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유례없는 지진 공포가 한국을 휩쓸고 있다. 지진으로 건물 일부가 부서지고, 물이 터져나오는 광경을 사실상 한국인은 난생 처음 봤기 때문이다. 지진 같은 무서운 천재지변을 당하면 인간은 공포에 떨고 그 공포에서 도망치려 한다. 아마 지금 포항, 그리고 작년에 지진 피해를 당한 경주 사람들의 마음 상태가 그럴 것 같다.
한국인은 그간 “우리는 지진 안전 지대에 산다”고 생각해왔다. 지진은 그저 남의 나라 일이었다. 일본에 지진이 나면 “쌤통이다”라는 식의 강건너 불 구경하듯 하는 몰지각한 한국인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 불이 강의 이쪽에서도 붙는 시대가 됐다.
여기서 지진의 경제학을 한번 생각해본다. 미국 최고의 지진 지대라는 LA에서 2년여를 살아봤지만 지진에 대한 공포를 느껴본 적은 없다. 지진이라는 게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10~20년이란 긴 사이클을 두고 반복되기 때문이다.
지진 일어나는 땅에도 또 몰려와 사는 인간의 심리
미국에서 읽은 투자 가이드 책 중에 캘리포니아의 LA나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사람들을 비꼬는 구절이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지진이 나면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여기는 도저히 인간이 살 데가 못돼’라고 기겁하며 미국의 동부 등 지진 안전지대로 달아나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경제가 쑥밭이 되는 듯 하지만, 대지진이 휩쓸고 간 다음에 땅이 안정되면 슬금슬금 사람들이 돌아와 어느덧 원상복귀가 되는 현상”을 비꼰 내용이었다. 그렇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아주 무서운 사태가 벌어져도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옛날의 실수를 되풀이하다가 다시 또 일을 당하곤 한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었다.
▲11월 16일 오후 경북 포항시 장량동 한 필로티 구조 건물 1층 기둥이 뼈대만 드러내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일본 열도에서야 지진 가능성을 숙명으로 여기고 사는 수밖에 없지만, 땅 덩어리 넓은 미국에서는 지진 지대 아닌 곳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지진 지대를 찾아들어가 사는 사람들에겐 이런 비아냥도 가능해진다.
어쨌든 이런 특징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라면 ‘지진 공포를 이용한 투자’라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LA나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지진이 일어난다면 현지의 부동산 값이 공포 때문에 폭락할 것이고, 그 폭락한 값에 집이든 상가든 사놓으면 어차피 인간들은 다시 공포를 잊고 슬금슬금 경치좋고 날씨좋은 캘리포니아로 몰려들 것이기 때문에 ‘부동산 차익’을 노려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지진 사이클에 따른 투자 작전이 한국에서 가능할까를 한번 생각해본다. 예컨대 이번 지진 사태로 심리적 타격을 받을 게 뻔한 포항 지역의 부동산 등을 평소보다 싼 값에 사들인다든가 하는 투자 전략이다. 포항, 울산, 경주 등으로 이어지는 경북 동해안 일대엔 어차피 대단위 공업-주거단지가 조성돼 있어서, 이번 지진 충격 정도로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진 많은 경북의 해안에 원전이 거의 모두 몰려 있는 이유?
그러나,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미국식의 ‘지진 경제학 잔머리 굴리기’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경상 남북도의 동해안 남부 지역은, 한국의 대표적인 지진 발생대이면서 동시에 여기다가 또 한 가지 추가 사항으로 거의 모든 원전이 몰려 있는 ‘원전 벨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내 원자력발전소들의 위치.(이미지=한국원자력산업회의)
그린피스 등 환경보호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한국처럼 좁은 땅에 많은 원전을 지어놓고, 그것도 대단위 인구 밀집지에 인접해 지어놓은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한국의 원전들은 왜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경상남북도의 해안을 따라 지어진 것일까? 인적 드문 해안선이라면 전라남북도에도 많고, 강원도에도 적지 않은데 왜 하필이면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고 그에 따라 인구도 많이 몰려살 수밖에 없는 경상남북도 해안이었을까?
그 단서는 이런 문구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5.16쿠데타 이후 공화당에서 만든 경북 발전특위가 경북 출신 향토 재벌을 육성 [중략] 삼성-럭키-효성 같은 향토 기업이 생겨난 것. (김욱 ‘아주 낯선 상식’ 122쪽)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이른바 ‘혁명 주체 세력’이 민간 정치인의 활동을 중지시킨 군정 하에서 몰래 창당시킨 공화당 안에 ‘경북 발전특위’라는 별난 조직이 있었고, 집권당의 이런 노력이 현재 한국을 쥐고 흔드는 재벌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는 주장이다.
자랑스러운 원전을 집약적으로 건설한 자랑스러운 땅?
