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42) 앙카라·사프란볼루] 케말 파샤 잠든 앙카라에서 형제의 정을 느끼다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일차 (서울 출발 → 터키 이스탄불 도착 → 사프란볼루 행)
문명의 교차로
터키 이스탄불행 항공기로 인천공항을 이륙한다. 서쪽으로 5185마일, 11시간 30분 걸리는 길이다. 항공기는 중국 북부, 몽골, 카자흐스탄을 건너더니 카스피 해 북안, 러시아 남부를 스쳐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Atatürk) 공항에 내린다. 개인적으로는 7년 전 겁 없이 세계 여행길의 첫 발을 디뎠던 곳이어서 작은 감회가 인다.
공항 입국장에서 만나는 방문자들의 다양한 얼굴을 통하여 터키의 모습을 엿본다. 아시아에 97%, 유럽에 3%의 국토를 나누어 가지고 있는 나라, 문명의 교차로, 동서양의 십자로… 온갖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수많은 역사가 중첩된 곳이다. 그런 만큼 방문할 곳도 많다. 현재 13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51곳은 등재 후보로 올라있을 정도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가 정착한 이곳은 BC 6세기 페르시아 아케메네스(Achaemenid) 왕조의 통치를 시작으로 아시리아를 거쳐 알렉산더 대왕 시절에는 비잔틴(Byzantine) 문화를 받아들였다. 이후 11세기에는 셀주크(Seljuk), 13세기에는 몽골, 14세기에는 티무르의 영토에 편입되기도 했다. 1453년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며 성장한 오스만 제국의 치세를 거쳐 1925년 제국의 소멸과 독립, 공화국 성립까지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은 땅이다.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우리에게는 친숙한 나라이다. 2차 대전 말기 연합국에 합류했고, 한국전에는 연 2만 명 넘는 전투 병력을 보내며 반공 전선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2일차 (사프란볼루 → 앙카라 도착)
심야버스
쿠데타를 극복하고 정권을 강화한 에르도안(Erdoǧan) 총리의 극우 통치 이후 곳곳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테러 때문에 공항 경비가 삼엄하다. 메트로를 타고 에센레르 버스터미널(Esenler Otogar)로 이동하여 사프란볼루(Safranbolu) 행 버스에 오른다(50리라, 한화 1만 6000원). 버스는 시내 여러 곳에 더 들러 승객을 마저 채운 후 고속도로에 오른다. 남한 면적의 8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드넓은 터키를 경험하며 심야버스 여행을 즐긴다. 버스는 412km, 6시간을 달려 새벽 6시 사프란볼루에 도착했다. 올드타운과 오스만 시대 건축물들의 보존 가치가 높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한국 공원 내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 이 탑은 1973년 10월 29일 터키 공화국 건국 50주년을 맞아 한국 정부가 기증했다. 사진 = 김현주
▲아닛카비르(Anitkabir)에 있는 케말 파샤 영묘. 사진 = 김현주
사프란볼루의 아침
아침 공기가 매우 차가와 옷을 꺼내 여러 겹 껴입는다. 대륙성 기후의 전형인 터키 중북부 아나톨리아(Anatolia) 고원의 겨울은 혹독하다. 오늘 사프란볼루는 영하 10도, 앙카라 영하 11도, 고전이 예상되는 하루가 기다린다. 아직 사방이 어두워 터미널에서 올드타운까지 약 4∼5km 정도의 거리를 차라리 걸어가면서 해뜨기를 기다린다. 눈 덮인 산골 마을을 깨우는 모스크 확성기의 코란 낭송 소리가 들릴 즈음 해가 뜨고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오스만 시대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올드타운이 드디어 눈앞에 보인다. 중국에서 동로마제국으로 향하는 카라반들이 반드시 들렀던 곳이다. 오스만제국의 초전성기였던 370여 년 전 건축하여 20세기 초까지 카라반들의 숙소(caravan saray)로 운영했던 친치한(Cinci Han)의 방들은 이제 카페와 식당으로 변하여 방문자들을 맞이한다. 화강암 보도가 깔린 올드타운 골목을 서성인다. 마침 터키 식 목욕탕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보태져 중세 오스만 제국 전성기 어느 시절에 와있는 듯한 분위기에 빠져든다.
