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로 넘어온 희대의 재판, 쟁점은?
▲메디톡스의 메디톡신(위)과 대웅제약의 나보타 제품군. 사진 = 각 기업
(CNB저널 = 김유림 기자)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톡스 균주 도용 소송전이 미국에서 국내로 옮겨와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자사의 보톡스 균주를 훔쳐갔다”고 소송을 제기했으며, 대웅제약 측은 “독자 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CNB가 2라운드로 접어든 진실 공방의 핵심 쟁점을 집중 취재해봤다.
“우리 것을 무단으로 도용했다” “터무니 없는 소리, 자체 기술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쉬지 않고 공방을 이어온 두 제약사의 입장이다.
지난해 9월 메디톡스 측은 “대웅제약이 메디톡신의 균주와 기술을 훔쳐 나보타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나섰으며, 대웅제약은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비방일 뿐”이라고 도용설을 일축했다. 메디톡신은 메디톡스가 지난 2006년 발매한 국내 최초의 보톡스이며, 나보타는 2014년 대웅제약이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한 보톡스 제품이다.
결국 양사는 지난 6월 미국 현지에서 민사 소송까지 벌였고, 미국 법원의 판결에 따라 국내로 옮겨와 법정 공방이 진행될 전망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법원이 “해당 소송의 재판을 한국으로 넘기겠다. 그러나 만약 한국에서의 소송이 적절치 못하면, 소송이 제기된 법정에서 다시 진행될 예정”이라고 결정문을 발표했기 때문.
메디톡스 측은 한국에서 준비되는 대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며, 사활을 걸겠다는 의지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CNB에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염기서열 중 독소 관련 염기서열 1만2912개 전부가 메디톡스 균주와 100% 일치했다.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에 근무했던 직원에게 금품을 건네고, 메디톡신의 균주와 제조 기술 노하우를 훔쳐 나보타를 만든 것”이라며 “한국에서 관련 소송을 빠른 시일 내에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웅제약 관계자는 “국내 토양에서 균주를 발견해 회사 자체 기술로 분리 동정, 제품화하는데 성공한 것”이라며 “메디톡신 보다 후발주자인 나보타가 미국 진출에 속도를 내자 이를 방해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메디톡스 측의 균주 전체 염기서열 공개 요구에 대해 “기업비밀이나 마찬가지인 부분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보톡스 전쟁 “왜”
결국 양측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갈등의 핵심은 보톡스를 만들 때 필요한 ‘균주의 탈취 여부’이며, 이를 증명하기 위한 방법은 ‘균주의 전체 염기서열’ 비교다.
▲미생물의 염기서열은 ‘자신을 나타내는 족보’나 마찬가지다.
염기서열은 살아있는 생물체의 모든 형태를 결정하는 DNA의 구성성분 중 하나인 염기들을 순서대로 나열해 놓은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DNA에서 가장 중요한 ‘유전자 정보’가 담겨있다.
인간의 경우 DNA에 30억쌍의 ‘염기’들이 존재하며, 배열된 순서는 99.9% 일치한다. 나머지 0.1%의 염기 배열 순서가 다르기 때문에 외모와 목소리, 생각이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보톡스 역시 살아있는 세균의 일종이기 때문에 DNA가 있으며, ‘염기서열’을 통해 종류를 구분한다.
최근까지 발견된 보톡스 세균은 A형(타입·type)부터 G형까지 총 7종이다. 사실 보톡스의 원래 명칭은 독성 물질인 보툴리눔 톡신(Botulinum Toxin)이다. 미국의 엘러간(Allergan)사에서 최초로 보툴리눔 톡신을 이용해 의약품을 만들었으며, 그 제품명이 ‘보톡스(BOTOX)’다. 즉 트렌치 코트가 버버리(영국의 Burberry사)로 불리는 것처럼, 보툴리눔 톡신으로 만든 모든 의약품을 ‘보톡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보툴리눔 톡신의 특징은 치명적인 독소다. 그러나 소량을 희석하면 다한증, 연축사경, 안검경련, 편두통 등 다양한 질환을 치료할 수 있으며, 2000년대 초반부터 피부 주름 개선용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의약품으로 출시가 된 것은 A타입과 B타입인데 A타입의 지속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대중화 돼 있다.
