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 아파트 주차장과 무면허 운전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아침에 TV를 틀었다가,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재방송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본 장면은 여주인공이 서울에서 운전면허에 여러 번 떨어져서, 결국 지방에 있는 운전면허 시험장에 시험을 치러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시에는 운전면허 시험 자체가 쉽지 않았고, 한번 떨어지면 다시 시험을 보기 위해 몇 달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지방으로 운전면허를 따러 가는 사람이 주위에 많았습니다.
저도 1994년도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는데, 코스시험에서 한번, 주행시험에서 한번 떨어지는 등 나름 어렵게 운전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이토록 어렵게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으로 혼자 도로에서 차를 운전했을 때의 설렘과 첫차를 샀을 때의 감동은 평생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면허가 취소 또는 정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 음주운전과 교통법규 위반으로 생기는 벌점 누적입니다. 면허가 취소·정지되면 일정 기간 운전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용감하게도 이 기간에 운전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면허 운전입니다.
도로가 아니면 무면허 운전도 가능?
도로교통법 제43조는 “누구든지 제80조에 따라 지방경찰청장으로부터 운전면허를 받지 않거나 운전면허의 효력이 정지된 경우에는 자동차 등을 운전하여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고 있습니다(도로교통법 제152조 제1호).
▲아파트 단지 내의 주차장은 차단시설, 경비원 통제 등에 의해 외부와의 통행이 자유롭지 못한 경우 도로교통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도로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무면허 운전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사진 = 연합뉴스
그리고 도로교통법 제2조 제26호는 ‘운전’이란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만을 운전으로 봅니다. 즉 도로가 아닌 곳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무면허 운전이 아닙니다. 다만, 음주운전,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는 경우,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하고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나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주지 않은 경우에는 도로에서 운전하지 않았더라도 예외적으로 운전으로 봅니다.
그럼 도대체 도로교통법에서 말하는 ‘도로’가 무엇일까요? 아스팔트로 포장된 것만이 도로일까요? 무조건 차량이 지나갈 수 있으면 도로인가요?
도로교통법 제2조 제1호는 도로라는 개념을 도로법에 따른 도로, 유료도로법에 따른 도로, 농어촌도로 정비법에 따른 농어촌 도로, 그밖에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마가 통행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로서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장소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법에 도로라고 규정된 곳은 당연히 도로이지만, 그 밖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최근 문제가 됐던 사안 중에, 아파트 단지 내 지하 주차장에서 운전면허 없이 승용차를 운전하다 적발된 경우가 있습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내부에서 50m 정도를 운전했던 사례인데, 이 사안은 1심, 2심 모두 무면허 운전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지난해 말 ‘2017년 운전면허 행정처분 특별감면’ 시행으로 2016년 7월 13일부터 2017년 9월 30일까지 교통법규 위반이나 교통사고로 운전면허 벌점 부과 또는 면허정지·취소처분 대상이 됐거나 현재 면허 취득 결격기간에 있는 165만 명이 특별감면 대상이 되었다. 1월 2일 오전 서울 강남운전면허시험장을 찾은 시민들이 서류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런데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아파트 단지 내 지하주차장은 아파트 단지와 주차장의 규모와 형태, 아파트 단지나 주차장에 차단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지 여부, 경비원 등에 의한 출입 통제 여부, 아파트 단지 주민이 아닌 외부인이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 등에 따라서 도로교통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도로에 해당하는지가 달라질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무면허 운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했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은 도로인가
정리하자면 아파트 단지 내의 도로의 경우,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도로교통법상의 도로인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도로교통법상의 도로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 면허 없이 운전을 해도 무면허 운전으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판례의 기준을 보면, 아파트 단지에 차단시설이 없어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경우에는 도로교통법상의 도로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경우 아파트 내부 도로, 지하주차장에서 차량을 운전하면 무면허 운전이 됩니다.
반면에 아파트 주차장이 외부와 차단되어 있고, 출입이 통제되고, 외부인이 이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도로교통법상의 도로로 보지 않습니다. 이런 아파트 주차장에서 면허가 취소된 상태에서 운전을 하더라도, 무면허 운전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음주운전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음주 운전의 경우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닌 곳에서 운전하더라도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면허취소 혹은 정지 상태에서 운전을 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높은 비율로 적발되어 처벌받습니다. 차량과 관련된 범죄의 처벌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운전면허가 취소·정지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만약 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된 경우에는 절대로 운전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