▲샤르란볼루 올드타운. 둥근 구조물은 터키 식 목욕탕 하마미(Hamami)다. 사진 = 김현주
▲앙카라 성(Ankara Kalesi)에서 본 도시 풍경. 사진 = 김현주
앙카라 풍경
버스터미널로 돌아와 앙카라(Ankara) 행 버스를 기다린다. 12시간 가까운 비행 이후 심야버스 6시간 이동의 힘든 일정에 지쳤지만 오늘 앙카라에서 맞이할 달콤한 휴식을 그려 보며 위안 삼는다. 사프란볼루에서 앙카라는 233km, 버스는 눈으로 덮인 고갯길을 여러 개 넘어 출발 세 시간 만에 앙카라에 도착한다. 땅 넓은 나라답게 드넓은 초원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이 나라의 수도이다. 이 나라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Mustafa Kemal Pasha)가 1920년 독립 운동의 본거지로 삼으면서 빠르게 성장한 인구 527만 명, 터키 제2의 도시이다.
육중한 건물들, 넓은 불르바드(Boulevard), 곳곳에 있는 동상과 기념비, 그리고 풍부한 공원…. 큰 나라의 수도다운 모습이다. 이스탄불과는 분명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스탄불 못지않게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중심부 키질레이(Kizilay)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아타튀르크 불르바드를 따라서 역사성 짙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날씨가 몹시 추워 도시 탐방은 내일로 미루고 휴식의 밤을 청한다. 저녁 6시, 때맞춰 울려나오는 코란 낭송이 아니었다면 미국 뉴욕 어디쯤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만큼 현대적인 도시이다.
3일차 (앙카라 → 이스탄불 → 이스라엘 텔아비브 행)
앙카라 한국 공원
도시 탐방에 나선다. 숙소를 나와 먼저 앙카라 관광 1번지 울루스(Ulus) 지역부터 찾는다. 메트로 역을 중심으로 광장이 형성되어 있고, 광장에는 아타튀르크 기마상을 가운데 놓고 멋진 건물들이 서있다. 울루스 지역 스포츠 콤플렉스 서북쪽 코너(또는 442번 공항버스 울루스 승차장 앞)에는 한국 공원이 있다. 공원 내 터키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은 1973년 10월 29일 터키 공화국 건국 50주년을 맞아 한국 정부가 기증했다. 탑의 기반석에는 한국전에서 산화한 장병 892명의 이름과 출신지역, 당시 나이 등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참고로, 터키군 전몰자들의 실제 묘는 우리나라 부산 대연동 UN군 묘지에 있다.
▲한국전에서 산화한 터키 장병 892명의 이름과 출신지역, 당시 나이 등이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 기반석에 빼곡히 새겨져 있다. 사진 = 김현주
▲터키를 ‘토이기’로 표기한 점이 눈에 띈다. 사진 = 김현주
터키군은 총인원 2만 1212명이 참전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1971년까지 UN군 임무를 수행했다. 잠시 묵념을 올리는 사이 공원 관리인 일마스(Yilmas)가 추운데 몸을 녹이고 가라며 관리 사무실로 불러들여 나에게 차를 대접한다. 한국 어디에 가더라도 영락없이 이웃집 아저씨로 통할 얼굴이다. 터키는 형제의 나라가 맞긴 맞는가 보다.
앙카라 성
앙카라 성(Ankara Kalesi)을 향하여 언덕을 오른다. 언덕에 올라서니 멀리 눈 덮인 산들이 사방에서 도시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들어오고, 성곽 주변에는 허름한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서울 종로 낙산 공원에서 이화동, 충신동으로 내려오는 성곽 길과 흡사하다. 근처에는 아나톨리아 박물관(Anatolia Civilization Museum)이 있다. 앙카라 최고, 터키 최고의 초일급 박물관이다.
▲앙카라의 관광 1번지 울루스(Ulus) 광장. 사진 속 기마상은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다. 사진 = 김현주
아닛카비르
케말 파샤의 영묘(mausoleum)가 있는 아닛카비르(Anitkabir)까지는 택시로 이동했다. 도시 중앙 작은 언덕 위에 있지만 사방이 막힘없이 보인다. 그의 영묘는 오늘도 많은 방문객들로 붐빈다. 영묘 입구에는 그가 터키 군인들에게 나라의 명예를 지켜 달라고 당부하며 남긴 글이 적혀 있다. 경내 지하에는 아타튀르크 박물관이 있다. 그의 생애에 관한 기록과 사진, 유품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그가 이끌었던 많은 독립전쟁의 장면들을 묘사한 대형 서사화들도 볼거리이다. 앙카라 탐방을 마치고 항공기로 이스탄불 사비하 괵첸 공항(Sabiha Gökçen, SAW)으로 돌아왔다.
(정리 = 김광현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