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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기업: 홈플러스 편] 유통업 최초·유일 여성 CEO에 여성 임원 38% "女風 주도"

여성임원 전원 중책…1~2년새 외부인사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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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9호 윤지원⁄ 2017.10.27 16:57:44

▲홈플러스의 고객 대다수가 여성인 만큼 여성 CEO와 임원들의 역량이 남다르게 발휘될 것이 기대된다. (사진 = 연합뉴스)


성 평등에 관한 논란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직장 내 성희롱 외에도 남녀 간 임금 격차, 경력단절, 유리 천장 등 기업과 관련된 여러 성 평등 이슈들이 현재 동시다발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또한, 최근 여성 친화적 기업은 투자자들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아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인정받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인식과 변화는 아직 뒤처져 있다. 관련 이슈에 대한 인식과 개선 의지가 조직의 의사 결정 과정에 잘 반영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양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은 3% 미만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정치권에서는 유럽 등 선진국의 사례를 근거로 '여성 임원 30% 할당제'의 제도화를 논의하고 있다. 이에 CNB저널은 국내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 등을 척도로 기업의 성 평등 수준을 가늠하고, 기업 지속가능성 및 경쟁력을 살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홈플러스의 여성 고위 임원들. 왼쪽부터 엄승희 상품부문장(부사장), 임일순 대표이사 사장, 최영미 인사부문장(전무). (사진 = 홈플러스)


유통업계 첫 여성 CEO 배출한 홈플러스

최근 홈플러스에서 대형마트 업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탄생해 주목받고 있다. 여성 임원 비율도 30%가 넘는다. 최근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이 여성 임원을 적극적으로 늘이는 등 유통업계는 다른 산업보다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성 CEO를 배출한 기업은 없었으며, 특히 홈플러스의 높은 여성 임원 비율은 단연 눈에 띈다.

현재 홈플러스에는 모두 8명의 부문장급 이상 임원들이 있다. 그중 3명이 여성으로, 여성 임원 비율은 38%에 달한다. 그 3명은 각각 임일순 신임 대표이사 사장, 엄승희 상품부문장 부사장, 최영미 인사부문장 전무로, 전무급 이사 6명 중 50%를 구성하고 있다. 임 사장은 홈플러스 이사회 4인 중에도 포함되어 있다. 

여성 임원들이 맡은 부문이 기업의 핵심 부문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현재 최고 경영자인 임 사장은 승진 전 재무부문장(CFO)과 경영지원부문장(COO)을 역임했다. 또한, 상품부문장은 대형마트의 핵심으로 꼽히는 직책이며, 인사부문장은 기업운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책이다.

국내 유통업계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CEO가 된 임일순 신임 사장은 지난 10월 16일부터 커리어 첫 대표이사 업무를 시작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 경영학 석사(MBA) 출신인 임 사장은 1986년부터 모토로라와 컴팩코리아 등 IT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8년부터 코스트코, 바이더웨이, 호주 엑스고 그룹 등에서 CFO를 맡으며 유통업계 경력을 꾸준히 쌓아왔다. 특히 2006년 바이더웨이 재무부문장에 취임한 뒤 2년 만에 매출액을 16%, 경상이익을 844% 성장시킨 바 있다.

임 사장은 홈플러스의 대주주가 영국 테스코에서 사모펀드인 MBK 파트너스로 바뀐 뒤 2015년 말 1호 임원으로 영입되어 CFO를 맡았다. 2016년 1월 홈플러스가 김상현 새 대표이사 체제로 재편되어 출범한 뒤, 두 사람은 홈플러스의 체질 개선과 안정화에 주력했으며 지난해에는 홈플러스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홈플러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2015년 1490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지만 2016년에는 309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임 사장은 지난 7월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지원부문장(COO)이 되었고, 이번 10월 인사에서 김 전 대표이사는 홈플러스 부회장으로, 임 사장이 신임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MBK파트너스 인수 후 김상현 부회장이 주도한 초기 사업 구축이 마무리됐고, 관리가 필요한 단계"라며 "앞으로 임일순 대표가 경영을 전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임 CEO의 과제

홈플러스에서 대표이사로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하는 임 사장에게는 몇 가지 당면 과제가 있다. 우선, 지난해 흑자로 돌아서긴 했지만, 홈플러스의 전반적 운영과 영업 등을 안정화하고 계속된 성장의 기반을 닦아야 한다. 올해 5월 대대적으로 단행한 조직 개편의 성과를 증명해야 하며, 이를 통해 MBK와의 합병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온 매각설과 이로 인해 고조된 내부의 불안을 컨트롤해야 한다. 또한, 개인정보 판매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으로 실추된 회사 이미지를 회복해야 하며, 이제 막 시작된 노조와의 임금 협상도 슬기롭게 풀어가야 한다.

