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도기천 기자) 롯데와 서울시가 접점을 찾으면서 올해 착공이 예상됐던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롯데복합쇼핑몰(이하 롯데몰)의 건립이 최근 다시 난관에 부딪힌 사실을 CNB가 단독 확인했다. 일부 상인회가 중재안을 거부하고 있는 데다, 지방선거를 앞둔 서울시가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섰기 때문. 이에 주민들은 연합회를 결성해 대대적인 집단행동에 나섰다. CNB가 이번 지방선거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롯데몰 사태를 들여다봤다.
“이미 5년 전에 건립이 확정됐음에도 서울시가 망원시장 상인들에게 휘둘려 허가를 지연하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됐다. 롯데몰은 망원시장과 상권이 전혀 다른 곳이다.”(서부지역발전연합회 김병식 공동위원장)
“롯데몰은 기존 대형마트와는 차원이 다른 매머드급 복합쇼핑시설이다. 마포 전역의 골목상권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판매시설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서정래 비상대책위원장)
롯데는 2013년 4월 서울시로부터 복합쇼핑몰 부지를 불하받았지만 지금까지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롯데가 사들인 땅은 상암DMC 택지개발지구 내 상업용지 3개 필지다. 지하철 6호선, 공항철도, 경의선이 모두 지나가는 트리플 역세권인데다, 상암과 은평구 수색지구를 잇는 매머드급 개발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롯데가 서울시에 제출한 개발계획안에 따르면, 복합쇼핑몰의 부지 면적은 2만3741㎡, 영업면적은 23만1611m²(약7만200평)에 이른다. 표준규격 축구장(105m×68m) 32개 크기다.
롯데는 이 부지에 5000억원을 들여 13~20층 높이의 건물 3개동을 지어 백화점, 롯데시네마(영화관), 대형마트 등 판매시설을 비롯, 문화·숙박·업무·의료 등 다양한 업종을 입점 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인근 상인회가 반발하면서 5년간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사업자는 건축물 예정지 반경 1km 이내 상인회와 영업개시 전까지 상생협약(지역협력계획서)을 맺어야 한다. 망원시장 상인회를 중심으로 하는 ‘롯데쇼핑몰 입점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롯데 측에 판매시설을 대폭 줄여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롯데는 대형마트와 SSM은 입점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시는 롯데 측에 쇼핑몰 3개동 중 1개동은 ‘비판매시설’로 하자는 중재안을 냈다. 공원, 체육시설 등 편익시설로 용도를 바꿔달라는 요구였다. 롯데는 1개동을 비판매시설로 하되, 지역상권에 피해가 없는 오피스로 짓겠다고 밝혔다. 시의 비판매시설 요구를 수용하되, 공원 대신 사무공간으로 대체하겠다는 절충안이었다. 지난해 연말 양측이 이 안에 구두합의하면서 5년 넘게 끌어온 롯데몰 사태가 해법을 찾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분위기가 냉각되고 있다. 롯데와 비대위, 서울시는 지난 20일 3자 회동을 가졌지만 서로 평행선을 달렸다. ‘1개동 비판매시설’에는 대부분 동의했지만 롯데의 합필(合筆·2개의 필지를 하나로 합침) 요구에 대해 비대위가 반대하면서 논의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날 자리는 서울시 공정경제과가 주재했으며, 관계부서 국장 1명, 과장 3명을 비롯, 비대위 측 4명, 롯데 측 2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24일 CNB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생협약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 시의 입장이며, 서로 간의 입장 차를 좁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들 “망원시장-롯데몰 상권 달라”
이처럼 롯데몰 개발이 지지부진하자 주민들은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상암·성산·수색·증산·북가좌·남가좌·중동 등 7개동의 주민대표들로 구성된 서부지역발전연합회는 그동안 주민 7000여명 명의의 서명부를 시에 제출했으며, 수차례 집회를 연 바 있다. 연합회 카페에 가입된 주민은 약 4천여명이다.
