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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슈퍼주총’ 잡는다는 ‘전자투표’의 두 얼굴

“주주권 강화” vs “오히려 의결권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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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0호 이성호 기자⁄ 2017.06.19 10:04:09

▲국회에는 전자투표제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계류중이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이성호 기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키워드는 ‘재벌 개혁’이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가 ‘정경유착’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현재의 재벌을 적폐·구태세력으로 규정해 개혁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재벌의 불법경영승계 및 부당특혜 근절, 문어발식 확장 방지, 전면적인 지배구조 혁신, 주주권(투명성) 강화 등을 공약했다. 

전자투표제는 재벌 개혁 공약들 중 주주권 강화와 직결된 사안이다. 전자투표는 주총장에 가지 않고 컴퓨터·스마트폰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온라인 투표다. 2010년 5월에 시행됐지만 도입 여부를 기업자율에 맡겨둔 탓에 아직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 

왜 필요한가?

전자투표제가 필요한 이유는 기업들이 특정일에 집중적으로 정기주주총회를 여는 ‘슈퍼주총데이’가 매년 되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이하 예탁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결산 상장법인 2078개사 중 절반에 가까운 회사들이 지난 3월 24일 일제히 주총을 개최했다.

이날 ▲우리은행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삼양홀딩스 ▲유한양행 ▲CJ대한통운 ▲대림산업 ▲일동홀딩스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기아자동차 ▲한화손해보험 ▲SK하이닉스 ▲LS네트웍스 ▲한화 ▲CJ ▲SK네트웍스 ▲한진 ▲코오롱글로벌 ▲대한항공 ▲남양유업 ▲삼성전자 ▲녹십자 ▲GS건설 ▲호텔신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현대상선 ▲삼성물산(구 제일모직) ▲KT ▲SK텔레콤 ▲롯데하이마트 ▲해태제과식품 ▲KB금융지주 ▲메리츠금융지주 등 924개사의 주총이 쏠렸다. 

작년에도 마찬가지였다. 12월 결산법인 1965개사 중 41.4%인 814개사가 3월 25일, 16.7%(329개사)가 같은 달 18일, 13.7%(269개사)가 30일에 주총을 연 바 있다.

▲전자투표 행사율. 자료 = 예탁원

이유는 이렇다. 12월 말 사업연도 종료 이후에 재무제표 작성, 이사회 승인, 감사보고서 작성, 회계법인의 외부감사 절차 등을 거치는 데 걸리는 시간 및 자본시장법 등에 따라 사업보고서를 회계연도 종료 후 90일 이내에 금융위원회·거래소에 제출해야 한다는 구실로 3월에 집중적으로 그것도 특정한 날에 주총을 열고 있는 것.

하지만 문제는 도를 넘은 이 같은 행태에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이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다는 점.

한날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주주들이 각사의 주총에 참석이 어려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주주감시 기능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주총에서는 오너일가와 친기업 주주들만의 잔치가 돼 사측의 안건이 속전속결로 무사통과되고 있는 현실이다.

국회통과는?

이처럼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이 제대로 기업경영에 반영되지 않기에 전자투표제 활성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2010년 도입된 이 제도는 강제성이 없고 기업의 선택사항이라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올해 3월까지 전자투표 행사율은 주식 수 기준 2.1%, 주주 수 기준 0.2%에 불과한 실정이다. 2014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섀도우보팅(의결권 대리행사제도)을 이용하려는 기업은 전자투표를 채택해야 함에 따라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형국인 것.

섀도우보팅은 주총의 정족수를 확보키 위해 형식상 주주인 예탁원에 의해 주총의 의사정족수를 충족시켜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주총에서 안건에 대해 9대1로 찬성과 반대가 나왔다면 출석치 않은 주주들에 대해서도 같은 비율로 표결에 참여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주총을 위한 정족수를 채우고 대주주에 유리한 안건을 통과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일어 2015년 폐지될 운명을 맞기도 했지만 2017년 12월 31일까지 유예된 상태이기 때문에 2018년부터는 전자투표가 더욱 유명무실해 질 판이다. 

슈퍼주총데이의 폐해를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주총 개최일이 분산돼야 하지만 법무부 등에 따르면 세계 어느 나라도 기업의 자율사항이지 법을 통해 강제하는 사례는 없다. 

이에 국회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주총일 집중현상에 직접 메스를 가하지 못 함에 따른 대안이라고 볼 수 있는 데 명맥만 살아있는 전자투표제에 강한 힘을 실어주려는 움직임이다. 즉 강제화를 담은 여러 건의 상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는 것.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급물살을 타고 처리될 예정이었지만 여야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상법 개정안은 계류 중인 상태다. 하지만 새정부에서 공약으로 내걸고 있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어 향후 법안처리과정이 주시되고 있다.

기업들 “기술적 한계 우려”

한편,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 2월 공동성명을 통해 전자투표제 의무화가 주주권 행사 활성화 보다는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표적인 부담이 전자투표 수수료다. 현재 상장사들은 전자투표·전자위임장을 사용할 때마다 자본금과 주주 수에 따라 수수료를 한국예탁결제원(예탁원)에 차등 지급하고 있다. 그 규모는 최저 50만원부터 최대 500만원에 이른다. 예탁원에 따르면 올 3월까지 기업들의 전자투표 수수료는 7억100만원, 전자위임장 수수료는 1억3600만원에 이른다. 

재계는 전자투표가 전면 의무화될 경우, 1개 회사당 소요되는 금액을 평균 400만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상장회사 전체로 보면 75억2000만원의 추가 비용부담이 발생한다.

특히 기업에 대해 주주들이 주주권 행사에 무관심한 현실을 감안해야 하고 섀도우보팅 폐지 이후에는 상장회사의 주총 운영이 곤란해짐에 따라 주총결의 방법 완화 논의도 함께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사법(私法)의 영역인 상법에서 주총의 투표방법까지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 국민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으며 전자투표 해킹, 투표과정 중 에러발생, 문서 위조 및 결과 조작 등의 위험성이 있어 주총의 법적 유효성 등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아울러 전자투표를 할 수 없는 주주는 의결권 행사가 불가능해 질 수 있어 그렇지 않은 주주에 비해 역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따르면, 주총에 출석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의사진행이나 토의결과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 채 표결할 가능성이 있다. 전자투표는 온라인상 질의·응답·토론 등이 허용되지 않고 단순히 주주의 의사결정을 찬성, 반대, 기권 등의 형식으로 표시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안에 대한 수정제안 등이 주총에서 발생한 경우 사전에 이뤄진 전자투표는 이에 대응할 수 없어 수정동의에서는 기권으로 취급되는 등 기술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점도 풀어야할 숙제다.

황현영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CNB에 “슈퍼주총데이 탓에 의결권을 행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주주들에게 온라인상에서 공인인증서를 통해 투표를 하는 방식인 전자투표는 필수적인 장치”라며 “여야 간 큰 틀에서 합의를 한 바도 있어 (법안 통과를) 지켜볼 일이다”라고 말했다.

황 조사관은 아울러 “기업들에게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된다면 전자투표제 의무화를 전제로 (전자투표) 수수료를 인하하는 방안도 같이 논의해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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