우선, 임 사장은 홈플러스 매각설에 관해서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홈플러스는 2015년 9월 국내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인 7조 2000억 원에 MBK파트너스에 인수되었다. 이후 홈플러스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몸집을 불린 뒤 재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매각설이 끊이지 않았다. MBK는 "향후 2년 동안 홈플러스에 1조 원 이상 투자해 회사를 성장시키겠다"며 홈플러스를 금방 매각할 계획이 없음을 밝혔지만, 재매각설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임 사장과 김 부회장의 승진 인사를 통해 MBK가 당장은 매각을 검토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쏠리게 되었다. 여기에 임 사장은 대표이사 직함을 달고 처음 임원진과 만난 상견례 자리에서 "임기 동안 내 손으로 회사를 매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대표이사로 내 첫 커리어인데, 첫 커리어부터 회사를 매각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발언함으로써 재매각설을 일축했다.

업계에서는 이 밖에도 홈플러스가 당면한 여러 과제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현재 이러한 임무에 적합한 인물이 임 사장임을 부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우선, 경영자로서의 임 사장의 역량은 오랜 경력이 증명해주고 있다. 임 사장은 여러 유통업체의 CFO를 거쳐 온 인물로 냉철하고 섬세한 스타일의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또한, 최근 2년간 홈플러스의 변화를 몸소 주도하며 회사 전반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이런 점은 현재 홈플러스의 정상적인 운영을 총괄할 인물로 임 사장 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또한, 임 사장은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중요시하며, 잦은 소통의 기회를 통해 구성원 간 화합을 끌어내는 안정된 리더십을 펼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면모가 노조와의 협상을 슬기롭게 끌고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계속된 매각설과 여타 악재로 고조된 내부의 불안을 달래는 데도 긍정적일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홈플러스 관계자는 "대형마트 특성상 우리 고객 대부분이 여성이며 직원 중에도 여성 비율이 매우 높다"며 "그런 점에서 여성 CEO의 탄생은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객 입장에서 바라본 시선으로 대형 마트의 경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적임자인 만큼 기존 업계에 없던 새바람을 일으킬 것을 지켜 봐달라"고 당부했다.

▲대형마트는 고객과 직원 대부분이 여성인 만큼 경영진의 여성 친화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사진 = 홈플러스)


성별 무관, 실력 위주의 임용

홈플러스의 여풍을 이끌어갈 또 다른 두 임원은 엄승희 상품부문장 부사장과 최영미 인사부문장 전무다. 

엄 부사장은 지난 5월 조직개편에 이은 후속 인사로 월마트에서 영입됐다. 현재 홈플러스 e파란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부임한 안희만 전 상품부문장의 후임으로 발탁되었다. 엄 부사장은 미국 로체스터 대학 졸업 후 1987년 미국 GE에서 경력을 시작한 이후 30여 년 동안 글로벌 유통기업에서 주로 마케팅과 상품에 관련된 전문적인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지난 2003년부터 최근까지 월마트 미국 본사와 일본 지사에서 상품 부문 최고 임원으로 근무했다. 특히 월마트는 강한 PB 상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유통 공룡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엄 부사장은 이러한 월마트에서 상품 분야를 경험하며 다양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 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홈플러스에서 그가 맡은 임무는 자체 브랜드(PB) 및 해외 직소싱(GS) 상품 개발과 동시에 전체적인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대형마트 1위인 이마트와의 차이를 극복하는 핵심이 PB 경쟁력인 것으로 평가받는 만큼 엄 부사장의 역량이 홈플러스의 미래에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 전무는 2016년 8월부터 홈플러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30년간 글로벌 IT 기업인 한국휴렛팩커드(HP)에서 인사전문가로 일 해오다가 유통업계로 넘어온 지 이제 1년 남짓 지났다. 최근 10여 년 인사 제도의 변경이 거의 없던 홈플러스에 외부에서 온 인사 책임자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중장기적 인사 목표 및 계획을 먼저 수립했다. 전국 매장에 퍼져있는 2만 5천 명에 달하는 직원 인사를 총괄하기 위해 최 전무는 구성원들과의 '소통'에 많은 시간과 역량을 할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왼쪽부터) 엄승희 상품부문장, 임일순 대표이사, 최영미 인사부문장. (사진 = 홈플러스)