롯데몰 인근 택지지구의 입주예정자들도 가세하고 있다. 수색·증산동의 16개 개발구역에는 2~3년 내 1만3000여 가구가 들어설 예정인데, 롯데몰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이들 중 일부는 벌써부터 커뮤니티를 만들어 참여하고 있다.
내년 입주를 앞둔 경기도 고양시 향동지구 수분양자들도 동요하고 있다. 향동지구는 롯데몰 부지와 약3Km가량 떨어진 곳으로, 내년과 후내년에 걸쳐 8700여 가구가 들어선다.
주민들이 롯데몰을 원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유동인구수에 비해 대형쇼핑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롯데몰 부지가 위치한 상암동은 서울시가 15여년 전부터 국내 IT·미디어산업의 메카로 조성 중인 곳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MBC글로벌미디어센터, YTN, SBS프리즘타워, KBS미디어센터, 한국경제신문·TV, 중앙·조선·동아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국 등이 들어섰으며, CJ E&M, LG CNS, LG U+, 팬택R&D센터, 누리꿈스퀘어, 한샘 등 대기업 수십여 곳도 둥지를 틀었다. 거주 시설로는 분양·공공임대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1만여 세대가 입주해했다. 하지만 상암동 내에는 대형마트가 한 곳도 없어 주민 및 직장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주변의 재래시장과 상권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도 주민들을 나서게 하고 있다. 롯데몰 부지와 망원시장과는 자동차로 10~15분, 마을버스로 30분가량 걸리는 거리다. 직선거리 1km 이내에 들어 상생협약의 대상이지만 네이버 지도에 나타난 차선거리는 약3.5km다. 그 사이에 홈플러스 월드컵경기장점이 위치해 있으며, 롯데몰 부지 북쪽으로는 500미터 남짓한 거리에 이마트 수색점이 자리 잡고 있어 주민들은 주로 이 두 곳을 이용하고 있다.
상암월드컵파크에 14년째 거주하고 있는 주부 오모 씨(46)는 CNB에 “인근의 홈플러스와 이마트를 이용하면 되는데 주차하기도 힘든 망원시장에 20분이나 차를 끌고 갈 이유가 없다. 롯데몰 때문에 망원시장이 피해를 본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서정래 비대위원장(전 망원시장 상인회장)은 “롯데복합쇼핑몰은 대형마트 10개가 들어서는 것보다 더 큰 규모라서 단순히 망원시장과의 접근성만으로 봐서는 안된다. 마포구 전역의 상권에 직·간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몰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 지방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아파트 인터넷 카페에서는 롯데몰 찬반을 기준으로 후보자를 평가하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으며, 롯데몰 유치에 소극적인 후보는 낙선시키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 롯데, 비대위 간의 협상테이블에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이 등장하고 있다.
박 시장, 5년전 통매각 ‘원죄’?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3년 부지 매각 당시 유통대기업을 끌어 들이기 위해 상업용지 3개 필지를 한꺼번에 ‘통매각’ 했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서부지역발전연합회 김병식 공동위원장은 CNB에 “애초의 DMC사업계획은 1개 필지씩 분할 매각하는 것이었는데 서울시가 개발사업을 서두르려고 롯데에 한꺼번에 매각한 것”이라며 “그래놓고 오히려 규정을 강화해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처사”라고 지적했다. 시는 2016년 2월 ‘경제민주화 특별시’를 선언하면서 대형마트·복합쇼핑몰을 지으려는 사업자는 지자체에 건축허가를 받기 전에 기존 상인들과 상생 방안을 합의토록 방침을 정한 바 있다. 이는 영업개시 전까지 상생협약을 맺으면 되도록 한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을 엄격하게 해석한 조치다.
롯데와의 소송도 부담이다. 롯데는 지난해 4월초 서울시를 상대로 인·허가 지연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정소송(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을 냈다. 시는 최근 법원에 이달 예정된 첫 공판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를 앞두고 여론화 되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CNB에 “쇼핑몰 건립 절차가 원만해지면 행정소송을 취하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