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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맨손 조선男-일본女가 日정부 놀렸듯, 40억 ‘박열’이 200억 ‘리얼’ 누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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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2호 윤지원⁄ 2017.06.30 17:14:35

▲영화 '박열' 포스터. (사진 =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박열'이 6월 28일 개봉했다. 순제작비 26억이라는 적은 돈으로 만들어진 작은 영화지만,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이 감독의 저력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박열'은 1920년대 도쿄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 저항했던 조선인 청년 박열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사도'와 '동주'에 이어 역사 속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잇달아 찍고 있는 이 감독이 박열을 통해 2017년 대한민국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다.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황궁 앞으로 몰려갔다. '신이 천황을 보우할진대 천황의 백성에게 이런 재앙이 일어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으니 해답을 달라'는 목소리가 컸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발달한 문명국임을 자부하고 있었으나, 천황을 신격화하며 전 근대성을 강조하는 모순을 안고 있었다. 전 근대적 해답을 원하는 민중에게 일본의 근대적 내각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답을 얻지 못한 민중은 결국 폭동을 일으켜 무능한 내각을 해산시키려고 할 것이다.

일본 내각은 폭동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외부에 공공의 적을 설정했다. 조선인들이 대지진의 혼란을 틈타 우물에 독을 탔다는 괴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이에 분노한 일본 민중은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다. 3일 만에 6천 명이 넘는 무고한 조선인이 희생됐다.

▲일본 내각은 관동 대지진에 이어질 민중의 폭동을 우려해 조선인에 관한 괴소문을 퍼뜨려 대학살 사태를 일으켰다. (사진 = '박열' 보도용 스틸)


예상보다 심각해진 사태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예상되자 내각은 다시금 책임 회피를 위한 꼼수를 떠올렸다. 괴소문의 실체가 불분명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더라도, 조선인이 일본에 피해를 입히려는 정황은 뚜렷했다는 증거를 제시해 비난을 그들에게 돌리자는 작전이었다. 이를 위해 일본인에겐 원수, 조선인에겐 영웅으로 여겨질 인물을 찾아 희생양으로 내세우기로 했다.

마침, 황태자 암살을 목적으로 폭탄을 밀반입하려는 음모에 대한 첩보가 입수된다. 그리고 그 주동자가 재일 조선인 박열(이제훈)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에게 황태자 암살 기도라는 혐의를 씌워 대역죄로 재판에 회부하고자 한다. 조선인 최초로 일본의 대역죄인이 된 박열은 결국 일본의 거대한 과오를 가리기 위한 수단이 된다.

천황 가족에 대한 반역 음모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모든 일본인이 한 마음으로 그를 증오할 것이다. 또한, 3.1운동 직후 격렬한 저항을 이어오던 조선인들은, 박열이 거사에 실패했으며, 일본의 사법부에 의해 사형당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좌절과 패배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작전이었다.

당시 박열은 제 발로 경찰에 잡혀 들어간 상태였다. 동지들은 괴담에 분노한 일본인의 죽창에 맞서 싸울 것을 주장했지만, 박열은 "우리가 싸울 대상은 일본 제국주의지, 일본 민중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죽지 않고 버텨서 더 큰 일을 도모하자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그렇게 살 길을 택하고 보니, 그곳이 죽는 길이었다. 일본 내각의 음모에 의해 대역죄 혐의를 받게 되었고, 그것은 곧 사형감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는 이내 사태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적들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기꺼이 놈들이 원하는 영웅이 되어 주기로 결심한다. 

앞선 장면에서 그는 몸을 내던져 싸우기보다 글을 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고민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일제가 억누르면 자신도 그만큼 갚아주겠다며 주인 다리에 오줌을 갈기는 '개새끼'를 자청하던 그였지만, 자신이 맨 앞에 나서서 영웅이 되는 것에는 신중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그가 감정과 행위보다 사상에 기반한 저항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디테일이다.

