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미스터피자 ‘치즈 통행세’ 사건, 2% 숨은 진실
동생 대리점과 거래 ‘특별한 혜택’ 없었다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한진그룹)에게 부과한 총수일가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징금을 취소하라고 판결하면서, 비슷한 사례로 기소된 미스터피자(엠피(MP)그룹) 정우현 전 회장 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정 전 회장은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를 통해 가맹점에 공급할 치즈의 가격을 부풀려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 등으로 최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하지만 CNB 취재결과, 치즈가격이 정상가격보다 높다고 볼만한 근거가 뚜렷하지 않았다. 법원이 이번 대한항공 재판에서 “특수관계인들 간의 거래가 정상거래 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판결한 만큼, 정 전 회장 사건 또한 상당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번 대한항공 재판은 2014년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 이후 재벌이 공정위의 제재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법조계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해 부과한 과징금을 취소하라고 판결하면서, 이와 비슷한 사례로 재판 중인 미스터피자의 ‘치즈 통행세’ 사건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전망대에서 여행객들이 대한항공 여객기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조항 및 시행령에 따르면, 오너 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가진 자산 5조원 이상 상장사(비상장사는 20%)가 자신들의 특수관계인(친인척 등이 지배하는 회사)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부당한 이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공정위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대부분 지분을 가진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가 대한항공으로부터 일감을 수주 받아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봤다고 판단, 지난해 11월 총14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대한항공 법인과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당시 총괄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싸이버스카이는 기내 면세품 관련사업을, 유니컨버스는 콜센터 운영 및 네트워크 설비 구축 등의 일을 하는 회사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이들 기업에게 각종 비용을 과다지급 하는 식으로 이익을 보장해줬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 간의 거래가 정상거래와 비교해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라는 점을 공정위가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또 오너일가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경쟁을 제한한 사실(부당하게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도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CNB에 “공정거래법 조문에 명시된 ‘부당한 이익’ 제공 여부가 관건인데 공정위가 ‘부당성’ 요건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대한항공이 정상가격 보다 더 높은 비용을 지불했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갑질 논란 때문에 괘씸죄 적용?
이는 미스터피자의 일감몰아주기 사건과도 비슷한 점이 많다.
검찰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은 2005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가맹점에 공급할 치즈를 자신의 동생 정모(64)씨가 운영하는 CK푸드를 통해 구입하면서 정씨에게 상당한 이익을 줬다. 정씨의 회사를 중간 거래업체로 끼워 넣는 방법으로 일명 ‘통행세’를 챙겼다는 것.
검찰은 정 전 회장 형제가 이렇게 챙긴 부당이익이 57억원에 이른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정 전 회장은 구속기소, 정씨는 불구속기소했다.
정 전 회장은 이외에도 가맹점 인근에 직영점을 개설했다는 보복출점 의혹, 친인척들을 직원으로 허위 취업시켜 급여를 지급한 혐의도 받고 있지만 금액과 양형 기준으로 볼 때 해당 사안이 가장 큰 건이다.
하지만 CNB 취재결과, 대한항공 사례처럼 엠피그룹이 CK푸드로부터 구입한 치즈가 정상가격보다 높다고 볼만한 근거가 뚜렷하지 않았다.
엠피그룹은 오래전부터 피자에 들어가는 치즈 등을 매일유업과 서울우유의 대리점으로부터 공급받아 왔다. 매일유업은 CK푸드(대리점)를, 서울우유는 A대리점을 통해 각각 엠피그룹에 치즈를 납품했다. 그런데 엠피그룹이 두 곳으로부터 공급받은 치즈가격은 동일했다. 이는 CK푸드가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게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더구나 정씨는 업계의 현금거래 관행을 깨고 엠피그룹과 어음거래를 해왔다. 엠피그룹으로서는 유동성 차원에서 어음을 끊어주는 게 유리하다.
