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면세점업계, ‘루이비통 전시회’에 긴장하는 이유
명품유치에 사활…민감한 시기에 “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루이비통’ 전시회 입구. 사진 = 김유림 기자
(CNB저널 = 김유림 기자 ) 루이비통, 여성이라면 생애 첫 명품 가방으로 망설이지 않고 고를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명품 브랜드다. 국내에서는 길을 걷다 보면 3초마다 발견할 수 있다고 해서 ‘3초백’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이런 루이비통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이를 바라보는 면세점업계의 심경은 만감이 교차한다. 명품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명품의 대명사격인 루이비통이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했기 때문. CNB가 전시회 내용과 이면에 담긴 면세업계 속사정을 취재했다.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루이비통’을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회에서는 약1000여 점에 달하는 제품들이 소개됐다.
전시회의 시작과 끝은 ‘여행’이다. 루이비통은 어머니와 와이프, 여자친구까지 모든 여성들이 갖고 싶어하는 명품백의 랜드마크 같은 존재이지만, 사실 출발은 손가방이 아니라 여행의 필수품인 ‘트렁크’다.
1821년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루이비통 말레티에(Louis Vuitton Malletier)는 14살 때 아버지의 재혼을 계기로 무작정 파리로 상경하게 된다.
그는 파리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가방 제조 전문가 무슈 마레샬(Monsieur Marechal) 밑에서 일을 배우며 경력을 쌓았고, 섬세하게 짐을 꾸리는 기술로 귀족사회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실제로 당시 프랑스 귀족 여성들은 자신의 신분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하루에 수십여점의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에, 구김이 가지 않게 짐을 싸는 손재주가 매우 중요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유제니 황후의 전담 패커(Packer, 짐 꾸리는 사람)로 고용되고, 궁중에서 가방을 만드는 도제로 성장한다. 그의 재능을 높이 산 황후의 후원으로 1854년 마침내 뤼뇌브 데 까푸신느 4번가에 163년 역사를 잇는 루이비통의 첫 매장이 열게 된다.
▲1854년 루이비통이 처음으로 만든 회색 트렁크 ‘트리아농’. 사진 = 김유림 기자
그해 그가 가장 먼저 만든 가방은 직사각형의 회색 트렁크 ‘트리아농’이다. 뚜껑이 둥근 모양의 트렁크만 있던 시절 루이비통은 편편한 것으로 개조하고, 곰팡이가 생기고 갈라지기 쉬운 가죽에서 은회색 방수면 캔버스를 씌운 가벼운 재질의 포플러 목재로 바꿨다.
사실 지금 보면 일반 박스 모양과 다를 바 없지만, 당시만 해도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기존의 반원형 트렁크는 기차와 마차를 타고 여행할 때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정리하기가 불편했지만, 트리아농은 차곡차곡 쌓아둘 수 있을뿐 아니라 내부는 칸막이로 공간이 나눠져 소지품을 수납하기도 편리했다.
그는 옷뿐만 아니라 우편물, 서재, 모자, 신발, 액세서리 등 여행 중 손상되기 쉬운 모든 물건을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는 다양한 트렁크를 만들어내며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의 실력은 자동차가 생활 속으로 들어오면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1886년 독일의 칼 벤츠가 자동차를 발명하면서 자동차 여행 시대가 열렸다. 루이비통은 1897년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개최된 모터쇼에서 카(car)전용 트렁크를 소개한 데 이어 1905년 스페어 타이어 가운데 끼워 둘 수 있는 드라이버백(Driver Bag)을 내놓았다.
▲장갑과 모자 전용 트렁크. 사진 = 김유림 기자
▲자동차 여행 전용 트렁크. 사진 = 김유림 기자
20세기 초반 전 세계적으로 크루즈 여행 열풍이 불자 객실 침대 밑에 넣을 수 있는 캐빈트렁크(Cabin Trunk)와 캐빈트렁크의 세컨드백 스티머백(Steamer Bag)을 제작했다.
