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백화점·대형마트 ‘파견직원 인건비’의 진실
‘갑’이 부리고 급여는 ‘을’이 제공?
▲납품업체가 종업원 파견 시 해당 백화점·대형마트도 그 인건비를 분담토록 하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이성호 기자) 백화점·대형마트들이 납품업체로부터 상시적으로 파견 받고 있는 판매직원들의 인건비가 새정부 출범을 계기로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대형유통업체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인건비는 납품 업체가 온전히 책임지는 관행은 개선될 수 있을까?
한국백화점협회 등에 따르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개사가 납품(입점·협력)업체로부터 상시 파견을 받고 있는 판매사원은 약 3만4000여명 수준이다. 또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AK플라자 등 대형백화점 5개사의 경우 8만6000명에 달한다.
문제는 이 같은 파견인력이 갑을 관계에 의한 비자발적인 경우가 많고, 편법·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
국회 정무위원회에 의하면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규모유통업법)’에서는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 등으로부터 종업원 등을 파견 받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예외가 있다.
대규모유통업법상 허용되는 예를 보면 ▲대규모유통업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파견된 종업원 등의 인건비를 비롯한 제반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 ▲납품업자 등이 종업원 등의 파견에 따른 예상이익과 비용의 내역 및 산출근거를 객관적·구체적으로 작성해 명시한 서면에 따라 대규모유통업자에게 자발적으로 자신이 고용한 종업원 등의 파견을 요청하는 경우
▲특수한 판매기법 또는 능력을 지닌 숙련된 종업원 등을 파견 받는 경우 ▲특약매입거래를 하는 납품업자 등이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매장에서 상품의 특성상 전문지식이 중요하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해 고시하는 상품류를 판매·관리하기 위해 종업원 등을 파견 받는 경우 등이다.
문제는 이러한 규정을 악용한 사례가 비일비재 하다는 것. 가령, 대부분 백화점·대형마트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납품(협력)업체에게 매년 ‘자발적 종업원 파견 요청서’를 작성케 직원을 파견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무위·공정위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올해까지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사업자에 대한 과징금 부과건수가 32건인데, 이중 ‘납품업자 종업원 부당사용’이 8건으로 25%를 차지하고 있다.
종업원 파견이 대부분 납품업자 등의 자발적 요청 및 사전 서면약정의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공정위 적발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편법적인 위반행위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파견직원에 대한 인건비를 오롯이 입점업체가 전담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현재 약 12만명의 판매직원들이 대형유통업체(백화점·대형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이들의 인건비는 연간 3조원 규모로 추산되는데 이를 입점업체가 부담하고 있다.
백화점·대형마트 측은 “협력업체들의 자발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갑을 관계를 고려하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다.
유통사들 “급여 부담 커지면 마케팅 위축”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회에는 개선안이 제출돼 있다.
전해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0월 대표발의한 ‘대규모유통업 개정법률안’은 납품업자가 종업원 파견 시 그 비용 분담을 의무화함이 골자다.
개정안에는 대규모유통업자가 종업원을 파견받기 이전에 납품업자 등과 파견비용 분담비율 등을 서면으로 약정토록 하고, 파견비용은 유통업자와 납품업자가 종업원 파견을 통해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적 이익의 비율(예상이익 비율 산정이 어려울 경우 50대50으로 추정)에 따라 분담토록 명시했다. 또 납품업체의 파견비용 분담비율이 5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예를 들어 A백화점 의류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B파견사원 월급을 해당업체와 백화점 측에서 예상되는 이익 비율대로 분담해야 하고, 예상되는 이익을 정확히 산정할 수 없다면 반반씩 부담해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이 개정안은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축조심사(조항별 의결 심사)를 마친 상태며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정무위에 따르면, 찬성 측에서는 사실상 강제에 의한 비자발적 파견을 방지할 수 있고, 비용 부담이 경감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또한 적극 동의하고 있다. 다만 협력업체의 파견비용 분담비율이 5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상임위에 전달했다.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최근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당연히 대형유통업체와 판매주체가 각각 비용을 분담을 해야 한다”면서도 “단, 개정안에서 예상이익 비율 산정이 어려울 시 반반씩 분담한다고 적시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납품업자 비용분담 비율은 5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규정은 필요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종업원을 보내 납품업체가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경우에도 백화점 등이 50%의 비용을 부담하게 될 수도 있어 불합리하다는 설명이다.
‘갑을병정 먹이사슬’이 갈등의 뿌리
응당 대형유통업체들은 불편한 기색이다.
법이 개정될 시 백화점·대형마트에서는 연간 약 1조8000억원 이상의 지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법이 논의 중인 상태로 부작용을 예단할 수 없다”고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파견사원들에 대한 급여 부담이 생기고 특히 시식 코너의 경우 협력업체들이 원해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러한 마케팅이 줄어들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가 난색을 표명함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 등과 협력업체 간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기존의 대규모유통사업의 기본적인 틀을 바꿔야 한다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고 공정위도 적극 추진하고 있어 향후 법안 심사 과정에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전해철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대규모유통업자는 소비자가 사용하는 상품을 다수의 사업자로부터 납품받아 판매하는 자”라며 “임대업으로 등록한 게 아님에 따라 마땅히 100% 판매의 주체임에도 거래업체에게 판매 행위를 전가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협력사에게 판매 및 비용 부담을 씌우다 보니, 납품회사에서 각 권역별로 파견 인건비를 대리점에게 부담시키는 사례도 생기는 등 결국 그 폐해는 고스란히 피라미드 먹이사슬 형태로 하청·제조업체로 전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에 없던 비용 분담으로 시식대가 없어지고,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등의 주장과 관련, 전 의원실 관계자는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하며 “그렇다면 그동안 판매를 하는데 필요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본인들 돈이 지출되지 않는다고 마구잡이로 일을 시켰다는 논리인가?”라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과다한 판촉행사라든지 판매하는 것에 대해 인력을 요구하고 그들에 대해 청소·창고정리 등 관리업무까지 시키고 있는 현실”이라며 “법을 우회하고 있고 왜곡돼 있기 때문에 납품업체에게만 과도하게 부담을 지우는 것에 대한 자정작용이 필요하며 올바른 유통사업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성호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