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끝없는 보험금 이자 전쟁…보험약관 믿지 말라구요?
생보사 “법대로” vs 소비자단체 “약관이 우선”
▲일부 생명보험사의 예치 보험금 이자 미지급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사진은 7월 11일 금융소비자네트워크와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 공동주최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장에서 열린 ‘생보사 예치보험금 이자미지급 소비자분쟁 해결방안’ 세미나 모습. 사진 = 이성호 기자
(CNB저널 = 이성호 기자 ) 일부 생명보험사들이 찾아가지 않고 맡긴 보험금(예치 보험금)의 이자를 제대로 쳐주지 않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로 인해 보험사와 금융소비자 간 숱한 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해결책은 없는 걸까.
#사례1. A생명의 보험을 가입한 B씨는 이후 사고를 당해 장해보험금 수령하게 됐다. 하지만 A생명으로부터 보험금을 당장 찾아가지 않고 예치하면 시중보다 높은 금리로 이자를 계산해준다는 권유를 받고 믿고 맡겼다. 이후 10여년이 흘러 이자만 5000여만원에 달했지만 A생명은 내부 지급 기준(규정)이 바뀌었다며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 2년을 적용, 원금과 2년 치 이자인 1900여만원만 주겠다고 통보했다.
#사례2. C씨는 연금보험에 가입한 아내가 사망함에 따라 유족연금을 매년 10년간 500만원씩 받게 됐다. 이 돈을 수령하지 않고 재예치할 경우 가산이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해당 D보험사에 문의했더니 연복리 8.5%의 이자를 주겠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후 C씨는 유족연금 및 가산이자를 청구했지만 해당 보험사는 2년치 이자만 줄 수 있다고 답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자 50% 수준까지 이자를 쳐줄테니 합의하자고 연락이 왔다.
금융소비자연맹에 접수된 ‘예치 보험금 이자 미지급’과 관련된 민원들이다. 과거 생보사들은 IMF 이후 금리가 크게 오르자 보험금·연금 등 목돈을 예치시켜 금리 수익을 올리고자 했다. 자신들이 예치금을 굴릴 경우 얻는 이자수익이 소비자에게 주는 이자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대 마진’(예금-대출간 발생이익)을 노린 것.
이를 위해 생보사들은 보험금 등을 찾아가지 않고 보험사에 맡겨 두면 예정이율(보험사가 고객에게 보험금·환급금을 지급할 때 적용하는 이율)에 추가로 1% 이자를 더 준다며 적극적으로 보험금을 예치시켰다. 그러다보니 보험금을 수령하지 않고 그대로 예치해두는 소비자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기준금리가 1%대까지 내려가자 보험사 입장에서는 역마진(손실)을 초래하게 됐다. 과거가 금리가 높던 시절 보험금을 맡긴 소비자에게는 최대 연8%대의 이자를 지급해야 할 상황이 되면서 수조원대의 손실을 보게 됐다.
그러자 2015년부터 한화생명, 동양생명, 교보생명 등 일부 생보사들은 소멸시효를 구실로 이자를 안주거나 적게 주는 식으로 지급 규모를 대폭 줄였다. 이에 소비자들은 이에 민원, 소송 등으로 맞섰다.
보험사들이 주장하는 이자 지급 축소의 근거는 상법에 명시된 소멸시효다. 소멸시효는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보험금 미청구)가 일정기간 계속된 경우, 그 권리가 소멸되는 제도다. 보험금의 소멸시효는 3년(2015년 3월 이전은 2년)이다.
이에 따라 생보사들은 2015년 이전의 고금리 시절에 예치된 보험금에 대해 이자를 2년 치만 지급했다. 10년 넘게 보험금을 맡겼더라도 이자는 2년간만 계산해 주겠다는 것. 보험금을 수령하지 않았으므로 소멸시효의 적용을 받는다는 논리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CNB에 “보험금을 찾아가지 않은 경우 소멸시효 2년(2015년 3월 이후는 3년)이 적용돼 이를 경과한 경우 지급할 의무가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고금리 시절에서는 원금 뿐만 아니라 이자까지 지급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저금리 시대를 맞아 높은 이자를 받기 위해 일부러 안 찾아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선의의 계약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저금리 상황에서 보험사들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사 ‘전수조사’ 실시해야
반면 금융소비자단체에서는 보험약관에 ‘지급기일까지의 기간에 대해 보험의 예정이율+1%’를 연단위 복리로 계산한 금액을 더해 드립니다’라고 보험사가 적시한 만큼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에 따라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상법 보다 약관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이에 금융소비자네트워크는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공동으로 지난 11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장에서 ‘생보사 예치보험금 이자미지급 소비자분쟁 해결방안’ 세미나를 열고 대책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응당 시선은 금융감독원에 쏠리고 있다. 합리적인 해결방안의 몫은 금융감독당국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감원에서는 문제가 불거진 지 2년이 넘도록 뚜렷한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CNB에 “확실한 위법사안이라고 판단했을 경우에 조사·검사 등을 실시하고 이후 제재심의를 통해 시정조치를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유권해석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금융당국이 여태까지 수수방관하면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해 소비자 중 누구는 이자를 제대로 받고 누구는 못 받는 등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약관에는 이자를 언제까지 주겠다는 기한을 정해놓지 않았는데 이전부터 있었던 기간만 변경된 소멸시효를 느닷없이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되며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계약자에게는 유리하게, 약관을 작성한 보험사에게 불리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기욱 사무처장은 “일단 보험사 전수조사를 통해 피해규모(금액)가 얼마인지를 파악해야 한다”며 “지금 당장이라도 줄 돈 안주는 악질적 보험사에 메스를 가하고 소비자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성호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