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47) 파묵칼레·에페수스] 고대로마 향기 물씬 나는 터키 도시들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1일차 (아제르바이잔 바쿠 → 터키 안탈리아 → 파묵칼레 도착)
오전 11시, 터키 안탈리아(Antalya) 행 항공기가 바쿠 공항을 이륙하자 곧 오른쪽 창밖으로 코카서스 산맥의 눈 덮인 연봉들이 펼쳐진다. 장엄한 광경을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본다.
놀라운 한류
옆 자리에 앉은 젊은 여학생 닐루파(Nilufar)가 기회를 엿보다 먼저 말을 걸어온다. 터키 안탈리아에 유학중인 아제르바이잔 여대생이다. K-pop의 열렬한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혹시 한국인 아니냐고 묻는다. 빅뱅, 슈퍼주니어 등 한국 남성 보컬그룹 멤버들의 그 복잡한 이름을 줄줄이 정확히 꿰어낸다. 한국 음악은 분위기를 북돋아 주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한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구입한 빅뱅 백팩과 CD세트를 꺼내어 보여주며 아제르바이잔 말고도 터키, 러시아에도 한류가 활발하다고 알려 준다. 놀라운 한류, 위대한 한류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라오디게아 교회
항공기는 세 시간 걸려서 안탈리아에 도착한다. 에게 해를 안고 있는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는 찬란하게 아름다운 날씨로 방문자를 환영한다. 이 지역을 ‘터키 리비에라(Riviera)’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공항 터미널에서 렌터카를 대여해서 서쪽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270km쯤 달려 데니즐리(Denizli)를 지나 파묵칼레(Pamukkale)를 5~6km 앞둔 지점에 있는 라오디게아(Laodicea) 교회 터에 들른다. 기독교 초기 소아시아(Asia Minor) 7대 교회 중 하나다. 고대 로마 도시에 서있던 교회는 기둥 몇 개와 주춧돌만 남아 세월을 얘기해준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는 신약성서의 한 권으로 귀에 익은 골로새(Colossae) 마을과 교회 터도 있으니 가히 파묵칼레는 앞으로 나흘 간 이어갈 터키 여행의 예고편 같은 곳이다. 파묵칼레 숙소에 도착할 즈음에는 완전히 어둠이 깔렸다. 온 마을에 유황 냄새가 가득 찬 것으로 보아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한다.
▲히에라폴리스에 있는 원형 극장. 사진 = 김현주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 고대 로마 도시. 사진 = 김현주
▲터키 리비에라 안탈리아에 항공기가 접근한다. 사진 = 김현주
12일차 (파묵칼레 → 에페수스)
파묵칼레 풍경
지난밤에는 어두워서 몰랐으나 이 마을을 뒤덮고 있는 유황 냄새는 마을 바로 뒤 파묵칼레 테라스(Travertines 또는 Tabernacle)에서 오는 것이었음을 확인한다. 광물질이 풍부한 뜨거운 물이 용출하여 칼슘(석회암)과 화학 작용을 일으켜 나타나는 지질 현상이다. 고대 도시와 유황 테라스의 조화가 어우러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마침 버스 수십 대에 나누어 타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들이닥치더니 단체로 족욕(足浴)을 즐기기 시작한다. 누군가 출입금지 팻말을 넘어 절벽에 다가섰다가 경비원의 제재를 받기도 한다.
▲라오디게아 고대 로마 도시 발굴터. 사진 = 김현주
▲파묵칼레 마을 전체에는 유황 냄새가 가득하다. 사진 = 김현주
히에라폴리스
파묵칼레 로마 유적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볼거리는 아고라 터와 아폴론 신전 등이 있지만 단연 으뜸은 로마 원형 극장이다. 1만 2000석 원형 극장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사라졌을 수많은 검투사들과 높은 언덕 위 원형 경기장 건축에 쓰일 돌을 날랐을 노예들의 땀과 눈물을 떠올려 본다. 히에라폴리스 뒤 외딴, 그러나 양지 바른 언덕 위에는 성 필립(St. Philip) 순교 터와 무덤이 있다.
