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공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은 무대인 동시에, 가장 두려운 무대이기도 해요.”
강봉훈 협력연출은 ‘햄릿’을 마주했던 순간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은 40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재탄생되고 있다. 공연계에서도 연극과 뮤지컬 등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2018년 1월 28일까지 공연되는 ‘햄릿:얼라이브’ 또한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이다.
햄릿은 ‘삶’과 ‘죽음’에 관한 심오한 철학을 다룬다. 과거부터 현 시대까지 인간이 탐구하고 고민하는 이야기로, 수많은 창작자들이 햄릿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제한된 시간 내에 펼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끊임없이 리바이벌되는 공연은, 친숙한 동시에 그만큼 “뻔한 이야기 아냐?”라는 익숙함의 굴레에 빠질 수 있다. 더군다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그만큼 어렵다는 선입견도 있는 햄릿이다. 그래서 햄릿에 현대적인 재해석을 시도하는 형태도 많이 이뤄져 왔다.
특히 지난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햄릿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눈길을 끌었다. 크게 두 가지가 기억난다. ‘함익’은 주인공 햄릿을 21세기 한국 여성 캐릭터로 탈바꿈시킨 뒤 원작 햄릿 속 담겨져 있는 섬세한 코드를 읽어냈다. 또한 “사느냐, 죽느냐”는 햄릿의 질문을 “진정으로 살아 있는가”로 바꿔 관객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햄릿 더 플레이’는 햄릿에게 칼 대신 총을 들렸고, 옷도 현대적으로 입혔으며,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햄릿의 어린 시절 캐릭터와 해골로만 존재하는 광대 요릭을 무대 위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비극으로 읽히는 햄릿에 희극을 입히며 ‘비극과 희극은 공존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모두 신선한 시도였다.
올해엔 창작 뮤지컬 ‘햄릿:얼라이브’가 나섰다. 이 작품은 햄릿을 어떻게 바라봤으며, 이를 현 시대의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을까? 무대 세트나 의상적인 측면을 보면 아주 신선한 시도는 아니다. 칼 대신 총을 드는 건 앞선 ‘햄릿 더 플레이’에서도 이미 선보였었고, 현대적인 의상 또한 ‘함익’에서 앞서 이뤄진 바 있다.
‘햄릿:얼라이브’에서 주목되는 건 캐릭터다. 특히 햄릿과 어머니 거트루드 캐릭터에 눈길이 간다. 극 중 햄릿은 원작처럼 아버지의 죽음에 숙부 클로디어스가 관여돼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복수심을 불태운다. 이때 햄릿은 선택을 한다. 원작에서 의견이 분분한 장면이다. 원작에서는 클로디어스가 자신의 죄를 고하는 기도를 할 때 그를 죽이면 클로디어스가 천국에 갈 수도 있다는 이유로 햄릿이 칼을 거둔다.
하지만 ‘햄릿:얼라이브’에서는 다른 이유에서 햄릿이 ‘선택’을 한다. 클로디어스를 바로 죽이면 그의 죄가 공공연하게 드러나지 않을 것을 우려하며 햄릿은 복수의 순간을 미루는 것. 강 연출은 “원작에서 햄릿이 그때 클로디어스를 죽이지 않아 나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그래서 햄릿이 빨리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에 대해 사람들은 ‘우유부단하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면서 햄릿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는 그가 그때그때 직시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선택한, 능동적이라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해당 장면에서 종교적인 색을 빼고 햄릿이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신경썼다”고 말했다.
결국 ‘죽느냐, 사느냐’는 햄릿의 명제가 ‘햄릿:얼라이브’에서는 ‘살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가’로 이야기되며 햄릿의 행보를 따라간다. 사랑하는 연인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실수로 죽인 뒤 클로디어스의 계략에 의해 나라를 떠나던 햄릿의 모습에서도 능동적인 행동을 입혔다. 자신을 죽이라는 클로디어스의 명령이 담긴 글을 발견한 햄릿은 글의 내용을 몰래 바꾼다. 그리고 노래 ‘분노의 바다’를 부르며 클로디어스에 대한 복수를 다시금 불태우고 배에서 탈출한다.
동생 오필리어와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햄릿에게 복수하기 위해 레어티스가 휘두른 칼에 맞은 뒤에는 분노하며 달려들기도 하고, 숙부와 결혼한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직접적으로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에 낙담하면서도 끊임없이 나름대로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선택을 하는 모습들이 발견된다. 강 연출은 “일반적으로 뮤지컬에서는 영웅적인 주인공을 기대하는데 햄릿은 그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하지는 못한다. 행동을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상황을 비관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한다. 죽음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지 계속 사고(思考)하는 것이야말로 삶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라 생각했다. 그런 햄릿의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햄릿과 더불어 또 눈에 띄는 캐릭터가 거트루드다. 햄릿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가 주로 이야기되다보니 거트루드의 이야기는 잘 다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을 떠나보낸 뒤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그의 동생을 남편으로 맞이한 거트루드. ‘햄릿:얼라이브’는 거트루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에 시간을 크게 할애한 점이 눈길을 끈다. 그녀의 솔로곡도 마련돼 거트루드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내면에 어떤 이야기를 숨기고 있었는지, 한 여자이자 어머니로서의 거트루드에 보다 긴밀하게 접근한다. 거트루드 또한 햄릿처럼 아들을 지키기 위해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 햄릿과 거트루드를 거울이 둘러싼다. 무대 위쪽에 큰 거울이 설치되고, 이들이 서는 무대 곳곳에도 거울이 설치돼 햄릿과 거트루드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실제와 환영이 공존하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돼 무엇이 진실이고 가짜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 공간에서 우유부단하게 헤매던 인물들은 각자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 원하는 바를 따라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선택한 자신의 모습을 향해 간다.
강 연출은 “무대 위에서 거울은 자신이 보고 믿는 진실을 뜻한다. 하지만 거울을 통해 보이는 모습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극은 질문을 던진다. 극 중 인물들은 거울을 바라보고, 또 그 너머도 바라보면서 자신의 진짜 내면과 마주하는 시도를 한다”며 “단순히 왕가 왕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 아들, 어머니, 딸 등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캐릭터가 다가가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햄릿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는데, 이번 공연에서 햄릿 캐릭터들의 몰랐던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