특히 스티머백은 루이비통의 첫 소프트 백이며, 장시간의 증기선 여행 중 늘어나는 빨랫감을 담기 위한 가방이었다. 트렁크 안에 접어서 보관할 수 있게 디자인됐고, 가벼우면서도 실용성을 갖춘 적당한 크기로 현대 여행 백팩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912년 처녀 출항한 호화선박 타이타닉 호에 승선했던 상류층 인사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제품이었다.
본격적인 핸드백의 시대는 열기구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열렸다. 선박 여행과 달리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탑승하는 열기구에서는 소형 백이 필요했다. 가볍고 물에 뜨는 에어로 트렁크(Aero Trunk)와 각종 소프트백(Soft Bag)이 제작됐다. 뒤이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소프트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 트렁크. 사진 = 김유림 기자
키폴백(Keepall Bag), 스피디백(Speedy Bag), 노에백(Noe Bag), 알마백(Alma Bag), 락킷백(Lockit Bag), 파피용백(Pappillon bag), 소뮈르백(Saumur Bag), 네버풀백(Neverfull Bag. 2007), 티볼리백(Tivoli Bag) 등은 시대를 초월해 전 세계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루이비통과 대한제국, 117년 만에 다시 만나
이 곳에 전시된 1000여종의 가방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 트렁크다. 루이비통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스페셜 오더 트렁크는 세계 최고의 피겨스케이터인 동시에 유니세프의 국제 친선대사로 활발하게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 선수만을 위해 2012년 제작됐다.
스케이트에 맞는 사이즈와 기능을 고려해 약 9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파리 근교의 루이비통 아니에르 공방에서 단 한 명의 장인의 꼼꼼한 수작업을 통해 탄생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이다.
이밖에 주최국인 한국을 위해 루이비통이 특별히 마련한 ‘예술적 영감의 나라, 한국’ 공간은 전시회의 백미를 장식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한국과 나란히 참여했던 인연을 재조명하는 의미에서 당시 대한제국이 출품했던 한국 전통 악기가 전시됐다.
117년 전 장인들의 정교한 기술로 탄생한 대금, 장구, 가야금 등이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이 악기들에는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가 임을 세계에 알리려던 고종의 애절한 마음이 스며있다. 2015-2016년 한불 상호 교류의 해를 계기로 우리 정부가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인수해 이번에 일반에 공개됐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대한제국이 출품했던 물품. 사진 = 김유림 기자
▲요트 전용 트렁크와 스티머백. 사진 = 김유림 기자
전시회의 마지막 순서는 루이비통의 장인과 디자이너들이 직접 ‘플라워 트렁크’를 만드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루이비통 측은 “기계가 발달한 오늘날 수작업은 이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했던 모든 생각이 뒤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자신하고 있다.
아르노 회장 움직임에 ‘긴장’
한편 이번 전시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면세점업계의 경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관세청은 2015년에만 한화갤러리아, HDC신라, 두산, 신세계, SM(하나투어) 등 서울시내 신규사업자 5곳을 선정했다. 작년에는 현대백화점그룹, 신세계면세점(센트럴시티),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등 4곳을 추가로 허가해줬다. 현재 서울에서만 11개의 면세점이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올해 안에 2곳이 새로 문을 연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명품’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루이비통은 샤넬, 에르메스와 함께 ‘면세점의 꽃’으로 불린다. 유치 여부에 따라 매출뿐 아니라 영향력도 달라지기 때문에 면세점 기업들은 이들 브랜드를 입점 시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국내에는 현재 롯데와 신라에만 들어서있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총괄회장이 전시회 참석차 1박 2일 일정으로 1년 만에 한국을 찾은 것도 이런 열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LVMH는 대표 브랜드인 루이비통 외에도 디올, 펜디, 지방시, 셀린느, 겔랑 등 유명 명품 브랜드를 대거 보유하고 있다.
아르노 회장은 작년 방한했을 때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유경 신세계그룹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김동선 한화건설 팀장 겸 한화그룹 면세TF 차장 등 면세점 사업을 운영하는 주요 기업의 오너들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도 일부 면세업계 수장들과 만나 업계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전시는 8월 27일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루이비통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사전 예약이 가능하며 자유롭게 관람하는 ‘일반 예약’과 전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도슨트 투어 예약’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현장 예약은 관람시간 두 시간 전까지 신청하면 된다.
김유림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