이 감독은 이 영화의 기획 의도에서, "기존의 일제강점기 영화들이 독립운동가의 투쟁정신 그리고 그들이 독립운동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 또는, '암살'이나 '밀정' 같이 스펙터클한 액션 속에서 한 개인의 승리감을 보여줬다면 '박열'은 박열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나키스트로서 탈국가적이고 탈민족적인,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의 가치관을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박열이 가졌던 세계관, 사회관, 국가관 등을 현재 시점에 대입해 보려고 했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박열 역의 배우 이제훈(왼쪽)이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 = 박열 보도용 스틸)


쇼의 주인공은 나다

대역죄 재판은 일본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는 대규모 '쇼'였다. 일본 내각이 이 쇼를 기획한 것은, 일본 민중의 분노를 삭이고 조선인 대학살에 관한 진실을 덮을 다른 미끼가 필요해서였다. 

박열은 이런 속셈을 눈치 채고, 쇼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게 하기로 마음먹는다. 말 안 듣는 조선인 중 가장 말 안 듣는 조선인, 역사상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이 되어 상대(일본 정부)의 심리를 무너뜨리고, 근대적 사법 체계의 허점을 이용해 그들의 음모를 드러내고, 일본 황실과 내각의 모순을 꼬집고, 조선인 대학살의 참상을 고발하는 무대로 삼기로 한다. 박열이 펼친 희대의 법정 항일 투쟁은 이렇게 시작된다.

박열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대역죄를 시인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그는 폭탄을 던졌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폭탄을 손에 쥐어본 적도 없다. 대역죄 같은 큰 죄가 성립되기에는 박열의 행위가 너무나 미미하다. 그는 그저 말만 앞선 이상주의자로 판단되어 석방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폭탄의 존재나 황태자 시해 계획 등을 지나치게 상세히 자백한다. 이는 곧 사형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 목숨을 내놓겠다는 의미다.

목숨을 각오하는 것, 그런 각오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엄청난 신념을 필요로 한다. 박열은 겨우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그가 이처럼 투철한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된 데는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의 힘이 컸다.

▲배우 최희서가 연기한 가네코 후미코가 감옥에서 쓴 자신의 자서전 원고를 인용해 진술하고 있다. (사진 = '박열' 보도용 스틸)


무국적의 인간, 가네코 후미코

재판 쇼의 주인공은 박열 혼자가 아니다. 대역죄의 피고인은 박열과,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두 사람이었다. 영화의 주인공 또한 이 두 사람이다.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투쟁을 통해 애국심을 자극하는 여느 일제강점기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루는 멜로드라마이기도 하다.

가네코는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고 나서 박열에게 빠져들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동거하자는 과감한 제안을 여자가 먼저 하면서 동지가 되기를 자청했다. 가네코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였고, 지배 민족인 일본인임에도 조선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천대 받는 성장기를 보냈다. 그녀는 일본과 조선 어느 쪽에도 소속감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인간임에도 인간임을 자신할 수 없었으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으며 살아왔다.

가네코가 감명을 받은 박열의 시는, 스스로를 기꺼이 개새끼라고 칭하며, 자신에게 오줌을 뿌리는 인간이 있다면 자신도 그의 다리에 오줌을 싸겠다고 선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당한 권력을 일체 부정한다는 아나키스트의 신념이기도 하고, 개새끼건 인간이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의지와 행동이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소속감 결핍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 온 일본인 여자 가네코는, 박열을 동지이자 영혼의 동반자로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가 되었다.

이렇게 뜻을 함께한 박열과 가네코는 함께 대역죄를 뒤집어썼다. 둘이 서로의 신념을 흔들리지 않게 다잡아주다 보니 죽음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들은 매 순간 당당하고 꿋꿋했다. 사법부를 구슬러 둘이 함께 재판부의 한 사무실에서 찍은 기념사진은 도발적이고 유쾌하다. 그들은 '기념사진'은 바르게 정면으로 서서 딱딱하게 찍어야 한다는 통념마저도 불합리한 권위로 보고 이를 부정한 진정한 아나키스트들이었다.

▲실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구치소에서 찍은 기념사진. (사진 =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그런 그들이 판사의 권위를 쉽게 인정해줄 리 없었다. 첫 공판 날, 일본인 가네코는 치마 저고리를 입고, 박열은 조선의 관복을 입었다. 그들은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로 재판에 응했다. 법정은 피고에게 죄를 묻는 자리가 아닌, 일본과 조선이 국가 대 국가로 만나는 외교 석상으로 변했다. 또한, 사법부는 법적으로 피고의 진술을 멈추게 할 수 없기에 둘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했다. 법정은 매일 둘의 우렁찬 목소리로 가득 찬 연설 현장이기도 했다.