성모 마리아 하우스
파묵칼레에서 에페수스까지는 약 180km이다. 에페수스 외곽 외딴 산언덕 위 도시와 에게 해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는 마리아 하우스부터 먼저 찾는다. 예수가 세상을 떠난 후 마리아가 고향을 떠나와 은둔하며 지냈다고 여겨지는 곳이다. 기독교에서 성모 마리아의 말년 거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했지만 1961년 교황 요한 23세가 이곳을 성지로 공식 선포함으로써 논란을 잠재웠다. 이후 여러 교황의 잇따른 방문은 이곳의 정통성을 한층 든든히 해 주었다.
채플과 작은 거소, 마당 안 샘물, 그리고 그 옆에는 소원의 벽이 있다. 일명 ‘마리아 샘물’은 병을 고치고 불임을 치료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빈 물통을 가져와 가득 담아가고, 소원의 벽에는 전 세계 방문자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적은 수많은 애절한 사연의 글들이 빽빽이 꽂혀 있다.
▲에페수스 고대 로마 도시 터. AD 1세기부터 5세기까지 융성했던 도시가 있던 곳이다. 사진 = 김현주
▲마리아 하우스. 예수가 세상을 떠난 후 마리아가 고향을 떠나 은둔했다고 알려진 곳. 사진 = 김현주
마리아 하우스는 도시의 쇠락과 함께 폐허로 버려졌다가 1891년 나사렛 신부들의 탐사 이후 성지로 거듭났는데, 나사렛 신부들의 마리아 하우스 발견과 관련된 일화가 있어서 여기 소개할까 한다.
1878년 독일 수녀 카트리네 에머리히(Catherine Emmerich)가 ‘성모 마리아의 생애’라는 책을 펴내면서 주목을 끌었다. 책 내용 중에는 마리아 집 위치와 집 모양 등이 기술되어 있는데 저자는 꿈에서 계시 받은 것에만 기초했을 뿐 터키 에페수스는 전혀 몰랐다. 훗날 답사반이 와보니 책에서 기술한 것과 똑같은 집이 여기 있었다고 한다.
찬란했던 고대 로마 제2도시
산 아래 에페수스 고대 도시 유적지를 찾는다. 대략 AD 1세기부터 5세기, 서로마 멸망까지 융성했던 도시가 있던 곳이다. 예수 사후 그의 제자와 사도들이 전도 활동을 시작했던 에페수스는 AD 1~2세기 초 전성기 때는 인구 40만 명에 육박하여 로마에 이어 제2도시로 성장했으나 로마 멸망 후 잊혔다가 19세기 중반 이후 고고학 발굴 작업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마리아 샘물 벽에는 애절한 사연의 글들이 빽빽이 꽂혀 있다. 사진 = 김현주
▲‘로마는 어떤 나라였기에 이곳에 이렇게 멋진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을까?’ 에페수스 고대 로마 도시 터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사진 = 김현주
큐라테스 애브뉴(Curates Avenue)가 옛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 지르고, 거리 양 옆으로는 음악당(Odeon), 신전 등이 이어진다. 테라스 하우스는 로마 시대 부자들의 집으로서 내부에는 프레스코 벽화와 모자이크 타일 등이 거의 온전하게 발굴되어 있다.
거리가 끝나는 곳 작은 광장에 있는 셀수스 도서관(Celsus Biblioteca)은 전면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워 감탄한다. 그곳에서 이어지는 마블 애브뉴(Marble Avenue)를 따라 가면 만나는 2만 4000석 규모의 초대형 원형 경기장은 에페수스 방문의 절정을 이룬다. 오늘 오전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에서 봤던 것의 두 배가 넘는 규모이다.
에페수스는 세계 최대 고고학 발굴지로서 현재까지 15% 정도만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하니 한때 이 자리에 있었던 고대 로마 도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고대 유적지에서 5~6km 떨어진 시내로 나와 성 요한 교회 방문을 끝으로 오늘 일정을 마친다. 로마가 어떤 나라였기에 이곳에 이렇게 멋진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을까? 아직도 의문은 꼬리를 문다.
(정리 = 김광현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