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또 최순실? ‘황창규 KT 회장 흔들기’ 계속되는 이유
연임성공·실적상승·무혐의…그런데 “왜”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KT그룹 신년 결의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KT제공
(CNB저널 = 도기천 기자) 일부 시민단체가 ‘최순실 국정농단’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결정이 내려진 황창규 KT 회장에게 여전히 사퇴 압박을 가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KT는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아 5G 서비스 준비에 온 힘을 쏟고 있는 때에 이런 일이 터지자 당혹스런 모습이다. 실적이 상향곡선을 그리면서 회사구성원들로부터 무난하다는 평을 얻고 있는 황 회장을 흔드는 진짜 의도는 뭘까.
지난해 3월 KT 정기주주총회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황창규 흔들기’가 새해 들어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다시 재개됐다.
참여연대와 KT민주화연대, 민중당 김종훈 의원은 1월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황 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에 18억원을 불법으로 지원하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며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이미 검찰과 특검 조사에서 무혐의(불기소) 처분 된 사안이다.
검찰은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들 중 삼성과 롯데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청와대의 압력에 못이겨 전경련을 통해 일괄 모금된 것이라 특별한 혐의점을 두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모금에는 삼성전자, KT, 현대차, 롯데, SK, LG, 포스코, GS, 한화, CJ, 두산, 한진, 금호아시아나, 대림,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부영 등 53개 기업에 참여했다.
최순실씨 소유 광고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것 또한 청와대 강요에 의한 것으로 판단해 기소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소는 탄핵결정문에서 ‘KT가 피해자’라는 점을 적시하기까지 했다.
KT 주주들도 이런 점을 감안해 ‘최순실 사안’을 문제 삼지 않았다. 황 회장은 작년 3월 정기주총에서 재신임 받아 2020년 3월까지 임기가 연장됐다.
이후 조합원 수가 30여명에 불과한 제2노조(KT새노조)가 성과프로그램 등을 문제 삼아 황 회장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이 또한 불기소 처분됐다.
하필 평창올림픽 앞둔 시점에…
KT는 황 회장 취임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황 회장 취임 이후 KT는 2015년 영업이익 1조2929억원으로 1조원 돌파에 성공한 후 상승곡선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황 회장이 5대 미래먹거리 사업으로 선포한 미디어, 인공지능(AI), 에너지, 보안, 금융 분야에서 성과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3분기 미디어·콘텐츠 사업 매출은 5726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5.8% 증가했다. 금융사업 매출은 BC카드의 마스터카드 지분매각 수익을 포함해 전년 보다 6.6% 성장했다. 스마트에너지는 지난해 상반기 467억원의 누적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2016년 연간 매출 420억원을 상회하는 수치다.
▲T민주화연대, 참여연대, 민중당 김종훈 의원 등이 지난 8일 국회 정론관에서 KT 황창규 회장의 사퇴와 검찰수사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안은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에서 무혐의로 판명난 바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황 회장은 이전의 수장들과 달리 평생 반도체 연구에 몸바쳐온 전문가 출신이다. 1989년 삼성반도체 DVC 담당으로 입사해 상무이사, 연구소장, 부사장,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 및 기술총괄사장 등을 거치며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이런 전문성이 실적향상으로 이어지면서 회사 내에서 좋은 평을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 임직원 2만3000여명 중 1만8000명이 가입된 1노조(KT노동조합)는 작년 주주총회 때 황 회장 연임에 찬성하는 성명을 낸 바 있다. 황 회장 퇴임을 요구하고 있는 2노조(KT새노조)는 조합원수가 30여명에 불과하다.
KT 관계자는 CNB에 “평창동계올림픽의 공식 통신후원사로서 전 세계에 5G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때에 뜬금없이 해묵은 사안을 들고 나와 당황스럽다”며 “기업이 정치논리가 아닌 성과로 평가받는 풍토가 정립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 회장 타깃 삼아 주목받기?
이처럼 대부분 구성원들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는 황 회장을 2노조를 비롯한 일부 세력이 흔드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90년대 중반 강성 노조 집행부에서 시작된 ‘KT민주동지회(민동회)’가 배경이 되고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동회는 KT가 2002년 민영화되기 전인 한국통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국영기업인 한국통신은 ‘낙하산 집합소’라 불릴 정도로 외풍에 취약했다. 그러다보니 노사분규가 잦았고 노조의 대응방식도 강경했다.
당시 노조는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점점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수화 되면서 지금의 2노조로 명맥을 잇고 있다. 이번에 기자회견을 주도한 KT민주화연대는 이들이 주축이 된 단체로 알려졌다.
또 기자회견에 동참한 민중당은 옛 통합진보당의 맥을 잇는 소수정당으로 국회의원이 1명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으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런 앞뒤 상황들로 볼 때, 이들이 계속 황 회장의 발목을 잡는 이유는 소수세력들이 힘을 합쳐 존재감을 키우려는데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KT의 한 직원은 “2노조를 보면 정치색이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미 철 지난 사안으로 재탕, 삼탕 주장을 펼칠 것이 아니라 KT의 미래에 대해 발전적인 대안을 내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중진의원은 CNB에 “KT는 국가기간산업인 통신망 사업자라 국정감사 등을 통해 여러 정책적인 사안들을 지적하고 있지만, 황창규 회장 개인에 대해서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일부 국회의원이 기업경영에 개입한 이번 행태를 두고 ‘구태’라는 비판도 나온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만큼, 기업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기업 경영간섭은 구태”
오너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여느 재벌 기업과 달리 KT는 국민연금공단이 11.2%를 소유한 최대주주이고, 나머지는 외국인과 소액주주다. 이렇다보니 민영화 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정치권은 틈만 나면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수장이 매번 임기를 끝내지 못하고 물러나는 ‘흑역사’가 반복됐고 빈자리는 늘 ‘낙하산 인물’로 채워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CNB에 “주파수(KT)는 국가 자산이라는 낡은 사고방식 탓에 정치권의 개입이 끊이지 않아왔다”며 “기업활동은 ‘정치’가 아닌 ‘시장’에서 성과로 판단 받아야 할 사안이며, 부적절한 기업흔들기는 또다른 차원의 적폐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도기천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