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화장품이야 약이야?” 선 넘은 제약업계, 욕심이 화 부르나
앞다퉈 ‘뷰티의약품’ 출시…반응은 ‘무덤덤’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화장품 매장에 쇼핑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은 기사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김유림 기자) 국내 다수의 제약기업이 뷰티업계 진출에 잇달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연구개발(R&D) 노하우와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기능성 화장품을 내놓으면서 사업다각화에 나선 것. 하지만 유통망 확보와 제약사 이미지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제약업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코스메슈티컬(cosmeceutical)’이 떠오르고 있다. 말 그대로 화장품(cosmetics)과 의약품(pharmaceutical)의 합성어로, 의학적으로 검증된 기능성 성분으로 만든 치료 개념의 화장품이다.
예전에는 피부과와 약국에서만 고가에 판매됐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지만, CJ올리브영과 롯데 롭스, GS왓슨스 등 드럭스토어가 활성화되면서 코스메슈티컬의 부흥기가 시작됐다. 실제로 드럭스토어 매장 한쪽 면에는 의사와 약사가 직접 제품 개발에 참여해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피지오겔과 유세린, 해외 유명 온천을 전면에 내세운 비쉬, 아벤느, 유리아쥬 등의 글로벌 코스메슈티컬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다.
한국코스메슈티컬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글로벌 코스메슈티컬 시장은 35조원을 돌파했으며, 전체 화장품 시장의 약 13%를 확보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는 5000억원 선으로, 그 비중이 2.9%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년 15% 정도의 가파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어, 제약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가장 최근 코스메슈티컬에 출사표를 던진 곳은 업계 1위 유한양행이다. 유한양행은 이달 초 뷰티헬스 전문 자회사인 ‘유한필리아’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앞서 유한양행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사업다각화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 다수의 신사업팀을 구성한 바 있으며, 그 결과 유한필리아가 탄생한 것이다. 유한필리아는 우선 유한양행에 필요한 화장품을 공급하고, 점진적으로 자체 브랜드를 런칭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제약사는 상처연고 ‘마데카솔’로 유명한 ‘동국제약’이다. 동국제약은 2015년 4월 ‘센텔리안24’를 런칭했다. 에센스와 로션 등의 기초제품부터 선크림, 바디 제품, 남성 라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개발한 상태다.
특히 대표 제품인 ‘마데카 크림’은 센텔라 정량 추출물 외에도 동백꽃·겨우살이열매·개서어나무잎 추출물 등 8가지 특허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한국피부임상과학연구소의 임상 연구 결과 피부 콜라겐 생성을 증가시켜 피부 보호막 형성 및 피부 장벽 강화 작용, 자외선으로 인한 피부 손상을 진정시키는 효과 등이 확인됐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또 유통망에 있어서도 기존의 홈쇼핑 뿐만 아니라 면세점과, 백화점, 할인점 등 오프라인 채널과 자체 쇼핑몰 및 다양한 온라인 채널에도 입점해 소비자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동국제약의 화장품 브랜드 ‘센텔리안(CENTELLIAN)24’의 대표 제품인 ‘마데카 크림’이 2015년 GS홈쇼핑 1차 판매에서 매진을 기록한 바 있다. 사진 = 동국제약
보령제약은 미백 기능성 화장품 트란시노 화이트닝 에센스와 로션을 약국에 판매중이다. 이들 제품에는 경구투여 기미치료제의 주성분인 트라넥사민산이 들어있어 멜라닌 생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데 효과적이다. 이외에도 계열사 보령메디앙스에서 아토피 피부용 저자극 보습제 ‘닥터아토’, 스킨케어 브랜드 ‘크리템’ 등을 판매한다.
대웅제약의 미용 전문 관계사인 디엔컴퍼니는 지난해 ‘상피세포성장인자(DW-EGF)’를 적용한 브랜드인 에스테메드, 이지듀, 셀리시스를 중국 시장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DW-EGF는 인체내에 존재하는 성분이며, 손상된 피부를 재생시키는데 도움을 줘 흉터를 최소화하는 효능을 갖고 있다. 대웅제약이 대량 생산하는 특허 기술을 보유해 ‘피부치료제’로도 사용된다.
줄기세포 기술을 활용한 제품도 늘고 있다. 피부과 처방 1위 전문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는 중견제약사 동구바이오제약은 지난해 ‘셀블룸’을 출시했다. 셀블룸은 줄기세포 배양액과 천연 추출물로 피부 보호 및 재생 효과를 주는 제품이다. 아시아나항공 기내면세점에도 입점해 있으며, 곧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 직접 진출할 계획이다.
