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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는 왜 ‘총수’가 싫은 걸까

재벌하기 힘든 시대…‘가족경영’ 막 내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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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4-555-556호 도기천 기자⁄ 2017.09.28 14:24:31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사진)가 공정위의 총수 지정에 반발하면서 ‘재벌’과 ‘총수’의 인식과 역할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재벌개혁이 화두로 부상하면서 대기업 총수가 되기를 스스로 꺼리는 회장님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재벌이 편법증여, 일감몰아주기, 문어발식 확장, 정경유착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면서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커졌기 때문. 70년 역사의 재벌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걸까. CNB가 달라진 기업풍속도를 들여다봤다. 

“네이버 총수로 지정되면 해외 경영활동에 지장이 있다”(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되면 해외 투자활동에 지장을 받고 이미지에 타격이 온다고? 같은 논리라면 삼성, 현대 등도 모두 투자활동에 지장 받아야 한다”(공정위 관계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공정거래위원회 간에 시작된 ‘총수 논란’은 재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나빠졌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창업자는 지난달 공정위가 자산 5조원 이상 57개 재벌(공기업은 제외)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 자신을 총수로 지정하려하자 직접 공정위를 방문해 “네이버는 총수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라고 항변했다. 자신의 네이버 지분이 4%를 조금 넘는 수준인데다 순환출자도 없으며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어 다른 재벌체제와는 다르다는 것. 

하지만 공정위는 9월 1일 이 창업주를 총수로 확정했다. 공정거래법상 총수는 기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을 의미한다. ‘사실상 지배 여부’는 지분율, 경영활동과 임원선임과 관련한 영향력을 고려해 판단한다. 공정위는 이 창업자가 네이버의 경영과 임원선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향후 자사주를 이용한 우호지분을 10.9%까지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고 봤다.  

그러자 네이버는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30년 전 기업집단제도가 처음 태동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일정 규모로 성장한 민간기업에게 재벌과 총수라는 굴레를 씌우는 건 합당치 않다”며 반발했다. 네이버는 법적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례는 벤처·IT분야의 혁신기업들을 크게 자극시키고 있다. 더구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이 창업자를 만난 뒤 한 일간지를 통해 “미국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와 달리 (이 창업자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가다간 수많은 민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자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SNS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오만하다”고 직격탄을 날린 뒤, “이해진의 총수 지정은 답답하다. 모든 대기업이 총수 없는 기업이 되는 게 목표라면 상대적으로 좋은 지배구조를 가진 네이버를 ‘총수 없는 기업’으로 지정하거나 아니면 이렇게 노력하면 총수 없는 기업으로 지정해 주겠다 라고 해주는 방법이 더 좋지 않냐”고 주장했다. 보안업체 안랩 창업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기업과 기업가를 머슴으로 보는 오만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셀프 재벌해체? 70년 역사 ‘흔들’

‘재벌’과 ‘총수’를 꺼리는 이런 분위기는 네이버를 비롯한 혁신기업들 뿐 아니라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재벌체제의 병폐인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스스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거나, 자식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는 기업이 늘고 있는 추세다.  

삼성은 60년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분기별로 배당을 시행하는 등 기업 투명성과 주주권 강화에 나선 상태다. 이런 점이 기업 이미지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사상최대 실적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수십년 세월 동안 일궈온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떠난 회장들. 천호식품 김영식 창업주(왼쪽), 락앤락 김준일 창업주. 사진 = 연합뉴스

현대차그룹과 롯데, 효성 등은 순환출자와 일감몰아주기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LG와 SK, 현대중공업, 한진그룹 등은 최근 몇 년 새 지주사로 전환했다.  

순환출자란 한 그룹 안에서 계열사들끼리 돌려가며 출자규모를 늘리는 것을 이른다. A계열사가 B계열사에, B계열사가 C계열사, C계열사는 다시 A계열사에 출자하는 식으로 상호 지배하는 구조다보니, 총수 일가가 회사를 지배하는 주요 수단이 돼 왔다. 

하지만 지주회사는 그룹 전체의 모(母)회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곳만 들여다보면 계열회사 간 출자 및 지배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 때부터 경제민주화의 핵심과제로 이를 권장해왔는데, 최근 재벌개혁 바람이 불면서 스스로 지주사가 되겠다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아예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물러나는 총수들도 있다. 

