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매매차익 세금 부과 ‘나비효과’
▲문재인 정부가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대적으로 해외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계 증시의 심장으로 불리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최근 모습. 사진 = 유에스스탁 장우석 본부장
(CNB저널 = 도기천 기자) 문재인 정부가 주식 매매차익에 대한 세금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국내 증권사들이 미국의 우량주 등 해외주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주목된다. 미래에셋대우, 이베스트투자증권 등 국내 대형증권사들이 미국 현지 투자가들과 접촉하며 정보수집 및 프로모션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CNB가 미국 현지 분위기를 단독 취재했다.
“예전에는 미국주식에 투자하는 걸 다들 어려워했는데, 최근 한국에 새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부터 (블로그에) 문의가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게 실감 납니다” (美라스베이거스 현지투자자 A씨)
문재인 정부가 주식 관련 세금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상대적으로 해외주식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주식양도차익은 일종의 자본 소득이니 일정 금액 이상의 차익에 대해서는 반드시 과세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대주주에게 매겨지는 주식양도소득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높인다는 내용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행 세법상 양도소득세(지방소득세 포함)가 과세되는 대주주의 범위는 코스피는 지분율 1% 이상이거나 종목별 보유액이 25억원 이상일 경우, 코스닥은 지분율 2% 이상이거나 종목별 보유액이 20억원 이상이다. 문 대통령 공약과는 별개로 내년부터는 개정된 세법에 따라 보유액 기준이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15억원 이상으로 낮아진다.
일단 현재 흐름은 대주주를 타깃으로 하고 있지만 증권업계에서는 소액주주까지 과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해외주식투자 전문 커뮤니티인 유에스스탁의 장우석 본부장이 5월 3일 뉴욕의 나스닥증권거래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식양도차익 과세는 주식의 매매차익에 대하여 세금을 징수하는 것인데, 현재는 증시 부양과 투자 활성화를 위해 대주주 외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반소득세와의 조세형평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돼 온데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민주화의 핵심과제로 공평과세를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 수익 이상을 낼 경우, 소액주주라 할지라도 과세 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이 경우, 근로·사업소득 등과 합산해 종합과세하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CNB에 “주식의 양도차익 비과세는 부동산 양도차익 과세, 배당·이자 등 금융소득의 과세와 형평이 맞지 않다는 문제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소액주주에게까지 과세될 경우, 이는 세금만큼 기대 수익률을 낮추는 것으로 투자심리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중론이다. 대주주들이 과세요건을 피하기 위해 매도에 나서게 되면 증시 하락과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현재 부과되고 있는 증권거래세와의 ‘이중과세’ 논란 또한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현행 증권거래세는 0.3%로 선진국에서는 이미 폐지했으며 아시아 신흥국 평균인 0.2%보다도 높다.
증시환경 급변…증권사들 ‘발등에 불’
이런 상황이다 보니 증권업계는 해외주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부 대형 증권사들은 외국의 유명 주식투자자 및 현지 금융사와 접촉해 시장을 개척하는 중이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미래에셋대우와 이베스트투자증권이다.
미래에셋대우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강조해온 해외사업 확대 차원에서 미국주식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지 영업지점을 통해 투자정보 수집과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다.
▲미국의 대형 금융회사인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미국 뉴욕시 지점. 사진 = 유에스스탁 장우석 본부장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올해 초부터 네이버 TV캐스트·오디오클립을 통해 해외주식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 관계자는 CNB에 “미국주식에 투자하는 분들이 작년에 비해 30%정도 늘었다”며 “특히 새정부 들어 오디오클럽 구독자수가 2배로 급증하는 등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주식 투자하기’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 중인 재미 금융투자자 임성준(46)씨는 CNB에 “한국 회원(주식투자자)들의 카페 가입이 최근 들어 부쩍 증가했고, 미국 내 4차산업 관련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최근 한국의 한 대형증권사로부터 미국주식에 대해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해당 증권사의 해외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현지 증시 정보를 국내에 전해주고 있다.
지난달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대주주 워런버핏) 주주총회에 대한 관심이 과거에 비해 커진 점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유에스스탁의 장우석 본부장은 “미국주식에 대한 투자 열기를 확인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훨훨 나는 美증시 외면했던 이유
그동안 증권사들은 거래 과정이 복잡하고, 증권사 수익이 낮다는 이유로 고객들에게 외국주식 투자를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아왔다.
주요 증권사별 해외주식 수수료(올해 1월 기준)를 보면, 10대 증권사 중 한국투자증권이 거래금액의 0.2%로 가장 낮고, 하나금융투자, 키움증권,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대신증권, KB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은 0.25%다. 이는 국내주식의 매매수수료가 건당 0.01~0.03%인 점에 비하면 평균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얼핏 보면 증권사 입장에서는 국내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해외주식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매매 횟수가 국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낮기 때문에 증권사들은 개인들의 해외주식투자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은 소위 ‘단타’ 위주 거래를 선호하고 있다. 한 종목을 오래 갖고 있지 못하고 사고팔기를 자주하는 패턴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매수·매도 할 때마다 수수료가 붙으므로 수익이 쏠쏠하다.
▲5월 5~7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이하 버크셔) 주주총회. 사진제공 = 재미 블로거 임성준
반면 외국주식은 자주 매매 하기가 힘들다. 해외주식을 거래하려면 외환통장을 개설해서 한화(韓貨)를 달러로 바꿔서 입금해 둬야 한다. 이 통장을 증권거래계좌로 등록해 외국의 상장종목을 사고파는 시스템이다.
거래수수료가 한국 보다 10배 이상 높은데다 자주 매매하면 그만큼 환전수수료 부담이 커지게 된다. 여기에다 해당국가의 세법에 따라 세금이 부과된다. 미국 주식의 경우 연간 차익의 250만원까지는 비과세, 이를 초과한 수익의 22%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처럼 환전수수료와 높은 거래수수료, 세금 등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단타 거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번 사면 쭉 묻어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10년간 미국의 다우지수가 연평균 7~10%의 상승을 보였다는 점도 장기투자의 이유다.
이처럼 매매 횟수가 국내 보다 훨씬 미미하다는 점에서 증권사들은 해외주식 투자를 외면해온 것이다.
‘로빈후드’ 상륙에 무방비
한편 국내증권사들의 태도가 급변한 데는 국내주식 과세문제 뿐 아니라 해외 벤처형 증권사들의 공격적인 마케팅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수수료 없는 주식거래 애플리케이션 ‘로빈후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로빈후드는 2014년 12월 출시 이후 200만 명의 이용자를 끌어 모았고, 앱을 통해 실행된 주식거래 규모는 재작년 20억 달러에서 작년 300억 달러로 폭증했다. 로빈후드는 무료로 주식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고객의 현금 잔고에서 나오는 이자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
만약 이런 신생벤처들이 국내에 상륙하게 된다면 국내증권사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임성준 씨는 “높은 수수료와 환전 문제로 미국주식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수수료가 없는 미국증권사가 한국에서 영업하게 되면, 한국증권사들은 양도차익 과세라는 대형악재와 함께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처럼 주식환경이 나라 안팎으로 크게 변하면서 증권사들은 해외주식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이런 변화는 문재인 정부의 ‘공평과세’가 현실화 되면 더 빨라질 전망이다.
도기천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