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기본료 논란 2라운드…‘보편요금제’ 걸림돌은?
약정요금 강제인하 강행 “왜”
▲이통사들은 보편요금제 도입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사진 = CNB포토뱅크
(CNB저널 = 이성호 기자) 이동통신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정부가 보편요금제 도입을 밀어 붙이고 있기 때문. 이동통신 기본료 완전폐지가 무위로 돌아 간 가운데 신(新) 통신비 인하 카드인 셈이다. 뜨거운 찬·반 논란을 살펴본다.
정부는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상반기 보편요금제 도입을 위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편요금제는 기존 월 3만원대인 음성 200분, 데이터 1GB를 월 2만원으로 강제·인하시켜 제공한다는 것.
이 같은 방안이 제시된 배경은 뭘까.
앞서 문재인 정부는 공약으로 ‘이동통신 기본료 완전폐지’를 약속했다. 통신료 기본요금(월 1만1000원 가량)은 전기통신설비 구축에 드는 비용을 회수키 위해 책정됐으나 현재는 망 구축이 완료돼 존치할 실익이 없다는 것으로 이를 없애 가계부담을 완화시킨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여러 이유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우선, 현재 대부분의 요금제가 정액요금제(통합요금제)로 기본료라는 항목을 별도로 포함하고 있지 않고 있어 기본료 폐지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둘째로 통신사업자만을 특정해 요금에 투자 회수비용을 포함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영업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에 부딪혔다. 또한 투자 위축에 따른 통신서비스 질 저하 또는 이용료 인상 등으로 오히려 소비자 후생이 현재보다 감소할 수 있다는 점도 부각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본료 완전 폐지를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회에서 공전 중이다. 한마디로 ‘폐지 아닌 폐지가 된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정부는 여러 방안을 논의한 끝에 한 발 물러서 선택약정요금할인율 25%로 상향조정, 저소득층 이동통신 요금감면 확대(1만1000원씩), 전국 어르신 1만1000원 요금감면(2018년 상반기 시행 예정) 등과 더불어 ‘보편요금제’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시민·소비자단체는 보편요금제의 도입을 적극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며, 더 나아가 월 2만원에 음성 200분·데이터 1GB는 기존 요금제의 순차적 인하를 유도하기 어렵다며 기본 제공량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추혜선 의원(정의당)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보편요금제 제시안은 스마트폰 이용자들의 평균 사용량을 무시하고, 도입 취지를 퇴보시키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통신 가입자의 월 평균 데이터 사용량이 5.1GB에 달하고,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사용자를 제외한 스마트폰 이용자들의 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1.8GB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 또한 통신 3사의 데이터 중심 요금제는 모두 음성·문자 서비스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추 의원은 “2만원대 요금제에 음성·문자 무제한, 데이터 2GB 제공 수준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합의 안 돼도 강행?
현재 정부에서는 지난 11월부터 통신비 관련 중·장기 과제를 논의키 위해 통신정책 관련 전문가 및 소비자·시민단체, 이동통신사(SKT·KT·LG유플러스), 단말기제조사(삼성전자·LG전자), 알뜰통신사업자연합회, 이동통신유통협회 등이 참여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를 구성·운영하고 있다.
2월 말까지 운영되는 이 협의회에서 보편요금제에 대한 논의도 다뤄지고 있다.
▲3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소비자시민모임·참여연대·한국소비자연맹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보편요금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사진 = 경실련
하지만 합의점을 도출하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협의회 및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따르면 우선 찬성 측 입장은 약 4800만의 가입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어 이동통신서비스는 모든 국민들이 사용하는 필수적인 재화로 봐야 하며 통신비 부담 경감을 위해 보편요금제가 필요하다는 것.
이 요금제가 그동안 통신사들이 소극적이었던 저가요금제에서의 경쟁을 강화하고, 기존 요금제의 요금을 순차적으로 인하하는 효과를 유발시킬 것이라는 기대다.
반면, 반론도 만만치 않다. 통신사업자에게 있어서 이용자에게 제공할 서비스의 가격과 이용 조건을 정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 보편요금제 출시 의무화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
특히 타 요금상품의 구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업자의 재산권을 부당하게 제한할 수 있고 기업의 가격 결정권에 대한 과잉 규제라는 견해다.
더욱이 저렴한 가격대의 요금 상품을 출시하고 있는 ‘알뜰폰’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도입 취지가 흔들린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최근 열린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5차 회의에서 이통사들은 통신비 부담을 경감한다는 취지에는 모두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보편요금제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이고,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왔던 시장경쟁 활성화라는 정책 기조에 역행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이통사의 경영악화를 초래, 5G, R&D 등 투자위축으로 인한 경쟁력 저하 등을 우려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처럼 이통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어 매듭을 짓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부 안’ 대로 강행될 공산이 크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CNB에 “이번 6차 회의에서 보편요금제 논의가 마무리될지 아니면 더 연장될지 여부는 협의회 결정사안”이라며 “결과가 어떻게 도출될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까지는 정부는 정부대로 입법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일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과기정통부는 이미 지난해 8월 보편요금제 도입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 했고 올 상반기까지 최종 개정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웠기에, 협의회와는 별도로 다음 수순이자 공은 국회로 넘어가게 될 모양새다.
국회에서 보편요금제가 통과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보편요금제는 과점 형태의 통신시장의 시장경쟁 한계를 보안하고 앞으로 5G망·사물인터넷 활성화로 데이터 이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을 고려한다면 통신비 부담 가중 해소를 위해 요금을 묶는 정부 개입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알뜰폰 활성화 지원 병행이 요구되며 기업의 자율적인 결정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심도 있는 법안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호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