바이오시밀러를 통해 설립 14년 만에 시가총액 13조원을 달성한 셀트리온은 지난 2013년 비비크림의 원조 한스킨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뷰티 시장에 진출했다. 특히 지난달 뷰티 계열사 ‘셀트리온스킨큐어’는 서울 신사동 사옥에서 사업파트너 모집 설명회를 개최했으며, 향후 15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등 투자 확대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갈 계획이다.
소화제 ‘까스활명수’로 잘 알려진 동화약품은 활명수의 생약 성분을 적용한 ‘활명’을 조만간 런칭할 계획이다. 올 3월 미국에서 열린 ‘K뷰티 행사’에서 첫 선을 보인 이 제품은 미세먼지 등 외부 자극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영양 공급과 수분감을 제공한다.
휴온스글로벌은 지난달 자회사인 휴메딕스를 통해 히알루론산 필러 제품인 ‘엘라비에’를 출시한 데 이어 엘라비에 무균 화장품 3종 세트, 프리미엄 마스크팩 3종을 추가해 라인업을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제약기업들은 자신만이 보유하고 있는 의약품 개발 노하우와 특허기술 등을 내세워 코스메슈티컬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지만, 맥을 못 추고 사라지고 경우도 수두룩하다.
실제로 경남제약은 지난 2008년 대표상품인 ‘레모나’의 이름을 딴 ‘블랑씨’를 출시했다. 당시 홈쇼핑 판매까지 두 차례 시도했으며 약국은 물론 편의점과 쇼핑몰로 판매처를 확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약국 이외의 유통채널 확보에 실패하면서 6개월 만에 사업을 접었다.
▲일동제약의 화장품 브랜드 ‘고유에’(위쪽)와 경남제약의 ‘블랑씨’는 마케팅 노하우 부족과 유통망 확보의 한계에 부딪쳐 매각하거나, 시장에서 사라졌다. 사진 = 각 기업
일동제약은 지난 2009년 바르는 비타민C 화장품인 ‘바비씨’를 발매했으나, 2012년 종적을 감췄다. 또 2013년 4050 중장년층을 겨냥한 ‘고유에’를 런칭한 후 2014년 매출이 100억원대를 넘겼으나, 지난해 갑작스럽게 매각했다. 이와 관련해 일동제약 관계자는 CNB에 “화장품 사업을 재정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설비시설 믿고 나섰다 큰코 다쳐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부실한 유통망’을 실패의 대표 요인으로 꼽고 있다. 비교적 고가에 속하는 제약회사의 화장품은 토니모리와 미샤, 잇츠스킨 등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는 로드샵의 유통구조에 편입되기가 쉽지 않다.
또 기존 뷰티업계는 백화점과 면세점, 대형마트, 드럭스토어, 방문판매 등 다양한 유통경로를 통해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지만, 제약사는 병의원과 약국을 주판매처로 두고 있다. 결국 병원과 약국에만 공급된 화장품은 고객에게 노출되기가 어려워 관심조차 못받고 사라지게 된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브랜드 이미지 구축 전략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은 소비자들에게 ‘아름다움’의 이미지가 있는 반면, 기능성을 강조하는 제약사의 화장품은 ‘피부질환치료’가 연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구개발을 통해 자체적인 제품을 내놓지 않고, 중소기업이나 해외 브랜드와 손잡고 판매·유통에 나서는 제약사도 늘고 있다.
JW중외제약의 지주사인 JW홀딩스는 모공팩 완판 신화로 유명한 중소기업 카오리온코스메틱스와 손잡았다. JW홀딩스는 카오리온의 대표 제품을 중국 진출 및 유통, 마케팅에 매칭 할 계획이다.
부광약품은 스페인 페레(Ferrer)사의 ‘리파바 피엘라토’를 수입해 올해 상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건성 및 기타 피부타입에 적합한 데일리 케어용이며, 바디로션과 바디크림, 익스트림바디크림, 페이셜크림 총 4품목을 완제 공급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제약사들이 연구·설비 시설을 갖추고 있다 보니, 화장품 시장 접근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제네릭(복제약)처럼 일단 비슷하게 만들어내면 팔릴 것으로 보고 사업다각화에 나서고 있지만, 에센스 하나만해도 시중에 1만여개의 브랜드가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