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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사정 칼끝, 금융권 향하는 이유

‘낙하산’ 치운 자리 ‘다른 낙하산’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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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3호 도기천 기자⁄ 2017.11.27 09:58:07

▲8월 17일 부산은행 본점 로비에서 전국금융산업노조 부산은행지부 조합원들이 조합원 총회를 열고 BNK금융 회장 낙하산인사 반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우를 불러온다.” 금융감독원 채용비리에서 시작된 사정 한파가 전 금융권을 흔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모든 시중은행과 금융공기관에 대한 채용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다. 결과에 따라 수장(首長)의 운명이 갈릴 수도 있다. 쇄신의 길로 가는 걸까. 또다른 ‘낙하산’을 위한 수순밟기 일까? 

최근 불어 닥친 금융권 사정 한파의 발원지는 금융감독원이다. 검찰은 지난 7월 감사원으로부터 금감원 고위간부들이 민원처리 전문직 채용과정에서 금감원 출신 지원자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서류 조작을 지시하는 등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사실을 통보받고 내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9월 20일 이같은 내용을 공개하고 비리에 연루된 직원들의 징계를 요구했다. 며칠 뒤 검찰의 금감원 압수수색이 이어졌고 뒤이어 이병삼 금감원 전 부원장보가 사임했다. 이 전 부원장보는 지난 3일 구속 수감됐다. 

이로 인해 지난달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은행들의 채용비리 의혹이 핫이슈였다. 금융사들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앞다퉈 낙하산 인사·특혜 채용 등을 지적하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검찰 등 사정기관들은 즉시 화답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우리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등 14개 시중은행을 상대로 채용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에 들어갔다. 또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산업은행, 기업은행, 예탁결제원 등 7개 금융공공기관 등에 대해서도 조사에 착수했으며, 비리가 발견될 경우 관련자 징계는 물론 기관에게도 불이익을 줄 방침이다. 

검찰은 이와 별개로 시중은행 4~5곳을 상대로 수사 및 내사를 벌이고 있다.  

우선 문제가 불거진 곳은 우리은행이다. 심상정 의원(정의당)은 지난달 국감 때 우리은행의 작년 신입사원 150명 중 16명이 청탁 등을 통해 부정한 방법으로 채용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심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2016년도 우리은행 신입사원 공개(채용) 추천현황’ 자료는 충격적이었다. 

우리은행, 이광구 행장 사퇴 ‘멘붕’

추천인으로 우리은행 간부들의 이름이 적혀 있고, 추천대상은 금감원 임원, 국정원 직원, 우리은행 VIP 고객, 대학 부총장, 대형병원 이사장, 대기업 간부 등의 자녀들이었다.     

금감원은 즉시 조사에 착수했고,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책임을 지겠다며 지난 2일 사임했다. 

▲채용비리 파문으로 인해 최근 사임한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 = 연합뉴스

이 행장의 사퇴는 금융권 전체를 ‘멘붕’ 상태에 빠트렸다. 이 행장이 16년 간 진행돼온 우리은행 민영화를 기적적으로 성사시킨 인물이라는 점에서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1월 정부지분 29.7%를 IMM PE(6%), 동양생명(4%), 유진자산운용(4%), 키움증권(4%), 한국투자증권(4%), 한화생명(4%), 미래에셋자산운용(3.7%) 등 7개사에 분할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과점주주(여러 명의 주주가 각자 경영권 행사) 형태로 새로운 우리은행을 이끌고 있다. 이 행장은 전통적인 매각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한 태도로 우리은행을 매력적인 매물로 변신시켰다는 점을 인정받아 지난 3월 연임에 성공했으며, 최근까지 우리은행의 지주사 전환을 추진해왔다. 

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우리은행을 어렵게 정상궤도에 올렸다는 점에서 평직원에서 임원에 이르기까지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분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KB금융은 윤종규 회장 연임을 확정 짓고 한시름 돌린 분위기였지만, 11월 3일 경찰 압수수색으로 기류가 달라지기도 했었다. 

