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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 은산해운항공 양재생 회장] “된다, 더 잘된다. 초긍정 에너지로 가족같은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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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3-534호 부산 = 강우권 기자⁄ 2017.05.01 09:47:27

▲자신의 집무실에서 환한 미소로 인터뷰에 응하는 양재생 회장.

(CNB저널 = 부산 강우권 기자)

- 은산이 걸어온 길은?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1975년 부산 동남아해운에 취직해 19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한 지 3년째 되던 1993년 11월에 직원 4명과 함께 자본금 3천만 원을 갖고 은산해운항공을 창업했다. 37세 나이로 회사를 시작한 이후 23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흑자를 기록하면 2015년 기준 연매출 3천억 원 규모 회사로 성장시켰다. 회사 이름 ‘은산(銀山)’에는 은을 산처럼 쌓겠다는 다짐과 큰 경영을 해 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창업 초기 3~4년은 운영자금과의 전쟁이었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회사라 실적이 적다보니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기도 어려웠다. 물류회사의 특성상 먼저 자기 돈으로 화물을 보내고 안전하게 도착한 것이 확인되면 대금을 정산 받는 구조였기 때문에 몇 달씩 자금이 묶이는 경우가 많았고 친인척이나 주변 지인 수십 명에게 돌려가며 돈을 빌리는 일이 주된 업무였을 정도였다.

IMF를 겪은 후 은산해운항공은 마침내 업계 최강자로 올라서게 됐다. 1997년 91억 원이던 연매출은 1998년 222억 원으로 급증했다. 또 하나, ‘긍정 마인드’가 빛을 발한 순간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였다. 9월 초순, 아시안게임을 보름 남겨 두고 조직위원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시안게임에 참여하는 42개국에 성화를 운송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이미 국내의 내로라하는 물류업체들로부터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은 조직위로서는 궁지에 몰려있던 처지였다. 그런데 제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성화에는 위험물인 가스가 들어있어서 42개국에 제대로 수송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직원들이 직접 하나하나 성화를 안고 비행기에 타서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거의 열흘 만에 모든 나라에 성공적으로 발송할 수 있었다. 

덕분에 당시 문체부장관상까지 받았다. 대한항공 같은 대기업조차 ‘운송 불가’라고 제쳐둔 건을, 큰돈도 안 되는데 포장방법을 바꾸거나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고객에게 상품을 수송하는 임무를 달성하는 은산의 사례는 국제 운송업계에서 사상 최초의 사건으로 회자되며 브랜드 가치를 크게 높였다.

2004년 6월에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특수 제작한 무게 7백 톤, 높이 13미터의 초대형 선박 엔진을 바지선에 싣고 부산항으로 옮긴 뒤 다시 벌크선에 실어서 독일까지 운송하는 전체 과정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해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바지선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로 적기에 운송이 가능했는데 만약 납기 지연이 됐더라면 위약금의 액수만도 엄청났을 것이라 했다. 당신 현대중공업의 사내방송에도 나올 정도로 업계에서는 엄청난 일이었다. 부산항 개항 이래 최대 규모의 장비가 투입된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은산해운항공 입장에서는 고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거래처에게 득이 돼야 결국 자신들에게도 득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일련의 프로젝트를 통해 은산은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고 더불어 매출액도 가파르게 늘기 시작했다.

이후 은산해운항공은 2014년에 1700억, 2015년에는 1850억의 매출을 기록했다. 컨테이너터미널(창고)이 따로 300억 정도 매출을 올렸고, 자회사인 물류회사 동서콘솔의 600억까지 합하면 전체로는 3000억 정도의 매출을 기록했다.”

-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기업은 굳이 IMF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매 순간 순간이 위기이다. 지금 이 순간도 위기다. 다만 IMF 때처럼 비상식적인 위기가 오면 프로와 아마추어가 표시 날 뿐이다. 그런 수준의 위기가 오면 아마추어들은 버티지 못한다. 진짜 무장이 잘 되어있는, 진짜 선수들만 살아남게 된다. 시시각각 날을 세워놓아야 하는 것이다. 일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없을 때는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

IMF 직전이었던 1996년, 여러 경로를 통해 뭔가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1997년 시무식 때 직원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올 한 해는 아주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정신무장을 하자고 했고 즉각 출근시간을 1시간 30분이나 앞당겼다. 9시 반에 출근하던 것을, 월요일은 7시 반, 화요일부터는 8시에 출근하도록 당겼으니 직원들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배수의 진을 치고 물러서지 않았다. 못하겠거든 사표를 쓰고 회사를 나가라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정보를 빨리 얻으면 그만큼 조치도 빨라지니 위기가 오더라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수주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 판단했다. 우리 회사는 이때부터 전 세계 화주로부터 24시간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체제로 전환했다. 결국 그해 11월 IMF가 터지면서 예견이 현실로 드러났고 이후 직원들의 저에 대한 신뢰가 더욱 높아졌다. 순식간에 닥친 위기에 우왕좌왕하던 다른 기업들과 달리 은산은 안정되게 일감을 늘려가며 오히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다른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던 시기에 은산해운항공은 마침내 업계 1위에 올라섰다.”

▲부산의 은산빌딩 전경.

- 직원 복지는?

“저는 틈틈이 시를 쓰기도 하는데 대표작으로 꼽는 시가 ‘가족’이다. 그래서 회사 직원들의 출산장려에도 적극적이다. 첫째 아이를 낳으면 100만 원, 둘째는 200만 원, 셋째 아이를 낳으면 1000만 원을 즉지 지급한다. 