둘은 매일같이 일본 제국주의의 오만함과 위선을 낱낱이 지적하고, 조선인 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비록 황태자를 날려버릴 다이너마이트는 구하지 못했지만, 그들 스스로가 폭탄이 되어 일본 권력의 심장을 저격했다. 끝내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두 아나키스트는 그 선고를 환영하며 법정에서 당당하게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일본은 다시금 그들을 좌절시켰다. 일본 언론은 법정에서 벌어진 일을 왜곡했고, 천황은 황태자 암살 시도를 자백한 대역죄인의 형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해주었다. 자신들이 부정한 천황의 권력이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아나키스트로서 큰 모독이었다.

▲자발적으로 감옥에 들어간 박열(맨앞)과 '불령사' 동지들. (사진 = '박열' 보도용 스틸)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는 영화

일본 내각을 대표하는 내무대신 미즈노 젠타로(김인우)는 더욱 좌절스러운 얘기를 전한다. 그는 박열이 감옥에서 무기징역을 사는 동안 그의 투쟁과 그의 존재 자체가 민중의 머릿속에서 망각되도록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대중의 속성은 잊어버리는 것에 있다며, 그것이 자신이 가진 권력을 유지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인간이다.

앞서 관동대지진 직후의 폭동 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조선인에 관한 괴소문을 퍼뜨린 것도 미즈노였다. 그리고 그로 인한 대학살의 참극을 감추기 위해 박열을 희생양으로 삼게 한 것도 미즈노였다. 그는 정치적 꼼수의 대가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가 희생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미즈노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꼼수 중 가장 분노가 치미는 것은, 박열이 조선인 대학살의 참상을 고발하고 이를 외국 언론이 알게 되었을 때다. 대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애초에 학살을 유도하고 은폐를 주도했던 미즈노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진상 규명 위원회를 조직하자며 모순된 주장을 펼친다. 다른 대신이 의아해하자 미즈노가 설명하는 내용이 압권이다.

▲'박열'의 배경은 1920년대 일본이지만, 그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사진 = '박열' 보도용 스틸)


위원회를 만들어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고, 그 권한과 기간을 한정해서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대한 반발이 또 생기지 않겠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미즈노는 대중이 반발하기는 커녕, "이제 지겨우니 그만하자"고 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 장면에서 이준익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어느 정도 읽힌다. 한국 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한 프로듀서는 미즈노가 예견한 내용이 세월호 진상 규명 요구에 대한 지난 정부의 꼼수를 떠올리게 한다며 치를 떨었다. 또한, 이준익 감독도 포함되어 있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비롯해 권력을 부당하게 휘둘렀던 대한민국 18대 대통령과 그가 꾸린 정부, 그들의 정치적 뿌리가 닿아 있는 과거 권력자들이 저질러 온 과오들이 환기된다고 말했다.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그리고 그 여파에 대역죄인으로 몰려 희생양이 되었던 박열과 가네코, 그리고 그들의 법정 투쟁의 진실을 왜곡하고 감추는 어용 언론 등등, 90년 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현재를 반영한다는 평가다.

▲영화 '박열' 포스터. (사진 =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일부러 저예산 영화, 대작들과 맞서 1위

‘박열’이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했다. 영화 티켓의 실시간 발권 데이터를 집계하는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박열은 6월 28일에 데뷔해 29일까지 누적관객 수 36만 2430명을 동원, 이틀 연속 흥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위는 김수현 주연의 한국영화 ‘리얼’, 3위는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가 각각 차지하고 있다.


‘박열’은 30일 주말 예매율 순위에서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함께 개봉한 라이벌 한국 영화인 ‘리얼’과 ‘옥자’가 각각 다른 사정으로 주춤거리고 있어서 ‘박열’의 박스오피스 독주는 적어도 1주일 간 계속될 전망이다.


