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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박정희 동상 논란…긴박했던 12일간의 기록

CNB 밀착취재…크고 작은 사건들 단독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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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2호 도기천 기자⁄ 2017.11.20 14:18:06

▲이봉수 마포구의원이 11월 7일 박정희기념·도서관 앞에서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의원을 시작으로 성명, 릴레이시위, 항의방문 등이 이어졌다. 사진 = 도기천 기자

(CNB저널 = 도기천 기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하 재단)이 서울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된 보수-진보진영 간 갈등이 11월 13일 동상 기증식을 끝으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당초 재단 측은 이날 동상을 세울 예정이었으나 파장이 커지자 서울시 심의를 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동상심의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CNB가 여러 날 밀착취재를 통해 긴박했던 지난 12일 동안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단독공개한다.

이번 동상 파문은 11월 2일 재단 측이 한 언론에 박 전 대통령의 탄생 100년이 되는 날(13일) 박정희기념·도서관(이하 기념도서관)에 4.2m 높이의 청동동상을 세운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이 동상은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대표 박근 전 유엔대사)이라는 시민단체가 재단에 기증한 것으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든 조각가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이 제작해 경기도 고양에 보관 중인 높이 4.2m 크기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사진 = 연합뉴스

문제는 박 전 대통령 생가 부근(경북 구미)에 동상을 세운 2011년과는 상황이 180도 다르다는 것. 당시는 구미시가 동상 건립을 적극 추진한데다, 생가라는 의미가 더해져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동상을 세우려는 장소는 서울시 소유의 공공용지라서 시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동상 예정지로 지목된 기념도서관은 김대중 정부가 1999년 ‘역사 화해’ 차원에서 재단에 국고보조금 208억원을 단계적으로 지원하면서 설계됐다.  

이후 10년 넘게 역사성, 위치, 비용, 부지 문제 등을 놓고 논란을 빚다 2010년경에 이르러서야 ‘박정희 기념·도서관’으로 용도와 명칭이 확정돼 첫 삽을 떴다. 시는 기념관을 허가하는 대신 공공도서관 용도를 병행토록 했으며, 부지는 재단에 넘기지 않고 시유지(市有地)로 유지했다. 대신 일정기간 무상임대 형태로 부지를 빌려줬다. 

▲마포구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11월 10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박정희기념·도서관 앞에서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신종갑 마포구의원 제공

CNB가 기념도서관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토지는 서울시, 건물은 재단 소유였다. 시는 2014년 부지를 재단에 매각하려했지만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2010년 제정된 ‘서울특별시 동상·기념비·조형물의 건립 및 관리기준 등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시 소유의 공공용지에 동상·기념비·조형물을 건립하고자 하는 경우, 시에 사업계획서(동상건립계획)와 사후관리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시는 이 계획서를 놓고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해 일부 보수단체들은 이 동상을 서울 광화문광장에 건립하려했지만 시가 불허해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나홀로 시위→릴레이로 이어져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11월 7일 이봉수 마포구의원이 기념도서관 앞에서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이때부터 관할기관인 마포경찰서 상암치안센터는 주변 순찰을 강화하는 등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이 지역 국회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마포을)이 11월 12일 당원 및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박정희기념도서관을 방문해 동상 건립을 규탄하고 있다.(위) 이날 같은당 정청래 전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조형물 앞에서 동상 반대 손팻말을 들었다. 사진 = 신종갑 마포구의원 제공

CNB가 8일 이 의원의 항의시위와 동상건립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심층기사를 보도(관련기사: [생생르포] ‘박정희 동상’ 상암동 설치 논란…기념관 부지 논란 재점화)했고, 이후 JTBC, 연합뉴스, 오마이뉴스 등 유력언론들의 이 의원 인터뷰가 이어졌다.

10일에는 마포구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9명이 기념도서관 앞에서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늦가을비 속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국민적 합의 없이 시유재산 안에 불법으로 동상을 건립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며 서울시가 동상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또 민주당 마포을 지역위원회는 12일과 13일에 걸쳐 동상건립에 반대하는 당원집중행사를 기념도서관 앞에서 연다는 내용을 지역당원 전원에게 문자 발송했다. 지역위원장인 손혜원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동상설립의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구의원들은 이봉수 의원의 뒤를 이어 릴레이 1인시위에 들어갔다. 