사실 1960년대 자본-기술이 거의 전무한 한국 상황에서, 차관을 통한 자본 동원력을 유일하게 갖춘 정부와 집권당이 “이 지역을 부촌으로 만들자”고 작정하면 못 할 일이 없는 게 당연했다. 경북 발전특위가 경북에 자본을 투하하는 과정에서 원전 역시 그런 기획과 과정을 거쳐 이뤄졌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원자력발전은 ‘청정 에너지’로 홍보되던 시절이었다.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주로 미국측 입장) 또는 대동아전쟁(일본측 입장)의 말기에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해 수십만 명을 죽고 병들게 만든 뒤, ‘죽음의 핵’이 ‘청정 원자력발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일본 외무성 출신의 미국 전문가 마고사키 우케루는 자신의 저서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에서 이렇게 해석한다.
원폭 반대를 제압하자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중략] 원자력을 핵무기가 아니라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는 선언은 무척 매력적으로 들린다.(190쪽)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이후 원자폭탄의 공포에 인류가 떨었을 것이고(일본인들에게는 원자폭탄이라는 사실이 언론통제로 1950년 이후에야 알려지긴 했지만), 또한 일단 폭탄이 개발되고 실제 사용까지 됐으니, 원자폭탄을 미국에서 개발한 전문 학자 집단은, 아마도 휴업 상태에 들어가기 쉬웠을 것 같다. 계속 이익을 창출하려면 뭔가 새로운 일을 벌여야 했고, 그것도 기왕이면 평화적인 사업이라면 더욱 좋았을 게다.
마고사키 우케루에 따르면 미국은 그 활로를 이른바 ‘청정 에너지원으로서의 핵’으로 찾아나갔다는 것이다. "원자력이 발전용으로 우수하니까 원자력발전이 시작됐다"고 한국인은 배웠지만, 우케루의 해석에 의하면 반대로 "사악한 원자력에 천사표 옷을 입힌 게 원자력발전소"라는, 즉 전후순서가 뒤바뀐 채로 우리가 교육-홍보 당했다는 것이다.
매카시즘과 원자력발전소
지금 입장에서 보면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 방사성 물질은 그 유해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 수십만 년이 걸리고, 그 수십만 년이라는 기간 동안 방사성이 유출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관리돼야 하므로 그 전체 비용이 다른 발전 단가보다 비싸면 비쌌지 절대 값싸지 않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히로시마 이후’의 시점에서는 ‘클린 에너지 원자력’이라는 구호가 미국의 주도로 전세계에 퍼져나갔을 것이며, ‘미국의 나라’인 한국은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그 좋은 원자력발전소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또 천문학적인 건설비가 투하되니, ‘경북발전특위’ 같은 별난 조직은 아마도 경북 해안의 입지 가능성 조사부터 시작했을 듯도 싶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현재 보는 ‘지진층 위의 원자력 밀집’이라는 지극히 기가 막힌 한국적 현상이다.
더구나 매카시즘(맹목적 반공주의)이 휩쓸던 미국의 1950년대를, 영남대 박홍규 교수는 “원자폭탄과 원자력에 대한 반대가 반국가적인 것으로 보인 시대”라고 진단한다.(‘메트로폴리탄 게릴라’ 225쪽)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반대는 ‘빨갱이’로 몰리는 시대 분위기에서, 지금 기준으로 치면 수 조, 수십조 원의 건설비가 드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원자력 관련 학자-기술자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을 법도 싶다.
미국과 일본에서 지진 경제 사이클이 가능하지만 한국에선 단 한번이면 그냥 종말?
각설하고, 다시 처음에 언급했던 ‘지진 사이클의 경제학’으로 되돌아가서 한국 상황을 보면, 영토가 넓고 또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에는 내진 설계가 잘 돼 있어서 대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도 슬금슬금 경제가 회복될 수 있는 미국, 또 상시적으로 지진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내진 설계가 기본인지라 지진 때문에 폭망하지는 않을 듯한 일본에 비한다면, 한국 경북의 상황은 참으로 갑갑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좁은 땅에 공단(인구밀집지)과 원자력발전소(위험시설)를 경북발전위원회 같은 별난 기관들이 참으로 잘도 지어 놓았는데, 하필이면 그 땅이 지진 위험지대인 데다, 내진 설계는 거의 되어 있지 않다니….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에 대한 조사 자료.(이미지=위키피디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현장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다량 검출됐다는 사실을 보면, 한국보다 땅 면적이 98배나 넓은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보다 3.7배나 넓은 일본 땅에서는 지진이 일어나든, 원전이 터지든 그나마 피난 갈 땅이 있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에선 원전 폭발 사고가 나도 시간이 흐르면서 경기 회복 사이클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비좁은 땅에 지진과 원전이 한군데 엉켜 있는 한국에선 지진으로 인하든 아니면 그밖의 어떤 원인으로든 간에, 일단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나면, 피난 갈 곳도 없이 남한 전역이 충격과 공포-마비의 현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상태인데도, 최근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재개를 놓고 벌어진 공론화 과정에서, 이른바 보수 언론들은 “원전 공사를 중단하면 나라가 결단난다”는 식으로 주장을 해댔으니, 참으로 이 나라의 현실은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이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이, 경북발전위원회로 대변되는 '나만 잘살면 돼' 현상의 끝, 즉 다른 지역은 결단나도 좋으니 우리 지역에만 이권을 몰아주면 된다는 지역이기주의-배금주의의 끝이라면, 도대체 한국인의 앞길에는 어떤 미래가 놓여져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최영태 발행인-편집국장 dallascho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