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복마전’ 된 공덕시장 재개발…상인들 피눈물
거대 자본의 그림자…조합 내분에 임차상인들 ‘뒷전’
▲직장인들이 퇴근 후 애환을 달래는 명소로 유명한 공덕시장 내 족발골목. 사진 = 도기천 기자
(CNB저널 = 도기천 기자) 서울 강북의 최고 노른자위 부동산 지역으로 꼽히는 마포구 공덕동의 ‘마포·공덕시장 정비사업’이 시공사가 바뀌고 소송이 난무하는 등 복마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임차 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CNB가 얽히고설킨 재개발의 실체를 8월 21일부터 3일간 단독 취재했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조합(마포공덕시장정비사업조합)에 맞서 상당수 조합원들이 비대위 결성과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절차가 완전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공덕시장에서 2대째 빈대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조합원(대의원) 이순애 씨는 개발사업에 동의했던 것을 무척 후회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마포·공덕시장(이하 공덕시장) 정비사업은 마포구 공덕동 256-5일대 대지면적 8493제곱미터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지하6층~지상18층 2개동 규모의 주상복합시설을 지어 총712실의 오피스텔을 비롯해 쇼핑시설, 먹거리타운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2015년 6월 마포구청으로부터 사업시행 인가를 받아 진행 중이다.
▲재개발이 예정된 마포·공덕시장의 23일 오후 모습. 새로 시공사로 선정된 건설사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 = 도기천 기자
서울의 5대 명물 시장 중 하나로 꼽히는 공덕시장은 1967년 문을 열었다. 주변에 효성그룹, 에쓰오일 본사 등 빌딩들이 즐비해 직장인들이 퇴근 후 애환을 달래는 명소로 유명하다. 종합시장 형태로 출발했지만 족발집 몇 곳이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언제부터인가 족발골목으로 바뀌었다.
공덕시장은 마포시장 건물과 맞닿아 있는데 이를 구분하는 이는 드물다. 사람들은 둘을 합쳐 그냥 공덕시장이라고 부른다. 공덕시장 정비사업은 이 두 개의 재래시장을 없애고 그 위에 거대한 주상복합타운을 짓는 계획이다.
이씨를 비롯한 일부 조합원들은 8월 21일 CNB와 만나 “사업시행이 부당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들에 따르면 문제는 지난해 6월 조합이 조합원(토지소유자)들을 대상으로 분양신청을 받으며 시작됐다.
당시 조합은 조합원들에게 분양신청을 할 때 토지신탁도 동시에 해줄 것을 요구했다. 총회를 열어 분양과 신탁을 동시에 한다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공동사업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과의 원활한 사업진행을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당시 340여명의 조합원(토지공동명의소유자(공유자) 포함) 중 80여명이 이를 거부했다. 토지감정과 수지분석이 제대로 산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토지를 맡길 수는 없었기 때문. 또 관계법령 어디에도 신탁이 분양신청의 전제가 된다는 규정은 없었다.
그러자 조합은 이들 대부분에게 분양신청 서류에 하자가 있다며 “조합원 자격을 상실했다”고 통보했다. 신청 서류가 미비하거나 면적 등이 잘못 표기됐다는 이유였다.
▲CNB가 단독입수한 조합과 일부 조합원들 간의 지위확인 소송 판결문(오른쪽)과 조합과 현대엔지니어링 간에 조합운영비 문제를 두고 오간 공문들. 사진 = 도기천 기자
통보를 받은 조합원들 중 60여명이 서울행정법원에 조합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이중 37명이 8월 11일 조합원(공유자 포함) 지위에 변동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나머지는 소송이 진행 중이다.