국내 밀폐용기 1위 업체 ‘락앤락’의 김준일(65) 회장은 최근 자신의 지분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대신 매각을 택했다. 김 회장은 지난달 25일 사모펀드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너티)에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 27살인 1978년 국진화공을 설립해 39년 동안 키워온 회사에서 손을 뗀 것. 김 회장의 두 아들도 조만간 회사를 떠날 예정이다.  

김 회장은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것은 성공률이 가장 낮다”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락앤락 관계자는 CNB에 “김 회장은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업승계가 아닌 새로운 경영체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건강식품 전문기업 천호식품은 33년 만에 총수 일가 경영 체제의 막을 내리고 새롭게 출발했다. 

창업주 김영식 전 회장과 아들 김지안 전 대표는 최근 차례대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지금은 이승우 전 아워홈 대표가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 대표는 김 회장 일가와는 무관한 인물이다.

가구업계 독보적인 1위기업인 한샘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샘은 2012년 7832억원이었던 매출이 해마다 20~30%씩 증가해 지난해 1조934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매년 두 자릿수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 역시 전년 동기보다 각각 14.6%, 24.1% 증가하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  

▲네이버는 공정위의 ‘재벌’ 지정으로 인해 해외에서의 이미지 실추를 우려하고 있다. 네이버 본사 전경. 사진 = CNB저널 자료사진

이런 성장을 이끈 최양하 한샘 회장은 1979년 사원으로 입사해 CEO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994년에 대표이사 전무로 승진한 최 회장은 이때부터 24년째 회사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 7월 27~28일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과 재계의 첫 간담회에서도 참석자 중 전문경영인의 비중이 과거보다 크게 늘었다. 15개 참석 기업 중 5곳이 총수가 아닌 전문경영인이었다. 

재벌 굴레 기업경영에 걸림돌

이처럼 지배구조를 스스로 혁신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데는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배경이 되고 있다. 

근대화 시기에 재벌은 자유시장경제를 뿌리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이후 각종 정치스캔들에 휘말려 위상이 크게 실추됐다. 

1980년대 대기업들은 전두환 정권의 자금줄(일해재단) 역할을 해왔으며, 1995년에는 전두환·노태우의 대선 비자금 사건에 휘말려 검찰 수사를 받았다. 1997년 15대 대선 때는 23개 대기업이 166억원의 정치자금을 낸 사실이 알려져 도마에 올랐다. 2002년 대선 때는 재벌기업들의 구심체였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주도 하에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대선 후보 측에 823억원을 보냈다. 

대통령을 탄핵으로까지 몰고 간 ‘최순실 게이트’는 결정타가 됐다. 전경련은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롯데 GS 한화 KT LS CJ 두산 한진 금호아시아나 대림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부영 등 대기업 53곳으로부터 774억원 걷어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했다. 

이로 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손경식 CJ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검찰·특검의 조사를 받았고 국회에 불려 나갔다. 

“오락가락 정책이 재벌 키운 셈”

그러자 촛불혁명 과정에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을 국정과제로 내걸었고, 일부 시민단체들은 재벌해체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재벌’이라는 굴레가 기업경영에 지장을 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실례로 네이버는 이번에 재벌·총수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해외사업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총수일가가 지배하는 기업은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강해 글로벌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 저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우려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옥스퍼드 사전에 ‘chaebol(재벌)’은 ‘가족이 소유한 기업’으로 명시돼 있어 외국에서 인식이 안 좋은데, 촛불집회 이후 이미지가 더 나빠졌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재벌 체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자정노력과 함께 일관된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재벌사연구소 이한구 소장(수원대 명예교수)은 CNB에 “재벌 자체도 문제지만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해온 정치권도 반성해야 한다”며 “지금의 법과 제도로도 충분히 재벌을 규제할 수 있음에도 정권의 입맛에 따라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봐주기 식으로 기업을 길들이려고만 해왔다. 오늘날 재벌의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각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현 경영컨설턴트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경영효율성 등 재벌 시스템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 재벌이라는 이유만으로 폄하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법을 지키고 사회적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유인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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