KB금융은 직원 설문조사에 사측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노조 측은 윤 회장 연임 찬반 의견을 묻는 조합원 설문조사에 사측이 중복투표 방식으로 개입해 결과를 찬성 쪽으로 뒤집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윤 회장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KB, 겨우 안정 찾았건만…

윤 회장은 낙하산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이전 회장·은행장들과 달리 KB금융에서 CFO, CRO, 부사장을 지낸 내부 출신이다. 은행업계 독보적인 1위였던 신한금융과 선두 다툼을 벌일 정도로 성과를 일궜다는 평을 얻고 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 CNB포토뱅크

하지만 불씨는 남아있다. 경찰이 사측 개입이 있었다고 수사를 결론지으면 윤 회장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 또 전 금융권을 상대로 진행 중인 채용비리 조사 결과, 비리가 드러날 경우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하나금융은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얽힌 특혜 승진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최순실·정유라 모녀의 계좌개설 및 부동산 구매, 대출 등을 도와준 것으로 알려진 이상화 당시 독일 법인장을 하나은행 본부장으로 승진시켰는데, 이를 두고 노조는 ‘특혜 승진’이라며 11월 9일 금융감독원에 김 회장과 함 행장의 제재를 요청했다. 

하나금융, 최순실 여진 아직도

노조는 당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김정태 회장에게 이 전 본부장 승진 청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조직개편이 이미 예정된 일이었고 인사청탁은 거절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농협금융은 금감원 채용비리 연루, 은행장 임기만료 등으로 뒤숭숭하다.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은 2015년 10월 금감원 채용시험에 응시한 수출입은행 간부 아들 A씨를 필기시험에 합격시켜달라고 당시 금감원 총무국장에게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10월 농협금융 본점의 김 회장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사법당국은 청탁금지법 도입 전 일이어서 법리 적용에 신중한 모습이다. 그렇더라도 청탁이 사실로 확인되면 회사 수장으로서 도덕성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김 회장은 지난 4월 1년 임기로 연임에 성공했지만, 검찰 조사결과에 따라 거취가 달라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오른쪽에서 네번째)이 11월 10일 하나금융 사옥에서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에서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될 김장 김치를 만들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이경섭 농협은행장의 후임자 선정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금융은 2012년 농협이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 된 이후로 행장이 연임한 사례가 없다. 

산은·기업은행, 10년간 낙하산 몸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낙하산’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은행들은 박근혜·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미 낙하산 집합소라는 오명을 쓴 상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학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산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최근까지 산은이 지분을 갖고 있거나 구조조정 진행 중인 기업에 취업한 퇴직 임직원은 135명에 이르렀다.  

또 김해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산은으로부터 제출받은 ‘퇴직자 재취업 및 대출계약 현황’ 자료에 의하면 산은과 대출계약이 이뤄진 20개 업체에 산은 고위퇴직자 20명이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 대출계약이 해당 임직원이 퇴직하기 직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대가성 취업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기업은행도 비슷한 분위기다. 김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업은행 및 자회사에 임원으로 재직 중인 정치권, 금융관료, 행정부 출신 인사는 총 41명에 달한다. 대선캠프 3명·청와대 3명·새누리당 7명 등 정치권 출신이 17명이고, 기획재정부 8명·금융위 3명·금감원 2명 등 금융관료 출신이 14명, 행안부 2명·여성부 2명·외교부 2명 등 행정부 출신이 10명이다.

채이배 의원(국민의당)이 작년 국감 때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금융회사 27군데의 임원 255명 중 97명(약40%)이 박근혜 정권이 내리꽂은 낙하산들이었다.  

또 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연말 금융사로부터 받아 공개한 ‘금융권 임원 중 공직 경력자 현황’ 자료를 보면,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1월 1일부터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10월 말까지 재직 중인 금융권 임원 중 공직 경력자가 100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대주주인 산은과 기업은행은 민영은행들보다 사정 한파와 이에 따른 물갈이의 강도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유관기관 1천여곳의 과거 5년간 채용에 대해 전수조사 하는 등 ‘인사 적폐와의 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PK·친문(親文)…코드인사 여전

금융사들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수장들을 몰아내는 흐름이 본격화된 것으로 해석하면서 사정당국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은 ‘금융적폐 청산’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또다른 낙하산을 채우기 위한 명분쌓기 아니냐는 의심도 동시에 품고 있다.   

실례로 11월 7일 취임한 김용덕 손해보험협회 회장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정책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에 참여한 인물이다. 지난 9월 BNK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된 김지완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이자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의 경제 고문이었다. 이달 취임한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도 문 대통령과 같은 부산 출신이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CNB에 “모 은행이 내사 중이다. 조만간 아무개 행장의 비리가 폭로된다는 식의 살생부 루머가 난무하고 있다”며 “정부정책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수장 교체가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망신주기식 조사·수사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임명된 CEO를 압박하는 모양새는 금융권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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