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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48) 페르가몬] 호메로스 고향이 여기? 터키에서 만난 그리스 유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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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2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11.20 10:28:05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3일차 (이즈미르 → 베르가마 → 트로이 → 에세아밧 도착)

터키 제3의 도시 이즈미르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터키 제3의 도시, 에게 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이즈미르를 지난다. 호머(그리스어로는 호메로스)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에페수스 북서쪽 약 120km 지점이다. 다르다넬스 해협을 만나는 차낙칼레까지는 200km를 남긴 지점이다. 터키에서 가장 서구화된 도시라지만 운전자들의 예측 불가한 행동 때문에 운전대를 잡은 나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신없이 분주한 올드 타운 한복판에 있는 스미르나 아고라 터를 찾는다. 5000년 된 정통 고대 로마 도시가 섰던 이 자리에도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예쁜 로마 도시 베르가마

두 시간 남짓 차를 더 달려 베르가마(Bergama, 그리스어로는 Pergamon)에 들른다. 1세기에 세운 거대한 레드 바실리카 교회가 시내 한복판에 서 있다.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소아시아 7대 교회 중의 하나다. 마을 뒤 높은 산 정상에는 아고라 터가 있다. 아테나 신전, 극장, 제우스 제단, 그리고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결혼 선물로 모든 책을 줬다는 것으로 유명한 페르가몬 도서관이 이곳에 모여 있다. 사전 조사가 부족한 상태로 고속도로를 지나치다가, 어디선가 봤던 익숙한 지명에 이끌려 계획 없이 들른 도시이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손에 잡힐 듯 예쁜 도시가 발아래 내려다 보인다. 

▲다르다넬스 해협의 물결이 거칠다.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합해져 좁은 해협에 몰아치기 때문일까. 사진 = 김현주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기 위해 부두에서 카페리를 탔다. 사진 = 김현주

한 때는 그리스 땅

계속 서쪽으로 차를 달린다. 왼쪽(남쪽) 에게 해 한 가운데 그리스 영토인 레스보스 섬이 멀리 보인다. 이 섬뿐만이 아니다. 이 부근 에게 해에 떠있는 섬들 중에는 그리스 섬들이 많다. 로마 제국이 확장하기 전까지 터키 남서부 에게 해 연안은 대부분 그리스 땅 아니었던가?

한때 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EU 입경을 위해서 터키 해안에서 이 섬으로 건너갔다. 가장 가까운 곳은 터키 해안에서 불과 10km 남짓이다. 시리아 난민의 고난의 상징, 세계인을 울렸던 세 살 배기 쿠르디 어린이도 부모와 함께 이 섬으로 향하던 배가 난파된 후 익사체로 발견됐다.

미래의 대국 터키

가도 가도 끝없는 대평원이다. 남한의 8배에 달하는 방대한 영토와 8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터키는 역시 VISTA(Vietnam, Indonesia, South Africa, Turkey, Argentina) 국가가 맞다. 그러나 EU는 이 잠재력 큰 미래 대국 터키의 EU 가입을 한사코 거부한다. 만약 터키가 EU 국가가 된다면 오히려 언젠가는 거꾸로 이 나라가 유럽을 먹여 살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는 생각을 하는 사이 트로이를 지난다. 그리고는 곧 차낙칼레 페리 부두다. 에게 해, 즉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다르다넬스 해협이 가장 좁아지는 곳이다. 

▲갈리폴리 터키군 승전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 = 김현주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카페리는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해협을 15분 걸려 건너 유럽 대륙 킬릿바히르에 닿는다. 바람이 매우 드세다.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합해져 좁은 해협에 몰아치기 때문이다. 가볍지 않은 내 몸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아직은 해가 조금 남아 있어서 터키군 승전 전적비를 찾는다. 낮은 구릉으로 이어지는 갈리폴리(Gallipoli, 터키어로는 Gelibolu)는 아름답다. 그러나 흑해로 통하는 너무도 중요한 길목에 입지한 까닭에 역사의 소용돌이가 그칠 날이 없었나 보다. 송림으로 가득 찬 풍광명미한 이곳이 한 세기 전, 전대미문의 참혹한 전쟁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14일차 (에세아밧 → 갈리폴리 → 이스탄불 도착)

참혹했던 갈리폴리 전투

새벽 동트기 전에 잠이 깨어 아침 드라이브에 나선다. 에세아밧 마을에서 약 10km 지점, 겔리볼루(갈리폴리) 반도의 서쪽 끝, 바닷가에 있는 안작 코브(ANZAC Cove, Anzak Koyu)를 찾는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머나먼 이곳까지 불려와 사라진 호주, 뉴질랜드 연합(ANZAC) 군의 영혼을 위로한다.