엠피그룹 측은 “유가공 업체로부터 치즈를 공급받으려면 담보를 제공하거나 현금결제를 해야 하는데 재정상 어려움이 있다. 이런 점에서 CK푸드가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2011년 구제역 사태 때 서울우유의 원가 인상 선언으로 수급에 차질을 빚자 매일유업으로부터 안정된 가격에 치즈를 공급받도록 주선하는 등 치즈공급량 및 발주량 조절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서초구 미스터피자 본사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현행 공정거래법은 일감몰아주기의 규제대상 유형으로 △정상적인 거래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오너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 △특수관계인과 현금, 그 밖의 금융상품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사업능력, 재무상태, 신용도, 기술력, 품질, 가격 또는 거래조건 등에 대한 합리적인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 등 4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결정적 증거(스모킹건)가 나오지 않는다면 엠피그룹과 정씨 간의 거래를 부당 거래로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엠피그룹이 정씨와의 거래로 손해를 입지 않았다는 점이 입증될 경우, 공정거래법은 물론 횡령·배임 혐의의 적용이 불가능하다.
경영상 불가피한 통행세?
다만 엠피그룹이 매일유업 본사와 직거래를 했다면 더 이득을 볼 수 있었는데도 이런 가능성을 놓친 부분에 대해서는 치열한 법리공방이 예상된다.
공정거래법의 부당지원 금지 조항(23조 1항 7호)에 따르면, 다른 사업자와 직접 상품·용역을 거래하면 상당히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거래상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를 매개로 거래하는 행위는 제재 대상이다.
따라서 엠피그룹은 직거래를 택하지 않고 대리점(CK푸드)을 통해 거래해온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에 대해 엠피그룹 측은 “대리점과 거래하면 물량 조절, 클레임(하자) 처리, 대금 결제 등이 직거래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고 밝혔다. 물량 구매 단위를 구매처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어 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시 반품조치 등 대응이 쉽다는 것. 특히 대리점은 어음거래가 가능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또 엠피그룹 측은 CK푸드가 취한 이득은 매일유업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므로 미스터피자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엠피그룹 관계자는 CNB에 “정씨가 매일유업의 대리점권을 획득하고 치즈를 매입 후 미스터피자(엠피그룹)에 치즈를 공급해 온 것”이라며 “따라서 미스터피자가 부당지원을 한 것이 아니라 정씨가 매일유업으로 하여금 치즈를 공급할 수 있도록 영업행위를 하고 그 대가를 수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일유업이 정씨를 통해 미스터피자에 치즈를 공급할 기회를 얻은 것이고 이에 대한 대가를 정씨에게 지급한 것이라는 얘기다.
‘가격’과 ‘업계 특성’ 함께 고려해야
법조계는 이번 사안이 ‘정상가격’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공정위가 과거 부당지원 관련 재판에서 번번이 패소한 것도 경영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가격’으로만 행위를 따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정위는 이번 대항항공 재판 외에도 거래 가격의 가치를 제대로 산정하지 못해 패소한 적이 여러 번 있다. SK그룹 계열사들이 SK씨앤씨에 과다한 인건비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1190억원을 부당지원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3월 “정상보다 높은 인건비로 볼 수 없다”며 SK의 손을 들어줬다. 2015년 신세계그룹의 부당지원 사건과 관련한 소송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공정위가 패소했다.
따라서 미스터피자 사건의 경우도 이 부분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대리점을 통한 거래가 직거래 보다 단가가 높더라도 경영상 유리한 점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따라 재판의 향배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이번에 불거진 이른바 ‘치즈 통행세’는 미스터피자 만의 문제가 아닌데도 정 전 회장이 가맹점주들과의 갑질 논란에 휘말려 시범케이스가 된 측면이 있다”며 “갑질 사건과는 별개로 부당지원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였는지, 경쟁업체를 부당하게 배제했는지 등을 법리적으로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기천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