그 결과, HP서 경험했던 인간 존중의 인사 철학을 바탕으로 '구성원에게 좋은 인사'를 목표로 한 '플러스(+) 인사제도'를 수립했으며, 구성원 개개인의 성과 관리 절차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하기 위해 오픈된 상호 토론 방식의 성과 평가 제도인 '조율 미팅'을 도입했다. 본사를 기존 강남구 역삼동에서 현재의 서울 강서점 위층으로 이전할 때에도 사무 공간을 개방형 오피스로 구축해 직원 모두가 편하게 소통하는 문화를 유도했다. 이처럼 소통을 통해 수평문화를 정착하고, 투명한 성과 평가 과정을 통해 역량 있는 인재를 차별 없이 등용하는 인사 제도가 홈플러스의 기업 문화로 정착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해 9월엔 고졸 공개채용 제도를 신설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이끌고, 올해 1월부터는 기존 일부 비정기적으로 실시해오던 전역 부사관 특별채용을 정기 공개채용 제도로 확대했다. 이 밖에 장애인 일자리 확대 등 상대적으로 소외당할 수 있는 취약 계층 채용을 강화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여성 대표성도 최 전무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홈플러스 전체의 여성 직원 비율은 73%에 달하지만, 여성 관리자 비율은 11%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기업인데도 현장 중간 관리자급 여성은 적은 편이다. 전무급 이상 고위 임원진 여성 비율이 높다고 주목받고 있지만, 세 사람 모두 내부 승진이 아닌 외부에서 영입된 임원들이기에 '유리 천장' 논란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없다.

최 전무는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여성 인력 비중을 늘리고, 역량을 키워 여성 인재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조직 내 양성평등 문화 만들기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제도 수립이나 운영을 통해 향상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양성평등 문화 확산은 구성원 개개인의 인식 전환과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최 전무는 직원 윤리교육뿐 아니라 전 직원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교육에도 양성평등 문화에 관한 내용을 반영해 운영하고 있다. 기존 제도를 정착시켜 문화로 만드는 것이 더 많은 제도를 신설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유통업계 최초 여성 지역본부장으로 임명된 김인숙 전 홈플러스 이사(가운데). 사진은 2015년 9월 홈플러스 잠실점에서 열린 유기견 입양센터 사료 기부 전달식. (사진 = 홈플러스)


9년 전부터 유통업계 여성 리더십 주도

임 사장을 비롯한 홈플러스의 세 여성 임원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자기 직무에서의 높은 전문성과 역량을 인정받아 순수하게 실력으로 발탁된 인물들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그동안 요직에 여성 임원을 배치하는 등 임원 선임에 성별을 가리지 않고 평등한 인사를 진행해왔으며, 향후에도 이 같은 인사 방침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에도 홈플러스는 여성 임원을 과감히 발탁한 사례가 있다. 테스코 시절인 2008년에는 외부에서 영입한 조희선 전무가 패션상품 본부장을 맡았는데, 이는 유통업계 최초의 여성 임원 배출 사례다. 조 전 본부장은 2010년 영국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플로렌스 & 프레드'를 홈플러스에 독점 런칭하는 등의 성과를 올린 뒤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2009년 6월에는 가좌점 점장 등을 거친 김인숙 전 운영 점포개선 팀장을 이사로 승진시켜 대형마트 최초의 여성 지역 본부장에 임명했다. 당시 홈플러스에는 2명의 여성 임원과 3명의 점장, 5명의 팀장이 있었다. 이는 롯데그룹이 창립 이래 첫 여성 임원을 2010년에서야 선임하고, 첫 여성 점장을 2011년에서야 배출한 것보다 앞선 사례였다. 신세계도 2009년 당시 여성 점장은 3명 있었지만, 여성 임원은 없었다.

특히 김 전 이사는 지금까지 거론한 홈플러스의 여성 임원 중 유일하게 내부 승진을 통해 임원까지 올라간 케이스다. 그는 신세계와 경방필 등에서 10년간 재직하면서 백화점 문화센터의 초석을 마련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홈플러스로 이직한 뒤에도 홈플러스 문화센터의 기틀을 잡았으며, 2005년에는 그룹 발전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영국 테스코 그룹이 제정한 '테스코 밸류 어워드'의 첫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 전 이사는 그해 10월 가좌점 점장으로 발령받아 홈플러스 첫 여성 점장이 되었는데, 이는 국내 대형마트 업계에 가장 늦게 진출한 홈플러스가 업계 최단 기간 내 여성 점장을 배출한 사례였다.

점장으로서도 3년간 역량을 증명한 김 전 이사는 2008년 대구·경북·울산·밀양권 14개 점포 운영을 총괄하는 3지역본부장을 맡은 뒤 지난봄 퇴사할 때까지 1지역본부장, 2지역본부장 등을 거쳤다.