CNB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분양신청서의 기재 오류 또는 첨부 서류의 누락만으로 원고들(조합원)에게 분양신청의 의사가 없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단순 서류 오류를 분양신청 철회 의사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조합원들은 이번 일이 조합이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시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조합원은 “서류가 잘못 됐으면 미리 통보해서 정정하라고 하면 될 일인데, 분양신청만료일 당일에 정정하라고 통보했다”며 “의도적으로 반대세력을 추려내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공덕시장 상인연합회 박종석 회장(사진)이 자신의 청과물가게에서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조합원들 간의 내분으로 임차 상인들과의 협의는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사진 = 도기천 기자
반면 조합 측은 “조합 정관에는 공유자는 상가를, 단독 명의자는 오피스텔을 분양신청 하도록 돼 있는데 대부분 공유자들이 이를 어기고 오피스텔을 신청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며, 신탁 여부와는 무관하다. 신탁을 하지 않은 분들 중에도 30여명이 정상적인 분양을 받았다”고 밝혔다.
일부 조합원들 “시공사 바뀐 과정 의문”
일부 조합원들은 시공사 선정 과정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업초기인 2013년 11월 조합과 한국자산신탁은 공동사업약정을 체결했으며, 현대엔지니어링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이후 조합은 현대엔지니어링과 조합운영비 부담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CNB가 입수한 조합과 현대엔지니어링 간에 오간 공문들을 보면, 조합은 현대 측에 “매월 조합운영비 1757만원을 지원(무이자 대여)해 달라”고 요청했고, 현대 측은 “조합이 한국자산신탁을 공동사업시행자로 선정했으므로 한국자산신탁 측이 부담해야 한다”며 거부했다.
양측 간에 이런 내용의 공문이 수차례 오갔고, 결국 조합은 지난 4월 이사회와 대의원회를 열어 현대 측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이후 조합은 다른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했는데, 문제는 현대보다 공사단가가 더 높았다는 점이다.
한 조합원은 “조합운영비를 지원하지 않은 점은 공동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에도 책임이 있는데 현대 측에만 책임을 떠넘겼으며, 이후 선정된 건설사(시공사)는 현대보다 훨씬 조건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평당 공사단가를 기준으로만 단순 산출하면 새로 선정된 시공사의 공사금액이 현대 보다 수십억원 가량 높다.
▲마포·공덕시장 재개발 조감도. 지하6층~지상18층 2개동 규모의 주상복합시설로 지어진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CNB에 “조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계약이 해지된 것으로 안다”며 말을 아꼈지만,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대철 조합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조합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계약이 해지된 것이며, 이후 선정된 건설사가 현대 보다 공사금액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 본계약 체결 때는 현대 수준으로 단가를 낮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총회 정족수 놓고 또 충둘
더 나아가 일부 조합원들은 시공사를 새로 선정한 조합원 총회 자체가 무효라며 법원에 효력금지가처분을 낼 예정이다. 지난 21일 열린 조합원 총회의 정족수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날 총회 자료집에는 의결권조합원이 124명으로 표기돼 있다. 관할인 마포구청 지역경제과에도 조합원수가 124명으로 신고 돼 있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지난 3월 조합원수 신고 이후 변동신고가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과반 이상이 참석해야 총회가 성립되므로 최소 62명이 참석해야 성원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날 참석자수는 61명이었다.
이에 대해 조합 측은 “토지매매 등으로 조합원 자격을 상실한 4명이 있어서 현재는 120명이 조합원 정수”라며 “성원이 성립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들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소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조합이 내분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임차 상인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마포구청은 임차인들과의 협의를 전제로 사업허가를 내줬지만, 조합 사정이 복잡하다보니 일체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덕시장 상인연합회 박종석 회장은 CNB에 “이번 개발 사업에 있어 구청과 조합이 상인들과 일체의 협의를 한 바가 없다”며 “어차피 개발이 이뤄질 곳이다 보니 어느 쪽도 환경개선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어 시설문제 등이 더 열악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한 상인은 “새건물이 들어서면 임대료가 비싸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수십년 간 장사해온 자리를 내주고 거리로 내몰릴 판인데 구청·조합 모두 나 몰라라 하고 있다”며 “재개발 소문이 나면서 손님도 많이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도기천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