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복합금융점포가 보험설계사 생존권 파괴” 문재인 정부 생각은?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4일 청와대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 모니터를 보며 일자리 현황을 직접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이성호 기자) 새정부 들어 ‘일자리 창출’이 국정의 1순위로 부상하면서, 복합금융점포가 40만 설계사의 일자리를 위태롭게 한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금융선진화’와 ‘일자리’는 공존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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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지난 2015년 하반기 ‘보험사의 복합점포 입점’을 시범적으로 허용했다.
이유인 즉 전 권역 금융상품을 한 장소에서 원스톱으로 제공받기를 희망하는 소비자들의 편익 제고를 위함이라며 기존의 은행과 증권이 결합된 복합점포에 보험까지 추가로 허용한 것. 각 금융지주사별로 3개 이내로 2017년 6월말까지 약 2년 간 시범운영을 진행하고 이후에 확대 여부 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현재 4개의 금융지주에서 총 10곳의 은행+증권+보험 복합점포가 문을 열고 있다.
지주사별로 살펴보면 KB금융지주는 3개(여의도·도곡스타PB센터·판교종합금융센터)의 복합점포에 KB손해보험·KB생명보험을 입점 시켰다. 신한금융지주는 3곳(PWM강남센터·의정부·경희궁)에 신한생명을, 하나금융지주 2곳(압구정PB센터·하나금융투자센터)에는 하나생명, 농협금융지주 2곳(광화문·부산)에 농협생명이 각각 들어섰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사별로 3개 이내의 복합점포를 시범적으로 운영한 성과를 점검한 이후 제도의 확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사진 = 농협금융
이처럼 각 지주사 계열 보험사들은 복합점포 당 1명~2명의 직원을 상주시켜 영업을 꾀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적은 어떨까.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출받은 ‘복합점포 보험판매 현황(2015년 3분기~2017년 1분기)’에 따르면 KB금융의 경우 현재까지 708건의 보험상품을 판매했다. 신한금융은 173건, 농협금융 51건이었고 하나금융은 18건에 그쳤다.
평균적으로 봤을 때 성적표는 초라한 형국이다. 업계에서는 규제 탓을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복합점포 내에서 은행과 증권은 서로 간 칸막이 없는 영업행태를 허용하고 있는 반면, 보험은 이들과 분리돼 별도의 공간을 두도록 했다.
즉 같은 점포 내에 있긴 하지만 따로 동떨어져 칸막이를 친 상태로 고객을 맞아야 하는 것. 무엇보다 아웃바운드 영업도 전면 금지, 상주하고 있는 보험사 직원이 고객들에게 가입 권유를 할 수 없어 창구로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만 상품 설명 및 판매가 허용되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일반 보험설계사들도 1인당 한 달에 10건 이내로 신규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내방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복합점포에서 실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대개 보험은 고객 니즈에 맞게 찾아가서 설명해야 하는 푸시형 상품으로, 직접 방문해 가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도 하고 특히 당국의 제약 때문에 복합점포에서의 판매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금융지주회사별 복합금융점포의 분기별 보험 판매 실적. 자료 = 박용진 의원실, 금융감독원
새로운 판매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시너지 효과가 전혀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A금융지주 관계자는 “은행과 증권의 결합에 더해 보험까지 확대돼 업종간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며 “한 공간에서 종합금융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는 고객들의 요구에 발을 맞춰야 한다”며 복합점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시범사업이 끝나 규제도 완화되고 정식적으로 허용된다면, 고객들이 많이 필요로 하는 지역·특색·입지 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응당 복합점포를 더욱 활성화 시키는 방안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6월 말 복합점포 시범운영을 마친 후 성과를 분석하고 업계 애로점 및 정식 도입 시 발생할지도 모를 부작용 등 여러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정책방향을 잡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고객편의냐 일자리냐…‘新 은행’ 운명은? (下)
현재까지 4개 금융지주 복합점포에서의 보험판매 실적은 KB금융 708건, 신한금융 173건, 농협금융 51건, 하나금융 18건으로 부진한 편이다.