▲이봉수 마포구의원이 11월 12일 밤 박정희기념·도서관 앞에서 동상의 기습설치에 대비해 밤샘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 도기천 기자

그러자 재단 측은 “조례에 따라 서울시의 심의를 받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재단 관계자는 CNB에 “심의 절차를 밟을 예정이며 기습적으로 동상을 설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동상기증식 행사(13일)는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비밀보관소 공개돼 긴장 고조

이런 가운데 11일 노컷뉴스는 기념도서관에 설치될 박정희 동상을 보관하고 있는 비밀장소를 찾았다고 단독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동상은 경기도 고양시 외곽에 보관 중이었는데 기념도서관에서 서북쪽으로 불과 7km 떨어진 지점이었다. 자동차로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에 동상이 보관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긴장이 고조됐다. 마포구 주민들의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카톡 등을 통해 ‘기습설치설’이 급속히 퍼져 나갔다.    

주민들이 이 문제에 특히 민감한 이유는 기념도서관이 탄생 때부터 지금까지 ‘도서관’ 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봉수 마포구의원이 제작한 농성천막. 사진 = 도기천 기자

기념도서관은 연면적 5290m²(1603평)에 3층 규모로 2011년 12월 문을 열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서관은 개관하지 않고 있으며, 박 전 대통령 전시관만 운영하고 있다.  

시와 재단 간의 협약서에는 ‘건물의 일부분을 도서관 용도로 사용한다’는 전제만 들어있을 뿐 개관시기, 규모 등이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 재단 측은 주민들의 문의에 지난 6년간 “개관 준비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지만, 시는 허술한 협약 탓에 할 말을 못하고 있다.   

이 동네에는 하늘초, 상지초, 상암초, 상암중, 상암고 등 5개교가 밀집돼 있지만 도서관은 전무하며, 복지시설인 청소년문화의집 내에 있는 80여석 규모의 독서실이 유일한 자습실이다. 그러다보니 시험 때마다 자리잡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CNB가 기념도서관 인근에서 만난 주민들 대부분은 박정희에 대한 역사평가에는 부담을 느끼면서도 도서관 문제에 있어서는 입장이 뚜렷했다. 하나같이 “해달라는 도서관은 안하고 동상만 하겠다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11월 13일 오전 10시경 예정대로 동상 기증식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찬반 양측이 충돌해 큰 혼란을 빚었다. 사진 = 시민 이홍범씨 제공

휴일인 12일에는 긴장이 최고에 달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과 손혜원 의원, 정청래 전 의원, 시의원, 구의원들을 비롯한 민주당 지역당원 50여명이 기념도서관을 방문해 항의를 표시한 뒤, 건물 입구 계단 앞에 모여 규탄 목소리를 이어갔다.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다. 

재단 “올해안 동상 세운다”…재충돌 우려

이들이 다녀간 뒤, 가장 먼저 1인 시위를 벌였던 이봉수 구의원은 혼자서 밤샘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영하에 가까운 차가운 늦가을 밤날씨에도 불구하고 비닐 한 장을 두른 간이천막 안에서 혹시 모를 동상 반입을 막고자 불침번을 섰다. 경찰도 만약에 대비해 이 의원의 신변보호에 나섰다.

날이 밝자 민주당, 정의당 당원들과 시민단체 회원 등 동상건립 반대 측 1백여명과 박 전 대통령 지지자 2백여명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재단 측은 13일 오전 10시경 예정대로 동상 기증식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찬반 양측은 서로를 향해 “종북좌파”(찬성측) “원조적폐”(반대측) 등을 외치며 대치했다.     

경찰 경력 수백명이 양 진영의 가운데에서 ‘인의 장막’을 치고 통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때 경찰통제선이 무너지면서 양측이 몸싸움을 벌였다.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에 연행됐다 풀려났다. 

동상을 둘러싼 12일 간의 갈등은 일단락 됐지만 양측 모두에게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여전히 재단 측은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인 올해 안에 반드시 동상을 세우겠다는 의지라 언제 또 충돌이 발생할지 모를 상황이다. 14일 현재까지도 동상심의신청서가 시에 접수되지 않은 점은 이런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 20년 세월 동안 숱한 논란과 곡절을 겪어온 박정희기념·도서관은 박 대통령 일가가 겪은 영욕의 세월만큼이나 바람 잘 날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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