세계 1차 대전 중이던 1915년, 터키를 분할 통치해 이슬람 세계를 장악하려던 영불 연합군과 나라의 명예와 독립을 위해 대항한 터키군이 벌인 전쟁(Gallipoli Campaign, Battle of Dardanelles)에 호주와 뉴질랜드가 참전했던 것이다. 영국군 2만 2000, 프랑스군 2만 7000, 호주군 8000, 뉴질랜드군 2400, 인도군 1700, 그리고 터키군 5만 70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전쟁이었다. 해마다 4월이면 전몰자들을 위한 추모제가 열린다고 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전쟁이 끝나고 약 20년이 지난 1934년 아타튀르크가 “이제는 친구의 나라가 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한다”고 쓴 추모비가 서 있다. 참으로 허망한 전쟁이었다. 암울했던 전쟁터는 이제 깔끔한 추모 공원과 묘역으로 정돈돼 있다. 철썩거리는 파도만이 그날의 아픈 사연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참혹했던 갈리폴리 전투의 현장.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전쟁이 끝나고 “이제는 친구의 나라가 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추모비가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다시 이스탄불

오전 9시 에세아밧을 출발, 마르마라 해를 오른쪽(동쪽)에 두고 북행을 시작한다. 이스탄불까지 330km, 이스탄불 도심의 교통체증을 힘들게 지나 공항에 렌터카를 무사히 반납하고는 긴 안도의 숨을 내쉰다. 거대한 터키의 남서쪽 해안 일부를 살짝 스친 것에 불과했지만 안탈리아에서 이스탄불까지 3박 4일 동안 1300km를 달렸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길을 따라 이어지는 초기 기독교 유적을 따라 다녔고, 한편으로는 고대 로마 제국의 흔적을 찾아다닌 길이기도 했다. 터키는 그만큼 다양했다.


15일차 (이스탄불 → 카파도키아, 괴레메 왕복)

땅 넓은 터키 여행 팁

이스탄불 사비하 괵첸 공항에서 아침 7시 15분 카이세리행 페가수스 항공기에 오른다. 한 시간 20분 뒤 도착한 카이세리 공항에는 눈보라가 몰아친다. 차량을 렌트해 이동을 시작한다. 이 날씨에 드넓은 카파도키아 지역을 탐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렌터카다. 여기뿐이 아니다. 땅덩어리가 넓은 터키는 다행히 도로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서 렌터카 이용은 편리하다. 다만 대부분 렌터카가 수동 변속장치 차량이라는 점은 참고할 일이다. 

▲갈리폴리 반도의 서쪽 끝, 바닷가에 있는 안작 코브를 찾았다. 사진 = 김현주

▲이스탄불로 귀환하며 다음 여행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진 = 김현주

동굴 또 동굴

눈 날리는 황량한 벌판을 달려 카파도키아/괴레메(Cappadocia/Göreme)로 향한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려고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이 험한 광야에 찾아들었다. 위르귀프 옛 그리스 마을에서 동굴 주거지와 교회(수도원)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마을 복판에는 원조 터키탕이 있고 와인 저장소도 있다. 너무도 다양한 터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란다.

곧 기암괴석 지대가 시작된다. 낙타 바위가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곧 성 바오로 암굴 수도원이 나타난다. 지루할 정도로 많은 동굴 교회를 만나는 이곳에는 200여 개의 지하 도시가 있다고 한다. 그리스 북부 메테오라 다음으로 동굴 교회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참으로 기이한 풍경은 점입가경 끝이 없다. 카파도키아 마을 한 복판에는 오르타히사르(Ortahisar, 또는 Uchisar) 성(城)이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풍경을 압도하며 서 있다. 이 거대한 바위산도 사방으로 수십 개의 동굴 교회를 품고 있다.

을씨년스런 풍경

오늘은 날씨가 무척 춥다. 나는 오늘 렌터카를 운전하며 이 기묘한 풍경을 탐방하고 있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다. 하루 종일 눈발이 날린다. 모든 서비스 업소는 당연히 겨우내내 파장이다. 한국으로 치면 입춘, 우수가 다 지난, 봄의 문턱이지만 여기 터키 중부 고원은 아직 한겨울이다. 지난밤은 영하 12도였다고 한다. 이스탄불로 귀환할 시간이다. 항공기는 눈 덮인 카이세리 공항 활주로를 간신히 박차고 오른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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