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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롯데·CJ·SK·대림산업·금호…저무는 ‘재벌의 시대’

지배구조개편 속도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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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72호 도기천 기자⁄ 2018.01.29 11:39:36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월 19일 서울 서초구 쉐라톤 팔래스 강남호텔에서 여의도정책포럼과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조찬 강연회에서 참석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새해 들어 주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영향 탓이기도 하지만 사업효율화, 경영승계 등 여러 이유가 맞물렸다. 세대교체와 체질변화, 지분구조를 투명하게 하려는 노력들이 확산되면서 70여년간 지속돼온 ‘재벌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CNB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 한국 재계를 들여다봤다. 

재벌의 사전적 정의는 ‘재계(財界)에서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이다. 통상 ‘총수나 그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을 지칭하며, 오너 일가가 대주주이자 경영자인 곳이라고 보면 된다. 이는 KT나 포스코, 시중은행들처럼 이사회나 인사위원회가 CEO를 추천하고 경영을 주도하는 시스템과는 차이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정경유착’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현재의 재벌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재벌의 불법경영승계 및 일감몰아주기 근절, 문어발식 확장 방지, 지배구조 투명화, 주주권 강화 등을 추진 중이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 기업들은 스스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주요그룹의 오너들이 신년사를 통해 투명성 강화와 책임경영을 강조한데 이어,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본격화 되고 있다.     

롯데家 수난시대 끝나나

경영비리 관련 1심 재판에서 법정 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뉴롯데’로의 전환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 회장은 작년 10월 롯데의 유통·식품 부문 42개 계열사를 편입한 롯데지주를 창립해 ‘뉴롯데’를 출범시켰다. 이후 롯데지주에 주요 계열사들을 합병하는 형태로 한때 74만8000여개에 달했던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했다. 2015년 8월 순환출자 해소를 공표한 이후 2년여 만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월 14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일원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제 남은 과제는 지난해 검찰 수사 때문에 무산됐던 호텔롯데의 상장이다. 

한국 롯데의 중간지주회사 격이자 한일 롯데의 연결고리인 호텔롯데의 상장은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선의 완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롯데홀딩스가 99%의 지분을 가진 호텔롯데를 상장하면 국내 일반주주의 지분율이 40%대로 높아지게 돼 롯데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일본 기업’ 논란도 불식시킬 수 있다.

이같은 ‘뉴롯데’의 완성을 위해 인적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1월 10일 단행된 정기임원인사에서 차세대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이라 할 수 있는 신규 임원을 100명 넘게 발탁하고, 50대 CEO를 주요 계열사에 전진배치했다. 롯데그룹 사상 처음으로 여성 CEO(선우영 롯데 롭스 대표)가 탄생한 점도 눈에 띈다. 

그동안 다소 혼선이 있었던 마케팅·홍보 라인도 재편성했다.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등 계열사별로 운영하던 홍보조직을 ‘롯데쇼핑 홍보실’로 통합해 분야별로 5개 팀을 구성했다. 유통 1위기업으로서 소비자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탄탄대로만 있는 건 아니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신동빈 회장의 형)과의 경영권 다툼에서 비롯된 롯데 사태가 배임·횡령 혐의 재판으로 이어져 현재진행형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재판도 아직 마무리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갖고 있는 일본롯데홀딩스(롯데의 모태기업)의 주주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난제다.

대림그룹(대림산업)은 최근 일감몰아주기 해소, 지배구조 개선, 상생협력 추구 등을 골자로 하는 경영쇄신 계획을 발표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해소를 꾸준히 압박해 온 데다 지난해 부당 내부거래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은 바 있는데, 이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대림, 순환출자 완전해소 선언

대림그룹 순환출자는 ‘대림코퍼레이션-대림산업-오라관광-대림코퍼레이션’으로 요약된다. 대림은 오라관광이 보유한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4.32%를 처분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올해 1분기 내 순환출자를 완전히 해소할 계획이다. 

이해욱 부회장 등 대주주가 100% 지분을 보유한 에이플러스디 지분도 상반기 내 법적 검토를 거쳐 정리하기로 했다. 대림그룹 측은 “정부 정책에 호응해 투명하고 단순한 지배구조를 확립 하겠다”고 밝혔다. 

▲대림그룹의 ‘희망의 집 고치기’ 활동에서 김한기 대림산업 대표이사(왼쪽)의 모습. 사진제공 = 대림산업

또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계열사 간 거래를 금지할 계획이다. 법령상 허용되는 필수불가결한 계열거래를 제외하고는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기존 계열거래에 대해서도 거래를 단절하거나 외부 사례를 참고해 거래 조건을 변경할 계획이다. 기존에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던 거래는 경쟁입찰 방식으로 변경해 외부업체·중소기업 등의 참여를 확대한다.