그럼에도 이를 제품화한 회사는 전 세계에서 9곳 뿐이며, 이 중 4개사가 국내 기업이다. 보톡스 의약품 제조법의 특허는 이미 만료가 됐지만,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툴리눔 톡신의 강력한 독소균은 생화학 무기로 사용될 우려가 있어, 전염병 예방법에 의거해 ‘고위험병원체’로 지정돼 있고, 국제적으로도 ‘생물무기금지협약’에 따라 국가간 거래가 금지돼 있다. 다시 말하면 보툴리눔 톡신 균주는 장소 이동 자체가 어렵고, 정상적인 경로로 구입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현재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9개 보톡스 중 5개 제품의 균주가 미국 위스콘신대학이 1920년대 미국 서부에서 발견한 A타입 균주에 기원을 두고 있다. 메디톡스는 1970년대 위스콘신대학에서 보톡스를 연구하던 양규현 박사가 들여온 균주를 이용해 ‘메디톡신’을 개발했다.
대웅제약 측은 2010년 대한민국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에 있는 회사 마구간 토양에서 보툴리눔 톡신 균주 A타입을 발견해 분리 동정에 성공했고, 2013년 전체 염기서열 중 독소 관련 균주의 염기서열을 젠뱅크(genbank)에 등록했다.
젠뱅크는 미국 국립보건원에 세워진 ‘유전자은행’이다. 전세계 모든 과학자가 DNA 염기배열 정보를 등록, 자유롭게 열어보고 분석할 수 있도록 공개된 덕에 유전공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됐다.
‘스모킹 건’은 전체 염기서열 정보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자사 균주를 훔쳐갔다고 주장하면서, 젠뱅크에 등록된 대웅제약의 독소 관련 균주의 염기서열이 자사의 것과 100% 일치한다는 점을 도용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 젠뱅크에는 두 기업의 균주를 포함, 총 6개의 균주가 독소 관련 부문의 염기서열이 99.99% 일치한다. 이 중 미국 위스콘신대학이 출처인 균주가 총 3개이기 때문에 사실상 4종류다. 대웅제약 이외에 모두 미국 서부에서 기원됐으며, 전체 염기 서열을 공개한 상태다.
특히 이들은 독소 관련 균주의 염기배치 순서는 일치하지만, 전체염기의 배열은 다르다.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균주를 기준으로 전체 염기서열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출처가 같은 메디톡스는 99.998% 일치했으며, ATCC19397는 96.70%, ATCC3502는 94.90% 일치한다. 즉 전체 염기서열에서 2~6%의 미세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들은 엄연히 다른 균주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전세계 보툴리눔 관련 학자와 전문가 모임 ‘통합 보툴리눔 연구협의회(IBRCC)’에 따르면, 보툴리눔 균주는 지리적 편향성을 보인다. 미국에서는 주로 A형, 유럽은 B형, 캐나다와 알래스카에서는 E형이 발견되며 F형의 경우 프랑스 및 스페인, G형은 남미에서 제한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주목해야할 부분은 동일 지역에서 같은 타입의 균주가 발견됐어도 시간이 다른 경우 각기 다른 염기서열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보툴리눔 톡신은 박테리아, 즉 미생물인 만큼 세월이 흐르면서 증식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족보’ 역할을 하는 염기서열이 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체 염기서열이 100% 일치되는 보툴리눔 톡신 균주가 발견됐다는 보고는 없다.
따라서 향후 한국에서 법정 소송이 진행될 경우, 두 제약사의 ‘균주 전체 염기서열 비교’가 공방전을 마무리 짓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해 메디톡스 관계자는 “대웅제약의 균주 전체 염기서열이 자사의 균주와 99.99% 일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만에 하나 대웅제약이 자체적으로 찾은 것이 사실이고, 1920년대의 균주와 전체 염기서열이 100% 일치한다면 과학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는 중요한 발견이다. 훔쳐간 게 아니라면 진작에 떳떳하게 공개하고 끝났을 일”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나보타는 불순물 함량은 낮추고 순도를 높일 수 있는 우리만의 특허 공법인 ‘하이퓨어테크놀로지’를 적용해 만든 것”이라며 “이미 선진국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했으며, 세계 각국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균주의 전체 염기서열을 공개하면 다른 경쟁사에서 악용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서 굳이 메디톡스의 근거 없는 비방전에 대응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질병관리본부에 제출한 신고서에 따르면 제약기업 휴젤은 부패한 통조림에서 보툴리눔 독소를 분리해 배양했고, 대웅제약은 토양에서 균을 채취했다고 보고했다. 보툴리눔 톡신은 맹독성 물질로 1g만으로도 100만명 이상을 죽일 수 있는 생화학 무기로 쓰일 수 있다. 그런데도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이는 업계 간 도용 논란을 떠나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된다.
김유림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