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어떤 말과 행동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었던 1978년 북한의 현장. 이곳에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한 한 작가가 받아들여졌다. 그는 정부의 신뢰를 얻어 전역을 돌아다니며 당대 북한 사회의 모습을 다양하게 기록했다. 이 작가가 바로 구보타 히로지.
구보타 히로지는 사진가 그룹 매그넘(Magnum)의 대표적인 사진작가다. 그는 기록자로서, 관찰자로서 아시아 대륙 곳곳을 탐험하며 사진을 찍었다. 북한도 그가 방문한 곳 중 하나였다. 북한은 어째서 그의 사진 촬영을 받아들였을까? 여기엔 단순 풍경이 아닌, 대상을 담으려 한 작가의 태도가 있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장사를 했다. 둘째 아들로 태어난 작가에게 최고의 효도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 안정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되는 것이었고, 작가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 1년 전 우연히 유명 사진가 하마야 히로시의 취재 활동을 보조하다가 매그넘 사진작가들과 인연이 닿았다. 그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저는 예술을 배운 적이 없었고, 사진을 인화하는 암실에도 들어가본 적이 없었죠. 사진에 그만큼 별 관심이 없었고 잘 몰랐어요. 그런데 1961년 일본을 방문했던 매그넘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상당한 자극을 받았어요. 사진의 세계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들의 삶의 방식에 매료됐죠. 그렇게 제 인생의 길에 본래 예정돼있지 않았던 사진작가의 길에 눈을 돌렸습니다.”
일본에서 1960년대 전쟁의 후유증과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전례 없는 격동의 시기를 경험했던 작가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것들을 기록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1962년 일본에서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더 넓은 세상을 눈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됐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사진을 찍었고,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일본에서는 매우 비쌌던 바나나가 뉴욕에서는 5센트여서 바나나만 먹으며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 결과 1965년 매그넘 사진작가가 될 수 있었다는 고백.
“사진을 찍는 건 하나의 집착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뒤늦게 사진에 빠져들었지만 그만큼 열정적으로 몰두하면서 빠른 시간 안에 매그넘 사진작가가 될 수 있었죠. 지난 50년 동안 사진을 찍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녔어요. 모든 걸 보고, 담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초, 중기 작업들에서는 작가가 인물과 장소, 사건들을 중립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 점이 돋보인다. ‘흑인 민권운동, 워싱턴 DC, 미국’(1963), ‘히피, 캘리포니아 남부, 미국’(1971)은 작가가 미국에서 목격한 흑인 민권운동 행진 현장과 반체제 자연찬미파 히피족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작가는 유학지인 미국과 자국 일본의 사회적, 문화적 주제를 주로 다뤘다.
초반 작업들은 흑백 사진으로 가득하다. 작가는 화려한 색이 대상에 대한 진솔한 기록을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흑백 사진만을 고집했다. 그러다 1978년 미얀마의 황금바위를 마주하면서 색상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마치 색채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장대한 자연과 다채로운 색상은 작가를 매료시켰고, 자연 풍경을 기록하는 데 색상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했다. 이 감정이 ‘불교 성지 황금바위, 짜익티요, 미얀마’ 사진에 담겼다.
하지만 매우 화려한 색상을 담지는 않았다. 작가는 색채 사진을 인화할 때 염료를 전염지 위에 순차적으로 겹쳐 인화를 마무리하는 다이-트랜스퍼 기법을 사용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통상 다이-트랜스퍼는 3색으로 이뤄지지만 8색으로 프린트하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의 장인을 13번 넘게 찾아가는 등 자연스러운 색을 표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작가는 “오늘날 대부분이 사진을 찍을 때 잉크젯 프린트 기법을 사용하는데 그 결과로 나온 색상들이 내게는 지나치게 화려하게 느껴졌다”며 “내게는 안정된 색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50년 간 이어진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한의 풍경도 다이-트랜스퍼 기법으로 담았다. 미얀마를 방문했던 같은 해에 북한도 간 작가는 “그때까지 방문해본 어떤 나라와도 다른 곳이었다”고 북한을 회상했다. 유독 통제가 심했고 사진을 찍는 데도 제약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사진을 찍기 위해 북한의 규율을 잘 지켰고, 그 노력으로 사진 촬영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때 작가는 풍경 그 이상의 것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단순히 보기 좋은 풍경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이와 찍히는 대상 모두의 삶과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두루 포괄하고자 한 것. 그래서 사진을 찍는 대상들에게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했다.
대상에 대한 이해가 작가에게는 진정한 사진 찍기의 시작이다. ‘김일성 주석 75번째 생일 축하공연’ 사진을 찍을 때 작가는 슬픈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북한 자체는 축제 분위기였고, 사람들도 웃고 있었다. 하지만 제도권 아래 사람들의 모습이 내겐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건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것도 아니고, 북한 제도권을 비판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그 풍경을 앞에 마주한 내게 자연스럽게 다가온 감정이 그랬다”고 말했다. 초기 작업 때 객관적인 기록을 위한 사진을 찍었던 작가는 이렇듯 작가 자신의 주관을 담은 사진을 점차 찍기 시작했다.
북한뿐 아니라 한국도 방문했다. 1966년 크라이슬러 사의 의뢰를 통해 서울을 처음 방문했다. 작가는 “당시 서울이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않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놀랍도록 고상한 인품을 갖추고 있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1988년 ‘북녘의 산하: 백두산 금강산’을 출판하고, 2008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매그넘 기획 단체전 ‘매그넘 코리아 – 매그넘이 본 한국’전을 가장 인상 깊은 전시 중 하나로 꼽는 등 한국과 북한에 대한 작가의 꾸준한 관심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 한강 주변을 항공사진으로 촬영한 ‘서울 항공사진, 한국’(2007), 백두산의 절경을 담은 ‘백두산, 북한’(1987) 등을 포함해 다양한 사진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세계의 수많은 곳을 갔는데 북한과 한국은 내게 유독 인상 깊은 곳이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전시를 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과 북한 이외 작가가 방문한 다양한 나라들도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다. 전시는 작가의 대표작 109점을 초기 작업, 세계여행, 컬러의 세계, 중국, 한국&북한, 미국&일본 등 6개 소주제로 나눠 살펴본다.
작가의 작품 활동 50년을 아우르는 이번 대규모 회고전에 수많은 사진이 걸렸다. 하지만 작가의 사진 찍기는 멈추지 않은 듯했다. 전시장에 자그마한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그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 풍경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35mm 작은 렌즈에 세상을 담는 작가의 끝나지 않은 여정, 이번 전시에서 함께 동행해볼 수 있다. 전시는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4월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