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박근혜·이재용의 수감 생활, 달라도 너무 다른 이유
주역은 ‘투쟁 모드’ 조연은 ‘모범생활’ “왜”
(CNB저널 = 도기천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 수감된 여러 인물들 중에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장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 격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며 사실상 ‘옥중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 부회장은 독서와 운동으로 담담히 구치소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이 부회장의 이런 모습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지난 2월 17일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구속된 이 부회장은 서울구치소 안에서 ‘모범 수용자’로 통한다. 끼니 당 1440원짜리 수감자용 식사를 남기지 않고 섭취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신문들을 꼼꼼히 읽고, 그 외 시간에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특히 이 부회장은 특정종교를 믿지 않음에도 종교서적을 탐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신대 신학대학원 초빙교수 이양우 목사의 ‘인간의 슬픔, 하나님의 위로’,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저술한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감사의 기적’ 등이다. 또 정·재계 인사들의 운명을 예언해 유명세를 탄 일파 스님의 저서 ‘다시 세상속으로’, ‘대운의 터’도 포함돼 있다.
이 부회장은 하루 45분간 주어지는 운동 시간에도 열심이다. 부채꼴 모양의 좁은 공간에서 쉼없이 달리며 체력을 관리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특검 조사 때도 소탈한 모습을 보여 조사관들 사이에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평범한 메뉴의 식사를 남기지 않았으며, 조사에도 성실히 임했다고 한다. 구속이 결정된 직후 한 조사관이 이 부회장에게 “탕수육을 시켜주겠다”고 했으나, 이 부회장은 “수감 생활에 익숙해져야 하니 자장면을 먹겠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다른 재벌 총수들과 대조를 이룬다. 대기업 오너들은 구속됐을 때마다 특혜 시비를 불러왔다. 매일 변호사와의 접견을 신청해 안락한 특별면회실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는가 하면, 아예 병원에 입원해 시간을 떼우는 경우도 잦았다. 심지어 80~90년대까지만 해도 독방을 호텔(?) 수준으로 개조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재판 대비, 평정심 유지
하지만 이 부회장의 이런 태도를 ‘혐의를 인정한 반성의 모습’으로 보긴 힘들다.
검찰은 삼성이 최순실씨 측에 건넨 298억원을 ‘뇌물’로 보고 있다. 미르재단 125억원, K스포츠재단 79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2800만원, 승마지원 77억9735만원 등이다. 자금 출연의 대가로 청와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을 통해 도움을 줬다는 게 특검의 주장이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그동안의 공판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과 최씨 딸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은 모두 청와대의 강요와 압박으로 불가피하게 이뤄진 일일 뿐 대가를 바란 뇌물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4월 7일 재판 때 변호인을 통해 “승마단 사업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청탁과는 무관하다”며 “특검이 대가 관계를 주장하기 위해 가공(架空)의 틀을 급조했다”고 주장했다.
▲2014년 10월 법무부가 공개한 서울남부교도소의 4인실 모습.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현재 수감된 방의 규모와 시설이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박 전 대통령은 일반 독방 보다 넓은 10.57㎡(3.2평) 규모의 독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진 = 법무부
삼성 측의 이런 입장은 박 전 대통령을 가해자, 기업들을 피해자로 본 헌법재판소의 판결과도 맥을 같이한다. 헌재는 지난달 10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가결하면서 “피청구인(박근혜)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였을 뿐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정황들로 볼 때, 이 부회장의 모범적인 옥중 생활은 ‘반성’의 의미라기보다는, 담담한 자세로 냉정하게 재판에 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만약 재판이 대법원까지 갈 경우, 최소 1년 이상의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오랜 재판 과정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법조계의 조언이다.
이 부회장은 과거 이건희 회장의 급작스런 병고(病苦),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 국회청문회 등 큰일들을 겪을 때도 냉철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이번에도 독서와 운동을 통해 일상에 적응하며 차분히 재판에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4월 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들은 옥중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상당히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번 기회를 경영구상의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CNB에 “재벌가문의 장자인 이 부회장은 부족함 없이 살아왔지만, 최고경영자로서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라며 “어쩌면 교도소 생활이 재충전과 미래구상의 시간이 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돌아갈 곳 있고 없고의 차이”
반면, 탄핵 정국에서 이 부회장과 함께 구속된 박 전 대통령, 최순실씨,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은 수감 생활에 제대로 적응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모두 이 부회장이 수감된 서울구치소에 있다. 최씨만 최근 이곳에서 서울남부구치소로 옮겨갔다.
조 전 장관은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 주로 과일을 먹고 있으며, 수감 초기에는 5분 간격으로 시간을 물어보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김 전 비서실장도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 남기는 경우가 많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등 산만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고 전해진다.
정봉주 전 의원은 최근 시사프로에서 이들의 행동을 일종의 ‘폐소공포’ 증상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1년간 투옥된 적이 있는 정 전 의원은 “독방 생활의 답답함이 이들을 초초하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전 장관과 김 전 비서실상의 수감 생활이 ‘자포자기형’이라면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투사형’ 이미지다. 이들은 일체의 혐의를 부인하며 주변인들에게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박 전 대통령의 옥중 생활에 대해 정확히 전해진 바는 없지만, 평소 정갈한 그녀의 스타일로 볼 때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짐작된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대통령 신분이었다 할지라도 일반 수감자와 마찬가지로 구치소 규칙에 따라 하루 일과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재소자들과 마찬가지로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8시에 취침하고 있다. 식사가 끝나면 직접 설거지를 한 뒤 식기를 반납해야 하며, 청소·이불 정리도 혼자 해야 된다. 화장실 변기 있는 곳에서 빨래도 직접 한다. 물품 규정에 따라 트레이드마크인 올림머리를 하는 데 사용됐던 머리핀도 소유할 수 없다.
▲지난 1월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제13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런 일들은 그녀의 삶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들이다. 특정인물 몇몇 외에는 면회를 거부하고 있는 태도로 볼 때 상당한 심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제부(동생 근령씨의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 올케(동생 지만씨의 아내)인 서향희 변호사까지도 접견을 거부당했을 정도다.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와 윤전추 행정관을 고정 접견 멤버로 등록하고 이들과 동행하는 경우에만 면회를 하고 있다.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안형환 전 의원은 이런 모습을 무죄 투쟁으로 봤다. 안 전 의원은 “대통령에게 구속이란 이미 정치적 사형 선고”라며 “무죄를 받아서 명예를 회복하는 게 최우선 목표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한 배를 타고 있는 최씨도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최씨는 4월 6일 서울구치소에서 남부구치소로 이감된 후 배정된 독방 크기가 서울구치소 독방 보다 작아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해결 전문가로 활동 중인 정세현 경영컨설턴트는 이 부회장과 나머지 사람들의 차이를 사회학적 측면에서 분석했다. .
“박근혜, 조윤선, 김기춘 등은 정치인으로서 사실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이재용에게는 삼성이라는 미래가 있다. 결국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다.”
도기천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