CJ, ‘이재현표 혁신’ 마무리 수순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경영 복귀 이후 이어진 사업 재편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경영 복귀 이후 굵직굵직한 사업구조 개편을 성사시켰다. 지난해 11월 CJ제일제당은 기존 바이오, 생물자원, 식품, 소재 등 4개 사업부문을 바이오와 식품으로 통폐합했으며,  12월에는 CJ제일제당이 CJ대한통운 지분을 추가 확보해 단독 자회사 구조로 전환했다. CJ대한통운은 플랜트·물류건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CJ건설과 합병을 결정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최근 사내 교육행사에서 사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제공 = CJ그룹

마지막 퍼즐은 1월 17일 발표된 CJ오쇼핑과 CJ E&M의 합병 발표다. 국내에서 미디어와 커머스 부문의 결합은 처음이어서 이목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CJ는 콘텐츠 부문은 글로벌 시장 도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성장이 정체된 커머스는 새로운 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순환출자 구조도 한층 단순해졌다. ‘이재현→CJ→CJ제일제당→CJ대한통운’’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이재현→CJ→통합법인(CJ오쇼핑+CJ E&M)’으로 전환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올해를 ‘그룹 재건’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박삼구 회장의 의지에 따라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016년 모태기업인 금호산업을 되찾은데 이어 작년에는 금호고속을 인수하면서 그룹 재건의 초석이 마련된 상태다. 또 지난해 지주회사인 금호홀딩스와 금호고속의 합병으로 전체 틀이 단단해졌다. 

금호, 그룹 재건 ‘속도전’

금호의 지배구조는 ‘박삼구 회장→금호홀딩스→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요약된다. 금호홀딩스가 금호산업 지분 46.1%를,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33.5%를 갖고 있다. 우선 박 회장은 운수·건설·항공의 삼각축으로 그룹을 재편할 계획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한국메세나협회장)이 작년 11월 ‘2017 한국메세나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특히 박 회장은 그룹의 뿌리인 금호산업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금호산업은 1946년 광주택시로 창립해 60~70년대 경부선과 호남선 고속버스 사업에 뛰어들어 ‘금호 신화’를 창조한 기업이다. 토목·건축을 비롯해 공항·물류시설, SOC, 환경, 주택 등 건설 전 분야에서 활발한 사업을 펼치다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채권단 손에 넘어갔지만, 박 회장이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해 되찾아온 회사다. 박 회장은 최근 금호아시아나그룹 기자실을 폐쇄하고 금호건설 홍보팀과 통합해 ‘금호산업 홍보실’을 설립했다.  

금호홀딩스의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는 것도 당면과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는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유지해야하기 때문. 최근 합병한 금호고속의 고속버스사업 수익을 더 끌어올려 부채를 탕감해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룹의 맏형격인 아시아나항공의 취약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데도 집중할 생각이다. 

범현대家, 정중동(靜中動)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공정위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장남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작은 지분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 측은 아직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공정위의 압박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차의 침묵이 길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와 형제 기업인 현대중공업은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지분 4.8%를 올 상반기 내에 매각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공정거래법 흐름 타고 ‘변신’ 

‘자회사·손자회사 규정’이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에 대비한 지배구조 개편도 활발하다. 

모(母)회사가 자회사·손자회사를 가지려면 현재는 최소지분율이 20%다. 이를 30%(상장사 기준)로 상향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에 상정된 상태다. 

이에 CJ제일제당은 최근 CJ대한통운 지분 20.1%를 추가로 확보, 지분율을 40.2%로 높여 법개정에 대비했다. 

▲최태원 SK 회장(오른쪽)과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SK그룹은 지주사인 SK(주)의 SK텔레콤 지분율이 25.2%, SK텔레콤의 SK하이닉스 지분율이 20.1%에 불과해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회사·손자회사 자격을 잃게 된다. 따라서 SK텔레콤을 중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등의 구조개편을 고려하고 있다. 

내부거래 금지 규정을 더 강화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변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 오너 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비상장사는 20%)의 내부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20% 이하로 낮추고 지분 산정 때 계열사를 통해 간접 보유한 지분까지 포함하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요지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총수 일가 지분이 28~29% 안팎인 롯데쇼핑, GS건설, 신세계, 현대글로비스 등이 새로 규제를 받게 된다.

한 대기업 임원은 CNB에 “공정위가 1차적으로 지난해 연말까지 대기업들에게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바꾸라고 주문했는데, 아직 이행하지 않은 기업들은 오는 3월 주주총회 전까지 해법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우에 따라 지분매입 등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수 있는 만큼 자사주 소각, 보유주식 처분, 중간 지주사 설립, 주식 교환 등 여러 방법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재벌사>의 저자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는 이런 현상을 사실상 재벌 해체의 전단계로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재벌 문화는 총수 가족이 회사를 다스린다는 의미인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지배력이고,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순환출자”라며 “문재인 정부의 방향대로 재벌개혁이 진행될 경우, 순환출자가 사실상 사라지게 돼 재벌의 시대는 결국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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