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마세라티 등 첫 출시…제네시스도 콘셉트 공개
▲제네시스의 첫 SUV 'GV80 콘셉트' 렌더링 이미지.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세단과 SUV의 판매 증가율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라고 해서 세단이나 스포츠카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벤틀리, 마세라티, 재규어 등 세계적인 럭셔리 자동차 회사들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신차 출시가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의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도 4월 1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개막한 ‘2017 뉴욕모터쇼’에서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SUV 콘셉트 카 ‘GV80 콘셉트’를 최초로 공개했다.
▲제네시스 'GV80 콘셉트'.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SUV 시장, 멈출 줄 모르는 성장세
영국의 리서치 업체 자토다이내믹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다양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며 총 8424만 대가 판매되었다. 이중 가장 인기 있던 차종은 SUV로 나타났다. SUV 판매량은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28.8%를 차지했다. 2016년에 팔린 차 3.5대 중 1대가 SUV였다는 얘기다. 2014년에 IHS 오토모티브가 발표한 2016년의 자동차 시장에 대한 전망에서 SUV의 판매량이 2010만 대, 점유율 20% 정도가 될 것으로 내다봤는데, 실제 판매량과 점유율 모두 그 전망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차종은 C-세그먼트였으며, 점유율은 18.3%로 나타나 SUV와는 10.5%나 차이를 보였다.
증가세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SUV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20.0%나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준중형인 C-세그먼트의 경우 5.9% 증가세를 보였고, 중형인 D-세그먼트는 6.6% 감소했다. 준대형인 E-세그먼트도 2.4% 감소했다. 중형차나 준대형차 대신 SUV를 선택한 구매자가 그만큼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차급에서 SUV가 약진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엔 대형 SUV의 인기 상승이 특히 눈에 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경우 기아 모하비 신형 모델이 매달 1500대 가까이 판매되고 있으며, 수입차 중에선 포드 익스플로러가 지난해 누적 판매량 4223대를 기록했다.
시장은 뚜렷하게 변하고 있다. 이 정도의 꾸준한 변화에 반응하지 않을 기업은 드물다. 그동안 최고급 세단이나 스포츠카만을 고집해 온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들도 마찬가지. 이들은 몇 년 전부터 SUV 개발을 서둘렀고, ‘브랜드 최초’ 라는 수식어를 단 럭셔리 대형 SUV 신차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떠밀리듯 생산하게 된 '카이엔'은 포르쉐의 최고 수입원이 됐다. (사진 = 포르쉐)
▣ 떠밀려 생산했는데… 포르쉐 카이엔
럭셔리 브랜드에서 SUV 시장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첫 모델은 스포츠카의 명가 포르쉐의 카이엔이다.
카이엔은 1990년대 심각한 재정난을 경험한 포르쉐가 울며 겨자 먹기로 시도한 브랜드 첫 SUV다. 포르쉐는 SUV 생산이 브랜드 이미지를 추락시킬 것이라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2년 카이엔을 출시했다.
카이엔은 포르쉐를 부활시킨 1등 공신이었다. 2002년 1세대 모델 출시 이후 2010년 2세대 모델이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는데, 여전히 포르쉐 전체 판매량의 3분의 1을 책임지며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카이엔은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아 ‘강남 싼타페’라는 별칭으로 통하고 있다.
▲'세단형 멋쟁이'의 대명사였던 재규어는 SUV 매출 호조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재규어 'F-페이스' SUV 모델. (사진 = 재규어코리아)
▣ "최단 기간 최대 판매" 재규어 F-페이스
고급 스포츠 세단을 만들던 재규어는 2015년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브랜드 최초의 SUV인 F-페이스를 선보였다. 준중형 SUV인 F-페이스는 출시 첫 해였던 지난해 전 세계에서 4만 6천 대 가량의 글로벌 판매를 기록해 재규어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판매된 모델이 되었다. 미국 시장의 경우, 재규어 브랜드 전체 판매량은 F-페이스 출시 전인 2015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 시장에도 지난해 8월 출시됐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F-페이스에 대해 “스포츠카 수준의 역동성, F-타입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 일상을 위한 실용성 및 최첨단 기술이 모두 집약된 모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재규어 세단에서 누릴 수 있던 운전의 재미와 고급스런 브랜드 이미지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여기에 실용성이 더해졌다”고 평가했다.
재규어 F-페이스는 4월 12일 ‘2017 뉴욕 오토쇼’ 개막 사전행사로 진행된 월드 카 어워드에서 올해의 차 부문과 올해의 자동차 디자인 부문 2개 부문을 석권했다. 월드 카 어워드 13년 동안 2개 부문 동시 수상은 재규어 F-페이스를 포함해 2회에 불과하다.
