현재 국내에서 이 레벨을 충족시킨 기업은 현대·기아자동차뿐이다.
현대모비스는 자율주행 기반의 미래 자동차를 경험할 수 있는 운전석 모듈이 마련된 ‘스마트존’을 운영했다. 관람객은 '증강현실 헤드업디스플레이(AR HUD)'에 제공되는 주행 정보와 고속도로 자율주행, 5G 네트워크 기반의 차 대 차(V2V), 차 대 인프라(V2I) 통신과 전자동 자율 주차 등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밖에도 만도, 경신, 삼미, 삼보모터스 등의 부품업체와 전자부품연구원, 자동차부품연구원 등의 유관 단체들이 개발 중인 자율주행 관련 기술들을 선보였다.
▲네이버가 기술 연구개발 자회사 '네이버랩스'를 통해 2017서울모터쇼에 마련한 전시 부스. (사진 = 네이버랩스)
“네이버가 모터쇼에?” IT와 자동차 융합의 현장
또한, 2017서울모터쇼는 자동차 전시회에 IT 기업이 본격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과거의 모터쇼와 달라진 모습을 부각했다. 대표적인 국내 IT 기업인 네이버가 참여했고, 부품업체들도 자율주행과 IT융합기술을 전시했다.
네이버는 기술 연구개발 자회사로 설립한 ‘네이버랩스’를 통해 이번 서울모터쇼에 부스를 마련, 현재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 기술을 비롯해 커넥티드 카, 3차원 실내지도 등 ‘생활환경지능’ 기반 기술을 공개했다.
또한, 향후 ‘공간(space)’과 ‘이동(mobility)’에 대한 인텔리전스 연구에 본격적으로 집중하겠다는 기술 방향성과 IVI(In-Vehicle Infotainment) 플랫폼의 공개 계획을 알렸다.
네이버는 국내 IT기업 최초로 국토교통부를 통해 자율주행차 임시운행 허가를 받았고, 자율주행차의 기술 수준은 SEA 레벨3를 받았다.
▲네이버랩스의 3차원 실내 정밀지도 제작 로봇인 'M1'이 자율주행하며 주변 공간의 실내 지도 제작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네이버 부스에서는 실제 자율주행 차량의 라이다(LIDAR)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서 이동하는 물체를 탐지하는 인지 기술 시연을 진행했다. 차량 위쪽에 설치된 4면 디스플레이를 통해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일반 관람객들이 직접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전시였다.
또한, 3차원 실내 정밀지도 제작 로봇인 ‘M1’이 현장에서 자율주행하며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을 시연한 전시도 인기를 끌었다. 현장에서 시연을 담당한 네이버랩스 관계자는 “로봇의 귀여운 외모 덕분에 현장에서 어린아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준비 과정에도 에피소드가 많았고 현장은 긴장의 연속이었다”면서도 “결국 M1은 전시 기간 중 하루 8시간, 5분 간격으로, 무려 열흘간의 중노동을 고장 없이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네이버 부스를 찾은 한 대학생 관람객은 “모터쇼에서 네이버를 보게 될 줄 몰랐다”며 “생각보다 스케일이 커서 놀랬고, 막연히 네이버에 갖고 있던 인상도 더 좋아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회사원 관람객은 “국내 기업에서 자율주행이나 로봇 같은 미래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해서 놀랐다”며 “좀 더 한국 현실에 맞는 서비스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된다”고 밝혔다.
윤지원 yune.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