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7호 김금영⁄ 2017.12.15 17:07:03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아 윌 팔로우 힘(I will follow him)~”1992년 개봉한 영화 ‘시스터 액트’에서 수녀복을 입은 채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하며 춤추던 우피 골드버그.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영화를 본 뒤 자연스럽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시스터 액트’를 본 뒤엔 새로운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된다.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고 흔드는 율동도 같이 따라하며 “레이즈 유어 보이스”를 외치는 진풍경이 공연장에 펼쳐진다. 원작 영화 노래 못지않게 중독성이 대단하다.
‘시스터 액트’는 삼류가수 들로리스가 우연히 살인 사건을 목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경찰은 증인이 될 것을 약속한 들로리스를 보호하기 위해 수녀원에 숨긴다. 하지만 들로리스는 외부와 단절된 엄격한 생활방식, 그리고 보수적인 수녀원장과 충돌을 빚으며 갑갑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들로리스가 성가대 지휘를 맡게 되고, 그녀의 지휘를 받으며 성가대는 인기스타로 거듭나게 된다. 이에 들로리스는 유명인사가 되지만 위장이 들통 나 위험에 빠지게 된다.
뮤지컬 또한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 라인을 따라간다. 변화가 있다면 들로리스를 보호하는 경찰 에디와의 관계다. 영화에서는 들로리스와 경찰 사이 별다른 멜로 라인이 없었지만, 뮤지컬에서는 에디를 학창시절 들로리스를 짝사랑했던 남자 주인공 격으로 부각시킨다. “웬 멜로”냐고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재미있는 이야기에 뜬금없는 러브라인으로 흐름을 망치는 드라마, 영화를 우리는 익히 많이 봐 왔으니까. 그런데 뮤지컬 ‘시스터 액트’는 이 우려를 깨뜨린다. 진부한 러브라인을 억지로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극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코미디 흐름을 가장 위주로 살리면서 이 가운데 러브라인을 조화롭게 배치시킨다. 이 로맨틱, 성공적이다.
수동적이고 소심했다가 들로리스를 위하는 마음에 적극적으로 변화하게 되는 에디의 캐릭터를 제대로 극에 녹아들게 만든 덕분. 어릴 적 땀을 많이 흘려 놀림 받았던 초반 에디의 모습은 ‘시카고’ 속 자신을 셀로판지라 칭하며 투명인간과도 같은 존재를 한탄했던 록시의 남편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들로리스를 지키겠다는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내며 극에 꼭 필요한 인물로 거듭나는 과정이 흥미롭다.
사실 멜로 라인보다도 가장 우려했던 캐릭터는 들로리스다. 원작 영화 속 우피 골드의 존재감이 너무 컸기 때문. 그런데 데네 힐이 연기하는 들로리스를 만나는 순간 이 우려는 사라진다. 우피 골드버그 못지않은 소울 넘치는 노래와 능구렁이 같은 코믹 연기가 관객들을 1992년 ‘시스터 액트’ 속 들로리스가 아닌 2017년 ‘시스터 액트’로 들로리스로 몰입시킨다.
또 주목되는 캐릭터는 메리 로버트다. 브로드웨이 캐스트 최초 내한 공연에서 유일하게 김소향이 동양인 배우로 출연한다. 그녀가 연기하는 메리 로버트는 수줍음이 많은 견습 수녀였지만 들로리스를 만나 자신에게 숨겨져 있던 재능과 강인한 내면을 깨닫게 되는 인물이다. 원작 영화 속에서도 메리 로버트는 성가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특히 수많은 고음 파트를 소화해야 하는데 김소향은 영어 발음은 물론 고음도 연이어 제대로 소화한다. 그녀의 공연을 지켜보던 한 관객은 메리 로버트를 동양인이 연기한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다가 뒤늦게 얼굴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브로드웨이 캐스트 사이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메리 로버트의 사랑스럽고도 당찬 면모가 유감없이 김소향을 통해 발휘된다.
이 캐릭터들의 매력을 살려주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자막. 내한공연을 할 때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어 대사 속 라임 유머를 완전히 살리지는 못하는 부분은 아쉽지만 이 가운데 한국 관객 정서에 가장 알맞은 해석을 찾으려 한 노력들이 돋보인다. “실화냐”라는 유행어도 등장하고, ‘땀 흘리는 에디(sweaty Eddie)’는 풀어서 직역하지 않고 ‘겨땀 에디’로 바꿨으며, ‘괴짜 종교인(Jesus Freak)’은 ‘예수 덕후’ 등으로 번역해 웃음 포인트를 살렸다. 이해를 돕는 동시에 웃음을 자아내는 그림 또한 자막에 등장시킨다.
공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노래 ‘레이즈 유어 보이스’는 관객들을 제대로 조련시킨다. 뮤지컬 ‘시스터 액트’가 독특한 점이 공연 시작 전과 중간 쉬는 인터미션 타임이다. 공연 시작 전 갑자기 스크린이 내려오더니 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꼭 영화관에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광고가 나오듯. 이 스크린에는 ‘시스터 액트’ 배우들이 내한하면서 한국 관객들을 만나기 전 설렌 마음을 담은 인터뷰를 보여준다. 본격 공연 시작 전 관객들의 집중력을 높이는데 이건 인터미션 시간에도 이어진다.
인터미션이 거의 끝나갈 무렵 배우들이 스크린 화면에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레이즈 유어 보이스’ 율동을 따라하는 법을 알려준다. 1막 말미에 ‘레이즈 유어 보이스’와 ‘테이크 미 투 헤븐(Take me to heaven)’ 무대가 꾸려졌던 터라 아직 귓가에 노래의 멜로디가 남아 있는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율동을 따라하게 된다. 제대로 된 조련의 현장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2막이 시작되기 전 공연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진다. 그래서 ‘시스터 액트’를 제대로 보려면 공연 시작 전과 인터미션 시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국 관객들의 ‘흥(興)’을 저격한다.
원작 영화의 흥행을 이끈 우피 골드버그는 뮤지컬 프로듀서로 이 작품 제작에 참여하면서 “영화만큼, 혹은 그보다 더 흥행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뮤지컬은 세계적으로 6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찾았고, 약 260억 원의 수익을 달성했다. 그리고 지금 한국 관객들의 열광 속에 공연되고 있다. 이쯤 되면 우피 골드버그의 선견지명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공연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2018년 1월 2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