▲높이 말고는 SUV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 마세라티 '르반떼'. (사진 = 마세라티코리아)
▣ SUV로 보여? 마세라티 르반떼
마세라티 100년 역사상 최초의 SUV인 ‘르반떼’는 지난해 제네바모터쇼에서 소개된 후, 11월에 국내 시장에 출시됐다. 1억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차량이지만 사전 예약으로 200여 대나 판매 되며 국내에서도 럭셔리 SUV의 인기가 높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런데 업계에서는 럭셔리 SUV의 인기가 높다지만 이탈리아 브랜드, 특히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마세라티에 대해서는 브랜드 이미지나 스타일이 가장 SUV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SUV를 생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 왔다. 하지만 정작 마세라티가 내놓은 르반떼를 본 업계는 이에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마세라티 르반떼는 SUV이면서도 세단처럼 늘씬한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높이는 SUV의 높이지만 비율과 실루엣은 쿠페나 스포츠카를 연상시킨다. 또한,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SUV들이 오프로드용 주행 성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과시하는 것과 달리 르반떼는 마세라티 최초로 오프로드 모드를 도입한 사실을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르반떼는 이탈리아 미라피오리 공장의 르반떼 전용 라인에서 100% 생산된다.
▲완전 수작업으로 생산되는 명품 중의 명품 벤틀리 '벤테이가'. (사진 = 벤틀리모터스코리아)
▣ 수작업 명품, 벤틀리 벤테이가
영국의 벤틀리(폭스바겐 그룹 산하)는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브랜드 100년 역사에 첫 번째로 선보이는 SUV ‘벤테이가’를 선보였다. 벤테이가는 국내에서도 지난해 부산 모터쇼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벤테이가는 아우디의 최신 Q7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며, 벤틀리의 영국 크루(Crewe) 공장에서 수작업으로 생산된다. 헤드램프, 그릴, 차체 등을 모두 직접 조립하며, 한 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30여 시간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의 시판가는 28만 1170달러(한화 약 3억 3천만 원)로 책정되었으며, 국내 출시 가격은 3억 4천만 원에 육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벤테이가는 영국 출시 당시 9개월 치의 주문이 밀려있었고 국내에도 최대 50대 정도만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전해졌다.
벤틀리코리아는 지난해 3월부터 벤테이가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젤게이트 이후 환경부 인증 절차가 엄격해지면서 완료 시점이 계속 늦춰지는 바람에 2016년 10월로 예정되어 있던 예약고객 차량 인도도 미뤄져야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벤테이가의 배출가스 및 소음 관련 인증이 지난 3월 완료된 것으로 알려져 상반기 내에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람보르기니의 CEO 스테파노 도메니칼리가 람보르기니 '우루스 콘셉트'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람보르기니)
▣ '가장 빠른 SUV' 람보르기니 우루스
슈퍼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의 ‘우르스’는 사실 브랜드 역사상 두 번째 SUV 모델이다. 람보르기니는 1986년 브랜드 첫 SUV인 LM-002를 출시한 바 있고, 이는 1993년에 단종됐다.
우르스는 2012년 베이징모터쇼에서 처음 콘셉트로 공개되었다. 람보르기니는 이후 2018년 상반기 양산을 목표로 5년간 우르스 개발 과정을 거쳤고, 올해 12월 4일 이탈리아 산타가타에서 전세계에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우르스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SUV이다. 벤테이가와 마찬가지로 최신 아우디 Q7의 플랫폼을 사용한다. 람보르기니는 우르스가 지구에서 가장 빠른 SUV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우르스의 가격은 20만 달러(약 2억 2천만 원) 정도로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본래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을 고려했으나 이탈리아 정부의 제안에 따라 이탈리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롤스로이스 '컬리넌' 시험주행용 테스트 차량. (사진 = 롤스로이스)
▣ "신전 같은 외모" 롤스로이스 컬리넌
BMW그룹의 롤스로이스는 2015년 2월, 브랜드 첫 SUV인 ‘컬리넌’ 개발을 공식화하고 지난해 12월 시험주행차의 모습을 공개했다. 위장막 때문에 전체적인 외관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파르테논 신전을 형상화한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코치도어 문열림 등이 롤스로이스 고유의 디자인 언어를 담고 있으며, 높은 차체를 통해 SUV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롤스로이스 측은 컬리넌을 SUV로 규정하는 대신 ‘하이 사이드디 비히클(High Sided Vehicle)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이라며 새롭게 정의했다. 외신은 롤스로이스가 SUV라는 표현에 담긴 가볍고 역동적인 느낌을 피하고 고급스러움과 희소성을 강조하려는 브랜드 특유의 태도라고 분석했다.
