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공무원에 ‘덜렁’ 확인서 써주면 ‘덜컥’ 걸린다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우리 회사 혹은 영업장에 공무원의 단속이 나오고, 얼마 후에 문서가 날아 옵니다. 문서에는 우리 사업장을 영업정지에 처한다는 말이 있고, 며칠 후까지 의견을 제출하라는 말이 쓰여 있습니다. 이런 통지를 받으면, 회사의 법무 담당자나 사장님들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회사가 행정처분을 받았을 때, 초기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행정처분과 확인서 요구
행정처분이란 행정청이 법률에 근거해 국민의 권리나 의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형태는 국민이 신청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거부처분(拒否處分)이 될 수도 있고, 영업정지나 과징금 부과처분처럼 직접 의무를 부과하는 형태의 처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보통 행정처분의 순서는 담당 공무원이 사건을 인지하고, 증거를 확보한 후에, 처분의 사전통지를 하고, 의견 제출이나 청문의 기회를 부여한 뒤에, 실제로 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담당 공무원의 사건을 인지하는 계기는 단속을 통한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의 민원 제기가 있어서 인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경우에 따라 수사기관에서 관련 지자체나 관련 부서에 행정처분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사기관에서 먼저 단속이 된 뒤에 해당 부서에 통보가 되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의 수사권으로 해당 처분의 근거가 이미 확보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 회사 담당자의 진술서, 진술 조서 등으로 관련 진술도 확보가 됩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단속을 통해 사건을 인지한 경우, 담당 공무원은 수사기관과 같은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증거 수집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 경우 담당 공무원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회사의 담당 직원 혹은 대표에게 ‘위반 사실에 대한 자인서’ 혹은 ‘확인서’를 쓸 것을 요청합니다. 이 자발적인 확인서를 통해서 법 위반 사실을 증명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 확인서의 작성은 보통, 최초 단속 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의 담당자로서는 우리 회사가 정말로 해당 법규를 위반했는지 확신이 없거나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순간 당황한 마음에 담당 공무원이 쓰라는 내용으로 확인서를 작성합니다.
이 확인서는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진술조서나 진술서 정도의 효력은 없지만, 담당 행정청이 행정처분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근거 자료로 이용됩니다. 회사에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서면을 당황한 상태에서 작성하다 보니, 회사 측의 입장을 반영하기는 어렵고, 담당 공무원의 말만 듣고 모든 것을 인정하는 내용을 작성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확인서 작성, 회사 의무 아니다
예전에 공무원을 하다가 이직한 친구의 무용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자신이 담당 공무원으로 행정법규 위반이 의심되는 회사에 단속을 나갔는데 명확한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회사 담당직원이 다이어리를 들고 있기에 “좋은 다이어리를 쓰시네요. 저도 마침 다이어리를 바꾸려고 하는데, 한번 볼 수 있을까요?”라고 말해서 다이어리를 넘겨받았고, 그 다이어리에서 관련 메모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 메모를 근거로 담당자에게 ‘법 위반 사실을 인정하는 확인서’를 받아서 행정처분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좀 황당하기도 했는데, 수사권이 없는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행정처분이란 행정청이 법률에 근거해 국민의 권리나 의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회사가 행정처분을 받았을 때는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사진은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대한민국 대법원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그럼 회사의 담당자는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서를 써주어야 할 의무가 있을까요? 확인서는 원래 ‘자발적’으로 쓰는 것입니다. 회사 담당자는 공무원에게 이 확인서를 써줄 의무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안 써주어도 무방한 확인서를 왜 써주고, 나중에 후회를 할까요? 일단 확인서를 써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단속 현장에서 당황하여 노련한 공무원의 언변에 눌려 작성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 확인서를 작성해주지 않으면 단속 공무원이 해당 회사에서 나가지 않고 계속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일단 확인서를 써준 다음에는 늦습니다. 아무리 해당 확인서를 철회한다는 공문을 해당 관서에 보낸다고 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자문하는 회사에서 종종, 이 확인서 작성과 관련하여 연락을 받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확인서를 작성해주고 난 후에 자문을 합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공권력의 행사를 방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확인서를 써주려면 우리 회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확인서를 작성해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가 잘못한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면 확인서를 즉시 작성해줘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아직 위반사실이 명확하지도 않은데 확인서를 작성해주는 것은 어떻게 보면 회사에 대해서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그럼 담당 공무원의 확인서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회사의 직원이라면, 자신은 문서를 작성해줄 권한이 없음을 항변하거나 대표이사의 승인이 필요하다, 혹은 회사 고문 변호사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가능한 한 부드럽게 거절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호소까지 덧붙인다면, 담당 공무원도 쉽게 외면하지 못합니다.
행정 사건은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회사 담당자가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입니다. 단속의 순간 당황하지 말고, 의연히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