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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갑’ 아닌 ‘을’들이 치킨 가격 올리자는 이유

최저임금 나비효과…성난 가맹점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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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71호 도기천 기자⁄ 2018.01.22 10:45:22

▲한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인건비 상승 등으로 ‘치킨집 사장님’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작년말 KFC의 가격 인상을 계기로 최근 치킨값을 올리려했지만 정부 압박에 밀려 한발 물러선 상태다. 결국 고통은 가맹점들의 몫이 되고 있다. ‘자영업자 보호’와 ‘서민 물가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다 정부 스스로 진퇴양난에 빠진 현 상황을 들여다봤다.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을의 눈물을 짜내고 있습니다.”

서울 마포구에서 6년째 프랜차이즈 치킨가게를 경영하고 있는 한모(58)씨의 하소연이다. 

한씨는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자영업자에게만 고통을 씌우고 있는 현 상황은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치킨값 인상을 막으면서, 한씨 같은 가맹점주들의 불만은 더 커졌다. 

교촌과 비비큐(BBQ), BHC, 네네치킨 등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KFC가 가격을 올린 직후인 이달 초까지만 해도 최대 성수기인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가격 인상을 적극 검토했지만, 최근 정부가 전방위적 압박을 가해오자 인상 계획을 당분간 접기로 했다. 

정부는 외식물가를 특별관리 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앞서 공정위는 작년 5월 비비큐가 8년 만에 주요 메뉴 가격을 올리자 직권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업계에서는 가격 인상에 따른 정부의 보복 조치였다는 해석이 나왔고 결국 비비큐는 다시 원래 가격으로 조정했다. 일부 업체는 가격을 내리기까지 했다. 

한 프랜차이즈업체 관계자는 CNB에 “수년째 가격을 동결했던 데다 올해부터 인건비 부담이 더 커지면서 메뉴 가격을 인상해달라는 가맹점주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며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가격을 올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배달수수료 너마저…

과거의 치킨값 인상은 프랜차이즈 본사가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가맹점주들이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가맹점주들이 나서게 된 이유는 복잡한 유통구조 속에서 갈수록 마진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치킨의 유통경로는 ‘생닭(농가)→닭고기 가공업체(하림·마니커 등)→치킨 프랜차이즈 본사(교촌·비비큐·BHC 등)→가맹점→소비자’로 요약된다. 

작년 4~5월 치킨값 파동 때 프랜차이즈협회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본사가 닭 가공업체로부터 납품 받는 가공닭의 가격은 마리 당 3910원(1년 평균가격)이다.  

본사는 튀김기름·튀김가루·소스·포장박스·치킨무 등 부재료를 포함해 가맹점에 7000~8000원 정도에 공급한다. 가맹점은 여기에 전기·수도료, 인건비, 월세, 배달비 등을 더해 약 1만1000~1만2000원선에서 치킨 한 마리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1만5000~1만6000원에 판매한다. 따라서 가맹점의 마진은 치킨 한 마리당 3000~4000원 밖에 되지 않는다. 

▲1월 17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세종시 아름동 패스트푸드 가맹점인 맘스터치를 방문, 점주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최저임금과 배달수수료가 큰 폭으로 인상됐다. 

올해 최저임금은 기존 6470원에서 16.4% 오른 7530원(시간당)으로, 금액으로는 역대 최고 상승이다. 2015~2017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7%대였다.  

여기에다 가맹점주들은 배달원 구인난 탓에 전문 배달업체와 계약을 맺고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 배달업체들이 배달 수수료를 건당 500∼1000원씩 올리면서 부담이 가중된 상황이다. 배달업체들이 수수료를 올린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배달원의 인건비 부담이 커졌기 때문. 

가맹점주들 “우리가 공기업이냐”

이처럼 수익이 줄었는데도 치킨값을 올릴 수 없게 되면서 일부 가맹점주들은 자체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매장의 메뉴 가격은 통상 본사가 정해주는 권장소비자가에 따라 정해지지만,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점주들이 본부에 고지한 뒤 자체적으로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경우도 있다. 

다만 점포마다 주요 메뉴 가격이 다를 경우 가격이 더 낮은 업체에만 배달 주문이 몰리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본사는 가급적 가맹점들이 동일한 가격을 유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한 치킨 가맹점주는 CNB에 “임대료와 인건비, 배달수수료 등이 올라 이대로라면 적자가 예상되는 만큼 자체적으로라도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매장별로 가격이 달라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게 되므로 지금이라도 정부가 자영업자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태도를 바꿔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가 양보하지 않는 이유는 치킨가격이 서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량이 12.8kg에 달한다. 특히 치킨은 한 가구당 일주일에 1~2마리 가량은 섭취하는 대표적인 국민간식이다. 따라서 치킨가격 인상은 공공요금 인상과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치킨업계 관계자는 “사기업이 마치 공기업처럼 통제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치킨값의 역설…文정부 딜레마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런 태도가 스스로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자영업자 보호를 주요 경제공약으로 내세우며 ‘을의 정부가 되겠다’고 천명했다는 점에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6월 취임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0여년 간 재벌의 편법·불법상속, 지배구조, 내부거래 등을 지적해온 경제학자 출신이다.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J노믹스’ 경제민주화 부문을 설계해 ‘文의 복심’으로 통한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하도급기업, 가맹점주, 대리점 사업자, 골목상권 등 ‘을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치킨값 인상을 억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을’(가맹점주)의 고통을 커지게 한 셈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이들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릴 계획이다. 이는 매년 16% 이상 최저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치킨가격이 인상되지 않는다면 가맹점주들의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야권의 한 중진의원은 “프랜차이즈 본사를 갑으로, 가맹점을 을로 규정해 치킨값이 오르면 갑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간다는 식의 시각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며 “본사 이익을 최소화하고 가맹점주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치킨가격 인상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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