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지식재산권’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특허입니다. 특허는 쉽게 말해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 등에 대한 독점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특허의 출원과 등록 과정은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특허를 받으려고 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내가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기술을 독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 기술로 만들어지거나, 생산될 수 있는 다양한 부가가치를 내가 온전히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단 특허가 등록되면 해당 기술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고 후발주자들의 도전도 어느 정도 차단하는 효과가 생깁니다.
둘째, 특허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회사의 신뢰도가 높아집니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특허를 광고에 기재하는 것은 마케팅 업계에서는 굉장히 효과적인 광고 수단의 하나입니다. 국가가 공인한 특허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많은 소비자와 계약 상대방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특허라는 무기의 유효기간
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특허라는 무기를 누가 가지고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제약 업계에서 특허라는 무기는 매우 효율적으로 작용합니다. 특정 의약품에 대한 특허가 있으면 오랜 기간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제약회사가 있지만, 신약의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과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쓸 만한 신약에 대한 특허는 전 세계적으로 소수의 회사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특허라는 무기는 유효 기간이 있습니다. 20년의 기간으로 특허권이 만료되어, 그 기간 이후에는 누구나 그 특허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 대한 특허가 만료되는 시점이 바로 ‘복제약’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시간입니다. 특허를 가지고 있지 못한 많은 제약회사가 신약에 대한 특허가 만료되기 전에 미리 복제약을 개발하고 준비합니다.
예를 들어 2018년 3월 1일에 특허가 만료되는 A회사가 판매하는 B라는 이름의 신약이 있습니다. 특허를 가지지 못한 C회사는 B라는 약의 복제약인 D를 미리 개발해 놓습니다. 그리고 특허 기간이 만료되면 즉시 ‘복제약 D’를 출시합니다. 새로운 시장인 복제약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입니다.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의 특허가 만료되자마자, 유사한 효과를 가진 복제약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 것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B라는 약이 독점하던 시장에 복제약이 풀리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B라는 오리지널 약의 가격은 떨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복제약이 출시되면 오리지널 약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상한 금액이 약 20% 정도 떨어집니다.
특허 기간 오판으로 손해배상 했지만
복제약 시장 선점 효과 누려
최근에 이 제약 특허 만료와 관련한 재미있는 판결이 있어 소개합니다. 다국적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 앤드 컴퍼니’는 중추신경계 질환 치료제인 ‘올란자핀’의 특허를 1991년 출원했습니다. 이 회사 한국 법인인 한국릴리는 올란자핀이 함유된 ‘자이프렉사 정’을 국내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제약회사인 M사는 ‘자이프렉사 정’의 카피약을 만들어 올란자핀의 특허 만료일인 2011년 4월 24일 이후를 판매 개시 예정 시기로 정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약가 등재 신청을 해 놓았습니다. 올린자핀의 특허가 만료되자마자 바로 자신들의 복제약을 판매해서, 복제약 시장을 먼저 선점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M사와는 다른 제약회사인 H사가 한국릴리를 상대로 올란자핀에 대한 특허무효심판소송을 냈고, 특허법원은 2010년 올란자핀에 대한 특허를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M사는 자신들의 복제약 판매 시기를 앞당기게 됩니다. 애초 판매 예정인 2011년 4월 24일이 아닌 2010년 12월 6일로 4개월가량 먼저 출시한 것입니다. 복제약이 출시되자 오리지널 약에 대한 건강보험급여 상한액은 20% 정도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오리지널 약인 올란자핀에 대한 특허가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특허법원의 판결만을 믿고 카피약을 출시한 M사에는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한국릴리가 M사에 대해 특허가 2011년 4월까지 유효한데도 M사가 복제약을 일찍 판매해서 손해를 입었다면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M사는 특허가 무효라는 특허법원의 판결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M사에는 한국릴리에 2000여만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M사는 어쨌든 2000만 원의 배상금보다 훨씬 더 큰 이익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복제약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M사의 시장점유율은 해당 복제약 시장의 전체 매출액의 50%에 달한다고 합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