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내가 중복입주?” LH·SH공사 전산공조 안돼 임차인 ‘이중고’
임대주택 당첨되면 ‘두집살이’ 의심 받아…통합관리 시급
▲CNB가 단독입수한, SH공사가 임대주택 임차인 중 새로운 임대주택에 당첨된 이들에게 보내고 있는 공문. 전산 확인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다보니 임차인이 직접 이중거주가 아님을 소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임대주택 확대를 골자로 하는 ‘주거복지로드맵’에 시동을 걸었지만, 정작 국내 최대 임대주택 공급기관인 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와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 간에는 전산망 공유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다보니 임차인이 양쪽 모두에 각종 증빙을 해야 하는 등 불편이 커지고 있다. 향후 임대주택 보급이 크게 확대될 예정이라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서울 마포구의 한 국민임대주택에 5년째 거주하고 있는 최지영(48·가명) 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최씨는 지난달 SH공사 지역센터로부터 ‘임대주택 중복입주자에 대한 소명자료 제출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받았다. 최씨가 두 곳의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므로 소명자료를 내라는 얘기였다. 공문에는 “만약 자료를 기일 내에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면 중복입주를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해 임대차계약해지를 해지 하겠다”는 단서까지 달렸다.
현행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과 ‘공공주택 특별법’ 등에 따르면, 임대주택 임차인은 ‘1세대 1주택’만 거주할 수 있다. 새로운 임대주택에 입주할 경우 기존 임대주택은 해당 공사에 반납(명도)해야 한다.
최씨의 경우 3개월 전 경기도의 한 공공임대주택(아파트)을 분양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해당 임대주택은 2년 뒤 입주 예정이라 ‘중복입주’에 해당되지 않는다. 통상 잔금을 치러야 입주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최씨는 계약금만 낸 상태다. 나머지는 2년에 걸쳐 분할납부(중도금,잔금)토록 일정표가 짜여있다.
더구나 해당 아파트는 LH공사가 주택도시기금(국토교통부가 주거복지 증진을 위해 운용·관리하는 기금)의 일부를 지원받아 짓는 공공주택으로, LH공사 홈페이지와 아파트투유(금융결제원 인터넷주택청약)에 ‘입주자모집공고’가 게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해당주택은 2019년 8월이 입주지정일이다.
이처럼 최씨가 현재 다른 주택에 입주하지 않은 것이 명백함에도 SH공사는 ‘중복입주자’로 의심하며 소명자료를 요구한 것.
최씨는 직장에 반차를 내고 SH지역센터를 방문해 새로 분양받은 임대주택의 임대차계약서 사본과 주민등록등·초본,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했다.
▲LH공사가 택지개발지구 내에 조성 중인 한 아파트단지. 사진 = 도기천 기자
최씨는 CNB에 “이제 터파기를 하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했다는 의심을 받게 되니 참으로 황당하다”며 “입주자공고문에 입주지정일이 나와 있는데도 문제 삼으니 이해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공사 간 공유 無, 주먹구구 확인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주택공사들 간의 업무공조가 허술한데다, 국토교통부와 금융결제원의 확인시스템이 제각각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택공사들은 자사의 임대주택이 분양되면 계약자를 금융결제원에 통보한다. 금융결제원은 이를 취합해 중복계약(기존 입주자가 다른 주택을 분양받았을 경우)이 발견되면 다시 해당 공사에 확인토록 한다.
문제는 확인 과정이다. 공사들 간 통합전산망이 구축돼 있지 않다보니 확인 절차가 주먹구구식이다.
가령 최씨의 경우처럼 2년 뒤 입주지정일인 경우는 중복거주가 아니다. 이 경우는 최씨가 분양받은 단지의 입주자모집공고문을 전산상에서 확인하면 끝나는 일이지만 이런 시스템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 국토교통부가 구축한 주택소유확인시스템에서도 계약(당첨) 사실만 조회될 뿐 입주지정일 등 부가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당사자가 직접 계약서 등 소명자료를 제출하고 있고, 이 소명자료가 맞는지를 공사들 간 공문을 주고받으며 확인하고 있다.
임차인들의 불편이 클 뿐 아니라 행정력 낭비도 심각하다. 중복계약자에게 일일이 등기우편을 보내 소명을 요구하고 자료를 접수해 처리하는데 상당한 시일과 행정인력이 동원되고 있다.
LH공사 관계자는 CNB에 “다른 주택공사에서 분양받은 경우, 어느 지역 무슨 단지에 당첨됐고 입주예정일이 언제인지가 전산상으로 확인되지 않다보니 업무처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SH공사 관계자도 “국토부 차원의 통합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주거 복지 로드맵’을 통해 임대주택 등 서민용 주택을 매년 평균 20만 가구, 5년간 10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에 따라 최씨처럼 임대주택에서 다른 임대주택으로 갈아타는 수요도 크게 늘 전망이다. 현재대로라면 최씨와 같은 불편을 겪는 이들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불합리한 행정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주택공사들 간 공통전산망 구축 등 통합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는 주택공사들끼리 확인하면 될 일을 당첨자에게 떠넘기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각 공사들이 임차인과 계약(당첨)자의 분양 정보를 국토교통부 주택소유확인시스템에 등재하고 이를 서로 열람할 수 있게 한다면 최씨와 같은 사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세현 경영컨설턴트는 CNB에 “여러 유형으로 나눠져 있는 공공주택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입주자의 주거 안정을 이루겠다는 구상이 주거복지로드맵의 핵심”이라며 “이런 취지에 맞게끔 서둘러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기천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