한국, 유리천장 지수 5년째 OECD 꼴찌

'유리천장'이란 능력이 충분한 인재가 직장 내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등의 이유로 고위직으로 승진하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경제학 용어다. 조직 내에 노골적으로 제도화된, 보이는 차별은 없어도 인사권자와 의사 결정 집단의 편견, 담합 등등 보이지 않는 차별 때문에 승진의 기회가 동일하게 부여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나름의 기준으로 측정한 유리천장 지수를 보면, 한국은 5년 연속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꼴찌를 기록해오고 있다. 한국은 의미 있는 통계 결과가 나올 정도로 경제 인구의 인종 구성이 다양하지 않은 편이니, 유리천장 지수는 주로 남녀 간 성차별의 문제가 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 2명 중 1명은 자신의 직장에 유리천장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문조사 그래프. (사진 = 사람인)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 존재 여부는 여러 조직 내 고위직 중 여성의 비율을 살펴봄으로써 거꾸로 유추해볼 수도 있다. 지난 4월 재벌닷컴이 2016년 국내 10대 대기업 그룹 상장사의 여성 임원 비율을 집계한 결과는 2.4%로 나타났다. CEO스코어의 조사에서는 국내 30대 그룹의 전체 직원 중 여성이 24%에 달하는 데 비해 올해 1분기 임원 인사를 단행한 18개 그룹의 임원 승진자 중 여성은 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나마도 오너 일가를 제외하면 전무급은 1명뿐이고 나머지(91.9%)는 초급 임원인 상무급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7월 국내 500대 기업 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2.7%로 나타났으며,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이 67.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기업여성지도자협회가 지난 5월 발표한 '2017 아시아·태평양지역 여성 이사회 임원' 보고서에는 아태지역 주요 20개국 1557개 상장 기업의 이사회 여성 임원 평균 비율은 12.4%로 나타났다. 북유럽이 35.6%로 가장 높고 서유럽(23.6%), 미국·캐나다(20.9%), 동유럽(15.5%) 등이 높은 수준이었다. 아프리카(14.4%)도 아태 지역보다 높았으며 라틴아메리카(7.3%)와 중동(0.9%)만이 아태 지역보다 낮은 비율을 보였다.

여성 이사회 임원 비율이 높은 아태 지역 국가는 호주(27.2%), 뉴질랜드(19.3%), 말레이시아(16.6%), 캄보디아(16.5%), 베트남(16.4%) 순으로 나타났다. 최하위권 국가는 대만(7.7%), 일본(6.9%), 파키스탄(5.5%), 브루나이(4.8%) 등이었으며 한국은 2.4%로 아태 지역 20개 국가 중 꼴찌, 사실상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이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2011년 7.6%로 낮은 편이었으나 '이사회 여성 임원 30% 할당제'라는 정부 정책을 펴 2016년 두 배 이상 증가한 비율을 나타냈다. 인도는 2010년 5.5%에 불과했으나 '모든 상장 기업은 이사회에 1명 이상의 여성 임원을 포함해야 한다'는 할당제를 도입, 2016년에 12.7%까지 증가했다.

주목할만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2013년 1.8%를 기록하는 등 2015년까지 줄곧 한국과 함께 최하 1, 2위로 꼽혀 왔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의 '우머노믹스' 공약에 따라 2020년까지 여성 임원 비율을 30%로 늘이기 위해 힘써왔다. 이 목표는 현실을 고려해 10%로 낮춰졌지만,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친화적 기업, 투자받는 데 유리하다

▲10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열린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창립 1주년 포럼에서 히로 미즈노 일본 공적 연금 펀드 최고 투자 책임자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9월 13일, 1조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자산관리 전문기업 엔베스트넷이 미국 러셀1000 기업들 중 성별 다양성 등급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 150개를 선정해 '성 평등 대형주 집중 투자 포트폴리오'를 선보였다. 이 포트폴리오는 리서치 회사 서스테널리틱스가 각 투자 대상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체 척도를 사용해 계산한 성별 다양성 순위를 반영한 것으로, 일반적인 러셀1000 벤치마크보다 더 높은 수준의 ESG 점수를 제시하고 있다. 엔베스트넷은 이 자료를 발표하면서 "성별 다양성을 비즈니스와 통합한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0월 24일에는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회장 손병옥)는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창립 1돌을 맞아 ‘여성의 경영 참여 확대와 WESG 투자’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 포럼에 참석한 일본 공적연금(GPIF)의 미즈노 히로미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일본에서의 여성 친화적 투자현황을 발표했다. 그의 발표에 따르면 이 연금은 현재 90억 달러(약 10조 원) 규모의 자금을 여성 친화 정책을 펴는 기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2020년까지 이를 300억 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미즈노 CIO는 "ESG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결국 기업과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줄이는 리스크 요인"이라며 "특히 GPIF와 같은 연금은 당장의 수익률은 낮더라도 장기적, 포용적 성장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단기 실적만을 추구하는 투자보다 다양한 사회적 가치 및 사안을 고려한 장기적 관점을 고려하는 투자가 확대되는 추세다. 모건 스탠리의 올해 초 발표에 따르면, 여성 투자자의 84%가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투자 상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남성 투자자 가운데 이러한 관심을 가진 비율도 67%에 달한다. 여성 고용 비중 확대 등 성별 다양성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이것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있는 기업으로 판단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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