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경제] 추억 솔솔에 재미 쏠쏠…복고 마케팅으로 감성자극
▲2015년 3월 12일 서울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앞 광장에서 80년대 MT를 떠나는 대학생의 모습을 한 모델들이 비둘기호 열차 배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유경석 기자) 추억 시장이 커지고 있다. 1980년대 유행하던 상품이나 서비스가 소비시장에서 부활하고 있다. 패션은 물론 먹거리, 레저 등 분야도 다양하다. 40·50대가 한창일 때 즐기던 문화는 추억이라는 감성 코드를 자극하며 시장에 재등장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복고(Retro) 마케팅의 핵심은 소비자 니즈를 파악,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극 반영한다는 것. 복고 제품의 인기는 소비 경기와 관련이 깊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소비자들은 혁신적인 신제품보다는 복고에서 마음의 편안함을 얻으려 하는 심리가 강한 데다 주머니 사정 탓에 옛 방식으로 만든 제품을 저렴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소비 경기가 좀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중장년세대와 청년세대 간 세대공감을 이끄는 복고 마케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소비자심리지수 상승세 속 장기 저성장 탈피 기대감
한국은행의 3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7로, 두 달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10월(102.0)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보다 작으면 경제 상황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는 소비자가 많다는 의미다.
소비자물가지수가 4년 9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하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수출이 호조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내수 지표도 개선 기미를 보이면서 장기 경기침체 국면이 회복세로 돌아설지 기대를 모은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에 비해 2.2% 상승했다. 2012년 6월(2.2%)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지난해 상반기 0%대를 오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 이후 1%대로 올라선 뒤 올해 1월 2.0%, 2월 1.9% 3월 2.2% 등 2%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기업의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심리지표도 밝다. 3월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올들어 3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만 최근 물가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저성장 속 물가가 급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징후인지, 장기 저성장 국면의 탈피를 보여주는 선행지표인지 관심이 쏠린다.
외식업계, 추억의 복고 메뉴로 소비자 공략
경기에 민감한 외식업계가 추억에서 새 먹거리를 찾고 있다. 이웃 간 정을 그리워하는 중장년층에게 추억을, 10~20대에게 새로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치킨업계는 ‘옛날식 통닭’을 내세우며 복고 마케팅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프랜차이즈업계는 물론 단독매장도 노란 종이봉투에 포장한 옛날식 통닭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코드를 공략하고 있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기는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고 있다, ‘또봉이 통닭’을 비롯해 옛날 통닭, 노랑통닭, 오늘통닭 등 전통적인 이미지를 살린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옛날식 통닭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코드를 공략한 ‘또봉이 통닭’. 사진 = (주)또봉이F&S
여기에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격인 핫도그와 떡볶이는 컬래버레이션으로 신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밀가루 반죽 대신 쌀가루를 넣은 반죽으로 바삭한 맛은 살리고 쫄깃한 맛은 더한 핫도그는 치즈나 스윗칠리 등 다양한 소스를 곁들여먹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신세대 입맛을 자극하고 있다. 떡볶이 역시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숍에 접목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돈가스에 소스를 푸짐하게 얹고 수프와 밥 또는 빵, 김치, 샐러드를 곁들인 경양식도 기성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새롭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웅진식품이 새롭게 출시한 815 콜라와 815 사이다. 사진 = 웅진식품
추억 기반 감성코드는 단종된 상품의 재출시 역시 이끌고 있다. 최근 815콜라가 새롭게 출시됐다. 815콜라는 1998년 ‘콜라 독립’을 내세우며 출시된 상품으로, 20년 만에 재등장했다. 보해양조도 2007년 단종된 보해골드를 새롭게 내놓았다. 보해골드의 알콜도수는 23도로, 당시 25도 또는 30도에 이르던 일반 소주에 비해 ‘순한’ 것이어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었다. 2011년 단종된 농심 ‘보글보글 부대찌개면’과 오리온 ‘포카칩 구운김맛’도 새롭게 출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청장년층엔 추억을, 청년층에 새로움을
2006년 단종된 해태제과 토마토마 아이스크림 역시 12년 만에 재출시된 상품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재출시 요구가 많았고, 회사 측이 이를 반영해 재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KFC치밥처럼 치킨과 밥을 비벼 먹는 소비트렌드를 반영해 정식 메뉴로 선보인 사례도 있다. 공통점은 소비자 니즈를 적극 반영했다는 것으로, 복고 역시 소비자 니즈 파악이 핵심인 셈이다.