‘박열’과 함께 28일 개봉한 ‘리얼’은 "역대급 망작"이라는 혹평 속에 하루 만에 관객 수가 60% 이상 급감했다. 애초에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박열’의 스크린 수(917개)보다 53개 많은 970개 스크린을 장악하고 시작했지만 재미없다는 입소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중국 동시개봉 무산, 감독 교체, 불법 유출 영상 등의 거듭된 악재도 문제였지만 ‘리얼’의 관객 수 급감은 영화 자체의 낮은 완성도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일관된 분석이다. 결국 28일~29일 이틀 동안 ‘박열’과 ‘리얼’의 누적 매출액 격차는 10억 원이 넘게 났다.


한편,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와 함께 올 여름 최대 기대작으로 꼽혔던 대작이다. ‘옥자’는 29일에 개봉해 첫날 관객 2만 3106명을 동원, 박스오피스 4위에 머물렀다. 투자사인 넷플릭스가 ‘옥자’의 극장-온라인 동시개봉을 고집하자, 이는 시장을 교란한다며 반대해온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의 멀티플렉스 기업들이 끝내 ‘옥자’를 보이콧한 탓이다. 이 3개 회사는 대한민국 전체 스크린의 90% 정도를 보유하고 있기에 ‘옥자’는 결국 총 79개 극장, 94개 스크린이라는 적은 규모로 개봉했다. 다만 이는 전 세계 1억 명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온라인 스트리밍 상영 매출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어서 박스오피스 성적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두 영화의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해도 ‘박열’의 흥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열’의 총제작비는 불과 40억 원(순제작비 26억 원) 규모에 그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28~29일 이틀 동안 ‘박열’이 벌어들인 돈은 23억 7024만 2000원이다. 이변이 없는 한 늦어도 7월 1일(토) 중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 ‘동주’의 제작비는 이보다 훨씬 적은 5억 원이었다. 영화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박열’ 역시 처음에는 5억 원의 제작비가 책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 ‘동주’와 달리 ‘박열’은 배경의 대부분이 도쿄였고, 3.1운동,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등 언급되는 사건들이 모두 대규모 사건들이었기 때문에 제작비 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이준익 감독은 1천만 관객 영화인 '왕의 남자'를 비롯 '황산벌', '라디오스타', '사도' 등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해 왔다. 그가 만드는 영화가 투자에 난항을 겪을 일은 드물다. 또한, '박열'의 제작사인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와 배급사인 메가박스 플러스엠 등은 모두 중앙일보 계열의 제이콘텐트리의 자회사다. '동주' 역시 메가박스 플러스엠이 투자·배급했다. 메이저 영화사들에 비하면 중소 배급사로 통하지만 이준익 감독의 최근작 두 편이 돈이 부족해서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저예산은 의도된 것이다.


이 감독은 ‘박열’ 개봉 전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저예산으로 찍는 이유를 밝혔다. 그는 '동주'와 '박열'이 실존 인물을 다루는 영화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실존 인물을 그릴 때는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고증해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그들의 진심을 전달하는 데 화려한 볼거리는 방해된다고 생각했기에 최소의 조건으로 찍어야만 그들이 가졌던 진정성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얼’이 200억 원 규모, ‘옥자’가 600억 원 규모의 총제작비를 자랑하는 대작들이다. 곧 개봉하는 기대작 ‘군함도’는 250억, ‘택시운전사’는 150억 정도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한국 상업영화의 제작비 규모는 100억 원대가 표준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50억 원 이하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는 대작이 아닌 중‧저예산 영화로 분류되어 완성도에 관한 신뢰감을 주지 못하며, 따라서 배급할 때 충분한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1~2억 원이 없어 영화를 완성시키지 못하는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는 아예 별도의 시장으로 취급된다. 


영화의 배급과 상영을 수직 계열화 한 일부 메이저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고, 매주 7~8편의 신작이 개봉되는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개봉 첫 주 성적은 영화와 그 제작사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따라서 모든 영화는 개봉 첫 주에 최대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기 위해 영화의 본질보다 마케팅에 더욱 목을 매는 것이 한국 영화의 현실이다. 이준익 감독과 ‘박열’은 이런 기형적인 상업영화 시장에서도 본질과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박열
"나는 조선의 개새끼로소이다."

감독: 이준익
제작: 김성철
각본: 황성구
출연: 이제훈, 최희서, 김인우, 민진웅, 권율, 야마노우치 타스쿠, 타케다 히로미츠

제작사: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배급사: 메가박스 플러스엠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9분
개봉일: 2017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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