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한 치의 혀로 사람을 살린다’고 했던가. 여기엔 오히려 혀를 잘못 놀려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두 남자가 있다. 연극 ‘라이어’가 20주년을 맞아 특별공연 ‘스페셜 라이어’로 돌아왔다.
1998년 초연 이후 총 3만 5000회 공연, 누적 관객수 500만을 돌파한 ‘라이어’는 영국의 극작가 겸 연출가 레인 쿠니의 대표작인 ‘런 포 유어 와이프(Run for Your Wife)’ 원작을 번안, 각색한 연극이다. ‘라이어’는 현재는 익숙한 오픈런(공연이 끝나는 날짜를 지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연하는 것)의 시초이기도 하다. 장기 공연 시대를 연 라이어는 현재까지 꾸준히 공연돼 오면서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공연은 거짓말로 인해 서로 속고 속이는 상황과 자신의 거짓말에 스스로 자승자박되는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짓말의 시작은 택시 운전사 존 스미스부터다. 아내에게 한없이 다정한, 완벽해 보이는 남편 존에게는 비밀이 있다. 바로 이중 결혼. 윔블던에서는 메리, 스트리트햄에서는 바바라의 남편이다. 사랑하는 두 여인을 두고 정확한 스케줄에 맞춰 존은 바쁘게 살아간다.
그런데 한 강도 사건에 휘말리면서 이 일정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본래 바바라에게 돌아가야 할 시간에 메리와의 집에 돌아가게 되고, 여기에 병원에서 두 주소를 엇갈려 적으면서 형사까지 확인 차 찾아오게 된다. 그것도 두 명이나. 메리 집에는 트로우튼 형사가, 바바라 집에는 포터 형사가 찾아와 자초지종을 캐묻는다.
이때 존은 진실이 아닌 거짓을 택한다. 유일하게 친구 스탠리에게 자신의 이중 결혼 생활을 털어놓고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그런데 하나의 상황을 해결하면 또 다른 사태가 터지면서 거짓말은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거짓말을 해대는 이 둘은 결국 어떤 상황을 맞게 될까.
공연 20주년을 맞아 그간 라이어를 이끌어 온 대표 배우들과 새로운 배우들의 합류가 어우러졌다. 연극배우 시절 라이어와 동고동락했던 이종혁, 안내상, 우현, 권혁준, 김원식, 김광식, 오대환, 홍석천이 다시 한 번 뭉쳐 라이어의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연기한다. 여기에 원기준, 서현철, 안세하, 슈, 신다은, 나르샤, 손담비, 안홍진, 김호영, 병헌이 합류해 역대 출연자들과 호흡을 맞춘다.
안내상은 “20년 전 청춘일 때 라이어 무대에 올랐는데, 또 이 무대에 오른다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면서 정말 힘들기도 하다. ‘큰일 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체력 소모가 크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안내상과 함께 ‘스페셜 라이어’팀의 기둥 역할을 하는 우현은 “20년 전에는 이상한 듯 사랑스러운 캐릭터 바비 프랭클린을 연기했다. 당시엔 연기도 처음이었고, 무대 공포증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무대에 서고 있다”며 “그때의 무대를 다시 느끼고 좀 더 좋은 배우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다시 올랐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라이어’ 원조 멤버들과 새로운 멤버들의 조화
슈와 나르샤, 손담비는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해 눈길을 끈다. 슈는 “현장이 굉장히 뜨겁다. 그런데 이현규 연출이 무대 위는 그 무엇보다 냉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야기를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배우가 중심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하는 마음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나르샤 또한 “연극 첫 도전 무대가 국민 연극 ‘스페셜 라이어’라 영광이다. 무대에 많이 서 봤지만 연극은 또 다른 것 같다. 하지만 긴장도 즐기자는 마인드를 갖고 임하려 한다”고 열정을 불태웠다.
드라마에서 꾸준히 연기를 선보여 온 손담비는 “가수 생활을 하면서 배우에 대한 꿈도 키웠다. 그리고 배우를 하면서 관객과 호흡을 하는 연극 무대에 꼭 서고 싶었다. 뮤지컬 제의도 들어 왔었는데 연기가 더욱 성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에 연극을 선택했다”며 “매체 연기랑은 또 다른 특성이 있다. 매체 연기에서는 표정을 주로 보여줬다면, 무대 위에서는 온몸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공연 2개월이 지나고 더 성숙한 배우 손담비가 되길 기대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슈는 신다은과 함께 현모양처의 전형인 메리, 그리고 나르샤와 손담비는 섹시한 스타일의 바바라를 연기한다. 그리고 이 둘의 사랑을 모두 받는 남자가 존 스미스다. ‘스페셜 라이어’의 존은 이종혁과 원기준이 연기한다. 특히 이 둘은 라이어 무대를 꿈꿨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종혁은 “과거 ‘라이어’를 보고 싶었으나 항상 매진이었다. 겨우 보게 된 ‘라이어’를 보고 정말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우현 배우가 도움을 줬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99년도에 트로우튼 형사 역으로 출연했다”며 “그땐 이 작품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 몰랐다. ‘라이어’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과 프로덕션의 지원, 그리고 ‘라이어’ 무대에서 열정을 불태운 선배 배우들의 열정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광으로 생각하고 임하겠다”고 말했다.
원기준은 “대학교 다닐 때 ‘라이어’를 처음 봤다. 그때 느낀 건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무대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등장만으로도 웃기는 서현철 배우 등 각자의 매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라이어’는 오랜 시간 공연돼 오면서 수많은 버전을 탄생시켰다. 그 과정에서 몸 개그가 강조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안내상은 “진짜 ‘라이어’의 매력은 대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를 연극하게 만든 작품이 바로 이 ‘라이어’다. 대본이 가진 힘이 컸다.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의 기승전결이 기가 막히게 완벽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왜곡시키면 되려 이상해질 수 있다. 몸 개그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대본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스페셜 라이어’가 정통 라이어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라이어의 매력을 온전히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연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7월 3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