2018년 하반기 출시를 예고한 컬리넌은 향후 출시될 롤스로이스 ‘팬텀 시리즈2’와 플랫폼을 공유하며, 2018년 이후 출시되는 모든 신차에 적용할 알루미늄 차체 구조를 적용한다. 엔진은 6.25리터 V12 가솔린 엔진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고, 여기에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시스템이 라인업에 추가될 가능성이 전망되고 있다.
▲안(성능)-밖(디자인) 모두 눈길을 당기는 알파로메오 '스텔비오'. (사진 = 알파로메오)
▣ "포르쉐보다 빨라" 알파로메오 스텔비오
지난해 11월 LA 모터쇼에서는 알파로메오의 첫 상업용 SUV인 ‘스텔비오’가 공개됐다. 스텔비오는 2017년 12월 쯤 출시될 예정이며, 가격은 3만~5만 유로 정도에서 책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알파 로메오는 2003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SUV ‘카말(Kamal) 콘셉트’를 선보인 적이 있고, 1952년에는 이탈리아 국방부의 주문에 의해 ‘마타(Matta)’라는 4륜구동 오프로더를 생산한 적이 있다(1954년 단종).
스텔비오는 알파로메오 특유의 디자인 요소들이 적용된 개성있는 외관으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주행 성능에 관한 자부심이 관심을 모았다. 알파로메오 CEO인 리드 비글랜드는 “시뮬레이션 테스트 결과 스텔비오의 고성능 모델인 쿼드리폴리오가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완주하는 데 걸린 시간은 7분 59초였다”며 “이는 포르쉐 카이엔 터보S보다도 빠른 기록”이라고 밝혔다.
▲제네시스 'GV80 콘셉트'.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 "멋지고 친환경-첨단" 제네시스 GV80 콘셉트
2017 뉴욕모터쇼에서 처음 선보인 제네시스의 ‘GV80 콘셉트’는 외신들로부터 “벤틀리 벤테이가에서 영감을 얻었고, 제네시스 브랜드의 대표 모델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은 평가는 현대자동차가 현대 디자인센터장으로 영입한 루크 동커볼케 전무가 앞서 벤틀리의 수석 디자이너였으며 이상엽 스타일링 담당 상무도 벤틀리 외관디자인 총괄이었다는 점에 근거했다. 동커볼케 전무와 이 상무는 벤틀리 벤테이가 디자인에 함께 참여한 경험이 있으며, 특히 이 상무가 벤틀리에서 담당한 마지막 작품이 벤테이가였다. 제네시스 GV80 콘셉트의 낮은 포지션에서 벤틀리의 요소를 발견하는 디자이너도 있었다.
GV80 콘셉트는 제네시스 브랜드에서 내놓는 첫 고급 SUV라는 점 외에도 전기차와 수소차의 기능을 결합한 플러그인 수소연료전지(FCEV) 기술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친환경 자동차라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현대차는 2013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수소연료전지차인 투싼ix를 선보인 데 이어 지난 3월 초 스위스에서 열린 제네바국제모터쇼에서도 1회 충전으로 800km 이상을 달리는 FE수소차 콘셉트를 선보이는 등 수소연료전지 기술의 세계 선두라는 자부심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하지만 GV80 콘셉트를 기반으로 한 제네시스 SUV는 2019년 먼저 내연기관 모델부터 선보인 후에 친환경 모델을 라인업에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SUV는 DNA에 없다"고 선언한 페라리의 GTB488 모델. (사진 = 페라리)
▣ “SUV?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페라리
물론 흔들림 없이 슈퍼카의 자부심을 지키겠다는 브랜드도 있다. 예컨대 FCA의 CEO인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는 지난해 제네바 모터쇼에서 인터뷰를 통해 “페라리가 만드는 SUV를 보고 싶다면 먼저 나를 총으로 쏴야 될 것”이라며 “페라리의 DNA에 SUV는 존재하지 않고, 만들지도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럭셔리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부가티도 SUV를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No”라고 답했다. 부가티의 수장 볼프강 뒤르하이머는 “부가티와 SUV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린 SUV 대신 4도어 세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009년 패스트백 스타일로 나왔던 부가티 ‘16C 갈리비에(16C Galibier)’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를 조금만 손질하면 SUV가 나올 법 하다며 부가티 SUV에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다.
윤지원 yune.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