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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43)] 루벤스 보고 힐링한 ‘플랜더스의 개’ 네로…당신의 힐링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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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72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8.01.29 10:34:22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위다(Ouida)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매리 루이스 드 라 라메(Marie Louise de la Ramée)의 소설 『플랜더스의 개 A Dog of Flanders』(1872)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였다. 그런데, 아무리 극적(劇的) 효과가 더해졌다 해도 플랜더스의 개는 냉혹한 현실, 어른들의 이기심과 편견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네로(Nello)와 파트라슈(Patrasche)의 교감, 어려움 속에서도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차갑고 힘들다. 주인공 네로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그림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야기의 마지막, 누명을 쓰고 집에서도 쫓겨난 네로는 루벤스의 작품을 보고 행복해하며 숨을 거둔다. -안타까운 결말이지만- 예술이 힘든 삶을 사는 누군가에게 이토록 큰 행복과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참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삶이 너무 힘들면 예술을 감상할 여력조차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명작이 주는 힐링을 우리는 누리고 사는가? 

새해 들어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된 정책과 기사들이 연일 주목받고 있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우리나라가 ‘과로 사회’라는 것을 증명하는 수치와 기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과로하지 않겠다, 정해진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운동도 하고, 여가 생활을 보내겠다.’ 다짐을 하지만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또 다시 밤을 새게 된다. 일이 끝난 후의 뿌듯함을 생각하며 기운을 낸다. 필자도 작년 그 어느 해보다 과로하는 연말을 보냈다. 피곤한데도 스트레스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좋다는 것을 봐도 좋은지 모르겠고 즐거운 것이 없었다.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 정말 바쁘게 하루를 보내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푸는지 궁금해졌다. 훌륭한 방법이 있다면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과로 혹은 스트레스 등으로 힘들거나 지칠 때 무엇을 하면서 재충전 하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행 계획을 짠다, 잠을 잔다, 먹는다, 술을 마신다, 요리를 한다, 친구를 만난다,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찾는다, 영화를 본다, 음악을 듣는다, 그냥 일을 더 한다’와 같은 여러 답변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안네 임호프 <파우스트>, 퍼포먼스, 2017, 사진 = 김원영 큐레이터 촬영·제공

이들 중 일부는 필자에게 ‘너는 일하면 자연히 힐링이네?’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실제로 사람들은 예술 -미술- 을 통해 희망과 치유를 얻길 바란다. 필자도 예술적 경험을 통해 감동 받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술이 가진 힘을 느낄 때가 많다. 미술관이나 각종 문화기관에서는 실제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다수 진행하고 있다. -치유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작품을 감상하는 것 자체로 감정적 정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술이 치유의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미의 가치를 탐구하고, 사회를 고민하고 비판하기도 하며, 경직된 가치에 저항하기도 한다. 또한 미술이라는 장르만 사람들에게 기쁨과 힐링을 주는 것은 더욱 아니다. 길 위의 풀 한 포기에도, 동물들의 행동에도, 때로는 음식이 치유의 힘을 갖는다. 감동을 주는 장르나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미술 전문가는 눈 감고 귀 열어야 치유되기도

-이름을 밝히는 것을 허락해준- 주변 미술인들의 ‘힘듦 극복법’을 몇 개만 옮겨보겠다.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땐, 주로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음악을 듣는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음악이 풍부한 아주 감성적인 영화를 보면서 현실을 떠나보기도 한다. 잠시 다른 세계에 빠져 업무 중에 받은 현실적 스트레스를 잊어버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술관에서 일하다보니 아무래도 시각 중심적인 업무가 많다. 그래서 휴식 시간에는 눈을 쉬게 하고, 평상시에 잊고 있었던 다른 감각도 자극할 수 있는 무언가를 즐기는 것 같다. 평범하고 소소해 보이지만 지친 심신을 회복하고 일을 향한 열정을 되살리는 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김경민)

▲박서윤 개인전 ‘A Secret Forest’ 전시 전경, 사진 = 아트 스페이스 그로브

“오랫동안 미술 관련 일을 하다 보니 힘들 때에도 자연스레 전시나 공연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특히 감정적인 카타르시스가 일어나는 작품을 만날 때 위로를 받고 지친 감정을 회복한다. 계획된 각본을 100%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보다는 직관적으로 소통과 공감이 일어나는 작품을 볼 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희열을 느낀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았던 안네 임호프(Anne Imhof)의 <파우스트 Faust>가 대표적이다. 작가의 절실함이 전달되는 작품을 감상하며 일상에서 받은 상처가 치유될 때도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표현된 작품을 보면 명랑한 마음을 되찾는다. 자신의 내적 상태나 외적 상황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예술가들의 용기를 보며 대리만족을 할 때도 즐거워진다. 말하고 보니 휴식도 일의 연장선 같다. 실제로 이런 경험들이 내가 기획하는 전시에 영향을 준다.”(아트 스페이스 그로브 책임큐레이터 김원영) 

“현재 일하는 기관에서는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행사의 기획안을 만든다. 예를 들어, 예전에 상업 갤러리에서 일했을 때에는 사회환원적인 프로젝트 기획안을 작성하면서 그것을 진행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현실적 조건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들, 반대로 꼭 해야 하는 일들이 늘어나면 그것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것 같다. 평상시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실행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다보면 자유와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확실히 재충전도 된다. 이런 일탈 아닌 일탈 후 현실로 돌아오면 내가 현재 속한 시스템의 안정감과 체계성이 감사하게 느껴져 일에 더 몰입할 수 있다. 상상을 위해 만들었던 기획안의 일부가 현실에서 실현될 때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확실히 일석이조다.”(아르코미술관 시각예술부 대리 이민영) 

모두 -익숙하면서도 남다른- 자신만의 방식을 갖고 있다. 말 그대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일에 더 빠지기도 하며, 조금은 발전할 미래를 생각하기도 하며 지친 자신을 다독인다.  

‘누구나 자신만의 힐링법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이다. 많이 들어왔고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힐링법을 꼭 찾아야 한다. 앞서 세 명의 힐링법을 적어놓은 것은 그들의 방법이 모범 답안이라거나, 남다른 가치를 갖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힐링법을 읽는 누군가도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무엇이지?’라면서, 한 번 자신만의 ‘힘듦 극복법’을 생각하고 만들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열 줄 정도의 글이 우리의 한 해를 조금은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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