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한국타이어 vs 개미주주 ‘2라운드’…아트라스BX 임시주총 열린다
대주주 맞선 ‘개미’들…계란으로 바위 뚫을까
▲한국타이어 오너일가가 대주주인 아트라스비엑스가 상장폐지 문제를 놓고 소액주주들과 대립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사진 = 한국타이어
(CNB저널 = 도기천 기자) 한국타이어그룹의 자회사인 아트라스비엑스(BX)가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임시주주총회 소집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들어 대기업과 ‘개미’들 간의 첫 분쟁이 주총에서 승부가 가려지게 됐다. 과연 이 회사의 운명은 어찌될까.
아트라스비엑스는 지난 6일 열린 주주총회소집허가 소송의 1차 심리에서 주주들의 요구를 전부 수용해 임시주총을 열겠다고 밝혔다.
소액주주들이 제시한 주총 안건은 자사주 소각, 주식 액면 분할, 코스피로의 거래소 이전 등 3가지다. 앞서 소액주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은 지난달 25일 소액주주 28인 명의로 아트라스비엑스를 상대로 대전지방법원에 주총 소집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었다.
다만 회사 측은 소송 때문에 요구를 수용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지난 9월 12일 일부 주주들의 주총 소집 요구를 받은 후 즉시 안건의 적법성에 대해 검토했다”며 “검토 결과 안건 중 자사주 소각 건은 상법상 주총 사항이 아니라 이사회 결의사항이므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이를 통보하고 재차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갑자기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주총을 열기로 한 이유에 대해서는 “일부 부적법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안건을 전부 수용했다”고 밝혔다.
▲CNB가 단독입수한 아트라스비엑스가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 “소수주주들의 주총소집요구가 일부 부적법성이 있음에도 주주들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요구를 수용했다”고 적혀있다.
반면 소액주주들은 “법 규정에 따라 주총 소집을 요구했지만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소송이 제기되자 마지못해 수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법 제366조(소수주주에 의한 소집청구)에 따르면 발행주식총수의 3%이상에 해당하는 주주는 회의 소집 목적을 이사회에 제출해 임시총회 소집을 요구할 수 있다. 이번에 주총 소집을 요구한 주주 28명의 주식수를 합치면 총 30만195주로 이는 전체 915만주의 3.28%에 해당된다.
회사 측은 11월 15일 임시주총을 거쳐 12월 27일 임시주총을 열 예정이다.
‘그들’ 위한 ‘제로썸 게임’
아트라스비엑스 사태는 자진 상장폐지와 공개매수 과정에서 소액주주들과 대주주 오너일가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사안이다.
발단은 작년 3월 회사가 ‘자진 상장폐지’를 선언하면서 비롯됐다. 그해 3월과 5월 두 번에 걸쳐 소액주주들의 지분 58.43%를 사들여 자사주로 만들었다. 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자사주와 대주주의 지분을 합쳐 95%가 되면 상장폐지를 신청할 수 있다. 대주주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지분(31.13%)과 자사주로 만든 58.43%를 합쳐 89.56%가 됐지만, 95%에는 못미처 상폐 추진이 잠시 중단됐었다.
하지만 지난 6월 코스닥 상장 규정이 개정돼 ‘자사주가 소액주주의 주식수에서 제외’되면서 다시 상폐를 향해 가고 있다.
소액주주가 보유한 주식수가 전체 유동주식수(발행주식수)의 20% 미만일 경우, 한국거래소는 직권으로 해당기업을 관리종목 지정 또는 상장폐지 할 수 있다.
기존대로라면 아트라스비엑스가 작년에 개미들로부터 사들여 자사주로 만든 58.43%는 소액주주 지분에 해당되지만, 바뀐 규정을 적용하면 이 지분이 소액주주 주식수에서 제외된다. 자사주를 제외한 소액주주 지분은 현재 10.44%다.
