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Q, 미스터피자, 피자알볼로 등 배달 음식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배달용 초소형 전기차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초소형 전기차는 기존 배달용 오토바이에 비해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는 장점이 있어 관련 업계에서 환영받고 있으며 정부도 보급에 적극적이다. 다만 관련 법이 미비하고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도 부족해 초소형 전기차 보급이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BBQ, ‘배달원 안전 논란’ 트위지로 바꾼다
음식 배달 오토바이는 신호와 차로를 무시하는 등 도로의 무법자로 통하며 안전과 관련한 여러 논란을 끊임없이 만들어 왔다. 최근 치킨·피자 등 배달 음식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오토바이 대신 초소형 전기차를 속속 도입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될 조짐이 보인다.
초소형 전기차는 석탄 연료가 아니라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친환경 이동 수단으로, 크기가 오토바이보다 조금 큰 4륜 자동차를 말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르노삼성의 트위지(TWIZY)와 대창모터스가 개발한 다니고(DANIGO), 그리고 쎄미시스코가 중국에서 수입·판매하는 D2 등이 판매되고 있다.
제네시스BBQ그룹의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이달 초 트위지 배달용 차량을 본격 도입한다고 밝혔다. BBQ는 이미 패밀리타운점, 종로본점 등의 직영점에서 트위지를 배달에 이용하고 있다. 5월 내 BBQ 패밀리(가맹점)에 60대를 도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8년 한 해 동안 총 1000대를 도입시킬 예정이다.
BBQ 관계자는 “기존 배달용 오토바이의 단점과 한계를 극복할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배달 문화를 창출할 새로운 방안을 고심하다가 2015년 업계 최초로 트위지 도입을 추진했었다”며 “이번에 정식으로 트위지를 도입해 앞으로 안전하고 편리한 배달 문화를 조성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로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BBQ는 현재 패밀리들에게 트위지 운영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롯데렌트카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패밀리에게 월 20만 원대(보험료 포함)로 이용이 가능하도록 지원해 패밀리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고 밝혔다.
배달 음식 업체가 주도적으로 도입
MP그룹이 운영하는 미스터피자는 지난해 9월부터 트위지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미스터피자는 직영점인 방배본점, 창동점, 판교점, 평택역점 등 4곳을 시작으로 현재 가맹점 4곳에서 추가 운행하며 총 8곳에서 트위지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스터피자는 배달원의 안전과 시니어, 주부사원들도 쉽게 배달이 가능하도록 전기차를 도입했다.
SPC그룹도 지난해 9월 청담동에 오픈한 플래그십 스토어 'SPC 플레이'를 통해 트위지를 이용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SPC그룹의 경우 배달이 주된 서비스가 아니어서 트위지의 도입은 첨단 트렌드를 활용한 체험 이벤트 성격이 강하다. 청담 SPC 플레이에 입점한 '쉐이크쉑'을 비롯한 브랜드 제품을 해피오더로 1만 5000원 이상 구입할 경우 반경 2km 내의 장소에 한해 트위지로 배달해준다. SPC그룹이 이를 위해 보유하고 있는 트위지는 2대에 불과하다.
전국에 280여 매장을 운영 중인 피자 프랜차이즈 업체 ‘피자알볼로’는 지난달 30일 초소형 전기차를 도입하고 시범운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피자알볼로가 도입한 초소형 전기차는 대창모터스의 다니고다. 피자알볼로 관계자는 “초소형 전기차 도입으로 배달 인력 고용 범위가 넓어지고, 노년층 고용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시범 운행을 거친 후 확대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전성·경제성 높고 고용난 해소 효과도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초소형 전기차의 가장 큰 장점으로 정부 및 지자체로부터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을 경우 오토바이 가격과 비슷한 700만 원대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또 다른 자동차에 비해 아담한 크기에서 비롯된 기동성, 저렴한 연료비 및 유지비, 넉넉한 적재량과 안정성 등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장점 및 친환경차의 장점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는 것도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초고속 전기차의 최고 시속은 80km, 한번 충전으로 최대 운행할 수 있는 거리는 80km 정도다. 트위지의 경우 트렁크 공간이 최대 180L까지 확장되어, 오토바이로는 두세 번에 나눠서 배달할 양의 짐을 한 번에 싣고 다닐 수 있다. 자동차 전용도로 운행이 금지되어 있는 등 일반 자동차에 비하면 제한 요건이 많지만 일정 지역 안에서 오가는 소매 물류 운송에는 최적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배달 음식 업계에는 안전성이 특히 중요하다. 초소형 전기차는 네 개의 바퀴를 갖춰 이륜차보다 안정적이며 견고한 차체로 배달 사원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특히 트위지는 차내 안전장치 및 4점식 안전벨트, 동급 유일한 에어백 장착으로 안정성 면에서 다니고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적인 면도 기대되는 바가 크다. 출고가는 경차와 비슷하거나 저렴한데, 정부 및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오토바이 가격 정도로 떨어진다. 일반 가정용 220V 콘센트로 충전이 가능하며 연료비는 월 2만~3만 원의 전기료면 충분하다. 내연기관에 비해 단순한 구조로 유지비도 저렴하다.
