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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작품 속 이야기] ‘배우려’ 미술작품을 보는 당신은 옛날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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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4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7.07.17 10:05:47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요즘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2017)’이 인기다. ‘알쓸신잡’은 5명의 출연진이 국내 여행을 하면서 유적지와 박물관, 공원, 동물원, 맛집 등을 소개하고 그와 관련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다양한 지식과 의견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출연진들이 풀어놓는 이야기이다. 프로그램 개요에서 그들을 잡학박사라 소개하고 있듯이 역사와 정치, 경제, 사회, 예술과 대중문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들의 대화는 끝날 줄 모른다. 그 중에는 진지한 고민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들이 꽤 많다. 부여, 공주, 세종을 방문했던 6회 방송에서 소설가 김영하가 했던, “문학은 자기만의 답을 찾기 위해 보는 것이지 작가가 숨겨놓은 주제를 찾는 보물찾기가 아니다”, “문학은 독자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도록, 그 감정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 자기감정을 발견하고 타인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학 작품은 우리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기 위해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라는 이야기 역시 그러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주어에 문학 대신 미술을 넣어보았다. 

하나의 그림이 하나의 정해진 메시지를 주던 고전시대

‘요즘 미술 칼럼’에서 늘 이야기하듯 미술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미술에 한 두 개의 정답은 불가능하며 관점에 따라 셀 수 없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관객들은 작품을 마주하고 정답을 원한다. 명확한 답을 확인해야 작품을 잘 감상하고 지식을 쌓았다 생각하고 만족하기도 한다. 물론 명확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품들도 많다. 서양의 전통적인 미술 대부분은 그리스 신화, 기독교 교리, 역사적 사실들을 담아냈다. 보편적인 미를 담아내려 했다. 당연히 지켜야 할 규칙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을 볼 때에도 하나의 정답만을 전달받고 감상을 끝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이야기라 해도 그것이 제작된 시대의 사람들과 오늘날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의미와 감성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품이라 해도 매번 똑같이 획일적으로 읽혀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추상 미술은 어떨까? 서양 모더니즘 시기의 추상 미술은 미술의 순수성과 독립성을 목표로 했기에 작품 속 조형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구성과 같은 형식 실험에 집중했다. 또한 연상 작용이 최대한 안 일어나는 추상으로 나갔다. 연상 작용이 일어나면 시각 예술인 미술에 문학적 성격이 담기게 될 뿐 아니라, 예술과 일상의 구별이 모호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추상 미술은 오직 작품의 시각적인 부분에만 집중해서 감상해야 될까? 추상 미술을 선보이는 작가들은 모두 이러한 태도를 가질까? 당연히 아니다. 설령 작가가 시각적 경험에만 집중해서 작업을 완성했다 해도 관객이 작품을 보며 문학적인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무조건 잘못된 감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환기미술관 특별전: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2016년 3월 25일~8월 14일)’ 전시장 전경, 사진제공 = 환기재단 · 환기미술관

또한 결과물이 닮아 보여도 작가에 따라, 시대와 지역에 따라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르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960-70년대의 추상 미술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작가들은 자연과의 합일, 동양적 정신, 수양, 구도, 명상, 정신을 이야기했다. 한국의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김환기의 경우에도 색채, 선, 형태 등이 화면에서 창조하는 시각적인 형식 실험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김환기는 작품을 통해 문학이나 음악이 주는 것과 같은 감정적이고 내면적인 울림을 끌어내고자 했다. 그래서일까, 특별한 설명 없이도 관객들은 그의 작품에서 하늘과 바다, 우주, 편지, 시적 정취, 그리움과 향수 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사실적인 회화보다도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게 된다. 물론 누군가는 김환기가 자주 사용했던 푸른색이나 점 자체에 집중해서 감상하기도 할 것이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더라도 당신 자신만의 상상을 계속해야 

지금까지의 칼럼을 읽다가 ‘미술을 다루는 강의나 책에서는 구체적인 해설이나 정보를 전달하며, 미술관에서는 도슨트와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는데 결국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정보들은 나만의 관점에서 미술을 감상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지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작가가 언제 태어났고, 어떤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고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학자들은 그의 작업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조금 더 종합적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보를 얻은 다음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감상하고 분석하는 것이 진짜 시작이다. 

미술(예술)은 소통이다. 그것이 철학적인 담론이든, 정치적 메시지이듯, 아니면 개인의 내면에 대한 표현이든 간에 미술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달한다. ‘여행’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읽거나 보았을 때 머릿속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나 단어가 모두 다르듯 작품이 만들어내는 소통은 늘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애초부터 하나의 이야기만을 전달하고, 전달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오늘날 많은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고정된 한두 개의 이야기를 담기를 원하지 않는다. 또한 관객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내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길 자처한다. 실제로 미술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자신의 작업이 지향하는 바, 작업의 과정 등을 설명하는 동시에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일례로 이동기는 인터뷰에서 “아토마우스(Atomaus)가 유동적인 정체성을 갖고 항상 변화하고 있는 캐릭터”라고 설명한다. 또한 “아토마우스의 가슴에 붙어 있는 ‘A’는 아토마우스의 첫 글자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후 아트(art), 아메리카 컬처(America culture), 에이스(ace)라고 해석되었으며, 그 모두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권오상 역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의미가 여백이 있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엉뚱한 것을 보고 본인의 상상을 하거나 아무 생각이 없어지거나 해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작품을 감상할 때에 오디오 가이드,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상상하기를 멈춘다거나 생각하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예술은 그저 정보를 얻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의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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