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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 돈 아끼려다가 돈 더 깨지는 건축 현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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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0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8.03.26 10:24:59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필자는 최근에 사무실을 이전했습니다.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인테리어를 새로 했는데, 요즘 들어 전에는 보이지 않던 하자들이 조금씩 보이곤 합니다. 이럴 때마다 공사하셨던 분에게 연락해서 보수를 받는데,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입니다. 


대형 빌딩이나 아파트 단지 등을 새로 신축하고 나면 시공자는 법률에 정한 기간 동안 하자를 보수해주어야 합니다. 이 하자 보수 기간은 건축물의 종류나 하자의 내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 일단 새로 지은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하면, 건물의 소유자와 시공자 간에 어느 정도까지 하자를 보수해줄 것인지 합의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건축주 혹은 소유자가 시공상의 하자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시공자는 그것이 하자가 아니라고 하면 결국 분쟁이 발생합니다. 이런 하자 분쟁은 대형 건축물만이 아니라 소형 건축물에서도 많이 발생합니다.

 

‘소탐대실’이 지배하는 한국 건축 시장


우리나라의 신규 건축물은 대출을 받아 건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형 건축물뿐만 아니라 소형 건축물도 그렇습니다. 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건물을 짓고 나서 분양, 임차보증금, 임대료 수익 등으로 그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축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원가 절감입니다. 적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건축사를 찾고, 가장 저렴하게 시공을 해줄 건설 회사를 찾습니다. 비싸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가가 낮아지면 용역의 질도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이 원가 절감이라는 건축주의 목표는 공사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됩니다. 


건설 분쟁의 대표적인 것이 건축물의 하자 발생과 시공자의 추가 공사비 요구입니다. 건물이 완성되기 전에는 시공자의 추가 공사비 요구가, 완성된 이후에는 시공자의 하자보수 거부가 문제 됩니다. 건축주들이 시공자와의 분쟁이 발생했다면서 필자를 찾아와 하소연하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이 두 가지입니다. 


이런 건설 분쟁은 비양심적인 시공자와 부실한 계약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지나친 원가 절감과 부실한 설계입니다. 건축물을 신축하려고 하는 사람이 가장 처음으로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 건축 설계 비용입니다. 그런데 이 건축 설계 비용을 아끼다가 설계가 부실하게 되어 결국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자 원인은 부실한 설계가 대다수


몇 년 전 필자는 비만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새고, 그로 인해 벽에 붙은 타일이 떨어지고, 정전까지 발생하는 전원 카페의 하자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필자가 일견하기에도 그 건축물은 하자 덩어리였기 때문에 하자보수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경북 구미시 구평동 강동문화복지회관 사무실 천장 곳곳에서 물이 새 공사업체가 보수를 위해 마감재를 뜯어놓았다. 사진 = 연합뉴스

소송이 진행되고, 전문 건축 감정인이 나와서 건축물의 하자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건축물의 하자 여부는 기본적으로 설계도대로 건축이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감정인의 의견은 필자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설계도에 하자가 있고, 시공자는 그 설계도에 근거하여 건축물을 시공한 것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건축 설계 자체에 빗물이 흘러가는 통로가 없었고, 빗물 통로 없는 건축물이 만들어지다 보니 비가 오면 물이 밖으로 효율적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어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필자가 건축주에게 “설계사무소는 누구에게 소개받은 것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건축주는 “그냥 동네에 아는 분에게 소개받았습니다. 가격을 저렴하게 해준다고 해서 그냥 맡겼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부실한 설계도가 모든 문제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설계도 제작과 관련해서는 그 설계도가 부실하더라도 최소한의 법적인 요건만 갖추었으면 설계 사무실에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건축물의 하자 감정은 그 설계도를 기준으로 제대로 시공되었는지를 감정해야 하므로 설계도가 부실하면 부실할수록 하자를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건축주의 지나친 원가 절감 요구는 부실한 설계도와 나아가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설계도를 작성하는 건축가의 인건비를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건축주는 아직 건물이 지어지기도 전에, 자신이 보기에는 별것도 아닌 ‘도면 쪼가리’에 많은 돈을 지급할 의사가 없습니다. 심지어 시공자에게 “알아서 그려 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설계도는 더 부실해집니다. 


설계의 부실은 공사의 하자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추가 공사비라는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시공자가 건축물을 시공하는 도중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거나, 건물이 완공된 후에도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면서 유치권 행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계 부실 → 견적서 부실 → 추가 공사비


이런 문제는 대부분 공사 계약을 잘못 체결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공사 계약서에는 실제로 들어가는 건축 자재의 숫자와 가격을 예상한 견적서를 첨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약대로 공사를 진행해야 문제가 덜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자재에 대한 견적서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정말 부실한 것이 첨부된 경우도 많습니다. 


이 견적서는 기본적으로 설계도에 근거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설계도가 자세히 만들어질수록 공사 계약을 할 때 계약서를 자세히 만들 수 있습니다. 건축물의 구조, 재료, 필요한 마감 등이 설계도에 상세히 표현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소요되는 자재의 양과 종류를 설계도를 통해 정확히 결정할 수 있으면 더 자세한 계약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만큼 분쟁의 소지가 작아지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건축의 기본이 되는 설계도가 부실하다 보니 제대로 된 견적서를 만들기가 어렵고, 꼭 필요한 자재나 시공항목이 누락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시공자 입장에서는 적자로 공사를 진행할 수는 없으니 추가 공사비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건축주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 시공자를 바꿀 수도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추가 공사비를 지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쯤 되면 건축주가 초기에 원했던 원가절감은 시공 분쟁, 공사 기간 연장, 추가비용 발생, 하자 보수 등의 문제로 계속 이어집니다. 원가 좀 아끼려고 하다가 비용과 기간이 추가되고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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