또 효도를 강조해 매년 창사기념일에 효도상을 발표한다. 효도는 모든 행동의 근원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효도하는 직원이라면 회사나 여타 다른 사회생활에서도 모범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직원들에게도 가족을 꾸리고 또 보살피는 일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도록 강조한다.”

- 지역사회에 공헌이 있다면?

“고향마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상원부락과 자매결연을 맺고 필요한 부분을 물심양면 돕고 있다. 마을의 가로등, 동사무소 건물, 은산공원 등이 그 예다. 공원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체육시설이 있고 회사에서 거래처나 기타 선물을 해야 할 때는 되도록 고향마을의 고로쇠 물이나 양파, 사과, 곶감 등을 구매한다. 

고향 함양의 한센병 환자들이 진주까지 좀 더 편하게 치료받으러 다닐 수 있도록 봉고차를 구입해주거나, 80세 이상 노인들의 생일을 챙기고,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일상적으로 고향을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 미래 경영 계획은?

“나에게 기업은 돈만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다. 기업은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쏟아 부어 상상했던 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돈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다. 지금까지 이룬 것보다는 내일부터 할 수 있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지금도 계속 투자 중이다. 신항만에 1만 평 정도의 땅을 확보했고 양산, 녹산, 화전에 3개, 인천공항, 부산신항, 미국 애틀란타 등을 합해 모두 9개 정도의 터미널에 더 투자할 계획이다. 

은산은 이제 막 20년을 넘긴 신생기업일 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은 아직도 무한대로 펼쳐져있고 그런 의미에서 은산은 이제 막 새벽을 맞은 회사일 뿐이다. 요즘도 새벽 4시30분에 일어난다. 낮에 이동하면서 졸기도 하지만 대체로 자정쯤 잠들었다가 새벽 네다섯 시에 일어나는 일상을 오래 반복하고 있다. 

만보계를 차고 다니며 술과 담배, 골프는 하지 않는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 기도로 일과를 시작한다. 주로 고객의 사업이 잘될 수 있도록 빈다. 고객의 사업을 성공시켜야 은산도 성공할 수 있고, 은산이 프로젝트에 실패하면 그 손해가 고스란히 고객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고객과 은산이 하나의 공동운명체라고 생각하며 임한다.

향후 북극 항로가 열리면 부산은 중간 기착지로서의 효용이 더욱 커지게 된다. 중국의 동북 3성이나 극동 러시아의 물류까지 모으게 되면 그 가치는 훨씬 커지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부산을 극동 물류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부산시가 좀 더 국제적으로 시야를 넓히고 정부와 별개로 독자적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준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뿐 아니라 북한과도 적극적으로 접촉해야 하고 더 늦기 전에 극동을 선점하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본다. 더 늦으면 회복하기 힘들 만큼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제18회 부산문화대상을 받은 양재생 회장(가운데).

- 좌우명이나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좌우명은 금강경에 나오는 ‘심상사성(心想事成)’이다. 마음먹은 대로 일도 된다는 뜻이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지레 겁을 먹거나 안 된다는 생각부터 먼저 하면 실제 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될 것이라고 믿고 도전하는 일은 즐거움도 높여준다. 같은 일이라도 은산과 함께 하면 기분이 좋다, 혹은 양재생과 함께 하면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다. 아이젠하워는 빈민가에서 불우하게 자라며 늘 동네사람들과 싸우고 욕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어느 날 문득, 항상 자신을 안아주고 사랑으로 돌보던 어머니를 떠올리곤 마음을 다잡았는데 이후 장군이 되었다가 마침내 대통령까지 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이젠하워를 특히 좋아하게 된 이유도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관련된 ‘긍정적인 마인드’의 일화 때문이다. 당시 장군들이 모여 노르망디에 누구를 보내면 좋을지를 의논하다가 운이 가장 좋은 사람을 보내는 게 좋겠다고 결론지었는데 그럼 누구의 운이 가장 좋은지를 따지다가 평소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던 아이젠하워를 보냈다는 이야기이다. 운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일상적으로 좋은 기운과 에너지를 주변으로 흘려보내다보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 에너지는 옆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그 옆 사람에게도 흐르고, 또 그 옆 사람에게도 계속해서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에 흘려보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 은산이 어떤 기업으로 남고 싶은지?

“가족들 중에도 화목한 가족이 있고 아닌 가족이 있듯이,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화목한 가족적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기업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우리 은산해운항공에는 10년 이상 된 직원들도 많다. 물류업계는 이직률이 높은 업종이지만 상대적으로 이직률이 낮다. 실제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화목하고 가족적이다. 

1년에 봄가을, 서울과 부산에 있는 전 직원이 공동으로 야유회 겸 등산을 간다. 예전에는 1박 2일이었지만 요즘엔 당일로 간다. 회사를 키우려면 본사를 서울로 옮기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하겠지만, 부산이라는 제2의 고향을 지키려는 마음이 더 커서 옮기지 않고 있다. 회사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실제 가족들을 위해서도 애를 많이 쓰는 편이다. 화목하고 가족적인 회사가 고객들에게도 사랑받을 것이다.”

- 젊은 청년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공짜는 없다.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고 애써야 한다. 왕이 되려면 먼저 종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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