배달원 고용난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이라는 점도 초소형 전기차의 또 다른 장점이다. 오토바이의 경우 원동기 면허를 소지한 사람을 고용해야 하지만, 초소형 전기차는 기본 운전면허만 있으면 운전이 가능해 배달원을 구하기에 훨씬 용이하다. 피자알볼로 관계자는 “배달 인력 고용 범위가 넓어지고 노년층 고용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통사‧우체국‧정부도 보급 나섰다
외식 업계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초소형 전기차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부문이 통신 업계다. SK브로드밴드는 애프터서비스 전문 자회사인 '홈앤서비스'에서 올해 상반기 중 업무용 오토바이를 전기차로 전면 교체할 계획이다. 우선 다니고 5대를 도입해 시범적으로 운행할 예정이다. KT 역시 애프터서비스 기사의 이동차량 용도로 다니고 70대를 주문한 바 있으나, 다니고의 개발이 늦어져 현재 보류된 상태다.
우체국은 초소형 전기차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환경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월 '친환경 배달장비 보급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맺고,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의 하나로 노후화된 우체국 배달용 이륜차를 초소형 전기차 및 전기 이륜차로 교체하기로 했다.
이에 우정사업본부는 2020년까지 전국의 우체국 배달장비 총 1만 5000대의 67%인 1만 대를 초소형 전기차로 단계적 전환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를 위해 3월부터 초소형 전기차 50대를 시범운행하며 기술성 검증 및 현장 집배원의 의견을 듣고 구조변경 등 기술규격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청와대도 초소형 전기차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바 있다. 지난 1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초소형 전기차를 콕 집어 언급했다. “전기자동차를 육성하자면서 국내에선 기존 자동차 분류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1~2인승 초소형 전기차를 한동안 출시하지 못했다”면서 “규제가 혁신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사례”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렇게 인기 많은데 왜 이제야?
초소형 전기차는 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트위지는 지난해 6월 출시 후 올해 3월까지 누적판매대수 1100여 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691대가 판매되는 데 그친 것은 스페인 공장에서만 생산되는 완성차를 들여와 출고하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은 올해 공급을 더욱 늘릴 방침이며, 국내 생산라인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골프 카트와 야쿠르트 배달용 전기 카트를 제조하던 대창모터스가 자체 개발한 다니고는 티몬과의 콜라보 프로모션을 통해 두 차례 예약판매 물량을 모두 1~2일 사이에 완판하며 화제를 모았다. 대창모터스는 올해 다니고의 목표 판매대수를 1500~2000대로 잡았는데 1월에만 예약판매대수 1000대를 기록했다. 트위지가 도어에 창문이 기본으로 달려있지 않은데다 에어콘도 없어 냉난방에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데 비해 다니고는 일반 자동차처럼 도어에 기본으로 달린 슬라이딩 창문으로 실내를 밀폐할 수 있으며, 에어콘 및 히터가 설치되어 있어 편의성 면에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이처럼 초소형 전기차는 국내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해외와 비교하면 여전히 보급이 더딘 편이다. 프랑스의 르노가 유럽에서 트위지를 출시한 것은 2012년이고, 2014년까지 3년이 채 안 되는 사이 1만 5천 대나 판매되며 실용성과 상품성을 검증 받았다. 그러나 국내에서 트위지는 지난해 6월이 돼서야 정식으로 출시됐다. 초소형 전기차의 국내 보급은 왜 이리 더딘 것일까?
사실 트위지는 더 일찍 국내에 도입될 수 있었다. 2015년 5월 BBQ는 배달 오토바이를 트위지로 교체하기 위해 서울시 및 르노삼성자동차와 '초소형 전기차 실증운행을 위한 삼자간 업무협약(MOU)'를 맺고 트위지 5대를 인수했다. BBQ는 정식 도입 전 6개월 동안 시범 운행을 계획했고, 송파구청으로부터 임시운행 허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트위지가 국내 자동차관리법상 이륜차인지 승용차인지 법적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안전성과 관련한 법적 근거도 미약하다며 서울시에 임시 운행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통보했다.
제도적 한계가 시장 확대의 걸림돌
당시 BBQ의 트위지 시범 운행은 다양한 분야의 관심을 많이 받았던 터라, 계획이 무산되자 과잉 규제 논란이 일어났다. 이에 정부는 2016년 5월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열고 해외의 자동차 안전·성능 기준을 충족한 차량에 한해 운행을 허가할 수 있는 특례 규정을 마련했다.
이어 국토부는 초소형 자동차를 일단 경형 자동차로 분류했다. 여전히 경찰 당국은 도로교통법상 안전성 관련 근거가 부족하다며 자동차전용도로 및 고속도로 등에서는 주행할 수 없게 했지만, 정식으로 출시될 수 있는 바탕이 겨우 마련된 셈이다.
아울러 국토부는 지난해부터 경차 분류 안에 초소형차 부문을 추가 신설한다는 내용을 담은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입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관련 개정안은 현재 입법예고 중이다. 참고로 기존 자동차관련법은 자동차를 배기량 및 치수에 따라 경차,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로 분류해 왔는데 이는 1987년에 마련된 기준이다.
한편, 자동차 업계는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이 부족한 것 때문에 모처럼 불붙은 초소형 전기차 시장 확대에 걸림돌이 될 것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올해 환경부는 전기차 보조금 물량을 2만 8000대로 잡고 있는데, 현대·기아·한국지엠의 전기차 예약 물량만 1월에 이미 1만 8000대를 넘어섰고, 업계 예상치는 3만 대에 달한다. 여기에 전기차 보조금은 신청 순이 아니라 출고 순으로 지급된다. 현재 예약 구매자들이 차량을 늦게 인도받게 되면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은 국내에서 생산량을 일찌감치 늘릴 수 있는 대기업 전기차 구매자들이 혜택을 먼저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해외에서 완성되어 들여오는 트위지와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다니고로서는 그다지 유리한 상황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