이 상태라면 보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볼 수 있는데 정식 도입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이에 일각에서는 금융지주에서 규제 완화와 복합점포의 본격적인 확대를 염두에 두고 시범기간에는 우월적 지위 남용 행위(일명 ‘꺽기’) 및 불완전 판매를 조심하고 설계사들의 생존권 문제 등을 의식해 적극적인 영업을 꾀하지 않았다는 의혹의 눈초리도 제기되고 있다.
복합점포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크다. 일단 ‘방카슈랑스(Bankasurance) 룰’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다.
방카슈랑스는 은행(Banque)과 보험(Assurance)을 합성한 프랑스어로 은행 등이 보험회사와 제휴, 그 대리점이나 중개사 자격을 겸하면서 보험상품도 함께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영업형태의 금융서비스로 2003년 8월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대형·특정보험사의 시장 독점을 방지키 위해 은행에서 보험을 팔 때 한 보험사의 상품 비중을 25% 이상 넘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방카슈랑스 25%룰’이 적용되고 있다.
국내 모든 은행들은 이 규정을 철저히 지키고 있지만 복합점포 내에서는 이 같은 ‘룰’이 이미 깨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16년 KB금융지주가 복합점포에서 판매한 생명보험 상품 중 KB생명 비중은 금액을 기준으로 36.1%였고 KB손해보험은 27.1%였다. 같은 해 농협금융 복합점포에서 농협생명 상품 판매 비중은 45%로 파악됐다. 하나금융과 신한금융은 각각 23.6%, 4.7%로 ‘방카 25%룰’을 넘지 않았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사진 = 연합뉴스
물론 한 점포당 따지는 게 아니라 전체 은행에서의 방카 비중을 살펴야 하지만, 복합점포에서 우회적으로 피해가고 있어 전면 시행 시 ‘방카룰’이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것.
특히 무엇보다 보험설계사 생존권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지난 2015년 복합점포 시범운영을 시작할 당시 한국보험대리점협회에서는 설계사들의 소득 감소와 일자리 축소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모집인들의 반대서명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시범기간이 끝나가는 상황인 만큼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험대리점협회 관계자는 CNB에 “소비자 편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거창하게 내세우고 있지만 애초부터 복합점포는 금융지주 만을 위한 특혜”라며 “전면 확대될 경우 40만명의 보험설계사들의 생존권을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골목상권인 보험모집인 시장을 활성화 시켜야지 약자의 일자리를 뺏어 대기업의 배만 불려주면 안 된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현 정부 기조와도 맞지 않아 기대를 걸고 있다”며 추이를 보면서 설계사들의 권익보호 차원에서 접근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합점포 시범사업은 은행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지주가 주체다. 이러다 보니 KB손보·KB생명·신한생명·농협생명·하나생명 등 은행계(KB국민은행, 신한은행, NH농협은행, KEB하나은행) 보험사만 유리하고 삼성·한화·교보생명, 현대해상·동부화재 등 비은행계 보험사 및 비지주 은행들은 불리해 애초부터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
더군다나 향후 전 은행권으로 대폭 문호를 개방할 경우 설계사 판매채널 붕괴 및 대량실업을 유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새정부 ‘일자리 만들기’와 충돌…백지화 가능성도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이 같은 우려에 동조해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을동 의원(새누리당)과 신학용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복합점포 내 보험사 입점을 막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발의한 바 있다.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가 함께 정책 반대에 나선 것. 반면 이때 은행연합회에서는 국회에 “보험사가 복합점포에 참여하는 것은 소비자의 편익이 증대될 수 있다”며 “이를 금지시키는 것은 금융업종간 시너지 효과를 통한 금융산업 경쟁력 제고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19대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고 현 20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없는 상태다.
국회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에서는 오는 6월 말까지 진행된 복합점포 시범운영 성과를 점검한 후 제도의 확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지만, 일자리 창출을 부르짖는 새정부 정책방향에 역행함에 따라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커 향후 추이는 지켜볼 일이다.
국회 한 관계자는 “지난 2008년 국회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방카룰 완전개방을 철회하고 현 규제를 존치시킨 바 있다”며 “보험 복합점포 확대 실시가 본격화 된다면 이를 막는 관련법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성호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