의류 역시 복고풍의 꽃무늬 원피스가 거의 모든 제품에 적용되면서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의류업계에 따르면 블라우스, 치마 등 화려한 꽃무늬 패션상품이 전체 매출의 60~70%나 될 만큼 대세를 이루고 있다.
2000년대 대박을 터뜨린 바퀴 달린 신발 힐리스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힐리스를 수입, 판매하는 토박스 매장은 입고와 동시에 일부 품목은 완판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며 아동신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키즈 셀렉샵 토박스코리아가 새롭게 선보인 미국의 롤러슈즈 힐리스(Heelys). 사진 = 토박스코리아
롤러장의 부활도 추억과 관련이 깊다. 롤러장은 1980~90년대 필수 데이트코스 중 한 곳. 런던 보이즈의 ‘I’m Gonna Give My Heart’, 모던 토킹의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라디오라마의 ‘Yeti’ 등 팝송을 들으며 청춘을 보낸 추억의 장소다. 30년이 훌쩍 지난 현재 전국 곳곳에 롤러장이 새롭게 등장하며 문화·레저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화려한 조명과 신나는 댄스음악이 어우러진 롤러장은 청장년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그들의 자녀에게는 새로운 놀이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며 세대공감 문화공간이 되고 있다. 현재 서울-경기권에 약 20여 개 롤러장이 개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7 ‘고등래퍼’ 못지않았던 1977 ‘MBC대학가요제’ 인기
Mnet 고교 랩 대항전 ‘고등래퍼’가 지난달 말 종영했다. 청소년들의 패기와 열정은 물론 실력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고등래퍼는 올 상반기 인기 키워드 중 하나가 됐다. 양홍원이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막을 내린 고등래퍼는 프로그램 기획처럼 10대 청소년들의 문화를 힙합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줬다. 또 성인 래퍼에 가려져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고등학생 래퍼들이 조명을 받으며 향후 음악활동에 대한 기대를 낳았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Mnet이 주최한 래퍼 서바이벌 고등래퍼에서 우승을 차지한 양홍원. 사진 = CJ E&M 제공
고등래퍼는 1977년 열린 제1회 MBC대학가요제를 떠올리게 한다. 공통된 키워드는 ‘갑갑한 사회 분위기’다. 고등래퍼들은 틀에 박힌 학교생활과 사회적 편견, 부조리 등과 관련해 자신의 마음을 담아 친구나 가족, 사회를 향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했다.
40년 전 MBC 대학가요제가 시작된 1977년 역시 갑갑한 사회였다.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은 통제와 억압으로 국민들의 삶을 옥죄었고, 대학생 아마추어 가수들이 참여한 MBC 대학가요제는 청년들의 사상과 감정이 녹아든 청년문화를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제1회 대상은 서울대 출신의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차지했다.
당시 MBC대학가요제 수상자의 인기는 고등래퍼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이후 MBC대학가요제 수상자 중 많은 수가 전업 가수로 활약하는 등 가수 등용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MBC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로 심수봉, 노사연, 임백천, 유열, 배철수, 신해철, 김경호, 015B 등이 있다. 대학가요제는 2012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LG그룹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직원들에게 기념품으로 전달한 포터블 블루투스 스피커. 사진 = LG
LG그룹 70주년 기념선물은 기업 스스로 복고(復古)를 기념한 사례여서 눈길을 끈다. LG그룹은 창립 70주년을 맞아 첫 국산 라디오 ‘A-501’의 디자인을 모티브로 한 블루투스 스피커를 각 계열사 임직원에게 선물했다. 국산 1호 라디오 A-501은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가 1959년 개발에 성공한 최초 국산 라디오로, LG그룹의 기술 혁신과 기술 리더십을 동시에 상징하는 뜻깊은 제품이다. 도전과 혁신의 창업정신을 되새겨 영속 기업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블루투스 스피커에는 금성사 영문 브랜드였던 ‘골드스타(Goldstar)’ 로고가 샛별 모양 심벌마크와 함께 부착돼 있다.
복고 마케팅은 추억이라는 감성코드와 현대적 감성이 어우러진 결과로 꾸준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임영균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기가 좋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과거 제품을 리뉴얼하거나 추억의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혁신적인 신제품은 값이 비쌀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억이라는 감성코드를 자극한 사업이나 제품이 성공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복고와 어우러진 현대적인 감성은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러운 마케팅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경석 기자 kangsan0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