따라서 이대로라면 상장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상폐가 진행되면 소액주주들은 작년 공개매수가격인 주당 5만원 정도에 정리매매를 당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대전시 대덕구 아트라스BX 본사 전경. 사진 = 아트라스BX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폐가 예정된 종목’으로 알려지면서 거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루 거래량이 1000주(9일 종가기준 4930만원)도 되지 않는 날이 한달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최근 1년 새 주가도 10%이상 빠졌다.
배당도 크게 줄었다. 매년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배당률)이 10%를 웃돌았지만 상폐가 시작된 지난해에는 2.25%에 불과했다. 이는 대주주 일가가 상폐 후에 배당률을 늘리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에 소액주주들은 상폐를 반대하며 행동에 나선 상태다.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관계기관에 민원을 제기하고, 사측에는 상폐 진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임시주총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회사 측은 예정대로 상폐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대주주인 한국타이어의 관계자는 CNB에 “현재로서는 회사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셀프 상폐’ 진짜 이유는?
이번 사태는 한쪽이 이득을 보면 한쪽은 손실을 입게 되는 제로썸(zero-sum) 구조라는데 문제가 있다. 국내 2위, 세계 6위 자동차용 축전지 제조업체인 아트라스비엑스는 매년 평균 영업이익이 600억원을 웃돌고 있지만 주가는 5만원 수준이다.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측은 기업가치 평가방식인 에비타멀티플(EV/EBITDA multiple) 방식으로 시장평균치인 10배를 적용해 주식가치를 추산하면 최소 주당 15만원 이상은 된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장폐지에 따른 정리매매를 현재 주가인 주당 5만원에 진행하게 되면 회사는 최소 670억원~최대 1500억원의 이익을 보게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반면 소액주주들은 “상장폐지가 현재 주당 가격으로 이뤄진다면, 대주주의 이익분만큼 소액주주는 손실을 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회사가 ‘셀프 상폐’를 진행하려는 데는 대주주인 한국타이어그룹 오너일가와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현재 아트라스비엑스의 지분구조는 한국타이어그룹 지주회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31.13%)와 자사주(58.43%), 소액주주(10.44%)로 구성돼 있다.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는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이 23.59%, 그의 장남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이 19.34%,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19.91%, 장녀 희경씨가 0.83%, 차녀 희원씨가 10.82% 지분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총수 일가→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아트라스비엑스’로 연결된 지배구조다.
따라서 예정대로 12월 27일 주총이 열리게 되면 이 자리는 한국타이어 오너일가와 회사 경영진의 도덕성을 질타하는 성토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소액주주들은 ▲대주주 일가의 일감몰아주기 관련 불법성 여부 ▲감사의 독립성을 확인하기 위한 회계장부 열람 추진 ▲소수주주 손실이 대주주의 이익이 초래되는 현 상황을 방치한 경영진 및 이사에 대한 배임여부 등을 주총장에서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트라스비엑스가 법원에 제출한 주주총회 일정표. 12월 11일 주주명부를 확정해 27일 임시주총을 열 계획이다.
하지만 아트라스비엑스 측은 ‘회사 이익이 주주 이익보다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회사 측은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상법상 배임은 경영진의 잘못으로 회사에 손실이 발생했을 때 성립하는 것이지, 소수주주들의 주식가치가 감소했다고 성립되는 성격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새정부 들어 ‘주주권’ 첫 실험대
이번 사태는 정부가 대주주 일가가 자사주 등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규제하려는 때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국회에는 기업 분할 때 자사주를 의결권 확대에 쓸 수 없도록 하는 법안들이 제출돼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총수 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대 등을 막기 위해 국회와 협의해 법·제도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상폐 요건을 따질 때 자사주를 소액주주에서 제외시킨 거래소 규정 자체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자사주가 대주주의 범주로 넘어가게 되는 효과가 발생해 오너 일가를 견제할 수단 하나가 상실됐다는 점에서다.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관계자는 CNB와 만나 “개미주주 지분 10.44%로 주총에서 이길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과정을 통해 경영진과 대주주 오너일가의 부도덕성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로 삼겠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인 줄 알지만 그래도 그 바위에 주주들이 있다는 이름을 새기겠다”고 말했다.
도기천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